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취에 빠져 거드름이나 피우고 있다. 감옥에 가는 게 마땅하다.”(제프리 투빈, 칼럼니스트)
“이쯤 되면 반역이다. 반역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다이앤 파인스타인, 민주당 상원의원·정보위원장)
날선 비난이 줄을 잇는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부당한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자국민에 대한 초법적 감시 활동을 벌였다고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 의회의 대표적 강경보수파인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스노든을 붙잡아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그레이엄 의원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자’고 주장했던 인물이 1명 더 있다. 오사마 빈라덴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내부고발
“테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미명 아래, 우리의 인간성마저 저당 잡히고 있음을 만천하에 폭로한 스노든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더글러스 러시코프, 뉴스쿨대학 언론학 교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현명하다면, 스노든에게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백악관 정보기술 담당자로 채용하는 게 옳다.”(스콧 매코널, 편집장)
‘지지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1971년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해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린 ‘내부고발자의 대부’ 격인 대니얼 엘스버그는 6월10일 에 보낸 기고문에서 스노든의 NSA 자료 폭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내부고발”이라고 칭송했다. 논란은, 쉽게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9일 이 단독 보도한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미 중앙정보국(CIA) 기술요원 출신인 스노든은 최근까지 정보·보안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에서 시스템 운영자로 일했다. 이 업체와 ‘델’ 등 외부 정보업체 소속으로 스노든이 지난 4년여 동란 ‘파견근무’를 한 곳은 NSA였다. NSA 하와이 지부에서 일급 비밀을 다루던 29살 청년은 왜 지난 5월20일 돌연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까? 그의 말을 빌려보자.
“정부가, 법이 부여하지 않은 광범위한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공식적인 관리·감독 절차조차 없었다. 그 결과, 나 같은 사람들이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무슨 일이든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NSA 내부 자료를 공개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그렇다. ‘내부고발’이란 스노든의 행위 자체가 논쟁의 초점이 돼선 안 된다. 미 의회 진보파의 거두 버나드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주)의 지적처럼, 그에 대한 평가는 ‘여론의 심판’에 맡기면 그만이다. 샌더스 의원은 지난 6월12일 <msnbc>에 출연해 이렇게 지적했다.
“본질을 호도하지 말자. 중요한 건 스노든 본인이 아니다. 그가 고발한 내용이다. 스노든이 폭로한 NSA의 정보 수집·분석 작업은 헌법에 부합하는가? 그가 폭로한 내용 외에 정부가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한 다른 사례는 없는가? 정부는 왜 이런 사실을 숨긴 채 거짓말을 해왔는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만 해도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관행이 시민의 자유를 옥죈다고 날선 비판을 했던 민주당은 어째서 오바마 대통령이 똑같은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는가? 오바마 행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언제까지 참아줄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안보를 이유로 진실을 희생시킬 것인가?”
오바마, 애국법 독소조항 일몰 시한 연장
미국에는 정보기관이 꽤 많다. 독립기관인 CIA를 필두로 NSA와 국방정보국(DIA) 등 국방부에 딸린 정보기관만 모두 8개나 된다. 연방수사국(FBI)·마약수사국(DEA) 등 법무부에 딸린 정보기관과 정보분석청(I&A)·해안경비정보국(CGI) 등 국토안보부에 딸린 정보기관도 각각 2개씩이다. 여기에 에너지부·국무부·재무부에도 각각 따로 정보기관을 두고 있다. 이들 16개 정보기관에 소속된 약 20만 명의 ‘요원’을 총괄·지휘하는 건 국가정보국장(DNI)이다.
스노든의 고발로 관심의 초점이 된 NSA는 1949년 만들어진 군사안보국(AFSA)을 모태로 하고 있다. 1952년 NSA로 개편된 이후에도 지금껏 국방부에 딸린 군 정보기관이란 점은 변화가 없다. NSA 국장을 현역 3성장군 이상 군 수뇌부가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NSA 국장은 미군 사이버사령부 사령관과 신호정보 수집·분석을 전담하는 중앙안보청(CSS) 청장을 겸임한다.
NSA가 누리집에서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이 기관의 업무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해외 통신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신호정보(SIGINT) 파트와 미국의 정보·통신망을 외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정보보호(IA) 파트다. NSA의 ‘업무 영역’은 출발부터 ‘해외 통신정보’에 국한돼 있었다. 그럼에도 암암리에 미국 내 정보 활동이 ‘관행’처럼 이뤄져왔다. 1972년 6월 터진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런 관행을 끊어내는 계기가 됐다.
당시 미 의회는 민주당 프랭크 처치 상원의원(아이다호주)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꾸려,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분석 과정을 집중 점검했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 CIA·FBI·NSA 등 정보기관이 미국 내에서도 조직적으로 도·감청을 자행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미 의회가 1978년 10월 정보기관의 국내 첩보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해외 정보 감시법’(FISA)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FISA에 따라 미 정보기관은 법무부 장관의 서면 허가나 법원이 발행한 영장 없이는 미국인과 미국 법인·기업·단체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정보기관 업무의 민감성을 고려해, 도·감청 등 첩보 활동에 필요한 영장을 전담하는 특별법원(해외정보감시법원·FISC)도 신설했다. 정보기관의 무분별한 관행에 법적 재갈을 물린 셈이다.
그 ‘재갈’을 풀어낸 것은 2001년 9월11일 동시테러가 불러온 ‘공포’였다. 전대미문의 초대형 테러를 막지 못한 정보기관의 무능을 질타했어야 할 그해 10월, 미 의회는 별다른 논란도 없이 이른바 ‘애국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미 정보기관은 자국 내에서도 영장 없이 수색과 미행, 도·감청을 할 수 있게 됐다. ‘대테러 전쟁’은 미국 내에서도 벌어진 게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애초 애국법 입법 당시 지나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며 ‘일몰 조항’으로 넣었던 몇 가지 조항이 있다. 대표적인 게 전화회선이 아닌 특정 인물을 지속적으로 도·감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4월 이를 포함해 인권·사회단체들이 ‘독소조항’으로 규정한 애국법 일부 조항의 ‘일몰 시한’을 4년 더 연장했다.
‘디지털 블랙워터’라 불린 민간 정보업체
냉전이 막을 내린 뒤 예산 절감을 위한 조직 축소를 강제당한 미 정보기관에 9·11 동시테러는 ‘호재’였다. 2001년 이후 미 정보기관의 몸집 불리기는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이었다. 는 2010년 7월19일치에서 상황을 이렇게 전한 바 있다.
“1271개 연방정부 기관과 1931개 민간기업 등에 소속된 대테러·국토안보·정보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미 전역 1만여 곳에 퍼져 있다. ‘일급비밀’을 다룰 수 있는 인가를 받은 이들만 워싱턴DC 인구의 1.5배에 가까운 85만4천여 명이나 된다.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 워싱턴과 주변 지역에서 이미 완공됐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일급비밀 정보를 다루는 건물만 33개다. 이들 건물의 면적을 합하면, 세계 최대 규모라는 미 국방부 청사의 3배, 미 의회 의사당 건물의 22배에 이른다. 이들이 한 해 만들어내는 각종 정보 보고서만도 5만 건에 이른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대부분이 제대로 검토할 수조차 없다.”
전쟁의 참상을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겠다. 9·11 동시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이뤄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거짓 명분에 기대 벌인 2003년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미국 역사상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졌다. 이른바 ‘전쟁의 민영화’다. 핼리버턴·블랙워터 등 민간 용병업체가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대신 떠맡았다. 숱한 사건·사고가 이어질 때마다 책임소재를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문제를 일으킨 업체는 간판만 바꿔달고 오늘도 전장을 누비고 있다.
비슷한 시기, 좀더 은밀한 방식으로 한 가지 ‘민영화’가 더 이뤄졌다. 기밀정보 수집·분석 업무의 민영화다. 2007년 5월14~17일 미 콜로라도주 키스턴의 한 리조트에서 DIA 주최로 열린 ‘국방정보획득 토론회’에서 DNI실의 획득 담당자가 내놓은 발언은 정보기관의 민영화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이먼 체스터먼 싱가포르국립대학 교수(법학)는 2012년 4월 미 국제학협회에 제출한 논문에서 이 담당자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미 정보기관 예산의 70%는 민간업체에 지급하는 ‘컨설팅 비용’으로 쓰인다. 2005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미국의 각급 정보기관에 배정된 총예산은 약 600억달러다. 이 가운데 약 420억달러가 민간 정보컨설팅 업체를 활용하는 데 든 비용이다. …민간 업체를 활용하지 않으면 정보 수집·분석 업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란 책을 쓴 독립언론인 팀 셔록은 지난 6월11일 인터넷 대안매체 에 출연해, ‘정보기관 민영화’를 주도한 인물로 마이클 헤이든 예비역 공군 대장을 지목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NSA 국장(1999~2005년)과 CIA 국장(2006~2009년)을 잇따라 지낸 그는 정보·보안 컨설팅 업체를 일러 ‘디지털 블랙워터’라고 불렀단다. 2009년 CIA에서 퇴임한 헤이든은 역시 부시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낸 마이클 처토프가 설립한 정보·보안 컨설팅 업체 ‘처토프 그룹’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정보보안 업계의 시장 규모는 한 해 2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무선 통화 감시 위해 ‘프리즘’ 만들어
‘디지털 블랙워터’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스노든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정보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이 생겨난 이유를 들여다보면 어렵잖게 짐작이 가능하다.
1997년 이스라엘에서 창업해, 2010년 미국의 대표적 군산복합체 ‘보잉’이 사들인 ‘나루스’란 이름의 정보통신·보안 업체가 있다. 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 업체는 인터넷상에서 유통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를 통하면 하루 평균 1천억 건의 전자우편을 살필 수 있단다.
나루스가 개발한 프로그램에도 맹점은 있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정보 자체가 워낙 막대한데다, 유·무선 전화 통화를 감시하려면 따로 ‘대책’이 필요했다. NSA가 2006년 ‘프리즘’을 만들어낸 이유다. 은 6월10일 “미 정보 당국은 프리즘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글·야후·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9개 인터넷 업체를 통하는 전자우편과 각종 게시판에 올라간 글을 해당 업체 서버를 통해 직접 접속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미 보스턴마라톤 폭탄공격 사건이 벌어진 지 열흘 만인 지난 4월25일, 미 법원(FISC)은 NSA의 신청을 받아들여 이동통신 업계 2위인 버라이즌의 고객 약 9890만 명의 석 달치 통화기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에 따라 NSA가 확보한 자료는 통화가 이뤄진 시점과 착신 번호, 발신 지점과 통화에 걸린 시간 등 이른바 ‘메타 데이터’다. 여기에 통화 내용과 발신자의 이름·주소가 추가되면 사실상 도·감청이나 다름없다.
버라이즌뿐이었을까? 은 6월6일 “NSA는 비슷한 시기에 고객 1억700만 명을 자랑하는 최대 이동통신 업체 AT&T와 55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한 업계 3위 스프린트의 ‘메타 데이터’도 확보했다”고 전했다. 이 많은 자료를 대체 어떻게 처리할 텐가? 부즈앨런해밀턴 등 ‘디지털 블랙워터’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은 6월10일 “이 업체가 지난해 미 정보기관과 맺은 각종 ‘용역계약’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전체 연간 수입의 약 23%인 13억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폭력’을 독점해온 국가는, 마침내 전쟁마저 민영화했다. 국가가 장기간 독점해온 정보 수집·분석 업무도 민간의 손에 맡겨졌다. 명분은 ‘신속성’과 ‘효율성’이다. 그 사이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책임성’이다. 하긴 정보가 없으니 책임을 따질 근거조차 없다.
과 인터뷰를 한 다음날인 6월10일, 스노든은 그간 머물러온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잠적했다. 이틀 뒤인 6월12일 그는 와 한 인터뷰에서 “NSA가 전세계를 무대로 6만1천 건 이상의 해킹 작전을 벌여왔고, 그 대상에는 홍콩과 중국도 포함됐다”는 내용의 ‘2차 폭로’를 했다. 이후 스노든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 다만 그가 이미 홍콩을 떠났을 것이란 추측만 떠돌고 있다.
테러 방지에 유용하단 증거 발견 못해
미 법무부는 스노든을 국가기밀 누설죄로 기소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이미 FBI 요원들이 그의 가족과 친지·친구를 상대로 탐문수사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은 6월12일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프리즘 프로그램 등을 통한 정보 수집 활동 덕분에 10여 건의 테러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보위 소속 민주당 마크 유덜(콜로라도주)·론 와이든(오리건주) 상원의원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어 “NSA가 미국민의 전화 통화 내역 등을 저인망식으로 훑어 건진 정보가 테러 방지에 얼마나 유용했는지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ms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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