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 자리한 에스파뇰라섬이 요동친 것은 2010년 1월12일 오후 5시께(현지시각)였다. 그 섬의 서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불과 16km 떨어진 지점이 진앙이었다.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은 삽시간에 거대한 먼지기둥을 만들어내며 도시를 뿌옇게 삼켜버렸다.
살 집 구하는 건 이재민들 몫
성히 버텨 남은 건물은 거의 없었다. 줄잡아 20만 명이 건물 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이재민만도 230만 명을 헤아렸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아이티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 대안매체 는 1월12일 “아이티 현지의 상황이 여전히 끔찍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유? 지진 발생 직후 물밀듯 쏟아져 들어온 국제사회의 ‘잘못된 원조’ 때문이란다.
지진은 아이티 사회의 자생력을 철저히 훼손했다. 국제사회는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정작 재건·복구 과정에서 아이티인은 철저히 배제됐다. 물자도 사람도 모두 외지에서 들어왔다. 복구의 우선순위를 정한 것도 그들이었다. 는 마리오 조지프 ‘정의와 민주주의연구소’(BAI) 소장의 말을 따 “처음부터 아이티인들의 참여 속에, 아이티인들의 필요에 따라 재건·복구 작업이 이뤄졌다면 상황이 전혀 달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주거 문제부터가 대표적 사례다. 아이티 지진 3년을 맞아 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지난 1월11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현재 아이티 전역에 마련된 496개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재민은 35만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8만 명가량은 언제든 쫓겨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사유지에 텐트를 치고 산단다.
2011년 8월 아이티 정부는 국제사회의 원조를 바탕으로,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중심으로 16개 지역에 자리한 50개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재민들의 집단이주를 추진했다. 이주 대상자들에게는 가구당 500달러의 임대 보조금이 12개월에 걸쳐 나눠 지급됐다. 이사 비용 25달러도 추가로 제공됐다. 살 집을 구하는 것은 이재민들의 몫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액에 집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이재민들이 임대 보조금을 생활비로 충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진 발생 당시 유엔과 세계 각국이 아이티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원조금의 총액은 무려 163억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제 집행된 금액은 그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나마 2011년 초반부터 현지에 진출했던 다국적 구호단체가 하나둘 떠나기 시작해, 이재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아이티에서 발생한 문제는 사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원조 지원국은 현지 정부와 지역사회를 믿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자국 정부의 공식 기구나 자국 출신 인도지원 단체 등을 통한 직접 원조를 선호한다.” 마크 웨이스브로 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소장은 1월11일 내놓은 성명에서 “재난으로 취약해진 원조 대상국의 자생력은 이로 인해 더욱 떨어지고, 결국 자국민에 대한 지원 능력을 사실상 잃고 만다”고 지적했다.
빈 식량 봉투만 들여다보는 이재민들
2010년 지진 발생 이전부터 <ap> 특파원으로 아이티에 파견돼 이듬해까지 현장 취재를 했던 조너선 카츠 기자는 지난 1월8일 펴낸 (The Big Truck That Went By)는 제목의 책에서 아이티의 현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재난 발생 직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원조단체들은, 이재민들에게 임시 숙소로 사용할 텐트와 당장 먹고살 식량을 내줬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이재민들은 여전히 텐트에 남아 빈 식량 봉투만 들여다보고 있다.” 카츠 기자의 표현처럼 “정말 값비싼 일회용 반창고를 사용한 셈”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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