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의 나라’ 브라질에서 10월28일 대통령선거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자이르 보우소나루(63) 사회자유당 후보와 페르난두 아다드 노동자당 후보가 맞붙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동운동가 출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노동자당은 대선에서 불패 신화를 쌓아왔다. 이번엔 전혀 달랐다. 55.13% 대 44.87%, 보우소나루 후보의 낙승이었다. 노동자당의 패배는 ‘룰라의 후예’인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2016년 8월 탄핵당한 직후부터 예견된 바다. 탄핵 당시 호세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5% 안팎을 오갔다.
“야심 차고 공세적”이었던 젊은 장교만연한 부패와 극심한 불황, 끔찍한 범죄율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심으로 이어졌다. 지난 4월 부패 혐의로 수감된 룰라 전 대통령이 ‘옥중 출마’를 선언하며,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며 잠시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도 했다. 법원의 확정판결에도, 룰라 전 대통령은 여전히 혐의 사실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8월 말 법원은 룰라 전 대통령은 ‘출마 자격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선 결과는 이때 사실상 정해진 셈이다. 알 수 없는 것은 보우소나루가 이끌어갈 브라질의 미래다.
보우소나루는 1955년 3월21일 상파울루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무면허’ 치과의사였다. 치과의사로 교육받은 건 아니지만, 동네에서 치과의사 노릇을 했다. 몇 차례 단속에 걸려 처벌을 받기도 했단다. 그 시절 브라질에선 흔한 일이었다. 보우소나루는 고교 졸업반 때 예비 군사학교에 입교했고, 1977년 브라질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했다. 군인이 되기 딱 좋은 시절이었다.
브라질은 20세기에 두 차례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코앞이던 1937년 11월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바르가스는 1945년 10월까지 집권했다. 첫 번째 군사독재가 막을 내린 뒤 19년여 유지됐던 헌정 질서는 1964년 3월 말 미국 지원을 등에 업은 군부의 쿠데타로 다시 한번 유린당했다. 이번에 좀더 길고, 폭력적인 세월을 보내야 했다.
각종 혐오 발언에 윤리위 회부·벌금형 전력민주적으로 선출된 주앙 굴라르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군부는 쉽게 권력을 내놓지 않았다. 카스텔루 브랑쿠를 시작으로 주앙 피게이레두까지, 모두 5명의 군 장성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며 철권을 휘둘렀다. 보우소나루가 사관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중반은 브라질 군부독재의 ‘황금기’였다. 브라질 일간신문 는 2017년 5월16일치에서 옛 군 인사기록을 입수해, “신임 장교 시절 보우소나루가 상관들한테 ‘야심 차고 공세적이지만, 논리적인 사고를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브라질의 2차 군사독재는 1985년 4월 조제 사르네이 민간 정부 출범과 함께 끝이 났다. 민주화 열망이 들끓던 시절이었다. 1987년 2월 마침내 제헌의회가 소집됐고, 이듬해 10월 새 헌법이 반포됐다. 이어 1989년 12월 직접·보통 선거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정부가 탄생했다. 그 이전까지 브라질 대통령은 의회를 통한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했다. “야심 차고 공세적”인 젊은 장교가 군 생활을 하기엔 좋지 않은 시절이 온 게다.
보우소나루가 처음 전국에 이름을 알린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브라질 우파 주간지 의 1986년 9월3일치에 보낸 기고문에서, 군인의 낮은 처우와 임금, 국방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 등 신생 민간 정부의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 때문에 군 내부에선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지만, 군사독재 잔존 세력과 보수 우파 쪽에선 보우소나루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는 육군 대위를 끝으로 군을 나와 곧장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1988년 지방선거에서 보우소나루는 기독민주당 후보로 리우데자네이루 시의원으로 출마해 무난히 당선됐다. 이때부터 리우데자네이루는 보우소나루의 정치적 기반이 됐다. 1990년엔 연방 하원으로 무대를 옮겼다. 이후 몇 차례 당적을 옮겼지만, 보우소나루는 선거에서 거푸 이기며 다선 의원 반열에 올라섰다. 그렇다고 그가 브라질 정치권에서 영향력이 컸던 것은 아니다. 그는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고, 막말을 일삼는 ‘이단아’ 대접을 받아왔다. 그럴 만도 했다.
“군사정부 시절 부패한 자들을 한 3만 명은 더 쏴 죽였어야 했다.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부터 말이다.”(1999년)
“(동료 여성 의원을 향해) 당신을 성폭행하지 않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2003년)
“만약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내가 그 아들을 사랑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런 아들이라면 차라리 사고로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2011년)
“인권이라느니, 정치적 올바름 운운하는 게 결국 범죄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범죄자들 편이다.”(2017년)
“(아프리카계 브라질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더는 애를 낳지도 않는 게 좋겠다.”(2017년)
“사람을 쏴 죽이지 않는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 범죄자를 쏴 죽이는 경찰은 보상받아야 한다.”(2017년)
막말 수준을 넘어서는 발언으로 보우소나루는 여러 차례 하원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정치권은 물론 브라질 변호사협회 등이 그를 하원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만 30차례에 이른단다. 소수자 차별 발언으로 법원이 여러 차례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유유히 살아남았다.
‘먼저 쏘고, 질문은 나중에’보우소나루는 올해 1월1일 다시 기독사회당을 탈당해, 사회자유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보우소나루를 영입한 사회자유당은 곧 극우 성향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일부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인들이 당을 떠났다. 지난 7월22일 사회자유당은 보우소나루를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했다. 수십 개 정당이 난립한 브라질 정치권에서 극우 성향의 군소 정당이 하나둘 보우소나루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만든 연대체의 으뜸 구호는 “무엇보다 최우선은 브라질, 누구보다 최우선은 신”이다.
가톨릭 신자를 자처하는 그는 이미 10년 전부터 개신교 교회에 다니고 있다. “형제는 형제에게 표를 준다”는 보수적 복음주의 정치세력을 지지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2016년 5월 호세프 전 대통령 탄핵안이 보우소나루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다. 하원을 통과한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두고 상원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던 2016년 5월, 보우소나루는 이스라엘로 출국했다. 그는 요르단강에서 브라질의 유력한 복음주의 목사한테서 세례를 받았다.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아들들도 그의 든든한 우군이다. 세 번 결혼해 모두 5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 플라비우, 카를루스, 에두아르두는 리우데자네이루를 기반으로 각각 주의회, 시의회, 연방 하원에 진출해 있다. 이들은 보우소나루의 핵심 참모로 활동하면서,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보겠다. 나한테 5살, 3살 된 딸이 둘 있다. 만약 내 딸을 유괴한 범인이 신체의 일부, 그러니까 귓바퀴나 손가락 같은 걸 잘라서 나한테 보내기 시작했다고 치자. 그런데 경찰이 유괴범 가운데 1명을 붙잡았다. 그놈이 입을 열지 않으면, 내 딸은 계속 납치범한테 붙잡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직접 나서서 그놈을 고문할 거다.”
보우소나루의 맏아들이자 리우데자네이루 주의원인 플라비우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전문 계간지 (2018년 봄호)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형적인 ‘보우소나루식 화법’이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 정책으로 고문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면….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뭔지를 판단해야 한다. 당신 딸의 목숨이 중요한가, 아니면 범죄자의 묵비권이 중요한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하겠나?”
군부의 ‘친위 쿠데타’ 가능성도 제기2017년에만 브라질 전역에서 벌어진 각종 강력 범죄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6만3880명에 이른다. 역대 최악이었다. 보우소나루는 총기 소지 권한을 확대하고, 경찰에 범죄 혐의자를 현장에서 사살할 수 있도록 ‘백지수표’를 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른바 ‘먼저 쏘고, 질문은 나중에’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다. 보우소나루는 지난 8월 유세에서 “범죄자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한꺼번에 범죄자를 10명, 20명씩 죽인 경찰은 처벌이 아니라 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라질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죽은 사람이 이미 1년 평균 5천 명에 이른다.
보우소나루는 대선에 출마하면서, 올 2월 말 전역한 육군 대장 출신 아미우통 모랑을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영입했다. 그는 선거운동 당시 “집권하면 군 출신 인사를 더 많이 내각에 등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원 의원 시절엔 툭하면 ‘의회 해산’을 주장하며, 군사독재 시절을 미화하기도 했다. “과거 군사정부의 최대 실수는 죽여야 할 사람을 고문만 한 것”이라거나 “집권하자마자 독재를 시작할 것”이라는 등의 발언도 내놨다. 가 지난 10월9일 인터넷판에서 보우소나루 집권 이후 군부의 ‘친위 쿠데타’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38개국에 한 설문조사에서, 브라질 응답자 가운데 ‘대의제 민주주의는 아주 좋은 정치제도’라고 한 이들은 단 8%에 그쳤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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