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 ‘삥땅’ 정보는 누가 흘렸나

등록 2005-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2월 말 이상 한파가 프랑스 전역을 강타한 사이 주택 관련 기사들이 프랑스 언론 지면을 꽉 메웠다. 정부 예산을 관리하는 프랑스 재무장관의 호화 아파트 보유와 이와 관련된 스캔들이 민심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프랑스에선 흔한 스캔들

주택 스캔들로 2월25일 퇴임한 문제의 에르베 게마르(44) 재무장관은 지난해 11월에 부임했다. 불과 3개월의 짧은 그의 재임 기간은 오늘날 프랑스의 정치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게마르는 프랑스 남동부 지역 출신으로 검소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때 농업부 장관을 지내면서 시라크(72)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점차 확장되는 유럽연합에서 프랑스 농민들의 이익을 호소하며 분투했던 시라크 진영을 대표하는 젊은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아버지가 구두 수선공이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8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게마르는 ‘서민층과 가까운 정부’의 이미지를 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의 호화 아파트 보유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IMAGE1%%]

2월 중순 프랑스의 비판적 시사주간지인 <카나르 앙셰네>는 대문짝만 한 기사를 실었다. “재무장관 게마르, 식구들과 파리 8구에 600㎡(180여평)의 2층으로 된 아파트에 월세 1만4천유로(1800여만원)를 국고로 지출하다. 8구는 샹젤리제 근처로 가장 호화롭게 칠갑을 한 아파트로 유명하다.” 이 기사는 다른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 쓰면서 전염병처럼 퍼져갔다. 게마르는 “나는 시가를 알지 못했다. …내가 정말 부자라면 세들어 살지 않고 집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과다한 지출은 환불하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게마르, 파리 생미셸 지역에 230㎡ 아파트 소유’ ‘게마르, 프랑스 서부에 집 두채 더 소유’ 등 폭로 기사를 연거푸 터뜨렸다. 급기야 게마르는 스캔들이 불거진 지 열흘 만에 사표를 냈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치 풍토가 깨끗해서 그가 사표까지 쓰게 된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건 절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스캔들은 프랑스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 사실 청렴결백하고 투명한 정치는 북유럽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나, 프랑스 정치 풍토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프랑스 정부는 공문으로 고위 공직자들이 80㎡에다 자녀 한명당 20㎡ 추가로 주거비용을 국고로 지출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게마르 같으면 80+(20x8) 해서, 240㎡의 월세를 국고로 지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마르가 파리에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는 240㎡가 안 된다는 억지 논리로 둘러대거나, 면적 초과분은 되돌려주겠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다. 이는 게마르가 보인 반응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정치 풍토상 게마르의 호화판 아파트 거주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닌 셈이다. 정작 그가 수습할 수 없었던 까닭은 언론들의 잇단 폭로에서 헤어날 방안을 찾지 못한 데 있었다.

[%%IMAGE2%%]

민심 잃은 시라크, 사면초가 상황

게마르 스캔들로 한창 시끄러울 때 야당인 좌파당들이 보인 반응도 흥미롭다. “북유럽이었다면 벌써 자리에서 물러났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에 대해 직접 해명하라.” “이 일로 국민들이 ‘정치인들은 모두 썩었다’는 반응을 보이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고위 공직자가 없는 프랑스 정치 현실에서 게마르 스캔들로 인해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기를 원치 않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게마르 사퇴를 종용하는 것을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여긴 셈이다.

자금 문제에선 워낙 불투명한 정치 풍토라, 국민들이 아예 모르는 일은 제쳐두고라도 언론에 폭로되는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사건도 적지 않다. 당장 주택 사건만으로는 미테랑 대통령 시절(1881~1995)에 총리를 지냈던 피에르 베레고부아의 자살로까지 이어진 사건도 있다. 미테랑이 딸에게 아파트를 대여한 사건을 비롯해 시라크가 파리 시장일 때 파리 시영아파트를 보유한 사건 등 다양하다. 이번 게마르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 “이제 더 이상 미테랑 시대가 아니다”라는 비판이 나온 것은 이전에 그랬지만 이제는 달라지자는 항변인 셈이다. 게마르는 프랑스 고위 정치인들 가운데 젊은 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라 따끔하게 꼬집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업률이 10%대에 이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서민과 가까운 정부라는 광고가 되기도 한 게마르의 조기 낙마는 게마르 자신의 이미지뿐 아니라 현 정부의 이미지에도 큰 손상을 입혔다. 게다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정치인들의 권력다툼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파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게마르는 니콜라 사르코지(50)의 후임자였다. 사르코지는 현 프랑스의 현 집권당인 우익 민중운동연합당(UMP) 당수로 뽑혀 차기 대선에서 여당 후보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다. 시라크와는 다소 어색한 사이다.

[%%IMAGE3%%]

시라크는 2002년 대선 1차전에서 극우당의 르펜과 나란히 당선되었고, 2차전에서 82%의 득표율을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우파 지지자뿐 아니라 당시 반극우 좌파표까지 얻어 당선되었다. 따라서 82%의 득표율은 그 수치만큼의 거창한 승리가 아니라, 당시의 급박한 정치·사회 상황을 반영했다. 그런데 그의 3년 집권 성적은 서민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지방 선거와 유럽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경제의 재활성화, 실업률 개선 등을 부르짖으며 앉힌 재무장관마저 스캔들로 사직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고전하는 여당에서 유독 언론에서 빛을 발하는 인물이 니콜라 사르코지다.

시라크 진영의 ‘신선한 인물’ 날아가다

그는 2002년 새 정부 수립 이후 내무장관, 재무장관을 거쳐 지난해 말 당수로 당선되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1995년 대선 직전 시라크를 배반했다가 다시 합당한 그는 이미 내무장관 시절부터 대권 야심을 노출시켰다. 그런데 그 방법으로 반시라크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이면서 시라크와는 다르다는 점을 자신의 특색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심고 있는 이미지는 젊고, 패기 있고, 솔직하고, 투명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인 상을 집중 부각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계 주요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언론의 지지를 많이 얻고 있다. 그가 기세도 당당하게 지난해 11월 아무런 장애 없이 민중운동연합당 당수가 된 것도 시라크 측근들의 스캔들 덕이었다. 사르코지 전임자였던 알랭 쥐페(59)는 ‘시라크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민중운동연합당의 모체인 공화국연합당(RPR) 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재판에서 책임을 지고 집행유예와 1년간 정치활동을 중단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비게 된 자리에 사르코지가 앉은 것이다. 이처럼 시라크 측근들이 하나둘 평판을 잃어가는 와중에 사르코지는 시라크와는 다른 이미지로 여당의 대의를 모으고 있다.

게마르 주택 스캔들이 언론에 노출되어 정계가 소용돌이에 휩쓸리자 과연 누가 그런 정보를 언론에 흘렸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게마르는 시라크 진영에선 젊고, 패기 있고, 신선한 인물이었다. 사르코지의 승승장구로 나날이 고립되고 있는 시라크 진영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셈이다. 2월28일 게마르의 후임으로 티에리 브르통이 새 재무장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사르코지와 시라크 진영 가운데 어느 한쪽에 속한다고 확실하게 선을 긋기 힘든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가 부임하던 날 그를 반기기라도 하듯 프랑스 전역이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