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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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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원주민, 땅주인이 되던 날

등록 2007-02-09 00:00 수정 2020-05-03 04:24

고지대 마을 요욜타는 수백ha 국유지를 공동체 소유로 인정받고 ‘최고로 기쁜 날’…한편에선 모랄레스 토지개혁 공약에 대한 반대가 커지면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 오루로(볼리비아)=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willofangel@netscape.net

하영식의 남미기행 ⑧

광부들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던 와누니 사태 취재를 위해 온 적이 있기 때문에 오루로는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토지개혁공사(INRA·이하 토개공)에서 나온 사람들과 만나 함께 시골 마을로 갈 예정이었다. 정류장 내부는 버스 회사마다 설치한 매표소에서 승객들을 끌기 위해 행선지를 요란스럽게 외쳐대는 바람에 꽤나 소란스러웠다.

토개공에서 나온 사람들이 도착한 뒤, 이들의 지프를 타고 함께 시골 마을로 들어갔다. 지프는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가로질러 나갔다. 달리는 바퀴에 자갈들이 튕기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땅은 농사짓기에는 부적합한 자갈밭이 대부분이었다. 거의 반시간을 지나서야 고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요욜타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인근에 흩어져 사는 70명 정도의 농부들이 모두 모여 우리 일행을 맞아줬다. 원주민 농부들의 갈색 피부에는 강한 태양과 세찬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왔던 고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각인돼 있었다.

박수 소리,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서 토지 분배를 위한 간단한 행사가 진행됐다. 마을 인근의 국유지 수백ha를 토개공이 공동체 소유로 인정하는 증명서를 내줬다. 인근 공동체 대표들에게 증명서가 하나하나 건네지자 농부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졌고, 기쁨에 겨워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비록 바위투성이의 비옥하지 않은 땅이지만, 원주민들로선 생전 처음으로 땅을 소유하는 순간이었다.

“공동체가 시작된 이래 최고로 기쁜 날”이라고 행사에 참석한 한 농부가 말했다. 토지 증여식이 끝나자, 미리 조직된 악대가 피리와 북을 연주했고 원주민들은 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토개공에서 나온 일꾼들도 흥이 났던지 마을 사람들과 뒤엉켜 춤을 추기도 했다. 행사는 흥겹게 막을 내렸다.

토개공의 일꾼들은 다시 인근의 다른 마을로 움직였다. 이곳의 사람들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모두 원주민들로 이뤄져 있었다.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농지개혁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토개공의 대표 후안 카를로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농지개혁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한 뒤 농민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열어 의문을 풀어줬다. 이어서 마을에 수백ha의 농지를 수여하는 증명서를 전달했다.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수천 년을 살아온 볼리비아의 원주민들은 500년 전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들에 의해 땅을 잃고 노예로 전락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금과 은을 보유한 광산을 개발하고 대토지를 경작해왔다. 즉, 유럽의 백인들은 광산주나 대지주로 변신해 사회에서 상류층을 형성했고 원주민들은 단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 상태로 살아왔다. 180년 전 볼리비아가 스페인에서 독립했지만 원주민들의 사회적 지위나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볼리비아는 수없이 되풀이된 군사 쿠데타와 각종 정치적 격변을 겪었지만 원주민들의 가난은 그대로 대물림돼왔다.

토지개혁을 위한 20일간의 대장정

볼리비아인들은 누구나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원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농지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농지개혁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선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농지개혁이 언제나 정치적으로 이용당해왔던 탓이다. 볼리비아 농지개혁의 역사는 1953년의 혁명 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에는 인구의 6%가 전체 농지의 93%를 독점하고 있었다.

1953년 농지개혁은 농지소유 불균형을 어느 정도 완화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농지개혁 뒤 정권이 바뀌고 다시 자본주의적 농업정책으로 회귀하면서 분배됐던 농지는 다시 소수의 대지주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비옥한 토양을 갖춘 산타크루스를 중심으로 한 동부 지역 저지대에 위치한 대부분의 농지는 다시 소수의 손에 집중되기 시작했고, 고지대의 농지들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광산과 석유, 천연가스가 개발되면서 농촌 지역 원주민들의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원주민들은 토지를 떠났다.

지난해 1월 볼리비아 사상 최초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에보 모랄레스 정부의 출현은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을 기대에 들뜨게 만들었다.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이라는 정치단체를 기반으로 출범한 모랄레스 정부는 △농지개혁 △천연자원 국유화 △헌법 개정 등 가히 혁명적인 공약을 내세우면서 당선됐다. 하지만 개혁은 농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느리게 진행됐다.

집권 이후 거의 열 달 동안 모랄레스 정부가 제안한 농지개혁이 의회에서 아무런 성과 없는 논쟁만으로 시간을 허비하자 농민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28일 자정께 토지개혁법 통과를 요구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수도 라파스를 향해 20일간의 대장정을 벌였던 수천 명의 원주민 농민들이 대통령궁이 위치한 무릴리오 광장에 도착했다. 이들 앞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농지개혁법에 서명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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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맞서 대지주들과 야당은 거세게 저항했다. 11월 말에는 토지개혁과 개헌 문제에 반대해 산타크루스·라파스·코차밤바 등 6개 대도시 시장들이 중앙정부와의 협력 체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시장은 2005년 12월 최초로 직선제로 선출돼 주로 중·상류층과 기업가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4개 대도시(타리하·코차밤바·산타크루스·베니)의 시장들은 지난해 12월1일 24시간 총파업을 선언했고, 토지개혁법에 반대해 1천 명 이상의 야권 인사들이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 불씨 된 ‘71조’ 변칙 통과

볼리비아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또 다른 사안은 개헌 문제이다. 지난해 8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들은 헌법 개정을 위한 의회를 구성해 협상해왔지만 지금까지 논쟁만 벌이고 있다. 기존 헌법은 각 조항을 바꾸는 데 제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개헌을 추진하는 모랄레스 정권의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은 지난 선거에서 확보한 의석이 절반을 조금 넘는 54%에 불과하다. 일부 야권의 지지를 끌어낸다 해도, 개헌 정족수를 채우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17일 여당 의원들은 ‘71조’로 불리는 법률을 변칙적으로 통과시켰다. “각 헌법 조항은 다수결에 의해 개정될 수 있으며, 전체 헌법은 의회 전체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통해서 통과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경우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는 규정도 포함시켰다. ‘71조’는 야당의 즉각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헌법 조항마다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함을 재확인하면서 “3분의 2 문제는 우리로서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셈이다.

새해 들어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전개됐다. 지난 1월8일 볼리비아의 2대 도시인 코차밤바에서 모랄레스 정부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2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코차밤바의 시장이 ‘자치지역’를 위한 2차 투표를 발의하면서 충돌이 폭발했다. 이미 한 차례 부결된 것을 시장이 직권으로 다시 표결에 부치면서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탓이다. 1월 들어 시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청 앞 코차밤바 중앙광장에 인근 농촌과 산악 지역, 코카 재배 지역에서 수천 명의 원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빌라 시장 퇴진과 개헌 3분의 2 반대’를 요구하면서 광장에 텐트를 설치해놓고 숙식까지 하면서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

1월8일 다른 지역에서 모여든 여당 지지자들이 합류하면서 시위대는 수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은 시청을 향해 행진했다. 시청에 이르자 경찰들은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에서 2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치면서, 시위는 급속히 폭력화했고 온 도시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청 정문이 불태워졌고, 시가지는 화염과 연기로 뒤덮여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이어 방망이와 장대로 무장한 야당 지지자들과 원주민들의 충돌로 며칠간 코차밤바는 무법천지가 돼버렸다. 결국 안정을 되찾긴 했지만, 긴장의 불씨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다.

제2의 코차밤바냐, 지지층 이탈이냐

1년 전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등장한 모랄레스 정부는 현재 좌파와 우파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좌파 진영에선 모랄레스 정부의 느린 개혁 속도에 끊임없는 비판을 가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반면 우파는 모랄레스 정부의 개혁 정책에 극도의 반감을 표시하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농업과 공업의 중심지인 산타크루스를 중심으로 한 동부 지역에서는 80% 이상이 모랄레스 정부를 반대하고 있고, 심지어 볼리비아에서 독립해 나가기를 원하는 극단적인 세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단 없는 개혁은 기득권층을 자극해 제2의 코차밤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개혁의 속도를 늦춘다면 지지층의 이탈로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모랄레스 정권의 고민이 깊어만 간다.



“개혁 대상은 미개발 토지”

후안 카를로스 토지개혁공사 대표 인터뷰



볼리비아가 안고 있는 개혁 과제 중 가장 중요한 사안을 꼽으라면 단연 토지 분배 문제를 들 수 있다. 지난해 1월 말에 들어선 모랄레스 정권은 볼리비아의 토지개혁을 첫 번째 정책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볼리비아의 토지개혁의 진척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토지 분배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후안 카를로스(47) 토지개혁공사 대표를 만났다. 그는 13년간 산악 지대와 농촌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며 이들과 함께 생활한 농민운동가 출신이다.

1953년에도 토지개혁이 실시됐지만, 원주민들의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토지개혁이 현재 볼리비아에서 최대 현안인 이유는 실제로 땅을 개간하고 생산하는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무산계급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토지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토지 재분배의 첫 번째 대상은 고지대에 사는 원주민들로, 토지를 소유하지 않거나 충분하게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토지 재분배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분배되기 때문에 개인에게 매매·양도할 수 없도록 법을 만들고 있다.
농촌이나 산악 지역 대부분에 도로·전기·수도 시설조차 없는 상태다.
=토지 분배 문제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대부분의 농촌 지역이 사회기반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지역 사정에 따라 지원계획도 수립했고, 각급 행정기관의 협조를 받아 문제를 해결해나갈 생각이다. 토지 재분배의 목표도 기본적으로 농민들의 가난을 몰아내자는 건데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동부의 대도시 산타크루스 인근에서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일본인 지주들이 토지개혁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인들이 건설한 농업 지역을 우리는 ‘오키나와’라고 부른다. 그들의 성공적 농업경영에 항상 존경을 표시해왔다.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농지개혁은 일본인들이 경작하고 있는 농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혀둔다. 개혁 대상으로 삼고 있는 토지들은 대부분 볼리비아인들과 브라질인들이 소유한 것으로서 전혀 개발되지 않고 생산물이 없는 토지들이다. 이들 토지는 모두 몰수된 뒤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농민들에게 재분배될 것이다.
토지 분배에 반대하는 지주들에겐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누구나 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 지주들도 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유일한 길이다. 현재 지주들이 많은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지주는 순순히 농지개혁을 지지하지만 어떤 지주들은 농지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만약에 지주들이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공권력을 사용할 것이다.
농지 재분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뭔가?
=지주들의 반대로 공권력이 사용되는 경우일 게다. 농지개혁은 볼리비아의 모든 민중, 모든 농민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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