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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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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나치당의 새벽이 밝았나

‘신나치’ 성향 그리스 황금새벽당, 6.96% 득표로 첫 원내 진출…
2008년 경제위기 전후, 유럽에서 극우당 약진
등록 2012-05-24 14:20 수정 2020-05-03 04:26

“모두 일어서. 일어나서, 예의를 갖추라고.” 연방 고함이 터져나온다. 머리칼을 밀어버린 육중한 체구의 사내들 모습이 위압적이다. 의자에 앉아 있던 이들이 하나둘 마지못해 일어선다. 굼뜬 이들에겐 득달같이 달려가 직접 닦달을 한다. 항의를 해봐도 소용없다. “예의를 갖추기 싫으면 당장 꺼져버려.” 퉁명스러운 외침이 날아든다. 지난 5월6일 저녁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풍경이다.

“이민자를 쓸어버리자”
그리스 방송사들이 찍어 ‘유튜브’에 올린 4분28초 분량의 동영상을 보면, 이날 회견의 주인공은 니콜라오스 미칼로리아코스 그리스 ‘황금새벽당’(XA) 대표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황색언론이 주도한 최악의 비난전에도 ‘애국심’을 믿어준 국민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헬레니즘의 새로운 황금새벽이 떠오르고 있다. 조국을 배반한 자들이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극우를 넘어 신나치로 평가받는 이 정당은 이날 치른 선거 결과, 창당 이후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모두 32개 정당이 난립했던 이번 그리스 총선에서 의석을 얻은 정당은 황금새벽당을 포함해 7개뿐이다. 황금새벽당이 이번 선거에서 내세운 ‘으뜸 구호’는 ‘거리에서 쓰레기(이민자)를 쓸어버리자’였단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닌 게다.
2008년 경제위기가 시작된 이래, 유럽 전역에서 ‘외국인혐오증’을 앞세운 극우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이민정책연구소(MPI)가 지난 5월9일 내놓은 47쪽 분량의 보고서 ‘유럽과 북미의 이민과 원주민 관계’를 보면, 2008년 경제위기 이전과 이후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뚜렷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MPI가 2009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2004년 실시된 같은 선거와 비교해보니, 폴란드·벨기에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오스트리아 자유당(FPO) +6.4% △영국 국민당(BNP) +1.4% △덴마크 인민당(DFP) +7.1% △더 나은 헝가리 운동(Jobbik) +14.8% △이탈리아 북부동맹(NN) +5.2%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극우정당이 크고 작은 약진을 이뤘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 변화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7년 연방선거에서 28.9%의 득표율을 올리며 떠올랐던 스위스 인민당(SVP)은 2011년 선거에서도 26.6%를 득표했다. 네덜란드 자유당은 2009년 선거에서 17%를 득표한 데 이어 2010년 치른 선거에서 다시 득표율 15.5%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잇따라 선거를 치른 프랑스와 그리스다. 1997년 의회선거에서 14.9%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프랑스 국민전선(FN)은 2007년 선거에선 4.3%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쇠잔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4월21일 치른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마린 르펜 후보가 17.9%의 지지율을 기록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극우를 ‘배신자’라 부르는 신나치
그리스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인다. 그간 그리스의 대표적인 극우정당은 정통인민당(LAOS)이었다. 이 정당은 2009년 10월 치른 총선에서 5.6%의 득표율로 15명의 의원을 배출했고, 연립정부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지난 5월6일 치른 선거에선 2.9%를 득표하는 부진 속에,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황금새벽당이다. LAOS를 ‘배신자’로 부르며 ‘이념적 순수성’을 강조해온 황금새벽당은 이번 선거에서 6.96%의 지지를 얻어, 1993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원내정당이 됐다. 확보한 의석수는 21석, 총 300석인 그리스 의회에서 제6당의 지위를 점하게 됐다. 격한 시대가 격한 정치를 부르고 있다. 두 극우정당의 지지율을 합산하면 10%에 육박한다. 연립정부 구성의 실패에 따라 오는 6월17일 재선거를 치르기로 한 그리스가 아슬아슬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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