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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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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4살… 7살… 1살…

가자에서 되풀이되는 ‘인종청소’로 죽어가는 어린이와 노인들
건물 통째로 폭격한 뒤 “정보가 잘못 전달되었다”는 이스라엘, 언제나 그뿐
등록 2012-11-30 16:32 수정 2020-05-03 04:27

2012년 11월18일, 일요일이었고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땅 가자지구를 때려대기 시작한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오후 2시30분께다. 가자지구 중심가 가자시티의 상공으로 이스라엘군 F16 전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굉음과 함께 미사일이 불길을 뿜었다. 가자시티 북쪽 나세르 거리에는 팔레스타인은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미사일의 목표물은 그 맞은편 주택가 한켠에 자리한 4층짜리 건물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의 반석같이 굳은 마음”
자말 마흐무드 야신 알달루(52)의 집이었다.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이 날아들기 전까지, ‘달루’란 성씨를 가진 3가구 11명이 그 건물에 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적십자사를 이슬람권에선 적신월사라고 부름) 앰뷸런스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황급히 그곳으로 내달렸다. 어린이 4명과 여성 4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팔레스타인인권센터(PCHR)는 이튿날 내놓은 자료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사마 압둘 하미드 알달루, 27살. 자말 무함마드 자말 알달루, 6살. 유세프 무함마드 자말 알달루, 4살. 사라 무함마드 자말 알달루, 7살. 이브라힘 무함마드 자말 알달루, 1살. 타하니 하산 알달루, 52살. 수하일라 무함마드 알달루, 73살. 라닌 자말 알달루, 22살.’
달루 집안 건물 주변의 집도 여러 채 반나마 주저앉은 터였다. 알무잔나르 집안에서도 70대 노인과 10대 소년 등 2명이 숨졌다. 달루 집안 이웃에서만 어린이 2명과 여성 3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이 다쳤다. 무너져내린 건물 더미를 뒤지며 애끓는 구조 노력이 이어졌다. 부질없었다. 2구의 주검이 추가로 발견됐다. ‘야라 자말 마흐무드 알달루, 17살. 무함마드 자말 마흐무드 알달루, 29살.’
등 이스라엘 언론들은 “애초 군의 목표물은 (이슬람주의 정당 하마스의 무장조직인) ‘이지딘 알카삼 여단’ 조직원이었으나, 정보가 잘못 전달돼 달루 집안 건물을 겨냥해 미사일이 발사된 것”이라며 “군 당국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자체 조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다. 점령된 땅, 팔레스타인에서는.
달루 집안이 통째로 사라진 뒤에도, 이스라엘군은 나흘을 더 가자지구를 때려댔다. 정전협상을 위해 이스라엘로 급파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제일 먼저 입에 올린 말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하는 미국의 반석같이 굳은 마음”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역시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에 나설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작전명 ‘캐스트 리드’, 2008년 12월27일 오전 11시30분 시작된 당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은 지상군 병력 투입과 맞물려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2009년 1월18일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포할 때까지, 그 핏빛 전쟁은 22일 동안 이어졌다. 그때도 미국에서는 새 대통령이 선출돼 취임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당선자 신분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그때도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입에 올렸다.
2005년 주도권 쥐려 밸브를 틀어쥔 뒤
“시계다. 시계를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필리스 베니스 미 정책연구소(IPS) 소장은 지난 11월19일 위성채널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4년 전에도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더 이상 참아낼 수 없다”며 침공을 단행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베니스 소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스라엘군의 표적 암살로 하마스 지도자가 죽임을 당한 뒤, 팔레스타인 쪽이 보복에 나서 전쟁에 휘말렸던 것”이라며 “하마스가 군사적으로 맞대응한 게 ‘영리한 선택’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사태를 먼저 촉발한 책임은 분명 이스라엘 쪽에 있다”고 지적했다.
4년 전 전쟁 때도 ‘달루 집안의 참극’은 벌어졌다. 2009년 1월1일 가자지구 북쪽 제발리야 중심가, 하마스 권력 서열 3위인 셰이크 니자르 리얀(49)의 집에 이스라엘군이 퍼부은 폭탄은 무려 1t짜리였다. 잿더미로 변한 건물 더미에서 구조요원들이 발굴해낸 주검은 리얀과 그의 부인, 자녀 등을 포함해 모두 11구였다. 이건 ‘기시감’도 뭣도 아니다. 저명한 중동 전문 언론인 로버트 피스크는 11월18일치 일간 에 쓴 칼럼에서, 가자에서 되풀이되는 참극을 ‘쓰레기 전쟁’이라 불렀다. 하긴 가자지구 전체가 거대한 ‘쓰레기장’ 취급을 받아왔다.
지중해에 접한 360km2의 땅덩어리에 줄잡아 150만 명이 몰려 사는 가자지구는 애초 이스라엘의 점령 상태에 놓여 있었다. 8천여 명에 이르는 유대인 ‘정착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그 땅에 대규모 지상군 병력을 주둔시켰던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군대를 물린 것은 아리엘 샤론 총리 정부 시절이던 2005년 9월이다. 향후 팔레스타인 쪽과 진행하게 될지 모를 ‘국경 획정’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점령’은 이어졌다. 가자로 통하는 땅과 바다, 하늘길을 모두 이스라엘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허가 없인 그 누구도 들고 날 수 없었다. 전기·물·식량·연료·의약품까지 모두 이스라엘이 ‘밸브’를 틀어쥐고 있다. 언제 그 밸브를 열고 닫을 것인지도 이스라엘에 달렸다. 2006년 1월 치러진 팔레스타인 자치의회(PLC) 선거에서 이슬람주의 정치세력 하마스가 압승을 거둔 직후, 이스라엘은 그 밸브를 닫았다. 지금껏 닫힌 채다. 7년여 세월, 가자는 철저히 봉쇄된 섬이었다. 당나귀 수레가 버젓이 ‘운송수단’으로 사용되는 땅,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70%를 웃돈다.
“초토화시켜야 한다. 가자지구 전체를 아예 싹 쓸어버려야 한다.” 아리엘 샤론 전 총리의 아들인 길라드 샤론은 11월18일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무고한 주민이 아니다. 그들이 투표를 통해 하마스를 선택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리 이샤이 이스라엘 부총리도 같은 날 비슷한 말을 했다. 인터넷 매체 는 이샤이 부총리의 말을 따 “도로든 상하수도 시설이든, 모든 인프라를 박살내야 한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가자를 중세로 되돌려놓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내건 이번 가자 전쟁의 작전명은 ‘방어의 기둥’이다.
건물 지붕의 폭죽… 잠깐의 안도
2012년 11월14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가자 공세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모두 156명이다. PCHR는 “사망자 가운데는 어린이 33명과 여성 13명이 포함돼 있다”고 집계했다. 부상자도 1천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어린이는 274명, 여성은 162명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11월21일 <afp> 등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일은 명백한 인종청소”라고 말했다. 4년 전 전쟁 때는, 숨진 이만도 1300여 명에 이르렀다.
아랍 위성방송 는 11월22일 밤 “폭격이 멈춘 가자의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울렸다”고 전했다. 더러는 경적을 울리기도 했고, 건물 지붕에 올라가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단다. 더는 죽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였을 게다. 그저, 잠시 동안이라도 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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