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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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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눈앞에 둔 인도네시아

군부 대변하는 프라보워 꺾고 서민 후보 조코위 대통령 당선 유력…

투쟁민주당 대신해 지지자들이 펼친 자발적 선거운동 지지율 반등의 일등공신
등록 2014-07-22 16:0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7월9일, 인도네시아 전역은 화창했다. 이날은 인도네시아 유권자 1억9천만여 명이 일곱 번째 대통령을 선택하는 날이었다. 이날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선은 이제 최종 결과 발표만 남겨놓은 상태다.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기관에선 투쟁민주당(PDI-P)연합 조코 위도도(53·일명 조코위)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코위 아저씨 어딨어?” 3시간째 투쟁민주당연합의 대선 후보 조코위를 기다리던 한 남자아이가 함께 나온 아빠·엄마 손을 붙잡고 보챘다. 오전 10시10분께 자카르타 수로파티 공원 제18투표소에 부인 이리아나와 함께 등장한 조코위를, 그러나 아이는 쳐다볼 수 없었다. 300여 명의 내외신 취재진과 주민들이 올해 대선의 ‘아이돌’ 조코위 주변을 겹겹이 둘러쌌기 때문이다.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12만 명 함께한 ‘두 손가락으로 인사를’ 콘서트

지난 7월9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서민 후보’ 조코 위도도(오른쪽)의 승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지난 7월9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서민 후보’ 조코 위도도(오른쪽)의 승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오늘은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 시민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다. 나는 매우 자신 있다.” 20여 분 만에 투표를 마치고 나온 조코위는 평소처럼 차분한 음성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이후 조코위는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때부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체크무늬 셔츠(baju kotak-kotak)로 갈아입고 자카르타 동부와 남부의 지지자 사무소, 록그룹 ‘슬랭크’(Slank) 사무실 등 네 곳을 차례로 돌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판초란 사무소에서 조코위를 맞이한 부디 아리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쪽이) 돈으로 투표에 개입한 행위를 법으로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슬랭크의 드러머 빔빔은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파푸아에서 80%를 득표했다더라”고 강조했다. 이 지지자들은 지난 4월9일 총선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뒤 재정적 여력이 떨어진 투쟁민주당을 대신해 선거 일주일 전 조코위 지지율을 반등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지지자들은 가정마다 방문해 자발적인 조코위 선거운동을 펼쳤다. 특히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7월5일, 그룹 슬랭크 등 기호 2번 조코위를 지지하는 가수들이 기획한 ‘두 손가락으로 인사를’(Salam Dua Jari) 콘서트가 열린 붕카르노 경기장에는 약 12만 명이 참석해 언론의 큰 관심을 모았다.

경쟁자인 그린드라당연합의 대선 후보 프라보워 수비안토(63)도 선거 막판에 무섭게 조코위를 추격했다. 지난 5월 조코위에게 지지율이 15%포인트 이상 뒤졌으나 선거 막판엔 격차가 3%포인트까지 빠르게 줄어들었다. 프라보워가 지금은 헤어진 부인 티틱(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둘째딸 시티 헤디아티 하리야디의 별칭)을 대동해 선거운동을 펼치며 ‘우리의 자원을 가져가는 외국자본’을 비판하고 ‘소비하는 국가에서 생산하는 국가로’를 외칠 때, 조코위는 솔로 시장 시절부터 이어온 ‘블루수칸’(Blusukan·‘불시에 찾아간다’는 뜻의 자와 속어) 특기를 살려 전국을 누비며 ‘정신혁명’을 강조했다.

32일간 이어진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 두 후보는 생방송 TV토론에서 다섯 차례 맞붙었다. 프라보워가 충분한 훈련으로 몸에 익은 ‘프로페셔널’한 토론용 자세와 손동작, 발언을 선보일 때, 조코위는 사회자의 질문을 들으며 다리를 떨거나 미리 적어놓은 메모지를 들고 더듬대며 모두발언을 하는 ‘아마추어’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민중의 승리다”

두 후보의 격차가 줄어든 데는 조코위가 중국계 기독교인이라는 내용의 흑색선전물 (Obor Rakyat·민중의 횃불)이 나돌고, 국군 소속 마을 감독 하사관(Babinsa)들이 프라보워 투표를 유도하는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것도 영향을 끼쳤다. 시사주간지 의 정치부 기자 카르티카 찬드라는 “그린드라당이 더러운 선거전을 펼쳤다. 파들어가보니, 은 그린드라당 부대표 파들리 존이 직접 돈을 대며 극비로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조코위 지지자들은 돈을 모아 (Obor Rahmatan Lil’alamin·모두를 위한 이로움)을 발행하고, 프라보워가 1998년 폭동 유혈·무력 진압 책임으로 불명예 제대한 사유서 등을 공개하며 맞섰다.

“나는 조코위가 파푸아인들에게 말한 평화와 번영의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는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파푸아인들이 그를 직접 만나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투쟁민주당 대표의 크바구산 집에서 조코위를 기다리던 야코바 욜라(45) 파푸아 주지방의회(DPRD Provinsi) 의원의 말이다. 조코위가 선거운동의 첫발을 뗀 파푸아의 조코위 캠프 대표인 그녀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자카르타보다 2시간 빠른 시간대인 파푸아의 2개 주에서 이미 조코위가 80% 이상 득표했다는 빠른 집계 소식이 들어오던 참이었다. 오후 2시20분께, 메가와티는 크바구산에서 “지금 빠른 집계 결과, 조코위-유수프 칼라(JK)가 52% 득표로 이겼다”고 선언했다. 이후 자카르타 프로클라마시 기념탑공원에서 지지자들 앞에 선 조코위는 “이것은 당의 승리도 조직력의 승리도 아닌 인도네시아 민중의 승리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시각, 프라보워와 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 하타 라자사 역시 승리를 선언했다. 프라보워는 작고한 아버지 수미트로의 커르타너가라 집에서 “메라푸티연합(KPD·그린드라당연합의 명칭)이 참고하는 조사기관의 빠른 집계 결과, 기호 1번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빠른 집계는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사 등이 선거관리위원회(KPU)의 허가를 받아 미리 지정한 표본투표소에서 오후 1시 투표 종료 뒤 실제 투표함을 개봉해 집계한 자료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집계 결과는 늦어도 7월22일까지는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양쪽이 선거 당일 오후 승리를 선언하면서 유권자들은 아직 혼란에 빠져 있다. 현재 일간신문 연구소, 관영 (RRI), 샤이풀무자니리서치센터(SMRC), 인도네시아정치지표-, CSIS-Cyrus, LSI, 포풀리센터 등 7개 기관이 조코위-JK 득표율을 50.94~52.97%로 프라보워-하타보다 5%포인트가량 앞섰다고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서베이(JSI), 누산타라조사기관(LSN), 인도네시아리서치센터(IRC)와 푸스캅티스 등 4개 기관은 프라보워-하타가 50.22~51.96%로 조코위-JK를 2~3%포인트 앞섰다는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조코위 효과’ 투쟁민주당 험난할 5년 의정

인도네시아의 정국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일찌감치 투쟁민주당의 승리를 예감한 메라푸티연합 소속 의원들은 서둘러 기싸움에 들어갔다. 프라보워의 그린드라당을 중심으로 골카르당, 국민수권당(PAN), 번영정의당(PKS), 통합개발당(PPP), 월성당(PBB)과 민주당 등 560석 의회(DPR)의 63%에 해당하는 353석을 차지한 메라푸티연합은 대선 전날인 7월8일 의회, 국민협의회(MPR), 지역대표회의(DPD), 지방의회(DPRD)에 관한 개정법을 발의했다.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점유한 정당이 자동으로 의장직을 맡게 되는 기존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이 거대 연합은 지난 7월14일 오후 5년간의 영구연합을 선언하면서 국민각성당(PKB), 민족민주당(NasDem), 하누라당, 인도네시아정의통합당(PKPI)이 한배를 탄 투쟁민주당연합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다. 조코위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총선에서 의회 제1정당으로 우뚝 서는 것에 더 공을 들였던 투쟁민주당은 ‘조코위 효과’ 덕에 10년 만에 총선 승리를 맛봤지만, 5년 의정 활동 앞엔 이미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통신원 skidol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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