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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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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로 분열된 이집트 두 번째 혁명

이집트 군부, 새 대통령 허수아비 만들고 제헌헌법 제정 미룰 ‘헌법 부속조항’ 발표…
대선 결과 발표 연기된 가운데, 다시 혁명 광장에 모인 저항 세력은 분열 조짐 보여
등록 2012-06-26 14:12 수정 2020-05-03 04:26

이집트 군부의 움직임에 거침이 없다. 헌법재판소를 동원한 ‘사법 쿠데타’ 이후, 성큼성큼 발걸음을 재게 놀리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분명해 보인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절대 권력이 무너진 바로 그 자리다. 그리로 가는 길목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벼르고 있다. 바야흐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1년4개월여 전 군사독재를 무릎 꿇린 이집트 혁명이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무소불위 최고군사위에 집중된 권한
군부의 ‘시나리오’는 제법 촘촘했다. 대선 결선투표를 사흘 앞둔 지난 6월13일 이집트 군부는 군과 정보기관원의 민간인 체포·구금을 허용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무부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누가 봐도, 시위대를 겨냥한 조처다. 이튿날엔 헌법재판소가 질질 끌어온 두 가지 결정을 한꺼번에 내놨다. “의회 선거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무바라크 정권 ‘부역자’의 정치 참여 금지는 ‘평등권’ 침해다.” 이로써 혁명의 유일한 가시적 성과물인 의회는 해산됐고,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마드 샤피끄의 대선 출마도 허용됐다.
이어 6월16~17일 대선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샤피끄 후보와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각축을 벌였다. 초기 투표 참여율은 극도로 저조했다. 지난해 의회 선거, 지난 5월 대선 1차 투표 때 기다랗게 늘어섰던 투표 행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샤피끄 후보의 승리가 점쳐졌다. 이틀째 막판 반나절을 남기고 투표소로 향하는 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밤에 군부가 다시 움직였다. 무바라크의 수하였던 무함마드 탄타위가 이끄는 최고군사위(SCAF)가 뜬금없이 ‘헌법 부속조항’을 발표하고 나선 게다. 이집트 관보에 게재된 부속조항은 모두 8개 조항이다. 이집트 일간 이 영문으로 보도한 항목별 내용을 보면, 군부의 의도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핵심만 추려보자.
헌법 제53조 부속조항으로 등장한 것은 군부의 권한 강화다. “현직 최고군사위 위원이 군사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결정권’에는 군 인사권이 명시적으로 포함됐다.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최고군사위 위원장이 군 총사령관이자 국방장관을 겸한다”는 규정도 있다. 대선 이후에도 군 통수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제53조 1항의 부속조항에선 “대통령은 최고군사위의 승인을 받은 뒤에만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2항에선 “내란 등 국내적 혼란 상황에서 치안 유지와 공공재산 보호를 위해 대통령은 군을 동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꼬리표가 없을 리 없다. 역시 ‘최고군사위의 승인’이 우선돼야 한다. 또 “현행법에 따라 군은 상황에 따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력을 사용하거나, 체포·구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행정명령’을 헌법 부속조항으로 재확인한 셈이다. 이쯤 되면 ‘계엄’이다.
제60조 B항의 부속조항에선 “제헌위원회가 그 역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최고군사위가 일주일 안에 새 제헌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규정해 사실상 입법권까지 넘봤다. 향후 정국 구상의 일단도 내비쳤다. 같은 조항에서 “새 제헌위 소집일로부터 3개월 안에 제헌 절차를 마치고, 헌법안이 완성된 날로부터 15일 안에 국민투표에 부친다. 의회 선거는 헌법안이 통과된 날로부터 1개월 안에 치른다”고 명시한 게다.

“무슬림형제단 단독 협상 안 된다”
이대로 진행될까? 군부 맘대로다. 제60조 B1항에서 ‘단서’를 달아뒀기 때문이다. 같은 조 B1항을 보자. “대통령, 최고군사위 위원장, 총리, 대법원장, 또는 제헌위원 5분의 1 이상이 제헌헌법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제헌위원회에 해당 조항을 15일 안에 수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제헌위가 이를 거부하면, 헌법재판소가 7일 안에 해당 조항을 심의해 결정을 내린다. 헌재의 결정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결국 뭔가? 새로 선출될 대통령은 아무런 실권이 없다는 뜻이다. 제헌위가 작성할 이집트 새 헌법 조문에는, 군부가 원하지 않는 조항이 들어가는 게 불가능해졌다. 군부가 트집을 잡으면, 새 헌법안이 마련되기까지 무한정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새 헌법에 따라 총선을 치를 때까지, 입법·사법·행정권과 함께 군 통수권까지 장악한 군부가 완벽히 철권을 휘두를 게다. 무바라크 축출 외에, 혁명으로 달라진 건 대체 뭔가? 이집트는 ‘100%’ 과거로 돌아가 있다.
“군부독재 끝장내자!” 선거 직후부터 혁명의 성지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다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당연했다. 그들이 외친 구호가 전과 같아진 것도 마찬가지다. 군부는 다시 꼼수를 부렸다. 애초 선거 직후 이집트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전국의 개표소에서 집계해 종합한 선거 결과는 박빙의 승부 끝에 무르시 후보가 샤피끄 후보를 51.5% 대 48.5%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무르시 후보는 선거 다음날인 6월18일 일찌감치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집트 선관위가 대선 결선투표 공식 개표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6월20일 돌연 발표 연기를 통보했다.
선관위 쪽이 밝힌 이유는 구구했다. “샤피끄·무르시 후보 양쪽이 선거부정 사례로 고발한 것만 400건이 넘어, 이를 모두 검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다. 이미 샤피끄 후보 쪽도 ‘승리 선언’을 내놓은 터다. 등 외신들은 6월20일 이집트 선관위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선거부정 의혹이 있는 약 100곳의 투표소를 대상으로 재투표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타흐리르를 등졌던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도 이날부터 다시 광장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미리 대비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군부의 대응은 이번에도 재빨랐다. 은 이날치 인터넷판 기사에서 “무바라크 정권 붕괴 이후 처음으로 카이로 외곽에 군병력이 증강 배치되는 장면이 목격됐다”며 “카이로 외곽 5km 지점엔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군부와는 타협 없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지난 6월21일 무르시 후보는 향후 정국 전망을 논의하려고 카이로 외곽 헬리오폴리스의 한 호텔에서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들과 긴급 회동을 했다. 은 이날치 인터넷판 기사에서 “회동에 참석한 젊은 활동가들은 헌법 부속조항 철회 요구와 함께, 다른 정치세력이 배제된 채 무슬림형제단이 단독으로 최고군사위와 ‘협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미 “군부가 무슬림형제단 쪽에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를 해산시키면 대선 승리를 보장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떠돌던 터다.

같은 날, 따로 열리는 집회
이날 오후 무슬림형제단과 누르당·다와당 등 이슬람주의 정치세력들은 금요성일인 6월22일 타흐리르 광장에서 대규모 반군부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4월6일 청년운동’과 혁명사회주의당·사회주의인민연합 등 혁명을 앞장서 이끌었던 진보개혁 진영은 금요예배를 마친 뒤 거리행진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따로 성명을 내어 “혁명을 특정 후보의 선거에 활용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타흐리르 광장 농성을 비롯해 무슬림형제단이 주최하는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군부의 도발로 시작된 혁명의 2단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급속히 분화한 이집트 혁명세력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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