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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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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요, 살아가세요

등록 2006-12-14 00:00 수정 2020-05-03 04:24

동대문운동장 ‘벼룩풍물시장’의 겨울은 왜 불안함으로 술렁이는가…청계천에서 쫓겨온 상인들, ‘디자인 콤플렉스’ 건설로 또 쫓겨날 처지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은 만물상이다. 뭐든지 다 판다. 생활용품, 골동품에서 세계적인 명품까지 다른 곳에서는 보기도 힘든 물건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성인용품도.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다. 거저 가져가는 정도의 싼 것부터 대부분 3만~4만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것들이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도 느낄 수 있다. 세련된 맛은 없지만 정겨움과 서민의 향기가 느껴진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평일에도 주말 같지는 않지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불경기로 사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이가 더 많다. 가정용 공구를 파는 여든의 도씨 할머니는 “하루에 2만, 3만원만 팔면 되는데 그것도 힘들어. 다들 주머니가 가벼워서 그런 걸 누굴 탓할 거야”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은 2003년에 생겨났다. 2002년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공사를 이유로 청계천과 황학동 일대 노점상들을 강제 철거했고, 노점상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에 ‘풍물벼룩시장’을 만들어 청계천 일대 노점상들을 수용해 900여 개의 점포가 이곳에 자리잡았다. 원래 운동장이니 눈과 비를 막을 지붕도, 전기도 없었지만 상인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전기도 놓고 지붕도 올려 삶의 터전을 세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물시장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서울시는 별 대안 없이 동대문운동장을 없애고 ‘디자인 콤플렉스’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수십 년 동안 거리에서 생계를 유지해온 노점상들이 두 번이나 서울시의 개발계획에 쫓겨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상인들은 계획 철회를 요청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은 한시적인 것”이라는 답변뿐이다.

한해의 끝으로 치닫는 겨울. 동대문 풍물시장 사람들은 추위와 불경기, 시장 존폐의 위기라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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