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8일(현지시각)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하며 향후 2년 이내에 ‘AAA’의 최고 등급에서 강등될 확률이 3분의 1이 된다고 발표했다. 언론매체들은 S&P 같은 신용평가회사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며 그 의의를 높이 샀다. 일각에서는 S&P 전망이 정치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재정 적자 GDP 대비 8.9%, 그리스보다 높아
이번 발표는 미국의 재정 적자 축소 프로그램들에 대한 정치적 협상과 타결을 위한 일종의 압박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 의도와 파급력이 예의주시된다. 다양한 해석 가운데 중요하게 볼 지점은 S&P가 등급 전망 하향의 근거로 든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급증하는 부채다. 핵심은 이를 둘러싼 정치와 해결 전망을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S&P가 ‘정부폐쇄 사태’ 가능성까지 몰고 간 연방정부 예산안이 통과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발표를 했다는 점에서 예산안 협상 전후에서 드러난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의 정치를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재무부는 3월 한 달간 재정 적자가 1882억달러이고 지난해보다 3배 늘었다고 지난 4월12일 발표했다. 그리고 2011 회계연도 상반기(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의 누적 적자는 8290억달러로 사상 최대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1 회계연도의 적자는 1조6500억달러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 재정 적자가 전년도에 비해 급증할 것임은 명백하다. 규모는 2010년 미국 GDP 대비 8.9%를 훌쩍 뛰어넘어, 최근 국가재정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그리스의 8.3%, 포르투갈의 7.3%보다 높다. 재정 적자 급증은 미국 정부의 채무 규모를 늘려 지난 2월 말 기준 총 14조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 적자 증가 원인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은 꾸준히 있었고, 이에 따른 정치적 다툼이 계속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얼마 전 오바마 정부가 의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설립해 만든 이른바 ‘부채위원회’인 ‘재정 책임과 개혁에 관한 국가위원회’(The National Commission on Fiscal Responsibility and Reform)가 지난해 12월3일 투표에서 적자 감축안을 부결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제안을 마련하고 통과를 위한 득표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적 의견 차이와 최근 하원예산위원회 폴 라이언 위원장(공화당·위스콘신)이 제안한 적자 감축안이 연방정부의 ‘예산전쟁’을 심화하고 있다. S&P의 발표는 재정 적자를 어떻게든 해결하라는 외부 압박일 수 있다. 혹은 월가로 대변되는 기업 및 금융의 견해를 우회적으로 표현해 오바마 민주당 정부를 위협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적자 감축안은 부채위원회에서 제안된 프로그램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20년까지 재정 적자를 4조달러 줄이려는 프로그램인데, 이에 따르면 201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이 2.3%까지 낮아질 것이다.
지난해 위원회에 제안된 프로그램을 보면 △2020년까지 연방공무원 인원의 10%인 약 20만 명 축소 △공무원 임금 동결 △사회보장비용과 메디케어 축소 △고용주가 부담하는 지급급여세 감면 혜택 축소 △주택담보대출 이자의 세제 혜택 축소 또는 폐지 등이 있다. 이 프로그램과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태도를 담은 프로그램을 혼합해 나름 중도적인 제안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연장에 동의한 세금 감면 프로그램보다는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혜택 폐지와 노령자를 위한 메디케어, 저소득층 의료서비스인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 삭감 등을 제시하고 있다.
‘큰 정부 vs 작은 정부’로 견해 갈려
이에 맞서 폴 라이언 하원예산위원장은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계획안을 발표했는데, 정부 부문의 급격한 축소를 기본으로 한다. 라이언 위원장의 안에는 조세개혁을 통한 세입 확대, 국방비 삭감 등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라이언 위원장은 특히 정부의 역할 축소를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내용은 보건사업에서 정부의 개입 범위와 규모를 정부의 안보다 훨씬 축소시켜 국민이 의료비를 더 많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체 의료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정치적 격돌은 정부의 적극적 구실을 강조하는 견해와, 정부 축소와 시장 및 기업을 중시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재선거를 위해 자신의 재정 적자 감축 프로그램을 관철해 지지자를 규합하려고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오히려 지지자들은 지난해 말 부시 정부의 감세안 연장 동의, 중간 및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장 프로그램 축소, 미진한 경제위기 극복 프로그램, 세계적인 군사적 역할 축소 및 국방 지출과 관련한 개혁 부진 등을 이유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은 연방정부에서뿐만 아니라 지난해 선거에서 집권한 위스콘신 주정부의 스콧 워커 주지사의 사례처럼 적자를 줄이기 위해 공무원 해고와 보건 프로그램 축소, 학교 및 일부 공공기관 폐쇄 등과 같은 교육 및 공공서비스 축소 등을 제안한다. 공화당 안은 결국 자기네 지지 계층인 고소득자들의 이익만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사정 탓에 재정 적자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은 격해질 전망이다. 우선 지난해 2월 설정한 채무 한도가 14조2900억달러인데, 올 상반기 중으로 이 한도를 넘을 전망이다. 채무 한도를 늘리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공화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공화당은 ‘균형재정’의 헌법 수정안을 함께 들고 나올 예정이어서 정치적 타협 지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개혁정책 지지 그룹들은 진보적 조세개혁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이들은 연방의 소득세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기업 소득세는 1950년대 이래 가장 낮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 떨어졌으며, 최고 부자들에 대한 실효세율이 지난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므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정 적자 축소의 한 축으로서 고소득자 및 기업에 대한 증세와 조세 지출의 혜택 축소를 주장하는데, 이를 오바마 정부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경기 부양 프로그램 지속도 불투명경제위기 이후 미국 정부의 경기 부양 프로그램 지속 여부도 관심사다. 아직까지 위기 극복의 신호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데 ‘적자 축소’라는 명분을 위해 정부 지출을 계속 축소한다면, 이는 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의 선순환과 이를 통한 재정 수입 확대라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1차원적 재정정책이라는 비판에 맞닥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성시경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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