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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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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오위다오는 제2의 만주가 되나?

만주사변 81주년 즈음 중국에 반일시위 광풍 번지고 ‘전쟁 불사론’까지 등장한 댜오위다오
문제… 양국 모두 국내 사정 때문에 예전처럼 적정한 타협점 찾기 어려워 갈등 깊어질 가능성 커
등록 2012-09-27 15:18 수정 2020-05-0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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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8일,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지 81주년 되던 날. 중국인 후아무개씨는 이날 하루 집안 ‘칩거’를 결정했다. 괜히 나갔다가 큰 봉변을 당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며칠 전 주말, 베이징 칭화대학 근처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2명이 자신의 ‘일제 차’ 앞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듣고 등골이 오싹했던 생각도 났다. “어, 이거 일본 차네. 기분 나쁜데 이 차 부숴버릴까?”

동원된 시위 넘어 역대 최고 열기

그날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일본의 조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국유화 조처에 반발하는 대규모 반일 시위가 벌어진 터였다. 후씨가 칩거를 하는 동안 다른 수많은 ‘일제 차’ 주인들도 그날 하루 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집에 그냥 눌러앉았다. 중국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이날 베이징 도로교통 상황은 이전에 비해 아주 원활했단다. 거리에서 일본제 차들이 모조리 사라졌기 때문이다.

같은 날 중국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교재를 사려고 베이징 중관촌 서점에 들른 한국인 고아무개씨. 서점 입구에서부터 직원이 출입을 막았다. “당신 일본인 아냐? 일본인은 출입 금지야!” 베이징에 거주한 지 7년이 넘어가는 고씨는 “이런 황당한 일은 처음 당했다”고 했다. 이날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려던 또 다른 한국인 김아무개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행선지를 밝히자 택시 기사가 대뜸 이렇게 말했단다. “일본인은 안 태우니까 내려!” 우기다시피 한국인임을 인정받고 무사히 집에 오기는 했지만, 그 역시 베이징에 거주한 이후 그런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처음이었단다.

지난 9월11일 일본이 댜오위다오의 국유화를 결정한 뒤, 중국 전역에서 반일 시위 광풍이 몰아쳤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 100개 이상의 지역에서 격렬한 반일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시안과 창사, 칭다오 등 일본 기업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시위대들이 폭도화해 백화점과 공장 등이 공격을 받아 약탈을 당하거나 크게 부서져 당분간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했다.

일본 대사관이 있는 베이징에서도 지난 9월15~16일 주말 동안 일본 대사관 주변으로 시위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각종 오물이 투척되는 바람에 대사관에 게양된 일장기를 아예 내려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만주사변 81주년인 9월18일엔 전국적으로 반일 시위가 일어나 정점을 이뤘고, 시위대들의 공격을 우려한 전국의 일본계 상점과 기업, 음식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시위 참가자 중 상당수가 사복을 입은 경찰이거나 돈을 받고 조직된 시위대라는 증거가 쏟아졌지만, 일본을 향한 격앙된 민심과 분노는 ‘동원된 시위’ 수준을 넘어서는 유례없는 반일 정서를 드러냈다. 과거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등으로 역시 몇 차례 심각한 반일 시위와 여론이 들끓긴 했지만 이번 반일 시위 사태는 그 수위와 범위, 정도 면에서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영매체가 쏟아낸 살벌한 해법

영토 및 주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식의 타협도 없다는 게 중국 외교정책의 원칙이다. 다만 과거에는 지금과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일본에 대해 사실상 정치적 ‘구두 협박’에 그쳤다. 즉 정치적으로는 강경한 ‘입 대응’을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로의 실리를 강화하는 정책을 취했다.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거운 것’이 중-일 관계의 핵심 본질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 결정으로 촉발된 이번 대치전은 예전과는 달리 분위기가 사뭇 살벌하다. 중국은 과거의 현상유지 전략 대신 정치력과 경제력, 군사력 등을 총동원해 전방위적으로 일본을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의 도발적인 움직임만 없다면 일본의 댜오위다오 실효지배라는 현상을 묵인하고 유지해 줬지만 이번에는 ‘국물도 없다’는 식이다.

<인민일보>와 <환구시보> <신화사> 등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매체들도 앞장서 호전적 여론을 부추기며 일본과의 한판 승부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9월17일치 <인민일보>는 “중국이 경제 방아쇠를 당기면 일본을 20년 후퇴시킬 수 있다”는 강경한 어조의 사설을 실었다. 신문은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면 일본을 다방면에서 정조준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전을 준비해야 한다”며 “중국이 경제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아쇠를 언제 당길 것인가는 일본에 달려 있는데, 일본은 과연 그럴 준비가 돼 있느냐”고 경고했다.

<환구시보>도 지난 9월20일 ‘댜오위다오 싸움의 세 가지 결론에 대한 가상’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비슷한 논조를 보였다. 특히 신문은 “이번 영토분쟁을 둘러싼 중-일 간 싸움은 크게 3가지 범주의 결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첫째, 현재와 같은 일본의 실효지배라는 현상 유지다. 둘째, 타협을 통해 댜오위다오의 주권을 서로 자기 것이라고 선언하지 않는 방법이다. 마지막 셋째는, 중국이 강력한 정치·경제·군사적 물리력을 통해 일본을 공격해 댜오위다오를 회수하는 방법이다. <환구시보>는 “현재로선 앞의 두 가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굳이 제안하자면 이번 기회에 중국은 국부적인 물리적 충돌과 경제제재 등을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른바 ‘전쟁불사론’이다.

만주사변 81주년을 기점으로 중국 내 반일 시위는 정부의 통제정책에 힘입어 예전 같은 격앙되고 조직적인 거리시위는 자취를 감췄다. 들불처럼 번져가던 반일 시위가 국내 정치와 사회문제를 풍자하는 구호들과 뒤섞이고, 마오쩌둥 초상화와 홍위병 복장을 한 시위대까지 등장한 탓에 당국이 서둘러 시위 억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낙마한 보시라이의 영향력이 여전한 충칭에서는 반일 시위대가 ‘댜오위다오는 중국 것, 보시라이는 인민의 것’이라는 정치적 구호를 외기도 했다. 반일 시위가 중국 내 정치투쟁을 가속화하는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도 이 때문이다.

서로 칼을 빼들긴 했지만 물러설 벼랑 없어

중국은 10월 말~11월 초로 예정된 제18차 당대회에서 권력 교체를 앞두고 있다. 이미 2020년까지 경제발전에 매진해 이른바 ‘소강사회(기본적 생활이 보장되고 다소 여유 있는 사회) 건설’이라는 사회·경제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선 외부 환경이 안정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일본과 영토분쟁에 휘말린다면 주변 국가들은 중국의 부상을 염려할 테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 포위 전략’은 더욱 강화될 게 뻔하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일본과 적절한 타협을 하기도 어렵다.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국내 보수파와 인민들의 불만을 사게 돼 자칫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잃어버린 10년’과 후쿠시마 대지진 등을 경험하며 이미 대내외적 자신감 상실을 경험했다. 만일 이번 영토분쟁 역시 중국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면, 일본 국민의 ‘사기’도 그렇거니와 일본의 총체적 자신감은 더 이상 회복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 처지에서도 칼을 빼들긴 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벼랑이 없는 자충수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과 일본은 과연 서로를 겨냥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통신원 phschi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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