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010년의 단어는 ‘GGG’?

올해 글로벌 대전망… 무소불위 G8·신흥 경제대국 G20·중국 등 참여하는 G13 여러 차례 듣겠네
등록 2010-01-07 14:51 수정 2020-05-03 04:25

서기 2010년, 21세기 두 번째 10년의 시작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호모사피엔스’의 20만 년 역사상 가장 높은 인공 건축물, 지난 2004년 9월 착공한 아랍에미리트의 ‘부르즈 두바이’가 1월4일 완공식을 열고 160층의 위용을 드러낸다. 높이 818m의 부르즈 두바이는 95km 떨어진 거리에서도 건물 첨탑이 보인단다. 공사비만도 41억달러를 들였는데, 사무실 공간 1㎡의 가치만도 4만3천달러를 호가한다.

그럼에도 마냥 들뜬 분위기로 2010년을 맞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인류가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거석 기념물’의 완공을 앞두고 터져나온 금융위기가 ‘사막의 기적’을 한갓 신기루로 만들어놓았다. 오만한 욕망이 빚어낸 허장성세였던 게다. 완공을 코앞에 둔 부르즈 두바이는 그래서 ‘우리 시대의 바벱탑’으로 보인다.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위기의 전조

지난 2008년 9월 미국에서 시작된 지구촌 경제위기는 2009년 한 해 바닥을 친 느낌이다. 얼어붙었던 생산이 다시 늘기 시작했고, 강력한 공공지출로 경기도 살아나는 듯했다. 모두들 ‘출구전략’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따져볼 일이다. 상품으로 가득 찼던 창고가 비었으니, 공장을 돌리는 건 당연했다. 세금을 줄였고, 이자도 낮췄다. 여기에 예산마저 대거 풀렸으니, 시중에 돈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2009년 세계경제가 ‘반짝 회복세’를 보인 것도 이런 상황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니 맘을 놓을 때는 아닌 듯싶다.

기계가 계속 돌기 위해선 만들어낸 상품이 모조리 팔려나가야 한다. 부동산값 폭락이 남겨놓은 막대한 가계부채, 낮아진 소득수준, 높아만 가는 실업률 속에 소비가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정부도 마냥 지갑을 열 순 없다. 세금마저 낮아졌으니, 금고는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터다. 2010년 세계경제가 녹록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미국의 실업률도 이미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저개발국가의 사정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빈곤과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고, 중산층은 붕괴했다. 기름값과 식량값은 오르고 있다. 쌓여만 가는 재정적자는 각국 정부가 복지예산 축소의 명분으로 삼을 만하다. 설령 2010년에 지구촌 경제위기가 끝난다 해도, 고용이 늘어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게 상례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11월13일치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위기에 대한 반응이 정치적으로 촉발되기까지는 ‘시간 차’가 존재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위기의 전조다. 2009년 초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데니스 블레어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경제위기로 촉발된 (세계 각국의) 정치적 불안정이야말로 단기적으로 미국 안보에 가장 중대한 우려 사항”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9년 한 해 지구촌 시민들은 침묵 속에 고통을 감내했다. 이를 두고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지구촌의 상대적 안정은 폭풍 직전의 고요함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참으면 곪고, 곪으면 언제고 터지기 마련이다. 2010년이 ‘폭풍의 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11월 미국 중간선거, 하원 과반은 틀렸다

21세기 첫 ‘세계적 유행병’으로 기록될 신종 플루의 위세는 최근 다소 주춤한 모양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잇따라 내놓은 바 있다. 북반구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남반구에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게다. 플루 백신 접종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북반구의 겨울과 가난한 나라가 몰린 남반구의 겨울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미 WHO는 “백신 생산 능력을 하루아침에 획기적으로 늘릴 순 없다”며 “몇십억 명분의 플루 백신이 모자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들에 비해 남반구 국가들은 의료환경이 열악한 상태다. 플루가 창궐한다면 이를 방어·관리할 능력이 있을 리 없다. 부유한 나라에선 ‘통제 가능한 질병’이 가난한 나라에선 파국적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신종 플루는 지구촌의 현실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꺼림칙한 거울이다.

2009년의 끝자락에서 지구촌의 무력함을 여실히 보여준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를 떠올려보자. 기후변화도, 경제위기도 그리고 전염병도 지구적 차원의 대응을 요구한다. 그래서다. 2010년 한 해 지구촌을 상징하는 ‘G’로 시작되는 모임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가 참여한 ‘G8’은 부유한 개발국의 논리를 지구촌에 강요하려고만 했다. 누구도 위임하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G8은 지구촌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과 경제위기의 파국 속에 ‘G20’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 경제대국이 참여한 G20은 전세계 생산량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저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논의의 중심이 경제 문제에 국한돼 있는데다, 정상회담 때마다 20개 회원국 정상과 함께 아세안·세계은행 등 관련 국제기구 대표단까지 참여하면서 ‘미니 유엔총회’란 비아냥도 없지 않다. 벌써부터 기존 G8 국가에 중국·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멕시코 등을 참여시키는 ‘G13’을 대안으로 거론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지구촌의 산적한 현안은 언제나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문제로 귀결되는 게 현실이니, 차라리 이 두 나라를 ‘G2’로 묶어내자는 좀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까지 참여하는 ‘G3’을 추진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의 유럽이냐 거대한 박물관이냐

‘해 아래 새것은 없다’고 했던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10년 한 해 이 말을 절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노벨평화상까지 거머쥐었지만, 그를 당선시킨 지지층은 불과 1년 만에 사분오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시의 이라크’는 ‘오바마의 아프간’이 됐고, 야심차게 추진한 의료보험 개혁은 공공보험 등 핵심 개혁 방안이 빠져 용두사미 꼴이 됐다. 경제위기의 급한 불길은 잡았지만, 고용은 늘어날 기미조차 없다. 이미 1년이 흘러갔으니, ‘부시의 유산’만 탓하기도 어렵다. 취임 직후 70%대를 웃돌던 지지율도 집권 8개월여 만에 50% 이하로 추락했다.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몰라도 하원 과반 확보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영국에서는 ‘정권 교체’가 유력해 보인다. 오는 5월 총선을 앞두고 고든 브라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보수당에 15%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1997년 토니 블레어(당시 43살) 당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이른바 ‘제3의 길’ 돌풍을 일으키며 집권에 성공했던 노동당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보수당의 옛 실정에 대한 기억은 무뎌졌고, 노동당 정권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18년 보수당 정권을 몰아냈던 그 유권자들이 노동당의 13년 세월에 마침표를 찍을 기세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대표는 ‘보수의 토니 블레어’로 불리며, 차근차근 집권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경제, 하반기에 일본 추월할 듯

유럽연합에도 2010년은 격변의 해가 될 게다. 유럽의 ‘헌법’이라 할 리스본 조약이 올 초 공식 발효되기 때문이다. 27개 회원국이 ‘하나의 유럽’으로 목소리를 내게 될 텐데, 정작 문제는 세계가 그 목소리에 귀기울일지 여부다. 조약 발효 시점에서 유럽연합 순번 의장국이 된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는 “유럽연합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경제모델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사회적 연대’란 유럽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며 “이런 도전에 실패한다면, 유럽은 세계 무대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거대한 박물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09년 10월 건국 60주년을 기념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올해 새로운 갑자의 문을 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오늘의 중국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면, 오는 5월 개막되는 ‘경제 올림픽’ 상하이 엑스포는 미래의 중국을 세계에 자랑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초 독일을 제치고 지구촌 ‘제3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던 중국은 불과 1년여 만에 일본까지 따돌릴 기세다. 영국 일간 <데일리텔레그래프>는 2009년 12월29일치에서 “세계은행 등의 자료를 보면, 2009년 일본 경제는 6.6% 위축된 반면 중국 경제는 8% 이상 성장했다”며 “이에 따라 중국이 2010년 하반기 중에 일본을 추월해 ‘제2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폭풍처럼 질주하는 중국의 기세는 11월 광저우에서 열리는 제16차 아시안게임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게다.

2010년 5월 러시아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집권 10년’을 맞게 된다. 2000년 5월8일 취임해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2008년 5월7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튿날부터 ‘총리’로 직책을 바꿔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만연한 부패와 폭력, 무너져내리는 소비에트 시절의 인프라와 지나치게 원유에 의존한 채 휘청이는 경제에도 푸틴 총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그는 2012년 대선에 직접 출마할 수도 있음을 이미 내비친 바 있다.

‘노동자 대통령’의 전범을 보여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2010년을 끝으로 세계 무대에서 은퇴하게 된다. 집권 말기에 접어든 그의 지지율은 연일 상종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그럴 법하다. 10월 대선에서 당선될 그의 후임자는 8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진 국제적 위상과 호황을 구가하는 경제를 물려받게 될 터다. 현재까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건 브라질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상파울루주의 호세 세라 주지사와 지우바 호세프 대통령궁 비서실장이다.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정부에서 보건장관을 지낸 세라 주지사는 2002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룰라 대통령에게 석패한 경험이 있다. 반면 호세프 비서실장은 룰라 대통령이 사실상 공식 후계자로 지명한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공직에 밝고, 국정운영 경험도 풍부하다. 누가 당선되든 브라질의 정치·경제적 안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8월의 이라크, 홀로 설 수 있을까

이 밖에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잊혀지는 듯했던 이라크가 2010년 한 해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모아낼 것으로 보인다. 2003년 3월20일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의 침공과 점령이 벌써 7년째를 맞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8월 말부터 이라크 주둔 미 전투병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 말기에 미국과 이라크가 합의한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 2011년 말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 전원이 철수를 해야 한다. 오는 3월 치러지는 총선은 ‘미군 없는 이라크’의 홀로서기를 가늠해보는 시험무대가 될 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