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자 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 장면, 왠지 낯설지 않다. 언제 어디에선가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 전에도 본 듯한 상황이다. 민주항쟁으로 쫓겨난 독재자가, 슬며시 감옥 문을 나섰다. 저만치서,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린다. ‘거봐,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반혁명 세력이 마침내 승리”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토라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8월22일 석방됐다. 부패 혐의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이 잇따른데다, 법으로 정해놓은 형 확정 이전 최대 구금 기간(2년)도 넘긴 때문이다. 2011년 1월 민주화 항쟁 때 시위대 학살에 간여한 혐의와 또 다른 3건의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이 남아 있긴 하지만, 무바라크는 일단 ‘자유’를 얻었다. 그를 태운 헬리콥터가 이륙을 준비할 무렵, 토라 교도소 부근에선 몰려나온 일부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울렸단다. 방송 카메라가 먼발치에서 병상에 누워 옮겨지는 독재자의 모습을 잡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집트 과도정부는 무바라크의 석방에 앞서 “다른 재판이 종료될 때까지 (무바라크를) 가택연금에 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중적 반발을 우려한 탓이다. 그는 자신이 지낼 ‘가택’으로 카이로 외곽 나일강변에 자리한 마아디 군사병원을 지목했다. 지난 2년여 구금 기간에도 즐겨 찾던 곳이다. 하긴, 무바라크 구금에 앞서 토라 교도소 당국은 대대적인 시설 개·보수 작업까지 벌였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였다.
“상징적으로만 따지자면, 그야말로 참담할 노릇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그저 고약한 우연일 뿐이다.” 히샴 헬리어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8월23일치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더라도, (법 절차에 따라) 무바라크의 석방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서글픈 심정이다. 독재자는 풀려났고, 우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무바라크 정권에 맞서 숱한 시위를 주도한 시민운동가 하젬 바시우니는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평론가 에마드 샤힌은 “무바라크 석방은 옛 체제로의 완벽한 복귀를 상징한다”며 “이집트의 반혁명 세력이 마침내 승리를 선언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이집트 국민은 무바라크의 석방 소식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과거의 인물이며, 그가 권좌에 복귀할 가능성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는 8월22일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전했다. 2년6개월 남짓 숱한 일을 겪었으니, 지칠 만도 하다. 그렇지?
지난 6월 무르시 정권 퇴진 투쟁을 이끈 ‘타마로드’(반란) 운동 쪽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 단체는 무바라크 석방 소식에 성명을 내어 “무르시 정권의 무능함이 독재자의 석방으로 이어졌다. 이게 다 무슬림형제단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독재자의 석방 소식에도 ‘혁명의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에서 규탄 집회 한번 열리지 않는 이유를 가늠할 만하다. 지금 광장 주변은 장갑차가 에워싸고 있다.
유혈 참극에 침묵하는 야권·시민사회
지난 8월13일 친무르시 시위대가 군홧발에 짓밟힌 이후부터 일주일 남짓 만에, 이집트 전역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유혈극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미 1천 명을 넘어섰다. 사망자 대부분은 반군부 시위를 벌이던 민간인이다. 그럼에도 이집트의 재야 세력은 어떤 비판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아니, 되레 ‘피해자 때리기’에 나선 형국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이 지난 8월16일 인터넷판에서 전한 아미르 살림의 사례가 그 전형이다.
무바라크 정권에서 9차례나 투옥된 경험이 있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살림은 2011년 ‘카이로의 봄’ 당시 시위대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무바라크 정권 붕괴 이후엔 군부독재 잔재 청산을 위한 시민단체까지 따로 꾸렸을 정도다. 2012년엔 이른바 ‘무바라크 정권이 만들어놓은 경찰국가’의 실상을 파헤친 책까지 출간했다. 바로 그 ‘경찰국가’가 되살아나, 8월14일 하루에만 600명이 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살림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무슬림형제단은 사회적 질병이다. 군경을 동원해서라도 뿌리를 뽑아야 한다. 경찰과 군인은 정당방어를 한 셈이다. 말썽을 일으키는 무슬림형제단의 마지막 1명까지 감옥에 가둔 뒤에야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다.” 그는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군경의 유혈 진압으로 인한 시위대의 인권유린 상황에 대한 반응은 가히 ‘걸작’ 수준이다. 그는 “시위 현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인권이 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그들의 권리도 침해당했다”고 강조했단다.
살림만이 아니다. 지난 7월3일 무르시 정권을 무너뜨린 군사 쿠데타 이후, 이집트에선 더 이상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무르시 정권 아래서 군경의 폭력을 한목소리로 비난하던 이집트 야권과 시민사회는 잇따른 유혈 참극에도 철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반역’이요, ‘배신’으로 여겨진다.
무르시 정권 퇴진운동의 구심점 노릇을 하던 11개 야권 세력의 연대체인 구국전선의 칼레드 다우드 대변인이 최근 사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8월14일 학살극 직후만 해도 그는 등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평화롭게 해산할 기회를 줬음에도 불법시위를 지속한 무슬림형제단 쪽도 책임이 있다. 일방적으로 학살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국전선 쪽이 이후 학살극과 관련해 군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놓으려 하자, 결국 사임을 택한 게다. 학살극 직후 과도정부 부통령직에서 물러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아예 ‘국민의 신뢰를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형사고발을 당한 상태다.
“최악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집트 국민은 더 이상 정부 당국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 적은, 자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무바라크 정권 퇴진 투쟁의 주축이던 ‘4월6일 청년운동’ 공동 창립자인 아쉬리프 아루비는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엘바라데이의 부통령 사임을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온갖 위협에 시달렸다는 그는 “애초 8월14일의 학살극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참석자들의 신변이 위험할 것을 우려해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대외원조 지원 중단 밝히지 않은 미국
무슬림형제단 지도부의 탄압은 이어지고 있다. 국영 은 8월22일 아흐메드 아레프 대변인을 비롯한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19명이 체포·구금됐다고 전했다. 앞서 이집트 당국은 8월20일 무슬림형제단의 정신적 지도자인 무함마드 바디(70)를 전격 체포했다. 그가 당국에 붙들린 것은 1981년 이후 처음이란다.
“무바라크 독재정권조차 금기시한 정신적 지도자를 체포한 것은, 국민과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을 겁박하려는 군부의 의도다.” 무슬림형제단 쪽은 성명을 내어 이렇게 비판했다. 무바라크가 풀려난 토라 교도소는 최근 군부가 줄줄이 잡아들인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로 속속 채워지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 시절과 마찬가지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니, 역사에 ‘우연’은 없는 게다.
7월3일 쿠데타 이후 이집트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해온 유럽연합(EU) 쪽은 학살극이 벌어진 직후 28개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를 열어,‘내부 탄압에 사용할 우려가 있는 무기류’에 대한 금수 조처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집트에 지원하기로 한 50억유로 규모의 개발원조는 유지하기로 했다. “원조금 대부분이 군부가 아닌 빈민층과 시민사회 지원에 사용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미국 쪽은 어떨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8월14일 학살극 소식이 전해지자, 휴가지에서 전격 기자회견을 열어 “이집트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9월로 예정된 미군과 이집트군의 정례 합동훈련을 취소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나마 과도정부를 움직이는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는 대외원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뜻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집트는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아랍 국가로선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공식 승인한 게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이어 미국 제2위의 원조 수혜국이 됐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최근 자료를 보면, 1948~2011년 미국이 이집트에 지원한 원조금은 무려 716억달러에 이른다.
최근 몇 년 새 미국은 연평균 15억5천만달러의 원조를 제공해왔다. 이 가운데 약 13억달러는 탱크·전투기 등 군사 부문 원조로 채워졌다. 은 8월16일 제프리 카르티니 랜드연구소 연구원의 말을 따 “이집트에 대한 군사원조 대부분은 미국의 군수업체가 이집트군에 제공하는 각종 무기류 및 보수·유지 관련”이라며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원조 중단으로 이집트군이 무기 획득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미 군수업체 입장에서도 큰 고객을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7월3일 무르시 정권을 무너뜨린 사태를 두고, 오바마 행정부가 ‘쿠데타’라 규정하지 않은 이유를 알 만하다. 미 국내법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린 국가에 대해선 군사원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사 브룩스 조지타운대 교수(법학)는 8월18일 외교·안보 전문매체 인터넷판에 쓴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희망의 상징, 절망의 상징으로
“무바라크는 독재자였지만, 우리와 친한 독재자였다. 2011년 ‘카이로의 봄’ 당시 미국이 무바라크 퇴진을 주장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혁명 이후 군부의 입김이 거세질 때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오바마 행정부는 이슬람주의 세력인 무르시 정권 등장 이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르시 정권에 대한 명시적인 지지의 뜻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무르시 정권을 무너뜨린 쿠데타가 벌어진 뒤에도 어정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이라거나,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헌법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는 표현만 사용했다. ‘쿠데타’란 용어는 끝내 사용하지 않았다.”
무르시 정권은 이집트 사상 처음으로 치른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꼭 1년 만에 군부가 이를 뒤집었다. 미국은 침묵을 택함으로써, 암묵적 지지를 한 셈이 됐다. 하긴,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에서 이슬람주의 정치조직 하마스가 승리를 거뒀을 때도 미국은 침묵을 택했고, 이스라엘은 그해 여름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를 때려댔다.
“이슬람주의 세력과 군부가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철저히 갈라섰다. 50년 이상 국정을 장악한 군사독재의 전통, 그 아래서 처절하게 탄압을 견뎌온 이슬람주의 정치세력,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 결과가 무력으로 뒤집히고, 유혈 학살극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집트는 1991년 알제리와 지독하게 닮아 있다.”
카림 에밀리 비타르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소장은 8월19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실제 1991년 알제리 총선 1차 투표에서 이슬람주의 정치세력 구국전선(FIS)이 압승을 거뒀을 때, 군부는 선거 자체를 취소했다. FIS는 반발했고, 유혈극이 이어지면서 무장투쟁에 돌입했다. ‘암흑의 10년’으로 불리는 알제리 내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10년 세월 동안 줄잡아 6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타르 소장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알제리의 FIS와 마찬가지로 무슬림형제단 역시 군부의 유혈 탄압을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무함마드 무르시는 이집트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아니었다.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대중적 반발은 컸다. 쿠데타가 아니라 조기 선거를 치르는 방식으로 이집트 정국이 굴러갔다면 어땠을까? 되레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 이집트에서 오랜 기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을 수도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타흐리르 광장에서 꽃을 피웠다. 혁명의 열기로 달궈질 대로 달궈진 지난 2년6개월은 아랍의 여름이었을까? 쿠데타와 함께 카이로가 얼어붙기 시작한 지금, 아랍은 겨울로 치닫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은 최신호에서 “아랍권 희망의 상징이던 이집트가, 이제 절망의 상징으로 바뀌었다”고 썼다.
황제의 망토가 걸쳐지는 순간
나락의 끝은 어디일까? 이 매체는 “쿠데타를 주도한 압둘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의 ‘브뤼메르 18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카를 마르크스가 에서 언급한 “황제의 망토가 마침내 루이 보나파르트의 어깨 위에 걸쳐지는 순간”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학살극을 전후로 이집트 국영매체들이 ‘양복 입은 시시 장군’의 사진을 흘리기 시작한다.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닌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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