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내 목을 부드럽게 만져본다. 뒤통수 위에 손도 고이 얹어보고, 그러곤 상상한다. 그들이 나를 뒤에서 치면 어떤 느낌일까. 그냥 머리에 총 한 방 쏘는 게 나을 텐데. 이 생에서 충분히 고통받았으니 죽으면서까지 고통받고 싶진 않다. 죽음은 빠르게 와야 한다. 그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방글라데시 출신 페미니스트 작가 타슬리마 나스린은 7월6일 인도 일간지 에 ‘내가 만일 참수된다면’이란 글을 기고했다. 무신론자임을 강조해온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협박을 피해 1994년 이래 망명 중이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나스린은 방글라데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중 하나인 ‘안사룰라 방글라 팀’(Ansarullah Bangla Team·이하 안사룰라)이 공표한 ‘참수 대상 추가 14인 목록’에 ‘톱’으로 올랐다. 목록에 오른 이들은 외국에 거주하는 방글라데시인으로 주로 무신론 혹은 세속주의(정교분리주의) 관점에서 종교극단주의를 비판해왔다. 7월1일, 나스린은 또다시 살해 협박을 받았다. 이번에는 인도 남부 케랄라주에 기반한 ‘안사르 칼리파’(Ansar Khalifa)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인터넷에 협박문을 올렸다.
IS 추종자 그룹 또는 연계 세력공교롭게도 이날 나스린의 모국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휘두른 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수도 다카의 굴산 구역 ‘홀리 아티전 베이커리’에 침입한 젊은이 6명은 “신은 위대하다”를 외친 뒤 20명의 무고한 목숨을 참수했다. 코란 암송을 기준으로 인질들의 생사를 갈랐던 이들은 다음날 아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특공대에 사살됐다.
테러가 발생한 구역은 상시검문소 18곳과 최소 11곳의 임시검문소, 그리고 제복 경찰 750명과 사복 경찰 250명 정도가 지키는 보안 강도가 매우 센 외교 구역이다. 이 구역에서 외국인을 겨냥한 테러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28일 이탈리아 비정부기구(NGO) 직원 세자레 타벨라가 괴한의 총격에 사망했다. 지난 3월5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공직자로 알려진 칼라프 알알리가 같은 방식으로 숨졌다.
7월1일 테러는 이 구역 보안이 심각하게 뚫렸음을 방증한다. 테러 발생 6일이 지난 7월7일 현재까지 수사 당국은 테러범들이 어떤 경로로 이 구역에 침입했는지 폐회로텔레비전(CCTV)에서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번 테러가 국내 조직의 소행일 뿐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등 국제 지하디 조직(이슬람 원리주의 무장투쟁 운동조직)이 관여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의도적이든 무지이든 국내 자생 조직과 국제 지하디 조직 간의 역학관계를 무시한 발언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정부 발표처럼 국제 지하디 조직과 무관할까. 방글라데시 내 지하디 조직들의 최근 활동을 비춰볼 때 알카에다 연계 자생 조직 ‘안사룰라’이거나 IS 추종세력인 자마툴 무자히딘(Jamaat-ul-Mujahideen·이하 자마툴) 중 하나로 추정된다. 국제 지하디 조직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7명이 침입한 시각은 7월1일 밤 9시께로 추정된다. 피가 낭자한 현장은 다음날 새벽 3시께 친IS 매체인 (Amaq News Agency)를 통해 보도됐고, 미국의 테러리즘 전문 포털 ‘사이트 인텔리전스’(SITE Intelligence)가 이 사진을 공개하며 삽시간에 퍼졌다.
미국 워싱턴에 기반한 대테러 전문지 (Long War Journal) 편집장 토머스 조세린은 테러 직후 분석 기사에서 “가 보도한 내용 중 언론이 이미 보도하지 않은 건 없다. 보도에서 IS가 이 공격을 미리 인지했다는 암시는 없다”고 썼다.
영국 런던정경대학 초대교수이자 국제치안 전문가인 사잔 고헬은 7월3일 미국 방송 <cnn>과의 인터뷰에서 방글라데시 테러와 IS의 관련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를 통해 IS 소행이라 밝혔다면 (IS 시리아 본부가 아니라) IS 추종자 그룹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IS와 일정한 교신을 해왔을 테지만 그들이 시리아나 이라크와 직접 관련 있다고 장담할 순 없다. 만약 IS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소행을 밝혔다면 IS가 주도한 것이다.”
“방글라데시 외교 구역 최초 공격” 트윗
고헬 교수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안사룰라의 소행이라는 데 무게를 뒀다. 7월1일 테러가 있기 몇 시간 전 ‘@Ansar_Islam_BD’라는 트위터 계정이 ‘11시2분’으로 표시된 시각에 “이번 작전은 방글라데시 외교 구역에 대한 최초의 공격이 될 것이다. 인질을 잡을 것이며 침략자(crusaders)들과 그들의 동맹세력을 겨냥한 최대 작전이다”라는 내용으로 이날 테러를 예고하는 듯한 트윗을 올렸다. 이 트윗 계정은 이후 사라졌다. 그동안 뜨고 지기를 반복해온 전력이 있는 ‘Ansar Islam’을 응용한 트윗 계정이 사실상 안사룰라와 같은 조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안사룰라는 ‘알카에다 인도대륙지부’(AQIS)의 방글라데시 전위 조직이다. 2014년 9월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알카에다 인도대륙지부’의 탄생을 선포하며 “2년 동안 모집했고, (인도·방글라데시에) 이미 존재해온 지하디 그룹과 협상해서 ‘알카에다 인도대륙지부’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고 말했다. 자와히리는 이어 ‘알카에다 인도대륙지부’의 지도자로 아심 우마르를 임명했다.
우마르는 인도 태생으로 1990년대 말 파키스탄으로 이주해 활동하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다. 에 따르면, ‘알카에다 인도대륙지부’는 공격 대상을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무차별 공격’과 구분지으려 노력한다는 의미다.
‘알카에다 지도자 자와히리가 승인한 공격’이라고 밝히는 점도 이 조직이 알카에다와 연계하여 체계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알카에다 인도대륙지부’의 공격 대상은 주로 사상, 신성모독 등과 연계된다. 이들은 “무신론자라고 해서 모두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신론, 언론 자유, 사상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자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테러범으로 공개된 이들이 IS 깃발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고려할 때 ‘IS 브랜드를 건 추종세력’이라는 주장도 신빙성이 있다. 누구의 소행이든 분명한 것이 있다. 정부 발표와 달리, 이번 테러는 국제 지하디즘의 선명한 ‘족적’을 방글라데시에 남겼다.
지난 3년간 방글라데시에선 세속주의 블로거, 성소수자, 힌두 사제, 불교도, 외국인은 물론 이슬람 소수파인 시아 무슬림, 수피 무슬림(이슬람 신비주의 종파), 아마디(이슬람 주류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종파) 등 40명 넘는 ‘소수자’가 참수당했다. 이들 테러 뒤에도 주로 IS 추종세력과 알카에다 연계 자생 조직인 안사룰라가 번갈아가며 소행을 밝혔다.
다카 테러범 다수 중산층 청년
지난 4월 참수당한 성소수자 매거진 편집장 술하즈 마난과 그 친구 사미르 마흐붑 토노이를 참수한 곳도 안사룰라였다. 안사룰라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2012년께다. 분석가들은 2011년 12월20일 세속주의 정당 ‘아와미 리그’가 이끄는 현 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한 군장교들이 안사룰라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본다. 이 중 파키스탄으로 도피한 사이드 무함마드 지아울하크가 주요 인물로 거론된다.
그리고 2013년 2월, 블로거 라지브 하이더의 참수를 시작으로 안사룰라는 급격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라지브 하이더 참수로 붙잡힌 용의자 5명은 모두 대학생이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남아시아 전문 교수인 리아즈 알리는 안사룰라에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젊은이가 대거 포진됐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번 다카 테러에서 사살된 테러범 중 최소 3~4명도 이 계층 젊은이들이다. 이 점도 안사룰라가 테러세력이라는 증거로 제시된다.
IS가 방글라데시에서 부상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IS가 PDF로 발행하는 매거진 (Dabiq) 14호(2016년 4월 발행)에는 “벵골에 우리 지부가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벵골은 방글라데시는 물론 인도 서벵골주까지 포괄한다. 매거진은 또 “인도, 버마 등 무슬림을 박해하는 이들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경고도 담고 있다.
IS는 방글라데시의 기존 조직들에 파고들어 IS 추종세력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마툴이 바로 그 추종세력이다. 다만 이들과 IS의 조직적 연계는 ‘알카에다 인도대륙지부’와 안사룰라가 보여준 것만큼 명료하지는 않다.
리아즈 알리 교수는 테러리즘 전문 저널 (Perspective on Terrorism) 10호(2016년 2월 발행)에 발표한 논문 ‘방글라데시 이슬람 무장단체는 누구인가’에서 방글라데시의 이슬람 무장세력을 다섯 세대로 구분했다. IS 추종세력 자마툴이 등장한 건 2세대부터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하디(성전)에 참여하고 돌아온 1세대가 1998년에 확대 개편한 게 2세대다. 자마툴은 이때 이미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했다. 인도의 대테러 전문 국가조사기구(National Investigation Agency)는 자마툴의 훈련소가 인도 서벵골주, 그 바로 옆에 위치한 자르칸드는 물론 인도 동북부 아삼 지역에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방글라데시, IS 활동지 새 거점?
이번 다카 테러범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몇 달간 실종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시리아를 다녀왔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또 방글라데시 영토 안에서 이들의 훈련 장소를 추려보는 건 쉽지 않다. 버마와 국경이 닿은 동남부쪽은 주로 불교도인 버마나 인도 반군들의 아성 지대다. 북부 아삼 지역이나 서부 벵골 지역으로 ‘구멍난’ 국경을 넘나들었을 가능성을 점쳐본다면 이들 지역의 훈련소가 개연성 있어 보인다.
이들이 실종된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밝히는 건 이번 테러의 주체, 그 규모와 운영 방식을 파악하는 데 많은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지난 3년여간 정치 불안이 계속된 방글라데시는 세계 곳곳에서 무성하게 스며드는 ‘지하디즘’이 발견한 ‘천국’이 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전화신청▶ 02-2013-1300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 캠페인 기간 중 정기구독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한겨레21 기자들의 1:1 자소서 첨삭 외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cnn>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국 최고 의사’ 84살 김의신 “암에 좋은 음식 따로 없어, 그 대신…”
“명태균에 아들 채용 청탁…대통령실 6급 근무” 주장 나와
“대통령 술친구 이긴 ‘김건희 파우치’…낙하산 사장 선임은 무효”
법원, KBS 박장범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기각
탄두가 ‘주렁주렁’…푸틴이 쏜 ‘개암나무’ 신형 미사일 위력은
‘야스쿠니 참배’ 인사 온다는 사도광산 추도식…‘굴욕 외교’ 상징될 판
관저 유령건물 1년8개월 ‘감사 패싱’…“대통령실 감사방해죄 가능성”
‘1호 헌법연구관’ 이석연, 이재명 판결에 “부관참시…균형 잃어”
“회장 자녀 친구 ‘부정채용’…반대하다 인사조처” 체육회 인사부장 증언
꺼끌꺼끌 단단한 배 껍질…항산화력 최고 5배 증가 [건강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