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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수하르토여 쾌유하라

등록 2008-01-25 00:00 수정 2020-05-03 04:25

인도네시아 독재자를 보는 두 가지 시선, 개발 독재를 그리워하거나 범죄 책임을 지기를 빌거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람은 죽는다. 독재자도 사람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대도,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더러는 수하의 총탄에 맞아 비명에 가기도 하고, 더러는 마지못해 권력을 내놓은 뒤 훔친 재산으로 호사를 누리다 가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의 은퇴한 독재자 수하르토는 후자에 속한다.

일부 장기 기능이 정지된 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목숨을 부지하던 여든여섯의 수하르토가 다시 위기를 넘긴 모양새다. 는 1월17일 인터넷판에서 의료진의 말을 따 “수하르토의 심장과 폐 기능이 아직 불안정하긴 해도, 의식을 회복하고 패혈증 가능성이 낮아져 호흡기를 순차적으로 떼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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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선포하며 잡은 권력 32년간 누려

지난 1월4일 여든여섯의 수하르토가 위중한 상태로 자카르타 남부 페르타미나 병원에 입원한 이후, 인도네시아 언론은 병원 표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이제는 늙고 병든 초라한 모습의 독재자와 그를 치켜세우는 노회한 정치꾼들뿐이다. 독재와 부패, 학살과 인권유린의 과거는 어느새 잊혀진 듯하다.

수하르토는 1921년 6월8일 네덜란드의 식민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네덜란드군이 운영하는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이윽고 일본군의 위세 앞에 네덜란드군이 무릎을 꿇었고, 수하르토는 점령군의 편에 서 일본 경찰에 투신한다.

경찰에서 정보 업무를 다루던 그는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일본군 잔당 소탕작전으로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네덜란드군이 돌아오면서 마찰이 빚어졌고, 그는 삽시간에 ‘독립군’으로 변신했다. 네덜란드는 1949년 12월에야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했다.

독립된 나라의 군부에서 잇따른 부패 의혹에도 수하르토는 승승장구했다. 이 무렵부터 인도네시아 군부는 서서히 좌우 분열의 조짐을 보였고, 수하르토는 우파 군부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을 계속해갔다. 격화하던 군부 내 좌우 대립은 1965년 절정에 이르렀고, 쿠데타 음모와 권력 암투가 난무하는 사이 수하르토는 육군 참모총장직에 오르며 권력에 한발 더 다가섰다.

그리고 1966년 3월11일 정치적 위기에 몰린 독립 영웅 수카르노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권력 대부분을 수하르토에게 이양한다. ‘새 질서’를 내세운 수하르토는 발빠르게 권력 장악에 나섰고, 이듬해 3월12일 우파 군부가 장악한 임시의회는 수카르노의 모든 권력을 박탈하고 수하르토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한다. 수하르토가 권력을 장악하는 이런 과정에서 적어도 30만~100만 명이 ‘빨갱이’로 몰려 살육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 3월21일 수하르토는 마침내 5년 임기의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철권통치의 시작이었다.

여러모로 한국과 닮았네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의 여파 속에 일곱 번째 대선에 도전했다가, 광범위한 민중적 저항에 몰려 1998년 5월21일 사임하기까지 그는 물경 32년 동안 세계 4위 인구 대국을 지배했다. 그의 집권기 동안 인도네시아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에 달했고, 같은 기간 빈곤선 이하 인구는 전체 인구의 60%에서 11%로 줄었다. 군홧발 아래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누리던 시기다. 수하르토가 입원한 병원으로 몰려와 ‘개발의 아버지’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그의 쾌유를 비는 또 다른 부류도 있다. 〈AP통신〉은 1월16일 “자바 동부 젬베르 지역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이 수하르토의 사진을 불태우며, 과거 범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날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의 말을 따 “수하르토가 빨리 회복돼 법적 책임을 다하게 되기 바란다”고 전했다.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수하르토는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져가며, 용케 역사적 단죄를 피해왔다. 지난 1999년 5월 시사주간지 은 수하르토 일가가 현금과 주식·부동산 등의 형태로 보유한 자금이 150억달러(약 14조193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도 지난 2004년 수하르토 일가가 집권 기간에 착복한 돈이 150억~35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추정치를 내놨다.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는 여러모로 한국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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