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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인생의 전쟁은 어디로 가나

등록 2007-01-06 00:00 수정 2020-05-03 04:24

지난해 10월 국영회사와 협력업체 간 유혈사태 벌어진 와누니 주석광산회사 르포…“합의 도출 뒤 정부와 협상”이란 정부 방침에 협력업체는 “전면적인고용” 요구

▣ 와누니(볼리비아)=하영식 전문위원 willofangels@yahoo.co.kr

하영식의 남미기행 ⑥

아침 7시, 와누니 주석광산회사 출입문 옆의 게시판 앞에는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광부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바로 그 옆에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병사들이 굳게 닫힌 정문 주위에 포진하고 있어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인 ‘막장 인생’이라 자괴하면서도, 막상 일자리 문제로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대학입시를 치른 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수험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고된 ‘가장 잔인한 이틀’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서 빠진 사람들은 긴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품어내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막장 인생 11년째라는 미겔(27)은 기가 죽어 있었다. 그는 “열여섯 살 때 막장에 발을 들여놓은 뒤 이렇게 힘든 날을 겪기는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업자가 된 그는 이제 다른 지역의 광산으로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그와 함께 있던 동료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이렇게 가다가는 (와누니 사태가) 한 번 더 일어난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와누니 사태’가 재발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와누니는 2005년 12월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래 ‘가장 잔인한 이틀’을 보냈던 주석 광산이 위치한 곳으로, 수도인 라파스에서 300km가량 떨어져 있다. 지난 10월5일과 6일, 와누니의 주석 광산이 위치한 포소코니 언덕에선 두 ‘경쟁그룹’의 광부들이 무력 충돌을 벌여 16명이 숨지고, 81명이 중상을 입었다. 광산에 직접 고용된 월급쟁이 광부들과 계약직 개념에 가까운 ‘협력업체’ 도급 광부들이 총과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한 채 충돌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광부들과 만난 뒤 회사로 발길을 옮겼다. 사장은 나를 한 직원에게 인계했고, 그는 작업복과 헬멧을 건넸다. 광부 차림으로 회사가 위치한 저지대에서 주석 광산이 위치한 산을 향해 승강기가 올라가자 와누니 전체가 눈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광산터널 입구에는 해발 3950m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채굴된 주석이 함유된 돌덩어리들이 운반 벨트에 실려 분쇄 기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와누니에 살고 있는 인디오 출신의 여성들이었다.

회사에서 나온 광부 한 사람과 함께 광산터널의 입구로 들어갔다. 안내하던 광부는 이미 3대에 걸쳐 와누니에서 광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의 아들도 지금 광산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 앞으로 광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잠시 뒤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로 들어갔다. 전등불이 군데군데 설치돼 있었지만 여전히 어둠을 차단하진 못했고, 곳곳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내려가면서 만난 광부들은 갱의 벽면과 바닥에서 새어나오는 물을 처리하기 위한 수로를 만들고 있었다. 삽으로 진흙을 퍼내는 작업을 하며 땀을 훔치는 모습에서 작업이 쉽지는 않은 듯 보였다. 입구에서 500m 정도 내려가자 수십 개의 촛불을 밝힌 곳이 나왔다. 광산신의 상을 모신 제단이었다. 가톨릭 국가인 볼리비아지만 광부들에게는 특별히 광산에서 생명을 보호해주는 자신들만의 신이 더 절실했던 모양이다.

같은 병실에서 ‘적과의 동침’

아래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기온이 올라갔고 광부들은 모두 소매를 걷어붙인 모습이었다. “지금은 노동 조건이 많이 좋아져 하루에 3교대 8시간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2교대 12시간 작업을 했다”고 안내하던 광부가 아는 체를 했다.거의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내려갔다가 되돌아나왔다. 광부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모두 코카잎을 씹고 있었다. 한 광부는 내게 코카잎을 한주먹 쥐어주기도 했다.

광산을 나와 와누니 시내로 내려갔다. 광장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집회를 벌이면서 광부들에게 평화를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 유혈 사태로 목숨을 잃은 광부들을 위한 추모시가 낭송되고 가톨릭 교구 신부의 기도가 진행될 때는 곳곳에서 울려나오는 흐느낌이 광장을 지배했다.

당시 충돌로 인한 부상자들 중 중상을 입은 몇 명은 여전히 라파스의 병원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들을 찾아나섰다. 병원의 사무국에선 와누니 출신 환자들이 언론과 접촉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병원 사무국장은 “이미 치료를 마치고 모두 퇴원한 상태”라고 말했지만, 건네받은 환자 명단을 들고서 직접 각 층을 돌며 환자를 찾아나섰다. 30여 분 만에 와누니 사태로 입원한 환자 2명을 찾아냈다. 한 명은 국영회사 소속, 다른 한 명은 협력업체 소속의 광부인데 공교롭게도 같은 병실에 누워 있었다.

협력업체 소속인 루벤 마르티네즈의 상태는 심각했다. 총알이 신장을 뚫은 상태로 거동조차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국영회사 소속 조니 리베라티토는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날아온 파편에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적의도 느낄 수 없었다. 19살 마르티네즈는 이미 14살 때부터 막장 인생을 시작해, 벌써 6년의 경력을 쌓았다고 밝혔다. 총상을 입은 경위를 묻자 “당시 군경 쪽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의식을 잃었는데 하루가 지나서야 깨어났다. 당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죽는 줄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라파스의 이 병원으로 옮겨져 몇 차례 수술을 했지만 아직도 수술을 더 해야 한다. 조니(24)는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 곳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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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소코니에서 생산되는 주석은 전 볼리비아 주석 생산량의 절반이 되며, 전세계 주석 생산량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0년 이상 이곳에서 주석이 생산됐고 앞으로도 수십 년간은 주석이 지속적으로 생산될 전망이다. 이곳에는 1천 명의 월급쟁이 광부들과 4천 명의 (협력업체) 계약직 광부들이 일하고 있다. 계약직 광부들은 주석을 캐는 양만큼 일당을 받는 도급제로 월급쟁이 광부들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영화 뒤 영국 회사의 사기행각

와누니 광산의 광부들이 국영 광산회사 소속 광부들과 계약직인 협력업체 소속으로 나뉘게 된 것은 1952년의 국유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볼리비아 최초의 좌파 정권인 에스텐소로 정권은 주석 광산들을 모두 국유화했고, 광산을 관할하는 국영회사인 ‘코미볼’(볼리비아 국영 광산회사)을 설립했다. 그 뒤 1985년에 들어선 우파 정권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력으로 모든 광산회사를 민영화했고,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국영회사 광부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90년대 들어 세계 시장에서 주석 가격이 폭등하면서 광산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200명에 불과하던 협력업체 소속 광부 수는 급격하게 늘어 4천 명에 육박하게 됐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와누니 일대 광산들은 대부분 투자 유치를 명분으로 한 영국 업체에 헐값에 매각됐다. 그러나 영국 회사는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2년 뒤에는 부도 처리됐다.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부정한 방법을 통해 광산을 헐값에 매입한 뒤, 이를 근거로 엄청난 사기 행각을 벌여 부도를 내고 도피해버린 것이다. 그 뒤 코미볼은 법적 투쟁을 통해 광산 전체의 소유권을 다시 이전받았다. 하지만 영국 업체와 일해왔던 협력업체 광부들은 자신들에게 광산의 소유권이 이전되기를 기대하고 법적 투쟁을 해왔다. 소유권이 국영회사로 넘어가게 되자 코미볼의 협력업체 광부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절박감에서 ‘D-데이’만을 기다려왔다.

10월5일, 불만이 쌓여왔던 협력업체 소속 광부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이들은 광산이 있는 곳으로 몰려가서 광산 점령을 시도했고, 국영회사 소속 광부들은 볼리비아 정부에서 급파된 군경과 함께 이에 맞서기 시작했다. 서로 총과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협력업체 소속 엘로이 파체스(31)는 “와누니의 유혈 사태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했다. 이미 9월부터 양쪽 광부들은 여러 차례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정부의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부 쪽에선 “합의 도출 뒤 정부와 협상”이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양쪽 진영 대표들은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론 없이 끝났고,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양쪽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광산을 독차지하려 했고, 결국 무력으로 광산을 점령하려는 시도로 이어지면서 유혈 사태를 불러왔다.

모랄레스 정부의 가장 큰 도전

와누니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모랄레스 대통령은 광산금속자원부 장관을 파면하고 새 장관을 임명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정부의 늑장 대응이 이번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와누니 사태는 지난해 1월 개혁을 표방하고 들어선 모랄레스 정부가 맞이한 가장 큰 도전인 셈이다. 라파스에서 만난 전국협력업체광부연합 파스칼 로메로 의장과 와누니 현지 대표들은 입을 모아 “전면적인 고용”을 강조했다.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고용이 제2의 와누니 사태를 방지하는 대책”이라는 게다.



[인터뷰 / 에차주 광물금속자원부 차관 ]


“광부들끼리 먼저 해결하라”

고용 확대 위해 광산 개발 계획

가난한 나라의 좌파 정권에는 제약이 많다. 와누니 탄광에서 ‘막장 인생’들이 충돌을 벌인 이유는 결국 고용 불안 문제였다. 하지만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에겐 전체 광부들의 고용을 안정시킬 재원이 없다. 루이스 에차주 광물금속자원부 차관을 만나 볼리비아 정부의 고민을 들어봤다.



와누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뭔가.
=우선 와누니 사태의 해결책은 정부가 아니라 광부들 사이에서 나와야 한다고 본다. 광부들이 서로 화해하고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와누니 광산은 하나의 기업으로 통합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에서는 코미볼(볼리비아 국영광산회사)을 중심으로 모든 와누니의 광부들을 구제한다는 입장이다.
국유화 과정에서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와누니의 광산은 이전엔 영국 회사였지만 지금은 코미볼의 자산이 됐다. 사실 이것을 국유화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쨌든 이전의 협력업체 소속 광부들을 모두 코미볼로 흡수하는 것이 우리 정책이다.
다른 광산들도 모두 국유화될 예정인가.
=우선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광산을 소유한 의원들이 많고 이와 연관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의원들이 있다. 이들의 반대로 인해 계속 국유화 문제가 지연되고 있다.
정부가 사전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있다.
=5년 전부터 이런 일이 감지됐다. 물론 협력업체 광부들이 코미볼을 점령하려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사태를 불러온 외부적 원인으로는 주석 가격의 급등을 들 수 있다. 주석 가격이 오르자 협력업체 쪽에서 와누니의 모든 주석을 독차지하기 위해 일을 일으켰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유혈 사태가 일어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정부가 나서는 것도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앞으로 대책이 있다면.
=현재 계속 협력업체 쪽의 광부들을 고용하고 특히 이들의 고용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와누니 지역에서 더 많은 광산들을 개발하려는 계획이 있다. 또한 월급쟁이 광부들과 협력업체 소속 광부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1천만달러를 투자해 향후 15년 동안 매년 350만달러의 이윤을 남길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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