북한의 첫 번째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실패로 끝났다. 북쪽은 곧바로 추가 발사를 예고했다. 한·미·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했지만, 중국 쪽은 ‘쌍궤병진’(비핵화와 평화체제 동시 추진)을 새삼 강조했다. 신규 대북 제재 등 안보리 차원의 대응 조치는 쉽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한반도 정세 긴장은 높아지는데 별다른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장기화·고착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종합하면, 북한은 2023년 5월31일 오전 6시27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위성운반 로케트 ‘천리마-1’형에 실어 발사했다. 우주발사체는 통상 3단으로 구성되는데, 1단 분리 뒤 2단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추진력을 잃고 서해상으로 추락했다.
북쪽은 발사 실패 원인을 △신형 엔진 체계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용한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 탓이라고 자체 분석했다. 이어 “위성 발사에서 나타난 엄중한 결함을 구체적으로 조사 해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며, 여러 가지 부분 시험들을 거쳐 가급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8년 8월31일 대포동1호에 탑재한 광명성1호 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그간 북쪽은 모두 일곱 차례 위성 발사를 시도했다. 2012년 4월13일 광명성3호를 실은 은하3호가 공중폭발할 때까지 앞서 네 차례의 시도는 무위에 그쳤지만, 같은 해 12월12일과 2016년 2월7일 광명성3호 2호기와 광명성4호 위성을 지구궤도에 안착시키는 성공을 거뒀다. 이후 북한은 우주발사체와 마찬가지로 3단 로켓을 사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능력을 여러 차례 과시했다. 이번 발사 실패를 두고 ‘예상 밖’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명예연구위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ICBM은 고도를 최고치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1단 엔진이 크고 2단 엔진은 보조적 역할을 한다. 반면 위성은 2단 엔진이 낮은 고도에서 반복 연소를 길게 하면서 위성을 원하는 궤도에 맞추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신형 엔진이라면 진공상태에서 연소 시험을 진행해야 하는데 북에는 그럴 만한 설비가 없다. 북이 액체연료로 사용하는 사산화이질소(N₂O₄)는 영하 11도에서 얼고 영상 22도에서 끓는다. 발사체가 지구궤도상 태양 반대편으로 가거나 역으로 태양 쪽으로 가면, 진공상태에서 극단적으로 온도가 낮아지거나 높아지면서 액체연료 통제가 어려워진다. 북쪽이 무수단 계열 미사일 발사 시험에 여러 차례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찰위성 추락 직후 북쪽이 실패 원인을 2단 엔진과 사용 연료라고 분명히 밝힌 것을 보면, 사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발사 예고기간(5월31일~6월11일) 첫날 이른 아침에 발사를 강행한 것은 지도부의 결정이든 실무진의 충성 경쟁이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일정을 맞춰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 쪽에선 북한이 2023년 상반기 당·국가기관의 사업과 경제 상황, 주요 정책 토의를 위해 ‘6월 상순’으로 예고한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이전에 정찰위성 발사를 성공시키려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다만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6월1일 낸 성명에서 “확언하건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사정찰위성은 머지않아 우주궤도에 정확히 진입하여 임무수행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을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발사체의 엔진과 연료 결함을 빠르게 해결한다면 예고한 기간 안에 재발사에 나서리라는 전망도 있지만, 첫 발사가 실패하면서 탑재한 위성도 잃은 터라 추가 발사에 필요한 위성을 사전에 확보하지 못했다면 발사가 상당 기간 미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 은하3호 발사 당시 1차(4월) 실패 뒤 2차(12월) 성공까지 약 8개월이 걸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초인 2012년부터 ‘우주강국 건설’을 내걸고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또 이듬해인 2013년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7차 회의에선 ‘국가우주개발국’을 신설하고 ‘우주개발법’을 제정하는 등 위성 발사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는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우주개발 부문 최중대 과제이자 전략무기 부문 핵심 과업으로 제시했다. <노동신문>은 군사정찰위성과 관련해 2022년 3월10일치에서 김 위원장의 말을 따 “남조선 지역과 일본 지역, 태평양상에서의 미 제국주의 침략군대와 그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 군사행동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보하고, “전쟁 대비 능력을 완비하기 위한 급선무적인 사업”이라고 전한 바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이렇게 짚었다.
“군사정찰위성은 상시적으로 상대방 표적에 대해 정찰을 수행하는 것 외에 유도무기를 제어하는 역할도 한다. 그간 북이 취약했던 분야다. 북은 2022년 핵무력정책법 제정과 함께 다양한 사거리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과 실기동 훈련을 실시하면서 이른바 ‘핵전쟁 수행 능력’을 강조했다. 정찰위성까지 확보한다면, 기존의 둔탁한 타격 방식이 더 세밀하고 정밀하게 바뀌면서 북이 주장하는 이른바 대남·대미 ‘보복·응징 억제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9년 3월5일 ‘달과 기타 천체들을 포함한 우주탐사와 이용에서 국가들의 활동 원칙에 관한 조약’(우주조약)에 가입했다. 같은 해 3월10일엔 ‘우주공간으로 쏴올린 물체들의 등록과 관련한 협약’(등록협약)에도 가입했다. 박경수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부국장은 2023년 3월6일 <조선중앙통신> 인터뷰에서 “우주조약은 모든 국가가 달과 기타 천체들을 포함한 우주를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이용할 데 대한 원칙, 우주를 평화적 목적에서 연구 및 이용할 데 대한 원칙, 우주의 개발과 이용에서 국제적 협력을 강화할 데 대한 원칙을 비롯해 국제우주법의 기본 원칙들을 규범화했고, 우주활동과 관련한 전문 분야의 국제조약인 등록협약은 우주에 발사한 물체들의 등록과 관련한 문제들을 규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우주조약 당사국, 등록협약 당사국으로서 우주의 탐사와 이용 분야에서 주권국가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게 됐으며, 우리의 우주활동은 국제법적으로 담보되게 됐다”고 말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6월1일 성명에서 “그 누구도 위성 발사에 대한 우리의 주권적 권리를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해석의 여지가 아예 없진 않지만, 김 부부장의 주장은 현행 국제법 체제에 대체로 부합하지 않는다. 유엔 헌장 제25조는 “회원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이 헌장에 따라 수락하고 이행할 것을 동의한다”고 규정한다. 또 제103조는 “회원국의 헌장상의 의무와 다른 국제협정상의 의무가 상충되는 경우에는 이 헌장상의 의무가 우선한다”고 규정한다. 국제협정보다 안보리 결의가 우선한다는 뜻이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 7월15일 채택한 결의 1695호에서 처음으로 북쪽에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 중단”을 요구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14일 채택한 결의 1718호에선 북한의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 중단”을 결정하고, 무기류와 사치품 등에 대한 대북 금수조처를 뼈대로 한 제재를 발동했다. ICBM을 비롯한 각종 탄도미사일은 물론 우주발사체 발사도 북한이 하면 국제법적으로 ‘불법’이 되는 이유다.
문제는 안보리가 사실상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란 점이다. 실제 안보리는 2022년 5월26일 북한에 대한 원유·정제유 공급량을 기존보다 각각 25%씩 삭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미국 주도로 표결에 부쳤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됐다. 안보리에서 표결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부결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북-미 대화의 결과로 북한이 취한 긍정적이고 선제적 조처에 미국이 호응하지 않은 것이 지금 같은 정세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반도 긴장 고조 속 중국은 모든 당사국이 냉정을 유지하고 긴장과 오판을 부를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며 “안보리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상황이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북은 다양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지속했지만, 안보리는 법적 구속력 없는 의장성명조차 단 한 차례도 채택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미·일은 한목소리로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명백한 도발과 위협이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지만, 중국 쪽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월31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반도 정세가 지금 같은 상황에 이른 맥락은 분명하며, 중국이 원하는 모습도 아니다. 상황 악화를 막는 유일한 길은 관련 당사국이 한반도 평화체제 부재로 인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쌍궤병진’의 정신에 따라 의미 있는 대화를 재개해, 각자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위기의 사이렌은 울리는데, 피할 곳은 없는 형국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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