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쿠스의 봄’이 시리아 내전으로 번진 것은 2011년 3월15일이다. 전쟁은 2년3개월을 넘기고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OHCHR)가 지난 6월13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말까지 시리아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적어도 9만3천 명이 넘는다. OHCHR는 “지난해 7월 이후 매달 적어도 5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군 지원 명분 ‘조작 가능성’ 제기
전화를 피해 국경을 넘어 난민으로 떠도는 이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라크·요르단·레바논·터키 등 이웃 나라는 물론이고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각국까지 흘러든 시리아 난민은 이미 지난 5월 초 14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지적이다. 여기에 다마스쿠스·알레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리아 내부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국내난민(IDPs)도 425만여 명에 이른단다. 이쯤 되면,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올 법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반군에게 무기를 직접 지원할 뜻임을 밝히고 나섰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소형 화기와 탄창은 물론 대전차포 등 중화기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반군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대공화기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말 시리아 반군에 대한 무기 금수 조처를 해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내전의 오랜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 조짐이다.
명분이 왜 없었을까? 앞서 백악관 쪽은 지난 4월 말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로 자국민을 공격했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시리아 현지에서 채취한 희생자의 혈액을 분석해보니, 사린가스 성분이 나왔다는 게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전 발발 초기부터 화학무기 사용을 이른바 ‘금지선’으로 규정해왔다. 1991년 미 의회를 통과한 ‘화학·생물학 무기 통제 폐기법’(22 USC 5604)은 “대통령은 외국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치명적인 화학 또는 생물학 무기를 사용했다고 확신하는 때로부터 60일 안에 의회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반군 직접 지원으로 가닥을 잡기까지, 오바마 행정부는 오랜 기간 망설였다. 그런데, 왜 지금인가? 영국 일간지 이 지난 5월8일치에서 보도한 현지발 기사를 보면, 그 이유를 어렵게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시리아 반군의 ‘몸통’은 정부군 이탈자를 중심으로 한 자유시리아군(FSA)이다. 그나마 잘 무장되고 훈련받은 병력으로 꼽혀온 FSA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최근 급격히 세력을 잃고 있다. 은 “최근 들어 FSA 병사들이 ‘자바트 알누스라’ 등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무장세력으로 대거 이탈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는 ‘자바트 알누스라’를 테러단체로 지정해놨다. 신문은 ‘알라 알바샤’란 이름의 반군 지휘관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지난 몇 달 새 내 휘하에 있던 FSA 병사 3천 명가량이 알누스라 쪽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탄약과 무기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알누스라 쪽은 탄약도 넘쳐나고 무기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우리는 탄약이 떨어져 후퇴하지만, 알누스라는 공격 목표를 ‘해방’시킬 때까지 싸운다.”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의 행보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반군 지원의 명분으로 삼은 ‘화학무기 사용’의 증거인 혈액 샘플이 미국에 도착하기까지는 2주 정도가 걸렸단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샘플을 이송했는지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백악관 쪽의 반군 지원 계획 발표 직후부터 미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거짓 명분에 기대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병력과 패트리엇 미사일 남을 듯
반군 지원 계획 발표에 이라크를 떠올린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옛 소련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을 지원한 아프가니스탄을 기억해낸 이도 많았다. 브루스 리델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6월15일 인터넷 매체 에 올린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1980년대 미국이 무자헤딘을 지원한 목적은 분명했다. 미국이 베트남의 수렁에 빠졌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작전은 성공했고, 아프간에 발목이 잡힌 소련은 결국 해체됐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소련군 철수 이후에도 살아남은 아프간 친소 정권을 무너뜨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무자헤딘과 군벌을 포괄하는 대연정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프간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어 했다. 아프간에 혼란이 찾아왔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미국이 지원한 무자헤딘의 나라가, 미국을 공격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근거지가 될 줄을.”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 계획 발표를 전후로, 백악관 쪽이 시리아 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문제도 검토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반군에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는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을 막기 위한 조처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위해선, 정부군의 방공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융단폭격이 이뤄져야 한다. 명백한 전면 군사 개입이란 얘기다. 그다음은 뭔가?
지난 6월9~20일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에선 대대적인 국제 합동군사훈련(이른바 ‘사자훈련’)이 벌어졌다. 19개국 8천여 병력이 참여한 연례 대테러 훈련이다. 미 해병 2400여 명도 이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요르단으로 날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병력과 함께 최첨단 무기도 속속 요르단에 도착했다.
홍해의 항구도시 아카바에선 이번 훈련 기간 동안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미 구축함 USS 스톡데일이 정박해 있었다. 6월18일엔 훈련에 참가한 미군 전투기 5대가 북쪽 국경을 넘어 시리아 영공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마샬 알자벤 요르단 합참의장은 훈련 마지막 날인 6월20일 와 한 인터뷰에서 새겨들을 만한 발언을 내놨다.
“이번 훈련은 시리아 사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훈련 기간 동안 배치됐던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시스템과 F16 전투기 등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한 요르단에 계속 배치돼 있을 것이다. …우리 군은 요르단을 지키는 것은 물론 주변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앞서 필리스 베니스 미 정책연구소(IPS) 연구원은 지난 6월14일 인터넷 매체 에 출연해 “훈련 기간 동안 요르단에 배치됐던 미군 병력 일부와 패트리엇 미사일을 포함한 무기류는 훈련이 마무리된 뒤에도 현지에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이 결정되면, 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최악의 외교정책 결정으로 기록될 것”
반군 무기 지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거론되고 있다. 시리아와 이웃한 요르단에는 미군 병력과 최첨단 무기가 배치돼 있다.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모양이다. 평화를 원한다면서, 그예 전쟁으로 치달으려는가? 외교안보 전문매체 는 6월16일 인터넷판에서 “시리아 반군에 직접 무기를 지원하겠다는 건,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내린 최악의 외교정책 결정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