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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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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소년, 돌아오라 케빈

등록 2004-10-29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 케냐 호마베이의 한국인 의사가 체험한 ‘HIV 감염률 35%’의 현장, 그곳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font>

▣ 호마베이(케냐)=전재우/ 의사

케빈은 열세살이다. 한국 나이로 열다섯.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었어야 할 나이임에도 이 자그마한 케냐 소년에게서 굵직해지는 골격이나 쉰 목소리 등 성장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년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소년에게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으며 신발도, 깨끗한 옷도 없다. 초등학교 교육 역시 중단된 지 몇달째다. 소년이 가진 건 오직 한 가지, 에이즈라는 질병뿐이다.

형제 부인을 아내로 삼는 치명적 풍습!

2003년 겨울, 케빈은 호마베이 지방병원의 국경 없는 의사회(MSF)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클리닉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요법(ART·항바이러스치료, 칵테일 치료라 알려진 세 종류의 레트로바이러스 억제제의 병합요법)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는 기미를 보였다. 진균증 투성이던 피부는 깨끗해졌고, 바싹 말랐던 볼에도 살집이 잡히며 생기가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몇달 뒤 케빈은 아무런 기별 없이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소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케빈은 운이 좋았다. HIV 클리닉의 상담자가 영양실조에 걸린 채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던 소년을 발견하고 다시 병원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잔뜩 겁에 질린 소년은 그동안 병원에 올 차비가 없었다고 더듬더듬 설명했다. 노쇠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에게 50실링(약 750원)의 보다보다(케냐의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인 자전거) 요금을 매달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케빈에게는 삼촌이 한명 있지만 그는 다른 감염인들의 가족이 으레 그러하듯 케빈네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들과 모든 접촉을 끊어버렸다.

굳이 케빈에게만 동정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HIV 클리닉에 오는 환자들 대부분은 가족을 원인 모를 질병으로 잃은 심리적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배우자가 고질적인 설사병으로 말라죽고 연이어 갓 태어난 아이가 고열로 죽은 뒤, 자신 역시 잦은 기침과 말라리아에 시달리다 급기야 생업까지 잃었을 때, 그때가 비로소 이들이 에이즈 검사실을 방문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다. 감염 사실을 확인한 이들 대부분은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사실을 받아들인다.

호마베이는 생산 연령 인구의 약 35%가 HIV 감염인으로 추정되는 케냐 서부 빅토리아 호숫가의 번화한 타운이다. 케냐 전역의 감염률이 14%(2003년 세계보건기구 통계)인 데 비해 이 지역의 감염률은 유독 높은 편이다. 빅토리아 호수를 중심으로 한 케냐 서부에 살고 있는 주민의 다수는 루오인들이다. 42개의 케냐 내 부족들 중 세 번째로 큰 분포를 가진 루오인들에게는 몇 가지 특이한 풍습이 있다. 일부다처제를 부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아프리카에서 드물지 않은 풍습이니 논외로 하자.

그러나 상속이라는 이름하에 죽은 사람의 형제가 미망인을 다시 아내로 삼는 일은 다른 부족들에게서는 흔히 찾기 어려운 풍습이다. 게다가 미망인이 다시 결혼을 하기 전,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낯선 사내와 관계를 갖기도 한다. 혼인 연령 혹은 성 관계를 시작하는 연령도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들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갖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를 갖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라는 걸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HIV 감염률을 부족적 풍습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화적 우월주의에서 나온 오만하고 안일한 편견일 뿐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가난과 국가적 무관심이다.

차비가 없어 병원에 못 오는 환자들

호마베이는 어업과 농업이 주산업이다. 우기가 지나고 건기가 찾아오면 호마베이의 농가에는 먹을거리가 궁해진다. 케냐 정부도, 교회도(이 지역 주민은 대부분 기독교인이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물론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곳에서 사시사철 일손이 필요한 곳은 장례 관련 업체들뿐이다. 결국 굶주림에 지친 여인들은 부둣가로 나가 어부들에게 몸을 제공한다. 그리고 한 마리의 생선과, 에이즈 바이러스도 더불어 얻는다. 그의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남편에게 혹은 모유를 먹는 갓난아이에게 옮겨진다. 남편은 다시 두 번째 부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 헤어나기 어려운 악순환이다. 이들에겐 5실링 하는 콘돔을 살 돈이 없다. 텔레비전 시청은커녕 신문도 사보기 어려운 이들에게 에이즈에 관련된 정보는 장터에서 혹은 교회에서 들은 “에이즈는 부도덕한 행위의 대가로 받는 천벌이며 걸리면 누구나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입소문뿐이다. 이런 편견은 감염인들 혹은 감염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더욱 음지로 숨어들게 하며, 적절한 검사나 진료를 회피하게 만든다.

케냐 정부는 10년 만에 평균 예상 수명이 15년 감소하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에이즈 문제에 소홀했던 것처럼 보인다. 현재 케냐에서 ART를 공급받고 있는 환자들은 시급히 ART가 필요한 대상자의 10%에도 못 미친다. 케냐 보건국은 2004년 7월, 비로소 에이즈 국가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이 뒤늦은 시도가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에이즈 관리는 단순한 약 처방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실질적인 전파방지 정책, 적극적인 사회적 낙인 제거, 기회감염 예방과 ART의 안정적 공급, 지속적 상담을 통한 환자들(혹은 감염인들)의 이해와 자발적 참여 등이 복합적으로 실행돼야만 비로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케냐 정부의 에이즈 정책은 오직 ART 공급을 우선시하고 있다. 게다가 ART의 환자 부담금으로 한달에 500실링을 요구한다. 50실링의 차비가 없어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ART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케냐 사회에 뿌리 깊게 만연한 부패는 병원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의사, 간호사는 물론 시골 보건소의 말단 직원조차 환자들에게 뒷돈(일명 ‘something small’)을 기대한다. 물론 신문에서는 거물급 정치인이 연루된 거액의 부패 사건, 정치인들의 권력다툼이 연일 보도되고 있고, 에이즈 관련 해외구조기금은 어디론지 새고 있다.

비열한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들

한편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에이즈 만연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저렴한 복제 약품의 효능에 의문을 제기하며 딴죽을 걸기 시작했다. 부시 정부는 그에 발맞춰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비싼 오리지널 약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에이즈 지원기금을 축소하겠다고 협박한다. 어쩌면 감염인들은 에이즈라는 질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 시대의 다국적 기업과 부패한 정부, 또한 그것들과 무관하지 않은 총체적 가난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케빈은 지난번 진료 예정일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의 진료기록부에는 흙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불안해진다. 또다시 그를 찾아내서 중단된 ART를 재개한다고 해도 두번 약 복용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케빈의 몸 속에서는 이미 에이즈 바이러스가 약제 내성을 갖는 변이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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