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넘어가야 짖는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리아 정부의 탄압이 무서워 개도 마음대로 짖지 못하다가, 국경을 맞댄 레바논 땅에 가서야 마음놓고 짖는다는 얘기다. 중동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과만 수교하고 한국과 국교를 맺지 않은 나라 시리아.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들끓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흔들림이 없다.
시리아 군인들이 3월27일 수도 다마스쿠스 북서부 라타키아 시내에서 무장충돌이 벌어진 뒤 경계를 서고 있다. 연합/AP
배반당한 ‘다마스쿠스의 봄’
아사드 대통령은 3월30일 의회 연설에서 “시리아는 지금 외부의 음모에 지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를 무너뜨리려는 이스라엘의 수작에 놀아난다는 소리다. 그는 이날 48년째 계속된 국가비상사태 해제 등 개혁안을 내놓지 않아 반정부 시위대 등이 반발했다.
아사드도 한때는 ‘영국에서 유학한 젊은 지도자’로 개혁과 변화의 기대주였다. 대통령 취임 전 ‘시리아 컴퓨터 소사이어티’ 회장을 맡아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2000년 7월 대통령 취임 뒤 1년간은 수백 명의 정치범을 석방하는 등 개혁 조처로 변화를 시도했다. 이른바 ‘다마스쿠스의 봄’이다. 2000년 가을부터 시작된 정치개혁 시민사회운동은 행정·경제·사법 개혁과 정치범 등의 사면 및 검열 폐지를 요구했다. 아사드의 정통성이나 권위적 통치를 문제 삼은 게 아니었는데도, 2001년 2월께부터 6개월 만에 통제를 받게 됐다. 개혁운동이 일반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자 위기를 느낀 것이다. 2001년 9월 진보 성향 정치인들이 체포된 뒤 시위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관제 반미시위뿐이었다. 개혁 기대를 저버린 첫 번째 ‘배신’이었다.
김한지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아사드 개인이 아무리 개혁적 성향이라도 가문과 군부, 집권 바트당을 통제해야 하는데 정치 초보자인 그가 아버지 세대의 원로들 사이에서 혼자 급격한 개혁·개방을 하기는 힘들었다. 신진 세력과 아버지 세대 원로 세력 간 충돌이 빚어지고 원로들을 통제하지 못한 채 타협하며 개혁 의지가 약화됐다”며 “집권 과정에서 자신의 숙부와 형제 등 정적과의 투쟁도 있었기 때문에 엄격한 독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장 없이 체포와 구금 가능시리아 개황
아사드의 리더십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70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를 이을 주자로 성장하던 형 바실이 1994년 교통사고로 숨지자 갑자기 후계자로 지목됐다. 당시 그는 28살로 안과 전문의가 되려고 영국 유학중이었다. 아사드는 귀국 뒤 첫 대권 수업으로 1994년 군대에 입대했다. 권력의 핵심인 군부의 신임을 얻고 군을 장악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는 1999년 공화국 수비대를 지휘하고 2000년 6월 최고군통수권자로 임명됐다. 그해 국민투표에서 97.3%를 얻어 대통령이 됐다. 34살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추진된 그의 대권 승계는 정치 엘리트의 세대 교체를 한꺼번에 이뤄 원로 세력을 내몰기에는 버거웠다. 2007년 대선에 단독 출마해 말 그대로 ‘믿기 어려운’ 97.6%의 득표로 재선됐다. 투표소 앞에는 ‘찬성란에 동그라미를 치면 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그는 종파적으로 소수파라는 한계도 안고 있다. 아사드는 시리아 전체 인구의 11% 수준밖에 안 되는 이슬람교 시아파 계열의 소수파인 알라위파다. 국민의 절대다수인 수니파와 주류 시아파 무슬림들은 알라위파가 이단이라고 여긴다. 오래전 시아파에서 갈라져나왔지만 이슬람교보다 오히려 기독교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배 방식이나 성인 숭배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분류돼 탄압을 받은 경험은 알라위파의 결속력을 높였다.
이런 40여 년에 걸친 대를 이은 세습독재를 떠받치는 게 바트 정당이다. 시리아의 건국이념인 아랍민족주의는 바트당의 이념에서 가져왔고, 1963년의 쿠데타도 바트당이 주도했다. 바트당은 시리아의 모든 기관과 이익집단을 장악한 최고 권력기관으로, 헌법이나 정부 행정기구보다 상위에 군림한다. 바트당 전당대회에서 추천을 받아야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바트당은 이슬람보다는 세속화된 아랍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국민 통합의 이데올로기도 제공했다. 소수 알라위파에 유리한 논리다.
바트당이 독재의 머리라면, 비밀경찰 ‘무카바라트’는 통제국가의 손발이다. 40년 넘는 세습독재를 지탱한 또 하나의 힘은 개도 마음대로 짖지 못한다는 철저한 감시와 통제다. 1963년 아민 알하페즈의 쿠데타 이후 실시된 비상사태법에 따라 시민을 영장 없이 체포하거나 재판 없이 가둘 수 있다.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잠깐 가실까요?’를 떠올리게 하는 공포정치다.
시리아 반정부 시위대가 3월25일 다마스쿠스에서 금요예배 뒤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AP
김한지 책임연구원은 “나이 및 직업과 상관없이 여럿이 모이거나 단체가 결성되는 것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인구 150명 가운데 한 명이 무카바라트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감시사회다. 이 때문에 ‘남이 웃을 때 같이 웃고 남이 박수 칠 때 같이 박수를 쳐라’는 말도 있다. 무카바라트는 사복경찰, 비밀 프락치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시리아에서 약 3년간 연구활동 등을 한 안정국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택시기사의 절반은 무카바라트라는 말이 있다. 어디에 어떻게 숨어들었는지 알 수 없어, 공공장소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거의 목숨을 내놓는 행위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정치 얘기는 절대 안 하는 두려움과 공포가 있다”며 “터키 등에서 분리운동을 하는 쿠르드족도 시리아에서는 시도조차 못한다. ‘여기는 다르다. 우리는 죽는다’고 말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도시 사이에 검문소가 많고 관광지 등에서도 감시가 이뤄진다. 언론 자유도 철저히 통제돼, 한국의 5공 시절 ‘땡전뉴스’처럼 아사드의 활동을 알린다. 국내 뉴스는 최소화되고 국제뉴스로 넘어간다. 일간지 등을 펴낼 때도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 2011년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한 경제자유화지수에서 시리아는 179개 나라 중 140위를 기록했다.
시리아에서 공포정치의 위협은 실제다. 1982년 하페즈 전 대통령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우는 무장정파 무슬림형제단의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하마시에서 2만~4만 명을 대학살했다. ‘하마 학살’이다. 1980년 당시 하페즈 대통령을 겨냥한 기관총과 수류탄 공격으로 경호원이 숨지고 대통령이 부상당한 뒤였다. 하마시는 무슬림형제단의 근거지였는데, 탱크가 진입해 도시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다. 탱크가 빠져나간 뒤에는 불도저가 들어와 주검을 묻어버렸다. 공포정치는 때로 미소를 가장한다.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아사드는 연예스타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평상복으로 아기를 안고 젊은 부인이 뒤에 서 있는 사진이 여가수 브로마이드와 나란히 길거리에서 팔린다. 안정국 교수는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는 자애로운 아버지, 좋은 친구라는 이미지를 계속 주입시키는 이미지 공작을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때부터 써먹던 ‘내 친구’라는 세뇌다.
두려움도 배고픔은 참지 못한다외부의 적은 언제나 내부의 불만을 돌리는 탁월한 수단이다. 중동의 공적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날 세우기다. 시리아는 1967년 ‘6일 전쟁’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에서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에 빼앗겼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넓은 땅이다. 아랍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진 시리아가 헤즈볼라, 하마스 등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를 후원해온 배경이다. 미국이 시리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하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까닭이다. 중동에서 이집트는 친미 정권이어서 미국에 굽실거린다는 비난을 받았다. 반면에 시리아는 중동의 대표적 반미국가여서, 독재는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 큰소리를 칠 수 있다는 이미지로 독재에 대한 반발을 누그려뜨렸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도 ‘우리는 이라크와 달리 미국에 쉽게 당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어떤 두려움도 배고픔은 참지 못한다. 시리아 경제는 2000년 중반 이후 석유 수출이 감소하고 재정적자는 늘어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며 국민의 불만이 커졌다. 물가 인상과 실업이 겹쳤다. 외국인 투자는 미국의 금수 조처와 국제적 고립 등으로 지지부진하다. 김한지 책임연구원은 “반정부 시위는 민주화 요구이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집권 2기에 국영기업 등이 민영화되고 자유경쟁이 늘어나 공식 실업률은 8~9%지만 실제로는 20% 가까이 되는 등 국민의 경제적 고통이 컸다”고 말했다. 안정국 교수는 “일반 노동자의 수입이 한 달에 200달러 정도다. 부업이라도 해야 겨우 먹고산다. 서민은 먹고살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다마스쿠스에 꽃피는 봄이 올까? 독재자 축출에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는 군부가 정권에 등을 돌리며 국면을 바꿔놨다. 하지만 시리아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 바트당이나 군부에 아사드 가문과 측근들이 요직을 움켜쥐고 아사드와 공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드 정권이 위협받는다면 제2의 하마 학살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아사드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최소 7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배신의 길 가는 아사드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아사드 정권은 3월29일 내각이 총사퇴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리아 관영 은 3월31일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고 이를 대체한 새 법안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돼, 4월25일까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아사드는 3월30일 의회 연설에서 반정부 시위가 음모라고 매도하면서도 “우리는 중동 지역에 긍정적 변화가 일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게 처음이 아니다는 게 문제다. 지금 아사드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두 번째 배신의 길로 가는 듯하다. 다마스쿠스에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당장 파면” 헌재에 목 놓아 외쳤다…절박해진 광장
‘K-엔비디아’ 꺼냈던 이재명, 유발 하라리에 “어떻게 생각하시냐”
[속보] 산청 산불 사망 4명으로 늘어…야간 진화작업 계속
“머스크 명백한 나치 경례…미친 짓” 연 끊은 자녀도 공개 직격
BTS 정국, 군복무 중 주식 84억 탈취 피해…“원상회복 조치”
나경원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뼈도 못 추릴 만큼 나라 망해”
한동훈 얼굴 깔고 ‘밟아밟아존’…국힘도 못 믿겠단 윤 지지자들
윤석열 30년 검찰동기 이성윤 “윤, 얼굴서 자신감 떨어져 ‘현타’ 온 듯”
“결국 김건희” “경호처가 사병이야?” 누리꾼 반발한 까닭
‘2개월새 2번 음주운전’ 신충식 인천시의원, 출석정지 30일 ‘솜방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