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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다시 갈라파고스로 간다면

다윈 탄생 200주년, 174년 전 비글호가 닿은 ‘진화론 본적지’에 희귀식물 60%가 멸종 위기
등록 2009-02-13 15:57 수정 2020-05-03 04:25

1820년 5월 진수된 영국 해군 소속 측량선 비글호가 두 번째 임무 수행에 나선 것은 1831년 12월27일이다. 총연장 27.5m, 선폭 7.5m로 크지 않은 선체에 242t의 화물을 가득 싣고 기나긴 여정에 나섰다. 출항에 앞서 로버트 피츠로이 함장은 지리학에 조예가 깊은 자연학자가 여정을 함께하기를 원했다. 성직자가 되기 전에 열대지방을 직접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진 22살 젊은이가 자원하고 나섰다. 에든버러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적을 옮겨 지리학과 생물학에 몰두한 찰스 다윈이다.

‘갈라파고스, 멸종 위기?’ 지난해 9월15일 갈라파고스 군도 산타크루즈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희귀종인 자이언트 거북이를 바라보고 있다. REUTERS/ GUILLERMO GRANJA

‘갈라파고스, 멸종 위기?’ 지난해 9월15일 갈라파고스 군도 산타크루즈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희귀종인 자이언트 거북이를 바라보고 있다. REUTERS/ GUILLERMO GRANJA

다윈 이름 붙은 들쥐도 사라져

대서양을 건너간 비글호는 남아메리카 남쪽을 지나며 항로를 면밀히 조사했고, 타히티와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애초 2년 예정으로 항해에 나섰지만, 귀항하기까지는 모두 4년9개월여가 걸렸다. 선원들이 항로를 살피느라 해안을 오가는 사이, 다윈은 육지로 가 생태를 관찰했다. 항해 기간에 그가 뭍에서 보낸 기간은 3년3개월, 바다에서 보낸 기간은 18개월에 불과했을 정도란다. 비글호의 두 번째 항해가 (1859) 출간으로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1835년 9월15일 페루의 리마를 출발한 비글호는 에콰도르의 영토인 적도 인근 갈라파고스 군도에 도착했다. 대륙에서 970여km나 떨어진 그곳에는 제법 큰 섬이 13개, 작은 섬이 6개, 그리고 암초가 107개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생물 종의 독특함과 다양함이 다윈을 매료시켰다. 그해 10월20일 타히티를 향해 다시 바닷길에 나서기까지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목격한 온갖 희귀종들에 대해 촘촘히 기록했고, 이를 토대로 ‘자연선택 또는 생존경쟁에서 우월한 종의 보존’을 통해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 갈라파고스는 ‘진화론의 본적지’라 불릴 만하다.

다윈이 발을 내디딘 지 174년, 갈라파고스의 오늘은 어떨까?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일(2월12일)을 앞두고 영국 일간 는 지난 1월31일치에서 “진화론의 영감을 줬던 갈라파고스의 생태계가 외래종 유입과 관광객 급증 등으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갈라파고스 군도 일대에 서식하는 450개 생물 종 가운데 106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으며, 90종은 ‘취약종’으로 분류됐다는 게다.

“갈라파고스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식물 168종 가운데 약 6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곤충 490종과 무척추동물 53종이 외부에서 유입되면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10년 새에만 ‘다윈’이란 이름이 붙은 들쥐 1종을 포함해 모두 3종이 끝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신문은 조너선 러시 ‘갈라파고스보존신탁’(GCT) 홍보국장의 말을 따 “다윈이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갈라파고스의 종 다양성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라며 “외래종 유입과 관광·어로 활동 증가, 개발과 공해가 종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1991년 한 해 4만1천 명 수준이던 관광객은 한 해 16만여 명으로 4배 이상 늘었고, 상주 인구도 매년 4%씩 증가하면서 이미 4만여 명을 헤아린단다.

영국인 2명 중 한 명 진화론 믿지 않아

갈라파고스만 위협받고 있는 게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콤레스’가 지난 1월 말 영국 성인남여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진화론은 지구 생명체의 복잡성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며, 모종의 ‘설계자’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3명 중 1명은 “지난 1만 년 사이에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다”고 답했단다. 이를 두고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홈페이지(richarddawkins.net)에 올린 글에서 “영국인들의 과학적 무지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1882년 4월19일 다윈이 숨을 거뒀을 때, 영국 정부는 국장으로 위대한 과학자에 대한 예를 갖췄다. 19세기를 통틀어 영국에서 왕실 출신이 아닌 인물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진 것은 단 다섯 번뿐이다. 그가 태어난 지 2세기가 흐른 오늘, 그의 후손 2명 중 1명은 그의 이론을 믿지 않고 있다. 진화론의 ‘진화’는 계속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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