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량살상 무인항공기의 공포

9·11 이후 배치돼 전체 미군 항공기의 41% 차지하는 무인항공기 드론…
파키스탄 정부 ‘드론의 폭격으로 2009년에만 민간인 700여명 사망’
등록 2012-04-19 16:42 수정 2020-05-03 04:26

미국에 ‘코드핑크’란 단체가 있다. 여성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2002년 만들어졌는데, 조지 부시 행정부를 거치며 대표적인 반전·평화 단체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코드핑크란 이름은 미 국토안보부가 내놓는 코드오렌지·코드레드 따위의 안보위협 등급을 뜻하는 색깔에 ‘분홍빛’을 추가한 것이란다.

드론, 16개 기종 7454대
이 단체가 4월28일부터 이틀간 워싱턴의 한 교회를 빌려 국제회의를 열기로 했다. 행사 제목은 ‘무인항공기 정상회의’다. 미군이 세계 전역의 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 무인항공기(UAV·드론)의 위험성을 알리려고 기획된 행사다. 무인항공기의 파괴력을 가장 실감하는 나라는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을 곁에 둔 파키스탄이다. 코드핑크가 파키스탄 인권변호사 샤흐자드 아크바르를 연사로 초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행사 개최가 코앞인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아크바르 변호사가 신청한 미국 입국비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게다. 앞서 그는 지난해 5월 뉴욕 컬럼비아대학 법대가 주최한 인권 심포지엄에서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당시 신청한 비자도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 행사 주최 쪽에서 여러 차례 이유를 물었지만, 미 국무부는 “비자 신청서에 문제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아크바르 변호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미국을 다녀간 경험이 있다. 미 국제개발청(USAID)의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도 있다. 파키스탄 외교관이 연루된 테러사건 조사를 위해 현지를 방문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을 지원한 일도 있단다. 이른바 ‘반미 인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가 ‘기피 인물’이 된 사연은 뭘까? 무인항공기와 관련된 그의 최근 행적에 실마리가 숨어 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무인항공기를 실전 배치한 것은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다. 애초 정찰 임무에 주로 활용됐던 무인항공기는 점차 교전·타격 임무에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교전 상대국이 아니어서 병력을 투입하기 곤란한 파키스탄·소말리아·예멘 등지에서 테러범 등 ‘특정 목표물’을 겨냥한 이른바 ‘정밀타격’에 무인항공기가 심심찮게 동원됐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1월3일 내놓은 무인항공기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미 국방부가 현재 보유한 무인항공기는 모두 16개 기종의 7454대에 이른다. 미군이 보유한 유인항공기가 1만767대라니, 전체 항공기의 41%가 원거리에서 조정되는 무인항공기란 얘기다. 2003년까지만 해도 미군이 보유한 무인항공기는 5개 기종 163대에 그쳤단다.
CRS 보고서를 보면, 16개 기종 가운데 ‘정밀타격 능력’을 갖춘 것은 미 공군이 보유한 ‘MQ-9 립퍼’(54대)와 ‘MQ-1A/B 프레데터’(161대), 육군이 보유한 ‘MQ-1 워리어/MQ-1C 그레이 이글’(24대) 등 3가지다. 무인항공기라곤 하지만, 예상보다 ‘소형’은 아니다. 대표적 타격 기종인 립퍼는 전장이 10.9m, 날개 길이가 20.1m에 이른다. 자체 무게만도 4.7t에, 1.7t의 ‘화물’ 탑재 능력까지 갖췄다. 최대 비행고도는 1만5천m에 이르며, 추가 급유 없이 24시간 비행할 수 있다.

모두 2803명 숨졌다는 추계도

제너럴오토믹스 등 군수업체가 제작한 무인항공기 1대당 가격은 400만~1200만달러 선이란다. 2010 회계연도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립퍼 24대를 추가 구매하기 위한 예산으로 4억8900만달러를 책정했다. 이어 2011 회계연도엔 관련 예산이 22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오는 2014년 말로 아프가니스탄 철군 시한을 정한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와지리스탄과 부족자치구(FATA) 등 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에서 무인항공기를 동원한 군사작전을 대폭 늘리고 있다. 군뿐 아니라 중앙정보국(CIA)도 그곳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 ‘잔당’ 소탕 작전에 열심이란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목숨’이 스러지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2010년 초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9년 한 해 동안에만 미국의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700명을 넘어선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미국의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 규모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파키스탄 당국조차 현장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추정치는 천양지차다.
미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재단이 내놓은 ‘무인항공기의 보복’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2004~2011년 줄잡아 1717∼2680명이 미국의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293~471명이 무고한 민간인이란다. 영국 언론단체 ‘탐사보도국’(TBIJ)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같은 기간 사망자는 민간인 391~780명을 포함해 모두 3천여 명에 이른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추적하는 인터넷 사이트 ‘파키스탄보디카운트’의 집계는 이와 현격한 차이가 난다. 이 사이트가 파키스탄 현지와 미국 등지의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집계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04년 6월18일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미국의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지금까지 모두 2803명이 숨지고 1100명이 다쳤다.
특히 2008년 이후 무인항공기 공격 횟수가 급격히 늘면서 인명 피해도 커져, △2008년 36건(368명 사망) △2009년 50건(633명 사망) △2010년 109건(993명 사망) △2011년 73건(574명 사망) 등으로 집계됐다. 올해도 3월13일 현재까지 모두 12차례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7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단다. 영국 평화단체 ‘리프리브’가 “무인항공기를 동원한 군사작전은 ‘테러와의 전쟁’이 ‘재판 없는 사형선고’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게다.
아크바르 변호사는 인권단체 ‘기본권재단’의 공동 설립자다. 이 단체는 2010년 북와지리스탄에서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아들(18)과 동생(35)을 잃은 카림 칸을 대신해, 미 국방부와 CIA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이후 같은 피해를 입은 유가족 10여 명이 소송에 가담했다. 아크바르 변호사의 ‘입국 금지’ 사연을 알 만하다. 코드핑크 등 ‘무인항공기 정상회의’ 주최 단체들은 지난 4월9일 성명을 내어 “아크바르 변호사가 무인항공기 피해자의 대변인이 되는 순간, 오바마 행정부는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핵추진 무인항공기 개발 시도
미국은 파키스탄 외에도 소말리아와 예멘 등지에서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범 소탕작전’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에선 미 국무부가 보유한 무인항공기가 ‘대사관 경호’에 동원되고 있단다. 무인항공기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은 지난 4월2일 “미국이 재급유 없이도 여러 달 동안 비행이 가능한 핵추진 무인항공기 개발을 추진해왔다”며 “하지만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져 연구·개발이 잠정 중단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미사일로 무장한 핵추진 무인항공기는 ‘날아다니는 핵발전소’와 다름없다. 하늘이 두려운 세상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