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자라다트.’ 1983년 1월14일에 태어났으니, 이제 갓 서른을 넘겼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최대 도시인 헤브론의 북쪽에 자리한 사에르 마을에서, 4살 난 딸 야라와 2살 난 아들 무함마드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부인 달랄 이야이다는 오는 6월 셋째를 출산할 예정이다. 동네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일하며 힘겹게 가계를 꾸리면서도, 늦은 나이에 학업을 잇기 위해 알쿠즈 개방대학교에 입학해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부인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다, 불길했다”
지난 2월18일 자정께, 자라다트의 집으로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이스라엘 국내 보안기구인 신베트 요원들도 함께였다.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탄을 쏟아붓던 무렵, 자라다트는 요르단강 서안 일대에서 번진 항의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시위 도중 키리아트 아르바 유대인 정착촌 부근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돌을 던졌다는 게 이날 밤 전격 체포된 이유다.
붙잡힌 자라다트는 알자라메 구치소에 나흘간 수감된 뒤, 하이파 인근 메기도 구치소로 이감됐다. 체포 당시 그는 건강한 상태였다. 아랍 위성방송 는 2월24일 인터넷판에서 신베트 쪽이 밝힌 자라다트의 사망 경위를 이렇게 전했다. “2월23일 자라다트는 자신의 감방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구치소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했지만, 결국 소생시키지 못했다.” 구치소 쪽에선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베트 요원들이 체포 직후, 남편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주겠다는 게 이유였다. 이상했다. 남편은 전에도 여러 번 붙들려갔지만, 한 번도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불길했다.” 팔레스타인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권단체 ‘국제연대운동’(ISM)은 2월23일 내놓은 자료에서 자라다트의 부인 이야이다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자라다트의 주검은 텔아비브에 자리한 이스라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거친 뒤 2월24일 저녁 헤브론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검에는 팔레스타인 쪽 의료진도 입회했다. 양쪽은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놨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2월24일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 결과, 자라다트의 죽음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주장했다. 현지 은 이사 카라카 자치정부 수감자 처우문제 담당 장관의 말을 따 “자라다트의 목과 척추, 갈비뼈와 다리 등 6군데에서 골절상이 발견됐다. 등과 가슴, 얼굴 등에선 심한 멍 자국이 발견됐다. 극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 보건부도 이내 반박 성명을 내놨다. “자라다트의 사망 직후엔, 사인을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못했다. 추가 확인을 거쳐야 명확하게 사망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주검에서 발견된 멍 자국과 골절상 등은 심폐소생술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격렬한 항의시위, ‘3차 인티파다’?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아다미어’가 2월1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지난 1월 말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구금시설에 갇힌 팔레스타인 주민은 모두 4812명이다. 이 가운데 미성년자가 219명, 여성도 2명이 포함돼 있다. 현직 팔레스타인 자치의원 15명도 구금 중이다. 이스라엘 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은 531명, 재판 없이 장기간 구금하는 이른바 ‘행정적 구금’ 상태인 수감자도 178명에 이른다.
자라다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선 격렬한 항의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등 이스라엘 언론조차 ‘3차 인티파다’를 거론할 정도다. 2월26일 오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이 이스라엘 땅으로 날아들었다. 지난해 11월22일 포성이 잦아든 뒤 처음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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