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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야할 대선에서 공화당이 고전하는 이유

미국 경제위기 오바마 정부 지지율 낮지만, ‘티파티 의회’ 거부감도 만만치 않아…당을 장악한 극우파와 중도파 롬니 후보 불협화음 속에 흔들리는 미 공화당
등록 2012-01-13 03:10 수정 2020-05-02 19:26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본격 개막됐다. 1월3일 치러진 아이오와주 공화당 당원대회(코커스)는 그 서막이다. 밋 롬니 후보(24.6%)와 릭 샌토럼 후보(24.5%)가 단 8표 차로 박빙의 승부를 벌였고, 극단적 자유주의 성향의 론 폴 후보(21.4%)가 3위를 차지했다. 공화당을 쥐락펴락하는 ‘티파티 운동’ 진영의 지지를 받은 3명의 후보는 초라했다. 뉴트 깅리치·릭 페리 후보가 각각 13.3%와 10.3%를 득표했고, 미셸 바크먼 후보는 5%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당은 태양, 후보는 행성”
아이오와 코커스에 사활을 걸었던 바크먼 후보는 결과 발표 직후 경선 포기를 전격 선언했다. ‘진로를 모색하겠다’며 고향인 텍사스주로 돌아갔던 릭 페리 후보는 일단 경선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등이 지적한 것처럼, 페리 후보는 아이오와주에서 텔레비전 선거광고에만 550만달러 이상을 쏟아붓고도 5위에 그쳤다. 그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가 많지 않은 이유다.
하원의장 출신이란 후광에도 4위에 그친 깅리치 후보도 ‘보수 본류’의 표심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는 1월10일 치러지는 뉴햄프셔주 공화당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재선에 나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쟁 상대가 예상보다 빨리 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정작 관심이 가는 것은 그다음이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열리기 하루 전인 1월3일 가 던진 ‘화두’는 이런 미 정가의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후보가 당을 바꿀 것인가, 당이 후보를 바꿀 것인가?’
성공적인 대통령 후보는 당을 휘어잡는다. 대중의 열망에 충실한 쪽으로 당을 이끌어간다.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를테면,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로널드 레이건이 그랬다. 레이건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제시한 ‘보수주의’는 이후 공화당의 지표가 돼 지금껏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2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빌 클린턴 후보는 ‘새로운 민주당’을 기치로 내걸고, 지지층의 외연을 넓혔다. 세 차례 거푸 대선에 패한 민주당이 그해 11월 오랜 악몽을 딛고 백악관을 탈환할 수 있었던 요인은 중도파까지 포괄할 수 있는 후보 개인의 힘이었다. 2000년 대선에서 이른바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했던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어떨까?
“당은 태양이요, 후보는 그 주변을 맴도는 행성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전략가로 일한 피트 웨너는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인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쟁에 나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보수 본류’를 자처하고 있다. ‘티파티 운동’으로 상징되는 극단적 보수파가 당을 장악한 현실을 염두에 둔 게다. 이들의 마음을 얻지 않는 한 ‘본선’ 진출은 불가능하다.

우파 vs 극우파 vs 극단적 극우파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위기 속에 집권했다. 지난 3년여, 위기는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평균 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이런 경제 상황에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극히 드물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층도 결집하지 못하고 있다. ‘충분히 과감하지 못하다’는 비판과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주장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40% 중반대로 추락한 뒤 오를 줄 모르고 있다. 후보가 누가 되든 공화당으로선 올해 대선은 ‘해볼 만한 싸움’이란 얘기다.
문제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는 점이다.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이념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의 발목 잡기를 되풀이해온 탓이다. 시사주간지 가 최신호에서 정리한 티파티 운동 진영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얼마나 대중과 동떨어져 있는지 쉽게 엿볼 수 있다.
“낙태는 어떤 경우라도 허용돼선 안 된다. 동성결혼은 개별 주정부가 허용하더라도 (연방정부가 나서서) 금지해야 한다. 1200만 명에 이르는 불법 이민자들은 미국 체류 기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본국으로 송환시켜야 한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인 4600만 명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기후변화는 음모론에 불과하다. 어떤 식으로든 총기 소지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위헌이다. 어떤 이유로도 세금을 올려선 안 된다.”
이를 두고 는 “미국 유권자들은 신뢰할 만한 중도우파 정치인을 찾고 있지만, 공화당 경선 후보들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극단적 우파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인터넷 매체 는 지난 1월3일 익명의 공화당 선거전략가의 말을 따 “오바마 대통령 처지에서 최고의 선거 전략은, 공화당 대선 후보가 티파티 운동 진영이 장악한 의회의 모든 행보를 지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대선을 앞둔 공화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도 1월4일치 사설에서 “아이오와 코커스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공화당 경선 후보들의 말에 귀기울일수록 그들이 얼마나 절대다수 미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라며 “공화당은 우파와 극우파, 극단적 극우파 가운데 한 명을 대선 후보로 뽑아야 할 판”이라고 쏘아붙였다.

‘중도파’ 이미지는 당내 경선 약점
그래서다. 이번 대선을 두고 “공화당의 의회와 오바마의 백악관이 벌이는 싸움”이란 분석이 민주·공화 양당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 ‘본선 경쟁력’만 놓고 보면, 롬니 후보는 당내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한다고 평가할 만하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인 그는 민주당세가 강한 동부 매사추세츠주에서 주지사를 지냈다. 공화당 밖에서 그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것은 이런 그의 ‘중도파’ 이미지 덕이 크다. 역설적인 것은 바로 그런 이미지가 당내 경선에선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롬니 후보는 2005년 7월 에 기고한 글에서 “기본적으로 낙태에 반대한다. 다만 성폭행 등으로 인한 원치 않는 임신과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총기 규제와 관련해선 “헌법에 보장된 것처럼 총기를 소지할 자유가 있다”면서도, “자동소총 등 중화기는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태도다.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해선 “일부는 송환을 해야겠지만, (장기간 체류한) 일부는 합법적으로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티파티 진영의 시각으론 죄다 ‘오답’이다.
2003년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해 롬니 후보는 분명한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이던 2006년엔 보편적 의료서비스 확대를 뼈대로 하는 주 의료보험법 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고스란히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의료보험 개혁안과 맞닿아 있다. 깅리치 후보를 비롯해 보수파들이 롬니 후보를 ‘자유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이유다. 공화당 지지층의 주류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란 점을 고려하면, 모르몬교 신자인 롬니 후보는 ‘정서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보인다.
티파티 진영의 고민은 또 있다. 정치 전문 인터넷매체 는 지난 1월1일 아이오와 현지발 기사에서 “2008년 대선 후보 경선 때 공화당 보수파가 프레드 톰슨 후보와 마이클 허커비 후보 지지로 갈라지면서, 중도우파인 존 매케인이 어부지리로 후보가 됐다”며 “이번에도 보수파의 표가 릭 페리·뉴트 깅리치·릭 샌토럼 등에게 분산된다면, 롬니 후보가 대선에 나서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선전한 샌토럼 후보에게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아이오와에서 거둔 샌토럼 후보의 지지율은 한계가 명확하다. 투입 대비 산출에서 효율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샌토럼 후보는 코커스에 앞서 14주 동안을 아이오와에서 보내며, 99개 시·군을 이 잡듯 훑고 다녔다. 반면 롬니 후보가 아이오와에 투자한 기간은 단 2주였다.

극우파의 데드라인, 뉴햄프셔 예비경선
‘본선 경쟁력’에 대한 당 안팎의 우려를 씻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샌토럼 후보가 상원의원을 지낸 펜실베이니아주는 민주·공화 양당이 비슷한 지지세를 가진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다. 2006년 11월 상원의원 3선 도전에 나선 샌토럼 후보는 밥 케이시 민주당 후보에게 무려 70만 표(약 18%) 차이로 대패한 경험이 있다.
1월10일 프라이머리가 열리는 뉴햄프셔에서 롬니 후보는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오와에서 분산됐던 티파티 진영의 표가 샌토럼 후보 쪽으로 몰린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현행 대선 후보 경선제도가 마련된 1980년 이래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동시에 거머쥔 후보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전례는 없다. 둘 중 하나도 이기지 못한 후보가 본선에 진출한 사례도 없다. 올해를 뜨겁게 달굴 미 대선전이 첫 번째 승부처로 다가서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미국 대선은 왜 돈잔치가 됐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1조2천여억원 선거자금

지난 1월3일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가 막을 올린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은 오는 11월6일 투표와 함께 마무리된다. 모든 선거에는 돈이 들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든다.
따져보자. 미 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 두 당의 후보가 모금한 선거비용은 자그마치 11억1307만9388달러다. 환율 변동은 있겠지만, 1월5일 시세로 약 1조2822억6745만원이다. 이 가운데 실제 선거비용으로 사용된 금액은 10억6288만5257달러, 그러니까 약 1조2244억4381만원이다.
후보별로 살펴보자.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7억4498만5624달러를 모금해, 선거비용으로 7억2951만9581달러를 사용했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3억6809만3764달러를 모금해, 3억3337만5676달러를 썼다. 결과는 모두 안다. 매케인 후보보다 3억3337만5676달러(약 3847억1550만원)를 더 쏟아부은 오바마 후보의 승리였다. 2007년 12월 치러진 한국의 17대 대선 때 중앙선관위가 정한 후보 1인당 선거비용 제한액은 465억9300만원이었다.
미 대선이 ‘천문학적 돈잔치’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진보적 싱크탱크 ‘책임정치센터’(CRP)는 지난 1월3일 낸 자료에서 “1996년 대선 때부터”라고 지적했다. 이유? 미 대선에선 선관위가 ‘매칭펀드’ 방식으로 선거자금을 지원했다. 선관위가 정한 선거비용 상한선을 후보자가 지키면, 사용한 금액과 같은 액수를 그 후보자에게 지원하는 ‘절반의 선거공영제’였다.
1996년 대선에서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밥 돌 공화당 후보는 선관위의 상한선인 3500만달러씩만 각각 모금했다. 하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경제지 발행인인 언론재벌 스티브 포브스가 매칭펀드를 거부하고 나선 게다. 그는 선거자금 모금과 별도로 자비만도 3700만달러를 쏟아부으며 경선을 치렀다.
1996년의 경험은 2000년 대선에서 극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는 일찌감치 매칭펀드를 포기하고, 선거자금 모금에 발벗고 나섰다. 당시 부시 후보는 1억달러에 이르는 선거자금을 긁어모았다. 2004년 대선에선 민주당도 ‘돈잔치’ 행렬에 일찌감치 가담했다. 하워드 딘·존 케리 후보가 역시 선관위의 매칭펀드 대신 ‘무제한 선거자금 모금’을 택한 게다. 케리 후보는 2000년 대선에서 부시 후보가 모금한 금액의 2배 가까이 끌어모으는 기염을 토했지만, 재선에 나선 부시 대통령을 따라잡진 못했다. 그해 부시 대통령은 2억7천만달러를 모금해냈다.
2012년 대선은 어떨까? 미 선관위가 지난해 9월30일 기준으로 집계한 후보자별 최신 선거자금 모금 내역을 보자. 1월3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한 밋 롬니 후보는 3221만2389달러를 모금해, 공화당 후보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릭 페리 후보(1263만3422달러)와 론 폴(1262만3422달러)이 잇고 있다. 반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8표 차로 2위를 차지한 릭 샌토럼 후보는 단 128만6975달러를 모금하는 데 그쳤다. 오바마 대통령? 공화당 경선 후보 6명의 모금액을 합한 금액을 훌쩍 뛰어넘는 8621만5580달러를 모금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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