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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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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내전은 시작됐다

5월 한 달 이라크 전역에서 약 560건 유혈사태 벌어져… 미군 철수 뒤 나빠지던 이라크 치안 상황 최근 내전 수준으로 치달아
등록 2013-06-15 20:3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4월25일 미국 제43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텍사스주 댈러스의 서던메소디스트 대학 교정에서 문을 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기념 도서관’이다. 이날 개소식에는 지미 카터, 조지 ‘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생존해 있는 미국의 모든 대통령이 참석했다.
부시 도서관 문 연 그날 이라크에선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에 집권한 ‘동맹국’ 지도자들도 초청됐다. 개소식 현장을 담은 의 사진을 보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와 존 쿠푸오르 전 가나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전 한국 대통령도 자리를 빛냈다. ‘부시의 푸들’이란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이라크 침공에 동참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마찬가지다. 이날 행사장에서 그의 좌석은 리처드 체니 전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바로 옆에 배치됐다. ‘상석’이었다.
“자유의 장점 가운데 하나로,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사람들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기회를 대단히 많이 만들어냈다는 지적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농담을 섞어가며 기념사를 하던 부시 대통령은 연설 막판 감동에 겨워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 덕에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된 대표적인 나라는 이라크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성대하게 문을 열던 그날,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두 종족이 만들어낸 이라크의 현실을 은 이렇게 전했다.
“북부 모술에선 무장괴한이 경찰서를 점거한 채 인질극을 벌였다. 중부 술라미만펙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서부 팔루자에선 경찰서를 급습한 무장괴한과 정부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시아파의 성지인 중부 나자프에선 폭탄공격이 벌어졌으며…. 이날 하루에만 이라크 전역에서 줄잡아 50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년 12월 말 미군이 철수를 마친 이후 지속적으로 나빠지던 이라크 치안 상황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모습이다. 유엔 이라크지원단(UNAMI)은 지난 6월1일 월례 보고서를 내어 “5월 한 달 동안 이라크 전역에서 약 560건의 유혈사태가 벌어져, 모두 1054명이 숨지고 2397명이 다쳤다”며 “이는 (시아파-수니파 간 종족갈등이 극심했던) 2008년 6월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수도 바그다드가 가장 핏빛이었다. 모두 532명이 목숨을 잃었고, 1285명이 다쳤단다.
앞서 UNAMI가 지난 5월3일 내놓은 4월치 기록도 ‘2008년 6월 이후 최악’이었다. 모두 712명이 숨지고, 1633명이 다친 게다. 그 기록이 한 달 만에 쉽게도 깨졌다. 6월 들어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2003년 3월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 이후 민간인 희생자 규모를 추적해온 민간단체 ‘이라크 보디카운트’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6월6일 현재까지 유혈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줄잡아 100명에 이른다.
미군 철수 이후,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시아파 정부는 권력을 나누고 있던 수니파를 겨냥한 일련의 ‘도발’을 지속적으로 감행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니파 몫으로 부통령에 지명된 타레크 알하셰미다. 말리키 정부는 미군이 철수를 완료한 직후 하셰미 부통령의 경호원들을 테러 혐의로 줄줄이 잡아들였다. 이어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하셰미 부통령이 시아파를 겨냥한 테러를 직접 지시했다는 혐의로 하셰미 부통령을 기소했다. 그는 서둘러 망명길에 올랐지만, 이라크 법원은 결석재판을 통해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시리아 내전에 견줄 바 아닐 것”
지난해 말에는 역시 수니파 출신인 라피아 알에사위 재무장관의 경호원 10명이 전격 체포됐다. 이들에게도 역시 테러 혐의가 들씌워졌다. 이후 서부 안바르주 등 수니파 집단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줄을 이었다. 에사위 재무장관은 지난 1월 중순 수니파 종족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해 안바르주로 향하다, 바그다드 외곽에서 차량폭탄 공격을 받기도 했다. 암살 기도가 분명했다.
타오르기 시작한 수니파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 4월23일 북부 유전지대의 관문인 키르쿠크 인근 하위자에서 벌어진 수니파 시위대 유혈진압 사건이다. 이날 이른 아침 중무장한 이라크 보안군이 밤샘 농성 중이던 시위대를 급습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 과정에서 모두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5월이 핏빛으로 얼룩진 직접적인 계기였다.
시아파 정권에 맞선 수니파 반군이 2년4개월째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 사태도 이라크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꼽을 만하다. 북쪽 국경을 통해 이라크 시아파와 수니파가 시리아로 넘어가, 각각 정부군과 반군에 속속 가담하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수니파 반군에게 무너진다면, 그곳에서 싸우던 아랍 각국의 수니파 ‘전사’들이 다시 이라크 국경을 넘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유혈사태를 주도하는 건 알카에다의 현지 지부 격인 ‘이슬람국가이라크’(ISI)와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군 출신들이 결성한 무장단체 ‘나크시반디’ 등 수니파 무장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이슬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메흐디 민병대’를 포함해 ‘아사입 알하크’ ‘카테엡 히즈불라’ 등 시아파 무장세력 대부분은 아직까지 직접적인 공세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자신들을 끌어들여 종족 간 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시키는 게 수니파 무장세력의 노림수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분석도 없지 않다. 수니파 무장세력의 파상 공세가 최근 불을 뿜으면서, 시아파 역시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다. 지난 5월28일 바그다드의 부유층 거주지인 만수르 지역의 아가르구프 거리에서 발견된 대학생 2명의 주검을 눈여겨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견 당시 이들은 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가슴과 머리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전형적인 ‘처형’이었다. 이 지역은 2007년 시아파 무장세력이 수니파를 살해한 뒤 주검을 내다버린 곳으로 악명을 떨쳤다.
하긴, 이미 종족 간 내전이 시작됐다는 지적이 이라크 내부에서 나온 것도 이미 오래다. 영국 일간지 는 지난 5월2일치에서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주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푸아드 후세인의 말을 따 “수니파 강세 지역인 서부 안바르주를 중심으로 도처에서 반정부 봉기가 들끓고 있다.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그 결과는 시리아 내전 사태에 견줄 바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후세인 비서실장은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이라크가 내전에 다가서고 있다는 말은 틀린 소리다. 이라크에서, 내전은 이미 시작됐다. …이라크가 ‘제2의 시리아’가 되는 것을 원치는 않지만, 상황이 그쪽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도처에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데, 소방관은 턱없이 부족한 형국이다.”
범죄 저지르고 유유히 빠져나간 미·영
영국 인도지원단체 ‘전쟁터의 아이들’(WC)이 지난 5월 초 내놓은 ‘임무 미완수’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위기 상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라크의 현 상황”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단체는 “단기간에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머잖아 국가 기능의 총체적 붕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미군이 물러간 이라크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게다. 영국의 저명한 분쟁지역 전문기자 존 필저는 지난 5월27일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에 남기고 간 골칫거리는 바로 종족 간 분쟁이다. 부시는 자기 이름을 딴 대통령 기념 도서관이란 동화 속 세상에서 살고 있다. 블레어는 전세계를 무대로 연설 여행을 다니며 돈다발이나 세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침공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는, 유유히 범행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라크인들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신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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