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쥐칭안(‘멜라민’을 뜻하는 중국어)이 대체 뭐야?”
어느 날 아침, 집으로 배달돼오는 신문을 습관적으로 펼쳐들었다. 앗! 근데 머리기사 제목에서부터 ‘콱’ 막힌다. 중국어를 배운 이래 처음 보는 단어다. 그래도 명색이 ‘중국물’ 먹은 지 어영부영 10년이 다 돼가는데 신문 머리기사 제목을 해독할 수 없다니…. 순간 무지막지한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중국에서 뭔가 중요한 사건이 터진 거 같은데…, 대체 이 싼쥐칭안은 뭔 뜻이란 말인가!’
다시 눈을 똑바로 내리깔고 신문을 보니, 대충 뭔 사건이 터졌는지 감은 잡힌다. ‘싼루사 분유에서 싼쥐칭안 다량 검출, 영아 1명 사망.’ 여전히 ‘싼쥐칭안’이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유명 분유회사인 싼루사 분유에서 뭔가 치명적인 성분이 검출됐다는 뜻일 게다. 옆에 있는 ‘중국인’ 남편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싼쥐칭안이 뭐야?” 하지만 난감해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그거… 응, 그거 그냥 싼쥐칭안이지 뭐야. 그걸 어떻게 설명해…, 나도 몰라!“
지난 9월21일 중국 안후이성 동부 허페이의 한 병원에서 멜라민에 오염된 분유 제품을 먹고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AFP PHOTO
중국어에 해박한 ‘중국인’ 남편도 모른다고 한다. “그냥 분유에 넣어서는 안 되는 독 성분 아니겠냐”라며, 나의 ‘무식한’ 짐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대답을 한다. 급기야 인터넷 중국어 사전을 검색해봤다. ‘싼쥐칭안=멜라민’이라고 나온다. “멜라민? 오! 이건 또 뭐야?”
캐러멜도 아니고 멜라민? 역시 한국어 배운 이래 처음 듣는 단어다. 물론 멜라민이 한국어는 아니지만 말이다. 너무 무식한 걸까. 다시 인터넷 백과사전을 뒤지니 이건 뭐 온통 모르는 화학 용어가 가득 나온다. 그냥 대충 간추리자면 멜라민은 공업용 화학약품이란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린다. 그러니까 중국 싼루사에서 이 멜라민이라는 공업용 화학약품을 유아들 분유에 마구마구 섞었다는 얘기다. 그 결과 유아 1명이 사망하고(발표 초기), 몇천 명의 아이들이 소변을 잘 못 보는 신장결석에 걸렸다는 ‘중대 뉴스’였던 게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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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에 멜라민을 섞었다는 얘기는 결국엔 ‘독’을 넣었다는 얘기와 똑같다. 순간 돌배기 아들 녀석이 어젯밤 기저귀에 오줌을 한 번도 안 쌌다는 생각이 난다. ‘헉, 혹시?’
이제 갓 돌을 넘긴 아들은 하루 세끼 꼬박 밥과 간식을 먹는 거 외에 분유도 하루 서너 차례를 먹어야 먹성이 차는 대단한 ‘먹돌이’다. 분유 1통이 일주일도 안 가 바닥이 난다. 석 달 정도 모유를 먹인 것 외에는 지금까지 쭉 분유로 키워왔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태어난 이후 몇 달 동안 아토피가 심해서 의사 권유로 소우유 대신 산양유를 먹여왔다. 하지만 그 산양분유가 외국산이 아니라 중국산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소우유든 양우유든 상관없이 바로 ‘중국산’ 분유를 먹였다는 데서 오는 공포였다. 물론 ‘뉴질랜드 전문가 처방’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분유통 전면에 쓰여 있지만 그건 눈속임일 뿐, 분명한 중국산이었다.
중국에서 조금 오래 살아본 경험상, 이런 사건이 터지면 대충 ‘감’ 잡는다.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일이라는 걸 말이다. 더군다나 ‘싼루’는 중국인들이 요즘 즐겨 쓰는 말로 ‘자랑스러운 민족 굴지의 기업’이 아니던가. 이런 대기업에서 분유에 멜라민을 섞었다면 다른 중소기업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싼루사 독분유 사건’ 파문은 며칠 뒤 중국 내 거의 모든 유명 분유회사, 유제품 회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무려 22개 업체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 이 22개 회사들은 중국에서는 대부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굴지의 기업들이다. 더군다나 확대 조사결과 멜라민은 분유뿐만이 아니라 우유 등 모든 유제품에 포함돼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보다 더 엄청난 사실들도 밝혀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 내 거의 모든 유가공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멜라민을 섞는 걸 암묵적인 ‘업계 관행’으로 여겨왔다는 것이다. 멜라민을 섞으면 우유나 분유의 단백질 함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싼루사는 그 양을 지나치게 많이 섞어서 ‘재수없게’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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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세 살이 된 우리 첫딸이 즐겨 먹던 중국산 우유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 그동안 하루에 1~2개는 꼭 먹였는데 말이다. 이럴 때 엄마 심정을 아는가? 돈 들여서 내 자식에게 공업용 화학약품이 섞인 우유를 하루에 1~2개씩, 그것도 아이가 먹기 싫어할 때도 “건강에 좋다”며 억지로 ‘먹였던’ 이 무지몽매한 엄마의 심정을 말이다. 살기 가득한 눈으로 ‘죽일 놈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중국 인터넷에서는 문제의 독분유를 먹인 부모들의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갖가지 사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6살 난 아들을 둔 한 중국 엄마의 사연을 읽다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현재 아들이 여섯 살인데, 세 살이 넘도록까지 ‘싼루표 분유’를 먹였다고 한다. 설마 국가에서 보증해준 대기업 분유에 무슨 하자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단다. 근데 아이가 커가면서 소변을 보는 게 어째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어쩔 땐 며칠을 못 쌀 때도 있었고 소변을 볼 때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큰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심각한 신장결석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왜 병에 걸리게 됐는지는 의사도, 부모도 아무도 몰랐다. 설마 3년 이상 먹은 분유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는 신장결석 중증에 걸릴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냐는 것이다.
그 중국 엄마는 절규하고 있었다. “그들(싼루사)은 6년 전에 생산한 분유는 제품에 하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우리 아들이 6년 전에 먹었던 분유는 가짜 싼루 분유였단 말인가. 그들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부는 그들의 거짓말을 도와주었다. 누가 우리 아들이 6년 전에 먹었던 분유의 진실을 밝혀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살인자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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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용 분유가 쌓여 있는 중국의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한 직원이 멜라민이 함유된 유제품 생산업체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XINHUA/ LI ZIHENG
이 엄마의 절규처럼 싼루사와 중국 정부의 거짓말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일은 지난 2004년 당시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중국 안후이성 푸양시의 ‘큰 머리 아기’의 주범도 싼루표 분유라는 것이다. ‘큰 머리 아기’ 사건이란 2004년에 푸양시에서 저질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머리가 기형적으로 커지고 뇌에 이상이 생긴 사건을 말한다. 그 아이들의 대부분은 싼루사 저질 분유를 먹었다고 하는데, 당시 싼루사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모방한 ‘가짜’라고 우겼다. 그리고 권력과의 뒷거래를 통해 무혐의로 판정받고, 심지어는 ‘국가 식품안전검사 면제기업’ 판정을 받기도 했다. 정부에 의해 ‘안전검사 체계 완벽 기업 1위’로 공인받은 이 회사가 4년 뒤 또다시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4년 전 푸양시 저질 분유도 실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싼루표 분유였다는 사실과, 권력과의 뒷거래 등 검은 내역들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분노에 치를 떠는 건 비단 싼루사만이 아니다. 올 3월에 문제가 터졌음에도 올림픽을 앞두고 쉬쉬한 정부와, 멜라민 기업들에 계속 ‘안전딱지’를 붙여준 부패한 관료들이 또 다른 분노의 대상이다. 한 중국인은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탄식을 남겼다. “당신(고위 관료)들의 자식들은 뭘 먹고 자랐어? 다 알고 있었지? 그래서 아마도 최고로 좋은 수입 분유를 먹였겠지. 백성의 아이들에게는 멜라민 독분유가 안전하다고 뻥치면서 말이야. 난 이제 정말로 중국에서 살기가 싫어!”
지난 9월21일. 남편과 함께 아들 분유를 사러갔다. 그동안 먹였던 ‘뉴질랜드 전문가 처방’ 중국산 산양분유는 모두 과감히 버렸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중국산’ 분유를 먹이지 않으리라고. 매장에 들어서니 난리가 났다.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은 손님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수입 분유를 구입하러 온 부모들이었다. 분유 코너를 보니 중국산 제품은 다 철거되고, 그 자리에 수입 분유가 채워져 있다. 하지만 수입 분유도 얼마 안 가 동이 날 태세다. 당장 나부터 상점 안에 남아 있는 뉴질랜드산 직수입 산양분유를 다 샀으니 말이다. 다행히 산양분유를 먹이는 부모들이 적어서 ‘독차지’가 가능했다. 가게 주인은 손님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서 아예 사재기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지금 전국적으로 수입 분유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어요. 있을 때 빨리 사놓으세요. 안 그러면 나중에는 물량이 달려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경우가 생긴다니까요. 나도 애를 키우지만 앞으로 누가 국산 분유를 먹이고 싶겠어요. 특정 브랜드는 진짜로 물량이 제한돼 있어서 더 구하기 힘들어질 거예요. 단골고객들에게는 특별히 주문 예약도 해드립니다.”
원정여행, 유모 구하기 전쟁…그 주인장 말이 맞는 것인지, 보도를 보니 중국 전역에서 어딜 가나 수입 분유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단다. 심지어 홍콩 근처에 사는 광저우·선전 주민들은 홍콩으로 수입 분유를 사러 원정 여행을 가기도 하고,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는 유모 구하기 전쟁이 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제 막 6개월째에 접어든 딸을 둔 한 중국 친구는 심지어 잘나가는 고임금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까지 하고 있단다. 그는 현재 회사에서 주는 반년간의 출산휴가가 거의 끝나가는 상태라 이후에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일 생각이었지만, 이번 사건 이후 생각을 바꾸게 됐다. “중국산 분유든 수입 분유든 이젠 무서워서 애한테 못 먹이겠어. 유모를 구한다고 해도 그 사람 몸을 어떻게 믿어. 내 젖 외에는 아무것도 못 믿겠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우리 딸이 근 1년을 먹은 ‘멜라민 우유’는 누가 보상을 해주나?
베이징(중국)=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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