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124명이 숨졌다. 주검 발굴은 이어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 지역에 자리한 타즈린패션 공장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은 분명 ‘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터다. 남은 건 하나다. 참극의 기록은 언제쯤 경신될 것인가?
소방소 구조대장 “비상구만 갖췄어도…”
11월24일 오후 6시45분께다. 9층짜리 타즈린패션 공장 건물에 화재경보가 요란하게 울렸다.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불길은 평소 창고로 쓰는 건물 1층에서 시작됐다. 불이 났을 때 공장 안에선 노동자 600여 명이 잔업을 하고 있었단다.
옷가지며 천조각이 지천이었다. 화염은 쉽게도 세를 키웠다. 삽시간에 연기가 건물 전체를 덮었다. 이윽고 전기마저 끊겼다. 건물에 있는 3개의 계단은 모두 1층으로 연결돼 있었다. 출구는 1층 주출입구 한 곳뿐이었다. 목숨을 건 탈출길도 그곳으로 모아졌다.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더러는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렸다. 더러는 유리를 깨고 건물 외벽으로 나갔다. 개축 공사를 위해 설치해둔 대나무 비계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나머지 운 없는 이들은 1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몰려들었다. 더러는 화염에 휩싸였고, 더러는 연기에 질식했다. 불길과 연기를 피해 고층에서 뛰어내리다 스러진 이도 여럿이었다.
타즈린패션 공장은 아슐리아공단에 자리하고 있다. 비슷한 공장이 몰려 있던 그곳은 소방차 진입로가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았다. 초기 진화가 더뎠던 이유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가 불길을 잡기까지는 5시간 이상이 걸렸다. 희생자 대부분은 주출입구 쪽인 건물 1층과 2층에 몰려 있었다. 는 11월26일치에서 현지 소방서 구조대장 무함마드 마흐붑의 말을 따 “건물 밖으로 곧장 연결되는 비상구가 없어 참극이 커졌다. 비상구만 제대로 갖춰져 있었더라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잔불 정리는 이튿날 해가 뜬 이후까지 이어졌다. 밤새 주검이 실려나왔다. 지금까지 발견된 주검 가운데 53구는 불에 탄 정도가 심해 신원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ap>이 화재 발생 나흘 만인 11월28일 전한 현장 르포에서 “공장 내부는 잿더미로 변했고, 고열로 깨져나간 유리와 타들어간 재봉틀 곁에 시커멓게 그을린 의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불길이 가장 심했던 건물 2층과 3층은 천장과 벽의 타일까지 녹아내렸을 정도”라고 전했다.
불이 나기 사흘 전에도 공장에선 화재 대비 훈련이 실시됐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생산’에 열중했다. <ap>은 “타버린 공장 안에는 11월 초 정기점검을 마친 표지가 붙은 소화기가 수십 개 발견됐다. 사용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현지 일간 의 보도를 보면, 타즈린패션 공장은 2010년 5월 문을 연 비교적 신축 건물이다. 150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이 업체는 주로 미국과 유럽 시장의 수출을 통해 지난해에만 35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단다. 화재 현장에 남은 상표를 보면 이 업체가 어느 회사에 납품했는지 알 수 있다. <ap>은 “월마트 로고가 선명한 아동복과 힙합 스타인 숀 콤스가 운영하는 브랜드 ‘ENYCE’ 상표를 단 반바지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후드 스웨터와 프랑스의 테디스미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울른밀, (미국계 다국적 유통업체인) 시어스의 상표도 보였다”고 전했다.
저임금·열악한 노동환경 ‘악명’ 떨쳐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에서 납품을 받고 있는 유명 의류업체와 다국적 유통업체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지 공장이 사실상 ‘죽음의 덫’이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네덜란드 시민단체 ‘공정의류캠페인’(CCC)의 이네케 젤덴루스트 국제담당 간사는 사건 발생 직후 성명을 내어 “그럼에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과실치사’ 행위나 마찬가지다”라고 질타했다.
“타즈린패션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납품했던 현지 협력업체는 월마트의 안전 규정을 위반했다. 앞으로 더는 타즈린패션이 월마트에 의류를 납품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는 11월27일 인터넷판에서 케빈 가드너 월마트 대변인의 성명 내용을 따 이렇게 전했다. ‘이미지 실추’를 우려한 발 빠른 대응으로 보인다. 타즈린패션 공장 화재 발생 직후 CCC 쪽은 자료를 내어 이렇게 밝혔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2011년 5월 타즈린패션 쪽에 소방안전 점검을 요구했다. 외부 소방안전 업체에 맡겨 실시한 당시 조사에서, 타즈린 쪽은 ‘오렌지 등급’(고위험군)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실시된 추가 점검에서 ‘옐로 등급’(중위험군)으로 격상돼 납품을 지속할 수 있었다. 월마트 쪽은 2년에 걸쳐 모두 3회 이상 ‘오렌지 등급’을 받은 업체에 대해서만 납품 중단 조처를 취한다.”
미국 시민단체 ‘국제노동권포럼’(ILRF)은 11월25일 내놓은 성명에서 “2006년 이후 방글라데시에서 의류공장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타즈린패션 희생자를 포함해) 모두 700여 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2006년 2월에도 남부 최대 도시 치타공의 ‘KTS 섬유·의류’ 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5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에도 비상구가 없어 참극이 커졌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지난해에만 무려 190억달러의 수출고를 올린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수출의 80%를 떠맡고 있다. 대부분 북부의 가난한 지역 출신인 의류 노동자 220만여 명 가운데 70~80%는 여성이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음에도, 주로 미국과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4천여 개 공장이 성업 중이다.
“수입업체가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노동법과 안전 규정에 어긋나는 점이 발견되면 당장 수출길이 끊긴다.” 아랍 위성방송 는 11월27일 샤피울 이슬람 무휘딘 방글라데시 의류가공·수출협회(BGMEA) 회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이 단체는 타즈린패션 공장 화재사건 직후 희생자 1명당 10만타카(약 1200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조처로 보인다.
잇따른 항의 시위에 의류공장 잠정 휴업
11월29일 다카 외곽의 BGMEA 본부 건물 앞에서 닷새째 시위가 벌어졌다. 는 “100여 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수의를 상징하는 허연 천을 온몸에 두른 채 도로에 누웠다”고 전했다. 전날에도, 그 전날에도 경찰은 곤봉과 최루탄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했다. 이미 경찰과 군인, 국경수비대와 함께 잔혹한 시위 진압으로 악명 높은 신속대응군(RAB)까지 현지로 증파된 상태다. 타즈린패션 공장 화재사건 이후 아슐리아공단 내 의류공장들은 대부분 잠정 휴업에 들어갔다.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면, 늘상 그렇게 한단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a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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