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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는 줄었으나 ‘심술’은 그대로

지난해 대선보다 야권 약진 뚜렷한 베네수엘라 대선… 전면 재검표 요구한 카프릴레스 후보, 미국 부정선거 의혹 제기
등록 2013-04-25 22:02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해 10월7일 베네수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80.52%의 높은 투표율 속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819만1132표(55.1%)를 얻었다.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엔리케 카프릴레스 전 미란다 주지사는 659만1304표(44.3%)를 얻는 데 그쳤다. 두 후보의 표차는 159만9828표, 득표율 격차는 10.8%포인트였다. 차베스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카터 “베네수엘라 선거제도 세계 최고”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으로 지난 4월14일 치러진 이번 대선은 어떤가? 베네수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NEC)가 4월15일 공식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번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79.78%로 집계됐다. 6개월 전에 견줘 0.74%포인트 떨어졌으니, 이 정도면 ‘엇비슷하다’는 표현을 써도 좋겠다. 이제 결과를 살필 차례다.
생전에 차베스 대통령이 공식 후계자로 지목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권한대행은 모두 757만5704표(50.78%)를 얻었다. 야권 단일후보로 대선에 재도전한 카프릴레스 후보는 730만2648표(48.95%)를 얻었다. 표차는 27만3056표, 득표율 격차는 1.83%포인트다.
추모 열기 속에 치러진 대선이다. ‘죽은 차베스가 대신 치른 선거’란 말도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집권 사회당은 철저히 차베스 대통령에 기대 선거운동을 했다. 그럼에도 마두로 권한대행은 앞선 대선 때보다 61만5428표(4.32%포인트)나 적게 득표했다.
야권은 ‘약진’을 한 셈이다. 열흘이란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도, 카프릴레스 후보는 앞선 선거 때보다 71만1344표(4.65%포인트)를 더 얻어냈다. 차베스 대통령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컸던 게다. 5년 뒤 2018년 대선의 전망이 밝아졌으니, 이쯤에서 만족할 만도 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넉 달여 이어져온 ‘국정 공백’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협력했다면, ‘수권세력’이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터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그리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대선 당시 베네수엘라에서 선거감시 활동을 벌였던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90여 개국가에서 선거를 참관했지만, 베네수엘라의 선거제도가 단연 세계 최고”라며 “미국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 선거는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전자투표 방식으로 이뤄져 개표가 쉽고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재검표를 위해 따로 기표용지를 출력해 투표함에 넣는다.
그럼에도 카프릴레스 후보는 선관위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부터 결과에 승복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공식 발표 직후인 4월15일엔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면 재검표를 요구했다. 미 국무부도 이날 “의혹이 있으면 밝혀야 한다. 재검표도 하기 전에 베네수엘라 선관위가 성급하게 대선 결과를 확정지었다”고 거들었다. 이날 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한복판에선 반정부 시위대가 정부 지지자들을 공격해 7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쳤다.
“베네수엘라 대선이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앞서 로버타 제이컵슨 미 국무부 라틴아메리카 담당 차관보는 지난 3월 스페인 일간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카프릴레스 후보가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마두로 “미국이 야권 사주 쿠데타 획책”
“전면 재검표와 부정선거 관련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미국은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은 4월16일 미 국무부의 발표 내용을 따 이렇게 전했다. 마두로 당선자도 이날 성명을 내어 “미국이 야권을 사주해 쿠데타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또 시작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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