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현장 베트남 퐁니촌에서 ‘한-베 평화 청년 캠프’ 열리다
▣ 꾸앙남= 글 · 사진/ 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lycos.co.kr
새벽 5시30분. 동이 터오는 여명과 함께, 인민위원회에서 마을 전역에 내보내는 아침 라디오 방송으로 퐁니촌(촌은 우리나라의 ‘리’에 해당하는 행정단위)의 하루가 시작된다. 지난 7월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 동안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이방인’들이 퐁니촌의 색다른 새 아침을 열었다. 그 이방인들은 ‘한-베 평화 청년 캠프’(공동 단장 이수영, 응웬 티 히엔 짱)의 단원들로, 한국의 시민단체 ‘나와 우리’를 통해 모집된 단원 10명과 베트남의 자원봉사단체 ‘Good Will’을 통해 모집된 단원 13명이다.
주민들 소망 담아 위령비 세워져
캠프 참가자들은 주민들이 제공한 7곳의 가정집에서 가족들과 숙식을 함께했다. 세 번째로 열린 ‘한-베 평화 청년 캠프’가 열린 곳은 꾸앙남성 디엔반현 디엔안싸 퐁니촌. 이 마을과 한국 사람과의 인연은 36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전쟁이 야기한 악연으로 시작된다. 1968년 2월12일(음력 1월14일), 청룡여단 1대대 1중대가 베트콩 소탕작전인 ‘괴룡 1호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작전 지역을 향해 행군하던 도중, 부대원 한명이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다쳤다. 베트콩 저격병을 잡지 못한 부대는 마을쪽으로 공격 방향을 튼다. 그리고 퐁니촌 주민 61명의 시신과 17명의 부상자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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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의 보도로 다시금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퐁니촌은 비로소 악연의 사슬을 벗고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퐁니촌 학살 현장에는 ‘나와 우리’의 위령비 건립 모금을 바탕으로, 지난 6월22일에 위령비 기공식이 열렸고 8월 중순 완공을 앞두고 있다. 주민들의 소망이었던 위령비가 세워진 바로 뒤인지라 캠프 참가자들을 맞이하는 마을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다. ‘한-베 평화 청년 캠프’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디엔반현의 청년단과 디엔안싸의 청년단 30여명의 표정도 밝았고, 흥에 겨워 있었다. “당시의 한국군들이 어떠했는지를 이제 다시 언급해서 무얼 하겠는가. 지금 이렇게 한국의 청년들과 베트남 청년들이 함께 평화를 노래하고, 서로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이네.” 한국군과 전투 도중 총상을 입기도 한 쩐 반 수(65·베트남 상이군인회 디엔안싸 회장)씨는 캠프 참가자들을 환영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캠프는 첫날의 퐁니 위령비 주변에 평화기원 나무 심기를 필두로 닷새 동안 하미마을 양민학살 위령비 참배, 퐁니 위령비 길닦이, 디엔안 유치원 페인트칠하기, 청년들과의 좌담회,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놀이 프로그램, 어린이 그림대회, 노인들 영정사진 찍어주기, 한-베 교류 문화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베트남 농촌 민가에서 숙식
“베트남에 간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결혼하러 가냐’고 농담을 하더군요. 베트남 양민학살 사건도 문제지만 베트남의 이미지가 왜곡돼가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숙식에 약간 불편한 점은 있을지라도 ‘한-베 평화 청년 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 주민들과 실생활을 함께 한다면,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실제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가 진정으로 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제대로 된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쪽 참가자를 대표한 이수영(29·‘나와 우리’ 회원)씨는 캠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베트남 양민학살 사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 을 제작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던 이마리오(34·서울영상집단 단원) 감독은 “계속 만나서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정을 쌓아야 오해도 풀리고 친구도 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그의 영화 작업은 한번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진행형이기에 이번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외지인이 더구나 외국인이 농촌의 민가에서 숙식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베트남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아직 없기에, 친척집이나 친구집에서 잠을 잘 때도 관공서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물론 시장개방의 물결을 타고 거주 이전과 관련한 법이 거의 사문화되기는 했지만, 외국인의 모임이나 숙박과 관련해서만큼은 베트남 당국이 엄격하게 법 적용을 하고 있다. 캠프 프로그램이 허가된 것만으로도 그간의 시민단체나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한 성과물로 자리매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6년 전 총탄이 튀었던 바로 그 현장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이 나란히 삽을 들고 위령비 주변의 터를 닦는 가운데, 땡볕 아래에서도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디엔안 유치원에서 페인트칠을 새로 할 때는 마치 아이들처럼 서로 어울리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동네 꼬마들은 내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참가자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달라 조르고, 태권도복을 입은 어린이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틈만 나면 태권도 동작을 선보였다. 청년 좌담회 자리에서는 주제와 무관하게 ‘애인은 있는지, 베트남 아가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다소 생뚱한 질문이 터져나와 분위기가 연애 문제로 흐르며 웃음이 계속 터져나왔다. 영정사진을 찍고서도 무엇이 즐거운지 후인 반 탄(73) 할아버지는 “정말 고맙다. 우리 손자들을 보는 것 같다”며 자신의 집으로 밥 먹으러 가자고 한국쪽 참가자들의 손을 연신 잡아끌었다.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밤에 치러진 문화공연은 인근 마을 주민까지 300여명이 모여 성황리에 열렸다. 베트남 혁명가요와 전통민요, 인기가요, 패션쇼가 한국의 단소 소리, 사물놀이, 인기가요가 한데 어우러졌고, 베트남쪽의 한국학과 학생은 한국 가요를, 한국쪽의 베트남문학과 학생은 베트남 가요를 불러서 청중들의 많은 성원을 받았다. 문화공연 뒤풀이로 이어진 놀이마당에서는 술이 없이도 한 시간 넘게 춤판이 벌어졌다. 응웬 민 훙(58) 꾸앙남성 부주석은 마지막 평가 자리에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베 평화 청년 캠프’를 통해 지역 주민들은 한국인들의 따뜻하고 진실된 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또 위령비 건립을 비롯해 유치원 페인트칠, 영정사진, 학용품, 약품 전달은 현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선물은 한국의 청년들이 보여준 진실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눈물의 이별, 평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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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를 기본 동기로 설정한 ‘한-베 평화 청년 캠프’는 올해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한-베 양국의 청년들은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우정의 눈인사를 한번이라도 더 나누려고 애썼고, 한창 사춘기인 동네 소녀들은 눈물까지 터뜨려 참가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마치 명절 때 모처럼 만난 가족들 같았어요.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베트남 사람들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알 수 있었지요. 헤어지던 날 우리집의 흥(16·중학생)이 아침부터 계속 울어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네요.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고 싶어요.” 강가애(21·대학생)씨의 말처럼, 흥은 버스가 떠나던 순간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캠프 참가자들의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만들었다.
이곳 베트남에 전쟁이 있었던가. 이곳 퐁니촌에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있었던가. 도무지 실감이 되지 않을 만큼, 마을 풍경도 여느 한국의 시골 마을과 다름없었다.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속에 진심이 오갈 때 서로에게는 아무런 장벽도, 흉허물도 없었다. 돌아보면 다시금 상처가 돋아나는 아픈 과거사에도 진심 어린 손길에는 그 어떤 가혹한 상처도 눈 녹듯 씻겨내렸다. 마을을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양국의 청년들에게는 오로지 평화와 우정의 미래만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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