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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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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Again) ‘바르셀로나 듀오’

FIFA U-20 월드컵 공격축구 묘미 보여준 이승우·백승호…

유소년 육성 정책과 기술 중시 등 유럽 체계적 시스템 배워야
등록 2017-06-08 16:18 수정 2020-05-03 04:28
5월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살 이하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이승우(왼쪽)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같은 경기에서 백승호(오른쪽)가 상대편 수비를 돌파하는 모습. 연합뉴스, 연합뉴스

5월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살 이하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이승우(왼쪽)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같은 경기에서 백승호(오른쪽)가 상대편 수비를 돌파하는 모습. 연합뉴스, 연합뉴스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살 이하 월드컵(5월20일~6월11일) 16강에서 한국이 탈락했다. 하지만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A)와 백승호(20·바르셀로나 B) ‘바르셀로나 듀오’가 몰아친 회오리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이승우의 재기발랄함은 워낙 유명했지만, 안정적이고 차분한 백승호의 면모는 이번에 처음 알려졌다. 둘의 존재는 신태용 감독의 공격축구에 속도를 붙였고, 덕분에 팬들은 축구의 묘미에 흠뻑 빠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창의적인 플레이와 승부 근성</font></font>

선수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의 저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 쪽에 무게를 싣지만 후천적 노력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자메이카 선수들이 유전적으로 단거리에 강하고, 케냐의 칼렌진 부족이 마라톤에서 뛰어난 것은 조상의 유전자 덕이다. 하지만 시속 150km 이상의 공을 상대하는 메이저리그 고급 타자들이 타격할 수 있는 것은 투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구질을 판단하는 훈련 때문에 가능하다. 어린 시절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 이승우와 백승호는 어떤가? 이들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전자를 이식받은 것인가?

7~8년간 바르셀로나 축구 문화의 세례를 받고 돌아온 둘은 확실히 다르다. 이승우는 독특한 머리 모양과 원색의 염색에서 보이듯 통념에 얽매이지 않는 발랄함이 있다. 폭풍 치듯 순간적으로 돌파하는 스피드와 창의적인 플레이는 보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준다. 월드컵 우승을 위해 여섯 번 이기면 된다는 뜻으로 옆머리에 새긴 SW(식스윈) 돋을새김은 그의 끼를 보여준다. 백승호는 공격수라기보다 미드필더다. 폭발적인 드리블보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과 맞춤한 패스, 폭넓은 시야로 경기를 주도한다. 16강 포르투갈과의 경기 패배 뒤 눈물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 최고 선수들에게 공통된 승부 근성을 발견한다.

애초 둘은 한국에서도 잘나갔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둘의 볼 다루는 솜씨가 기막혔다. 바르셀로나에 갔다오더니 더 달라졌다”고 했다. 서울 대동초등학교 1년 선후배로, 백승호는 2009년 초등학생 유망주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 대상을 받았고, 이승우는 이듬해 차범근 축구상 우수상을 받았다. 백승호는 2009년 말 스페인에서 열린 한국-카탈루냐 14살 이하 대표팀 경기 때 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 감독의 눈에 들었고, 이승우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다농컵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의 활약으로 역시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에게 낙점된다.

바르셀로나 생활은 ‘라마시아’(La Masia)로 불린다. 애초 선수 기숙사가 있던 농장 라마시아는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교육 시스템과 시설을 통칭한다. 리오넬 메시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이 라마시아 출신이다. 이승우나 백승호도 이곳에서 각국 영재들과 경쟁하며 축구선수의 기량을 키웠다. 바르셀로나 특유의 패스 축구나 1군의 리오넬 메시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린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된다. 독일의 축구 에이전트인 마쿠스 한은 “20살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팀이 어려운 상황이 될수록 백승호와 이승우가 경기를 리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실수를 해도 계속 모색하고 도전한다.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두려워할 수도 있는데, 둘을 보면 주눅 들지 않는다”고 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각각 2골씩을 터뜨리고 포르투갈과 16강 대결에서 보여준 공격적 마인드와 자신감을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바르셀로나의 교육 시스템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국내에서 성장하는 많은 유소년들이 학교나 프로팀의 클럽에서 장차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학원 축구나 프로 유소년팀의 축구 육성 방식이 바르셀로나 등 유럽 명문 구단의 시스템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향후 성장세까지 추정하는 신체검사</font></font>

가령 이승우는 한국의 축구 정서로 보면 문제아적 소지가 있다. 우리 지도자들은 한 명의 선수가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린 선수가 감독의 머리를 만지고, 어깨동무까지 하는 유럽의 상황과는 다르다. 물론 유럽에서도 선수 출전 여부를 결정하는 감독은 강력한 권위가 있다. 다만 자유분방한 캐릭터와 경기력을 엄격히 구분할 뿐이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경기 중 과도한 액션을 하는 것은 경기력과 상관없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서비스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승우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도 못 차면서 머리 치장 등 주변 일에 더 신경 쓴다는 팬들의 질타를 받을 것이다. 반대로 그런 위험을 알면서도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은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잘해야 한다는 각오의 표현일 수 있다.

백승호도 초등학교 졸업 당시 편견에 휩싸였다. 키는 140cm대로 작고 몸은 허약해 보였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유소년을 가르쳤던 한 지도자는 “우리나라 중학교나 고등학교 감독들은 피지컬(신체조건)이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 성적에 목매다보니 1학년이나 2학년 때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선수를 원한다. 하지만 나중엔 기술 좋은 선수들이 이긴다. 각자 성장 주기가 다른데, 그런 점을 감안해 선수를 발탁해서 장기적 안목으로 육성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고 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바르셀로나가 백승호를 데려갈 때 신체검사를 하면서 고환의 크기부터 발바닥 모양, 관절 상태까지 측정해 향후 성장세를 추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백승호가 177cm로 부쩍 컸는데, 우리 같으면 여기에 힘을 키운다고 엄청나게 훈련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인대와 골격, 관절에 무리가 돼 성인이 되면 힘을 못 쓴다. 바르셀로나는 (어린 선수를) 무리하게 훈련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승우와 백승호가 바르셀로나에 영입된 것은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육성 정책과 기술 중시 때문이다. 스페인의 통신원 스티브 김은 “요즘은 20살 미만 선수들의 이적료가 3천만~5천만유로까지 팍팍 올라가고 있다. 20살 월드컵에서 4강만 갔더라도 이승우나 백승호의 몸값이 1천만유로 정도는 나왔을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구단에서 선수를 발굴해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두 선수 함께 뛰기 쉽지 않을 것”</font></font>

하재훈 전 SK 감독은 “볼터치와 접목된 스피드, 돌파, 킬패스에서 이승우가 뚜렷한 색깔을 보여 특징 있는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승우나 백승호 모두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강한 정신과 전술 수행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대길 해설위원도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더 힘든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천재성을 발휘한 이승우가 팬들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성인 무대로 들어가면 파워와 키가 중요해진다. 만약 이승우가 이 상태로 성장을 멈춘다면 개인 전술로 해결하는 메시의 길을 가야 한다. 기술을 연마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고, 판단력과 스피드를 더 높여야 한다. 백승호는 근력을 추가하면 이승우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치고 올라갈 수 있다.”

바르셀로나 듀오의 인상적인 플레이로 팬들은 또 다른 이승우와 백승호가 나오기를 바란다.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에는 KBS 예능 프로그램 에 출연했던 이강인(16)이 진출했고 많은 선수들이 알음알음 유럽이나 남미, 일본 등 새로운 환경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해외로 나간 선수들을 다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16살부터는 대표팀을 소집해야 하기 때문에 대강의 존재는 알고 있다”고 했다. 또 “유럽의 빅 클럽이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뚜렷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승우, 백승호 같은 선수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유럽의 유소년 보호 정책 강화로 부모가 현지에서 선수와 생활해야 하는 등 상황은 어려워지고 있다. 이승우와 백승호도 이런 규정 위반으로 3년간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반면 한국 학부모들이 워낙 열성적이어서 현장에 따라가 자식 뒷바라지를 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스티브 김은 “명문 구단이 아닌 경우 이적 규정 위반에 대한 상대 구단의 고소가 적고, 선수가 좋을 경우 구단에서 부모에게 직업을 구해주는 등 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쨌든 과거보다 유럽 진출이 까다로워진 만큼 대한축구협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축구인은 “바르셀로나 같은 곳에서는 엄청난 경쟁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축구협회가 유망한 선수들을 선발해 방학 기간이라도 한두 달 정도 유럽 클럽에서 생활하도록 하면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외국 아이들이 경쟁하고 집중해서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번 시즌까지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마지막 단계인 후베닐A에서 뛴 이승우는 다음 시즌엔 바르셀로나 B로 가야 한다. 백승호는 지난 시즌부터 바르셀로나 B에 들어갔다. 바르셀로나 B는 현재 80개 팀으로 이뤄진 세미프로 성격의 3부리그에 속한다. 만약 바르셀로나 B가 승격해 다음 시즌부터 라리가 2부로 올라간다면 둘의 운명은 복잡해진다. 2부리그에선 외국인 선수 출전 제한이 있어 한국에서 온 이승우와 백승호를 바르셀로나 B가 모두 보유할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백승호가 1군에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스티브 김은 “두 선수가 함께 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팀으로 임대될 수 있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장기적 안목으로 팀 운영하는 문화 </font></font>

불확실한 미래에도 바르셀로나 듀오는 20살 월드컵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심었다. 둘을 지도했던 강경수 전 대동초 감독은 “어릴 때 재능이 뛰어나도 나중에 사라지는 선수가 너무 많은 게 우리 현실이다. 빨리 크면 빨리 사라진다. 이승우와 백승호가 큰 선수로 성장해 돌아오니 반갑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도자나 학부모, 학교나 구단이 선수를 키우기 위해 좀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을 운영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창금 문화스포츠에디터석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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