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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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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레에 의한, 기업가를 위한 반부패 운동

뇌물 받은 정부는 공격해도 뇌물 준 기업은 공격하지 않는 하자레의 반부패 운동…인도에서 중산층이라 불리는 기업가의 이해를 반영하는 한계 뚜렷
등록 2011-09-08 06:17 수정 2020-05-02 19:26

안나 하자레(74)의 반부패 운동이 인도판 ‘아랍의 봄’으로까지 격찬받으며 정부와의 싸움에서 1차 승리를 거두었다. 이 운동은 유권자가 세계 최다라는 이유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국가’로 불리는 인도 민주주의의 적나라한 부패상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아랍의 봄’이 아니다. ‘아랍의 봄’은 튀니지 노점상의 분신으로 시작된 기층 민중의 운동이지만, 인도의 반부패 운동은 ‘중산층’(인도에서 기업가 등 상위 20%를 일컫는 표현)이 사회구조의 일부만을 변경하기를 원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뇌물 준 기업 비판은 금기

인도에서 400억달러가 걸린 ‘통신주파수 스캔들’이 발생한 뒤 하자레는 로크팔(힌디어로 옴부즈맨) 법안 도입을 통한 부패 근절을 요구하려고 지난 4월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정부는 허가받지 않은 집회를 준비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하는 강경 대응을 했으나 오히려 반부패 운동에 불을 지폈다. 8월 그가 다시 단식투쟁에 들어서자 인도 전역은 들끓었고, 단식 12일 만인 8월27일 국회에서 로크팔 법안을 논의하기로 결정해 하자레는 1차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단식을 풀며 자신이 전 국민적 지지를 받은 것은 전폭적 지지를 해준 언론의 힘 때문이었다고 특별히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인도 언론의 반부패 운동 보도에는 무척 이상한 대목이 있다. 거의 모든 미디어가 정치인들이 ‘사과 박스’를 받는 것은 공격하지만 70여 년간 사과 박스를 보낸 기업인들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독립 이후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 시기의 경제를 사회주의경제라고 보는 이도 있지만 네루 시기의 경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가자본주의였다. 한국과 인도의 차이가 있다면, 경제성장을 위해 한국은 경공업·수출 위주의 정책을 택하고 인도는 중공업·내수 위주의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공통점은 경제에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있었다는 점이다. 두 나라 모두 단기적 수익이 나오기 힘든 기간산업은 국가가 맡았다. 기업인들은 자신이 투자하지 않은 이 공적 자원을 거의 무상으로 사용했고 정부에서 대규모 지원자금을 받으며 사업을 해왔다.
최대의 부패 사건으로 불리는 통신주파수 사업 뇌물 사건도 독립 직후 네루 시기에 시작된 뇌물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기업인들은 통신주파수라는 공적 자원을 받으려고 뇌물을 주었다. 정치인들은 ‘도둑에게 곳간을 열어주는 대가’로 도둑이 가져갈 것에 비해서는 사소한 수수료를 뇌물로 받았을 뿐이다. 정치인들이 받은 뇌물은 기업인들이 벌어들이는 돈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경제 개혁으로 칭송받던 만모한 싱 총리조차 반부패 운동의 공격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인도의 반부패 운동은 뇌물을 주고 받은 전리품인 주파수 등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기업인들은 대상이 아니다. 수익이 나는 공기업을 소소한 뇌물로 불하받아 해고와 비정규직화를 진행하는 기업인들도 대상이 아니다.

22%에서 9.2%로 떨어진 노동자 몫

인도의 반부패 운동을 제대로 읽으려면 인도에서 사용되는 ‘중산층’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인도 정부가 발표한 ‘아르준 센굽타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78%는 하루 가처분소득이 20루피(약 500원)가 되지 않는다. 건설노동자의 하루 임금은 100루피(약 2500원)로 온종일 일해도 햄버거 하나(약 150루피·약 4천원)도 사먹을 수 없다. 인도는 그만큼 빈부 격차가 심하고 ‘한국식 중산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인도에서는 기업가가 중산층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안나 하자레의 반부패 운동은 이런 인도 중산층이 부패한 정부를 바꾸고자 벌이는 운동이다.
현재 인도는 20년 동안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제조업에서 노동자에게 임금과 연금 등으로 돌아가는 몫은 22%에서 9.2%로 줄었다. 인도의 고질적 문제인 90%의 비공식 부문의 실업은 호전되지 않고 10%의 공식 부문에서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있어 고용 불안정이 심각하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지난 2월 뉴델리에서 열렸지만 언론은 ‘교통 마비로 화가 난 델리 시민’만을 보도했다. 기업가들이 고용 불안정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지만, 광고주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사과 박스를 보낸 기업가들의 주장을 계속 내보내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하루 500원도 못 쓰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인도 중산층들이 얼굴에 국기를 그리고 “나는 안나 하자레다”라고 외치며 애국심을 자랑하는 게 언론에 보도됐다. 극빈에 시달리는 대중까지도 부패한 정치인만의 문제로 착각하고 반부패 운동의 물결에 휩쓸려가는 데는, 하자레의 말대로 언론의 공헌이 컸다.
하자레가 ‘제2의 간디’라고 불리는 것은 맞다. 누구도 간디의 청렴한 삶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듯, 하자레의 선의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운동 방식은 간디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 그는 간디가 성공하지 못한 방법인 자신을 따르는 ‘성자들의 조직’의 ‘법과 제도를 초월한 도덕’에 근거를 둔 활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간디는 하자레에 앞서, 자신이 지명한 인물들로 구성된 소수의 ‘초월적 비폭력 운동 조직’이 인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공통점에도 간디와 하자레에게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부패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같지만, 간디는 인도가 부패한 나라가 될 것을 걱정해 한탄했고 하자레는 인도의 구조적 부패의 한 축인 중산층 ‘몸통’의 지지를 받으며 부패의 ‘꼬리’만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자레는 간디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진보적 정치인 E.M.S 남부디리파드는 그의 저서 에서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목표인 독립을 달성한 뒤 계속 ‘이상’만을 주장하는 간디를 몰아낸 대목을 지적했다. 하자레 또한 중산층이 요구하는 규제가 대폭 간소화된 ‘최소한의 정부’가 이루어지면 간디처럼 정치적으로 배제를 당할 것이고 ‘부패 없는 인도’라는 이상은 좌절될 것이다.

대중 불만 희석하는 부패 반대

인도 노조조직 중 하나인 NTUI의 타밀라주 섬유산업 조직위원장 메크나 수쿠르마는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는 지적을 했다. “2008년 이후 경기침체는 인도 대중의 삶에는 현실이다. 이 모든 불만에 대해 정치적 부패는 좋은 타깃이 되고 있다. 하자레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대표성이라는 원칙이 아닌 초월적 덕목에 근거한 기구를 제정하기를 원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인도 중산층의 분노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하자레와 그가 지명한 소수 성직자가 이끄는 조직은 국민의 참여라는 민주주의는 배제된 조직이다. 이 민주주의를 무시한 반부패운동은 모든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돌리고 자신들과는 상관 없는 양 행동하는 기업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수쿠르마는 현 정부가 ‘최소한의 정부’로 바뀌지 않고 있다고 분노하는 기업인들을 위해서 민주주주의까지 희생돼야 하는지 지적한 것이다. 현재 이 운동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싱 총리가 물러나고 집권 정당까지 바뀌더라도 인도 사회가 ‘품격 있는 발전’이라는 면에서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인들은 ‘시민운동의 성장’이라는 미사여구로 이 운동의 성과를 정리하고 인도 정치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정부’를 위한 압박을 통해 고용 불안정을 가속화할 것이다.
콜카타(인도)=정호영 자다푸르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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