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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전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항일노병
등록 2015-09-10 22:45 수정 2020-05-03 04:28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20대 청년들이 90살을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되어 한날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 9월3일,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70발의 예포가 쏘아올려지자, 얼굴 가득 검버섯이 있는 노병사들의 눈가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9월3일, 전세계의 이목이 베이징 톈안먼 광장으로 집중되었다. 이날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전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중국 정부는 행사를 위해 톈안먼 광장으로 통하는 시내 주변의 모든 도로에서 개미 한 마리 들어올 틈 없이 철저한 ‘계엄 통제’를 실시했다. 이날을 위해 지난 한 달여 동안 ‘블루스카이’ 작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모든 차량을 홀짝제로 운행했고 주변의 오염 산업과 공장들의 가동을 멈추게 했다.

중국인에게 이날 행사는 단순한 전승절 기념 행사가 아니라 70년 전의 굴욕과 정치·경제적 혼란, 가난 등을 딛고 세계 최강의 열강으로 부상한 ‘조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각인시키는 그야말로 위대한 ‘런민삐셩’(인민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인민필승’과 ‘인민폐 상승’을 뜻하는 중국어 동음이의어)의 날이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검버섯과 백발이 성성한 노구의 항일노병(抗日老兵)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엄격하게 선별된 항일노병과 그 자녀 등 300명 이상을 실은 무개차가 무장경찰 오토바이 21대의 호위를 받으며 톈안먼 광장으로 들어서자 행사에 참여한 모든 귀빈과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이들을 긴 박수로 맞았다.

중국 항일노병의 기원은 1937년 7월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베이징 외곽의 루거우차오에서 일본이 중국 침략을 위해 고의로 일으킨 총격 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항일전쟁으로 부른다. 그날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공산당과 국민당이 국공합작을 해가며 기나긴 항일전쟁을 치렀다. 공산당 계열의 항일노병들은 주로 팔로군과 신사군, 동북항일연합군 출신으로 이들 중에는 수많은 조선인 항일노병도 포함돼 있다. 이날 열병식에선 ‘국공 양당 항일노병’들이 역사상 최초로 함께 열병 행진을 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 행사에서 국민당군 노병들에게도 처음으로 인민폐 5천위안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70주년을 맞은 전승절 기념일은 최근 들어 중국에서 치른 가장 큰 국가적 행사이자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행사였다. 서방국가들은 이날 행사가 지나치게 군사주의적 색채가 농후하다며 비난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열병식 때 일부러 왼손으로 열병대를 향해 경례하는 등 ‘평화’를 강조했다. “조국의 선진적인 무기들이 그저 열병식에만 출현하고 전쟁에는 영원히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96살 한 중국 허베이 항전노병 출신의 말이다.

베이징=박현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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