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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기록이 경신된 이유

‘일상적인’ 공장 화재와 붕괴로 의류노동자들 죽음 이어지는 방글라데시… 다국적 의류업체의 단가 후려치기 근본 원인
등록 2013-05-11 18:01 수정 2020-05-03 04:27

살자고 일한다. 먹고살자고. 살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게다. 딴말하지 말자. 일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란 얘기는, 누구에게도 할 말이 아니다. 그러니 기억하자.
2005년 4월11일 새벽 1시가 조금 안 돼서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사바르 공단 지역에서 굉음이 울렸다. 그곳 스펙트럼-샤흐리야르 공장 건물이 살짝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무너져내렸다. 밤샘근무를 하던 노동자 수백 명이 고스란히 건물 더미에 깔렸다. 이 사고로 모두 64명이 목숨을 잃었고, 80명이 다쳤다. 사고가 아니었다. 방글라데시에선 의류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게 ‘예외’가 아니다. 그저 ‘일상’이다.
<font size="3">비상구 하나, 소방설비 전무</font>
공단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사바르 지역 일대는 물난리가 자주 일어나는 늪지였다. 지반이 약하다는 얘기다. 사고가 난 건물은 불법 증축까지 했던 터다. 제3세계 의류노동자 인권운동단체인 공정의류캠페인(CCC)이 2011년 4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붕괴 사고가 나기 전에도 노동자들은 여러 차례 건물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내놨단다. 사고 발생 불과 닷새 전에도 한 노동자가 공장 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이를 공장 관리 직원들에게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공장주 쪽은 “닥치고 일이나 하라”고 답했단다.
스펙트럼 공장이 위반한 것이 어디 건축법뿐일까. 최저임금법도 어겼고, 일주일에 하루는 쉬도록 정해놓은 노동법 규정도 어겼다. 사고 발생 사흘 전에는 공장 소속 노동자가 뜨거운 물에 온몸을 데어 결국 목숨을 잃는 사고도 벌어졌단다. 사고 발생 1주년을 맞은 2006년 4월11일에 열린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 행사에서 CCC 등 노동·인권 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어 이렇게 지적했다. “스펙트럼 공장 붕괴 사고는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에서 발생한 첫 번째 참사가 아니다. (이대로 둔다면) 마지막 참사도 아닐 게다.”
실제 그랬다. 방글라데시노동연구소(BILS)가 펴낸 자료를 보면, 스펙트럼 공장 붕괴 사고가 발생한 2005년에만 모두 480명의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가 각종 사고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에도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다. 2006년 2월23일 치타공 공단의 KTS섬유 공장에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6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가운데는 12~14살 앳된 소녀들도 포함됐다. 화재 당시 1천 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정문을 비롯해 대부분의 비상구는 굳게 닫아건 상태였다. 화재 당시 유일하게 열려 있던 비상구는 공장 관리 직원들의 전용 통로뿐이었다. 소화기를 비롯한 소방설비는 전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그해 2월25일, 이번엔 다카 외곽의 테즈가온 공단 지역에서 5층찌리 피닉스 의류공장 건물이 무너졌다. 역시 불법 증축 탓이었다. 이 사고로 20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다. 같은 날 치타공 공단의 이맘그룹 의류공장에선 변압기가 폭발해 일하던 노동자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역시 주요 출입구 대부분이 잠긴 상태여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좁은 비상구 한곳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57명이 다쳤다.
스펙트럼 의류와 자회사인 샤흐리야르 섬유가 생산한 제품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대형 의류·유통 업체였다. 스페인의 인디텍스, 프랑스의 카르푸·솔로 인베스트·CMT 윈드필드, 벨기에의 코튼그룹, 독일의 카르스타트쾰레·스타일만·뉴요커·블루모드, 네덜란드의 스카피노, 스웨덴의 뉴웨이브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KTS 섬유는 주로 미국 쪽 업체에 납품을 했고, 피닉스 의류는 독일·스위스·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등지로 수출을 했다. 또 이맘그룹은 이맘패션과 문 섬유 등 자회사를 통해 미국 유통업체 K마트와 폴솜 등과 주로 거래를 했단다.
<font size="3">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예방 가능한</font>
스펙트럼 공장 붕괴 사고에 대한 ‘바이어’들의 태도는 어땠을까? 스페인의 인디텍스는 ‘국제 섬유·의류·가죽 노동자 연맹’(ITGLWF)과 공동으로 유가족 보상금과 부상자 치료비, 공장 건물 붕괴로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의 생계자금 지원을 위해 따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기금 마련에 참여한 업체는 프랑스의 솔로 인베스트와 스웨덴의 뉴웨이브그룹 등 단 2개 업체뿐이었다. 이 업체들이 조성한 53만3천유로 규모의 기금을 통해 유가족과 부상자 등에게 월급 형태의 보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것은 사고 발생 6년 뒤인 2011년 4월16일부터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대응도 엇비슷했다. 붕괴 사고 직후 상무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 포럼’이 요란하게 꾸려졌다. 포럼은 일터 안전성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별도의 태스크포스까지 2개 꾸렸다. 이후 10개월여에 걸친 활동 끝에 이들이 내놓은 것은 수많은 개선 권고안을 담은 목록뿐이었다. 그나마 기존 법·제도에 이미 강제조항으로 규정된 것이 대부분이었단다. 참사의 ‘기록 경신’이 지속된 이유다.
지난해 11월24일 저녁 6시45분께, 사바르 공단과 지척인 아슐리아 공단에 자리한 타즈린 패션공장이 불길에 휩싸였다.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불길은 평소 창고로 쓰던 건물 1층에서 시작돼 삽시간에 9층 건물 전체로 번져갔다. 당시 공장 안에선 노동자 600여 명이 잔업을 하고 있었단다. 이날 화재로 적어도 124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여 명이 다쳤다. 사상 최악의 공장 화재였다.
스펙트럼 공장 붕괴 사고 8주년 추모행사가 열린 지 불과 13일 만인 지난 4월24일, 역시 사바르 공단에 자리한 8층짜리 라나플라자 공장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사고 발생 시간은 오전 9시께,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수출업 협회’(BGMEA)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미 노동자 3122명이 출근해 있었다. 이날 붕괴 사고로 5월3일까지 확인된 주검만 437구, 줄잡아 2500명가량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나머지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공장 건물 붕괴 사고로도, 사상자 수에서도 사상 최악의 기록이 다시 쓰였다.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 역시 앞선 참사들과 다를 게 없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또 예방도 가능했다. BGMEA 쪽은 사고 발생 이전부터 업주 쪽에 “안전검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공장을 잠정 폐쇄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물 안에서 영업 중이던 은행 지점은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고 이전에 사무실을 비운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발생 하루 전인 4월23일엔 공장 벽에서 심각한 균열을 발견한 노동자들이 업주 쪽에 이를 알리기까지 했단다. 요행히 구조된 한 여성 노동자는 지난 4월27일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고 전날) 벽에 커다란 틈이 생겼다고 했더니, (관리 직원이) 퇴근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사고 당일 다시 출근하라고 했다. 안전하다면서. 공장에 다시 가기가 정말 싫었지만, 어쩌겠나. (출근 안 하면)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할 거라고 위협하는데….”
BGMEA 쪽 자료를 보면, 방글라데시 의류업계는 2011년 한 해 모두 190억달러의 수출고를 올렸다.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액의 80%를 웃도는 규모다. 세계은행(WB)은 2005년에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이들을 ‘절대빈곤층’으로 규정했다. 여성이 90% 이상인 300만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한 달 37달러(약 3천타카)다. 목숨 걸고 휴일 없이 일해도 절대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얘기다. 세계은행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1년을 기준으로 방글라데시 인구 1억5050만여 명 가운데 43.3%가 절대빈곤층이다.
<font size="3">위험 눈감은 월마트·갭·H&M 등</font>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의 1차적 책임은 공장 가동을 고집한 업주에게 있다. 명백한 과실치사다. 스펙트럼 공장과 마찬가지로, 라나플라자 역시 불법 증축된 상태였다. 공사를 한 건설업체 역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터다. 안전관리를 소흘히 한 방글라데시 당국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참극에 동참한 또 다른 ‘출연진’도 문책해야 한다. 방글라데시 의류업체의 납품을 받는 세계적인 브랜드들도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대러 오러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교수는 지난 4월26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의 근본 원인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는 등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에서도, 공장주들은 납품 기일을 맞출 궁리만 했을 게다. 미국과 유럽의 바이어들이 정해놓은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게 더 큰 위험이라고 여겼을 터다. 그만큼 납기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거대 기업들이 지나치게 단가를 낮추기 때문에 현지 업체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야 한다. 불법 증축이나 건물 안전관리 소홀 등도 여기서 비롯된다.”
무너진 라나플라자 건물에는 팬텀어패럴·뉴웨이브스타일·뉴웨이브버텀스·뉴웨이브브러더스 등 5개 의류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이 업체들은 주로 월마트 등 다국적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의류업체의 재하청을 맡거나, 베네통·프리마크 등 다국적 브랜드에도 납품을 해왔단다. 붕괴 건물에서 3개 공장을 돌렸던 뉴웨이브그룹 쪽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영국·덴마크·프랑스·독일·스페인·아일랜드·캐나다·미국 등 8개국 27개 거대 의류·유통 업체가 주 거래처로 명시돼 있다.
참사를 막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 노동단체와 CCC 등 국제 노동·인권 단체들은 2011년 4월 사흘간의 일정으로 의류공장 안전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BGMEA 본부에서 열린 당시 회의에는 월마트·갭·H&M 등 10여 개 다국적 의류·유통 업체 대표단이 참석했다. <ap>은 지난해 12월11일 “회의 초기엔 바이어 업체들이 공장 안전대책 강화를 위해 향후 2년 동안 납품업체당 50만달러를 투자하는 한편, 공장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쪽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font size="3">값싼 옷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font>
하지만 회의 이틀째 되는 날, 월마트 대표단이 이에 반발하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당시 월마트 쪽은 “납품공장 대부분 안전대책을 강화하려면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정도 투자를 하는 건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단다. <ap>은 당시 회의에 참석한 이네키 젤덴러스트 CCC 활동가의 말을 따 “이 발언 이후 회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결국 단 1개 업체도 애초 제안됐던 안전대책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 회의의 결론이 달랐다면, 타즈린 공장과 라나플라자의 운명도 달라졌을까? 영국에 본부를 둔 ‘인권과 기업 연구소’(IHRB)는 지난 4월26일 내놓은 자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방글라데시 국회의원 10명 중 1명은 의류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10명 가운데 2명은 의류업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의류공장 노동환경 개선 법안이 제출되면 이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당연하다. 방글라데시에선 유독 의류공장 기계설비만 면세 혜택을 받는다. 의류업계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얘기다. …노동자는, 사용하고 버리면 그만인 물건이 아니다. 세계적인 의류업체들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권 기준을 지킬 책임이 있다. 의류 납품 과정에서 인권유린이 저질러져선 안 된다. 소비자도 값싼 옷가지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벵골만의 사이클론처럼 오늘의 참사는 끝없이 되풀이될 터다. 사이클론은 자연재해다. 공장 화재와 건물 붕괴는 그렇지 않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size="4">고문 흔적 역력, 경찰 수사 진척 없어</font>
<font color="#1153A4">살해된 노동운동가 이슬람의 진상조사 미궁</font>
2012년 4월6일 방글라데시에서 발행되는 벵골어 신문 에 한 남성의 주검 사진이 실렸다. 문제의 주검은 전날인 4월5일 수도 다카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가타일 지역의 고속도로 부근에서 현지 경찰이 발견했다. 가족들은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노동운동가 아미눌 이슬람(당시 40살)이었다.
의류노동자 출신인 이슬람은 사망 당시 방글라데시의류산업노동자연맹(BGIWF)의 사바르·아슐리아 공단 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또 자신이 창설한 방글라데시노동자연대센터(BCWS)에서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숨지기 직전까지 그는 미국의 토미힐피거·나이키·랠프로렌 등에 주로 납품하는 샨타그룹 공장 노동자 지원사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앞서 그는 의류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2010년 6월16일 당국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국가정보국(NSI) 요원들에게 뭇매를 맞는 등 고문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노동·인권 단체 국제노동권포럼(ILRF)은 지난해 8월1일 이슬람의 사망과 이후 수사 과정을 정리한 자료를 내놨다. 자료를 보면, 이슬람은 주검으로 발견되기 전날인 2012년 4월4일 저녁 6시30분께 다카 외곽의 바이파일 지역에 자리한 BCWS 사무실에서 퇴근했다. 저녁 기도를 위해 부근 이슬람 사원으로 향하던 길에, 이슬람은 경찰차량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감시당하고 있음을 직감한 그는 동료들에게 즉각 전화를 걸어 사무실 문을 걸어잠그라고 알렸다.
그날 저녁 이슬람은 옛 공장 동료인 모스타피주르 라흐만의 전화를 받고 7시께 집을 나섰다. 그로부터 1시간30분가량 뒤 라흐만은 이슬람의 동료 노동운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슬람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고 알렸다. 1시간 뒤인 그날 밤 9시30분께엔 이슬람의 부인이 다시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남편이 귀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튿날 그의 주검을 발견한 가타일 경찰 당국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진을 찍은 뒤 바로 매장을 했다. 나중에 공개된 부검 서류를 보면, 이슬람의 주검 오른쪽 무릎 아래엔 날카로운 물체에 맞아 생긴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나 있었다. 발가락은 아예 으스러진 채였다.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사인은 과다출혈로 기록돼 있었다.
대대적인 항의시위가 이어졌지만, 경찰 수사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국제적 압력이 집중되면서,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슬람 살인사건의 진상 조사를 위한 ‘고위급 위원회’까지 구성했다. 그해 5월6일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도 독립적이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5월15일 발표된 고위급 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사건의 실체를 도저히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건 수사는 다시 방글라데시 경찰청 수사국 쪽으로 떠넘겨졌다. 수사의 초점은 이슬람과 마지막으로 접촉한 라흐만에게 모아졌다. 라흐만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기록이 공개됐다. 이슬람의 ‘실종’ 직전과 직후 라흐만이 정보국 요원과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다. 라흐만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슬람의 죽음에 대한 의문도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의 1주기를 맞은 지난 4월4일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는 성명을 내어, 방글라데시 당국에 이슬람 살인사건의 진상 규명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a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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