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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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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인티파다 오는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주거단지 건설은 당연한 조처”…
강경 이스라엘과 손 놓은 미국, 팔레스타인에 남은 것은 돌멩이뿐
등록 2010-04-02 17:03 수정 2020-05-03 04:26

‘인티파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일어선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을 뜻하는 말이다. 지난 1987년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가자지구 자발리아 난민캠프에서 시작된 조직적인 저항은 삽시간에 가자 전역을 거쳐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지역까지 들불로 번져갔다. 제1차 인티파다였다. 당시 이스라엘군의 탱크에 맞서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팔레스타인인의 고난을 세계인에게 알렸다. 이 기간에 약 1100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이스라엘군도 164명이나 숨졌다.

‘사로잡힌 저항, 가려진 분노.’ 지난 3월19일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 외곽 칼란디야 검문소 부근에서 투석전을 벌이던 팔레스타인 젊은이가 중무장한 이스라엘 경찰에게 체포돼 눈이 가려진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REUTERS/ MOHAMAD TOROKMAN

‘사로잡힌 저항, 가려진 분노.’ 지난 3월19일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 외곽 칼란디야 검문소 부근에서 투석전을 벌이던 팔레스타인 젊은이가 중무장한 이스라엘 경찰에게 체포돼 눈이 가려진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REUTERS/ MOHAMAD TOROKMAN

실탄에 맞고 주민 2명, 발포로 시위대 2명…

2000년 9월 말 시작된 제2차 인티파다는 흔히 ‘알아크사 인티파다’로 불린다. 8세기 무렵 유대인들이 ‘성전 산’이라 부르며 신성시하는 예루살렘 옛 도심에 세워진 알아크사 사원은 메카·메디나와 함께 이슬람에서도 ‘3대 성지’로 꼽고 있다. 그해 9월28일 극우파인 아리엘 샤론 전 총리가 중무장한 경찰을 대거 동원해 알아크사 부근을 둘러보고 간 뒤, 사그라지는가 싶던 저항의 불씨가 다시 지펴졌다. 2004년 11월 야세르 아라파트 전 자치정부 대통령이 숨을 거두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리기까지 제2차 인티파다는 4년여 계속됐다. 이 기간에 팔레스타인 주민 5500여 명이 숨을 거두고, 이스라엘 쪽에서도 1천 명가량 목숨을 잃었다.

지난 3월15일 알아크사 부근에서 또 한 차례 심상찮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 2002년부터 재건축 공사를 벌여온 후르바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재건축 봉헌식이 열린 게다. 시점도 고약했다.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새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요르단강 서안은 물론 동예루살렘 지역에서도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확대하고 있던 터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는 3월16일치에서 “동예루살렘 일대에서 하루 종일 격한 시위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며 “상공에선 군 헬리콥터가 선회하고,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전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동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시위는 요르단강 서안 일대로 번져갔다. 3월21일에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의 이스라엘군 검문소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2명이 실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날 오후 나블루스 시내에서 열린 집회에서도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시위대 2명이 숨을 거뒀다.

‘인티파다, 원천봉쇄.’ 팔레스타인 땅 동예루살렘의 옛 도심에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경찰이 순찰을 돌고 있다. REUTERS/ AMMAR AWAD

‘인티파다, 원천봉쇄.’ 팔레스타인 땅 동예루살렘의 옛 도심에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경찰이 순찰을 돌고 있다. REUTERS/ AMMAR AWAD

철저히 봉쇄된 가자지구에서도 심상찮은 조짐이 감지되면서, 이스라엘군도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3월21일 저녁 가자지구 남단 라파에서 무기 밀수 터널을 파괴한다면서 공습을 재개한 이스라엘군은 이튿날에도 가자지구 최대도시 가자시티 주택가에 미사일을 퍼부었다. 전날 가자지구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스라엘의 봉쇄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비난한 게 무색하기만 하다. 3월22일 밤 가자지구로 향하는 키수핌 검문서 인근에선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이스라엘 현지 방송 이 전했다.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된다면, 인티파다는 불가피하다.” 아랍권 일간 는 3월22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집행위원인 아메드 코레이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코레이는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결정에 따라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압제와 불의를 견디다 못한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지금과 같은 행태를 이어간다면 기어이 세 번째 인티파다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팔레스타인 내부는 극도의 분열상

‘과장’이라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10년 전 제2차 인티파다의 횃불이 타오를 무렵과 비슷한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시에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알아크사 사원 주변이 군홧발에 짓밟힌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당시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 정착촌 확대 건설에 몰입하고 있었다. 저항이 번져나갈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 있다는 얘기다.

물론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빼곡히 들어선 분리장벽과 검문소, 유대인 정착촌 사이를 잇는 도로 건설로 요르단강 서안 지역은 이미 ‘섬’이 돼버렸다. 가자지구는 철저히 가로막힌 채다. 동예루살렘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은 이스라엘군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게다가 장기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팔레스타인 경제는 아예 무너져내렸다. 장기적으로 조직적 저항을 이어가기엔 물적 토대가 지나치게 취약해진 채다.

팔레스타인 내부가 서안의 파타와 가자의 하마스로 갈려 극도의 분열상을 보이는 것도 앞선 두 차례 인티파다 때와 다른 점이다. 특히 오는 7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립은 더욱 증폭될 것이 뻔하다. 여기에 인티파다를 바라보는 두 진영의 시선도 사뭇 달라 보인다.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12월 “평화적인 집회와 비폭력 인티파다는 지지하지만, 서안 지역에서 무장 인티파다가 벌어진다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예루살렘에서 촉발된 시위의 물결이 서안으로 번진 지난 3월19일 마무드 하바시 자치정부 사회부 장관이 “소극적 저항”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하마스 진영에선 “철저히 봉쇄된 가자에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인티파다가 벌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예루살렘에서 촉발된 시위 사태는 요르단강 서안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안의 라말라 외곽 칼란디야 검문소 부근에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이스라엘군에 맞서 짱돌을 던지고 있다. REUTERS/ MOHAMAD TOROKMAN

동예루살렘에서 촉발된 시위 사태는 요르단강 서안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안의 라말라 외곽 칼란디야 검문소 부근에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이스라엘군에 맞서 짱돌을 던지고 있다. REUTERS/ MOHAMAD TOROKMAN

미국, 인권이사회의 결의에 반대표 던져

저항의 불씨는 이미 타오르기 시작했다. 최대 변수는 이번에도 미국이다. 미국의 대응 방식에 따라 조기에 불길을 잡을 수도, 되레 기름을 부어 활활 타오르게 만들 수도 있다. 최근 유대인 정착촌 확대 건설 문제를 두고 삐걱거리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전자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실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지난 3월23일 정상회담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행됐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회담 분위기는 꾸밈없고 직설적이었다”며 “두 정상이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날 회담에 앞서 두 정상은 사진 촬영도 하지 않았고, 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도 열지 않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후자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유는 자명하다. 아랍 위성방송 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3월24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하는 두 가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군이 저지른 ‘엄중한 인권침해’ 행태를 비판하며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가자지구 봉쇄를 즉각 풀라는 내용이었다. 인권이사회는 또 유대인 정착촌 확대 건설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두 가지 결의안 모두 “일방적으로 이스라엘만 비난하는 내용”이라며 반대표를 던졌다. 오랜 세월 되풀이해 보아온 바다. 앞선 두 차례 인티파다 때도 마찬가지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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