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에 올려진 모든 선택권’이란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탁자’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극단의 폭력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이 그렇다. 미국의 정책이 ‘탁자’ 위에 놓였을 때, ‘모든 선택권’은 종종 군사적 도발을 뜻한다. 아프가니스탄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다. 그 ‘탁자’와 ‘미국의 선택’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구촌에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월4일 워싱턴에서 열린 유대인 로비단체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다시 얘기한다.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국은 어떤 정책적 선택권도 탁자에서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보유한 모든 능력을 포함해 이르는 말이다.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한 정치적 노력, 이란을 겨냥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외교적 노력,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감시하는 활동, 이란 경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경제적 노력, 그리고 어떤 ‘긴급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군사적 노력이 그것이다.”
이스라엘 국민 58% 단독 공격 반대
이튿날인 3월5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AIPAC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날 발언을 되풀이했다. 그는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 문제에 대해선 언제나 이스라엘 편”이라며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봉쇄 정책뿐 아니라 모든 선택권을 탁자 위에 놓고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백악관 방문에 앞서 네타냐후 총리는 AIPAC 총회장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이란 핵 문제를 풀어내기를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왔다.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며 참아왔다. 경제제재가 효과를 거두기 바랐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스라엘 총리로서 국민이 핵무기 공포 아래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이스라엘 쪽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기 시작한 건 지난 2월 초부터다. 는 지난 2월3일치에서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의 말을 따 “이스라엘이 이르면 오는 4월 또는 5월께 이란 핵 시설을 겨냥한 독자적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패네타 장관은 2월16일 상원 정보위에 출석해 “이스라엘 정부가 아직 (군사행동을) 공식 결정한 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발언 수위를 낮췄지만, 파문은 갈수록 확산됐다.
미 정치권이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사이, 이스라엘 쪽에선 좀더 진전된 얘기가 흘러나왔다. <ap>은 2월28일 이스라엘 관계자의 말을 따 “이란에 선제공격을 할 경우, 이를 미국 쪽에 사전에 알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이스라엘의) 입장을 이미 고위급 인사와의 면담에서 미국 쪽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회담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었다.
이스라엘 현지에서도 이란 핵 시설을 겨냥한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현지 일간 가 지난 3월4~5일 텔아비브대학에 맡겨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8%가 “미국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이란을 공격하는 건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와 한 인터뷰에서 “이란의 핵 활동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이스라엘 스스로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최첨단 무기 지원으로 이스라엘 달래기?
상황이 실제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걸까? 그간 이란과의 핵 협상을 주도해온 이른바 ‘P5+1’(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지난해 말부터 경제제재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던 ‘P5+1’가 3월6일 이란 쪽에 돌연 ‘협상 재개’를 제안한 게다. 지난 3월2일 치른 마즐리스(의회) 선거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진영을 제치고 전체 290석 가운데 75%가량을 확보하며 정치 전면에 나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즉각 이를 반기고 나섰다.
우연치곤 시점이 묘하다. 협상이 재개될 것이란 발표가 나온 다음날인 3월7일 이스라엘 일간 가 전한 보도는 예사롭지 않다. 이 매체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3월4일 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이란을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 쪽에서 최첨단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며 “미국 쪽은 이스라엘군에 최신형 벙커버스터(지하시설 파괴용 폭탄)와 장거리 공중 급유기 등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무기 지원에 전제조건은 없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단다.
이에 대해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무기류 지원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카니 대변인은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엔 군·정보기관 등 각종 정부 간 대화 채널이 마련돼 있으며, 상호 협력 방안을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이 아닌, 실무급 회담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진 않은 셈이다. 그는 이어 “과거에도 이스라엘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서방은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중국 경제가 의존하고 있는) 중동의 원유를 묶어버리는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중동 지역을 둘러싼) 정치적 위험성은 대단히 높았다. 지금은 더욱 높아졌다. 조만간 미국이든 이스라엘이든 이란을 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은) 사실상 불가피해 보인다.” ‘월가의 비관론자’로 불리는 자산운용가 마크 파버는 3월8일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음울한 전망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날도 국제 유가는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미 뉴욕상품거래소(NYMEX)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날 4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1.23달러 오른 배럴당 125.3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쟁 나면 기업이 호황 누려”
“중동에서 전쟁이 난다고 치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로선 달러를 더 찍어낼 수밖에 없을 거다.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이 전쟁비용을 감당할 만한 다른 방법은 없다.” 파버는 “전쟁이나 사회적 혼란상이 벌어지면, 기업들은 대체로 호황을 누리기 마련”이라며 “지금은 귀금속과 주식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화약 냄새라도 맡은 건가? 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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