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최근 이탈리아인 지인이 2주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지인은 아내의 오랜 친구로, 열 살 된 아들과 함께였다. 아이가 생긴 후론 공동육아를 종종 하는데, 모처럼 우리 아이에게도 이색적인 경험이 될 터였다. 손님들은 빈손으로 와도 반가웠을 텐데 고맙게도 짐가방 한가득 맛있는 간식을 사 가지고 왔다. 끝없이 나오는 처음 보는 과자들을 보며 이제 막 어른 입맛을 알아버린 우리 아이도 기쁨에 손뼉을 쳤다. 그런데 그중에는 뜻밖의 선물도 있었다.
하나는 콜로세움 모양을 본뜬 미니어처였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은 유럽에서는 비교적 흔한 선물이지만, 건축물을 감상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내게는 더없이 반가웠다. 두 번째 선물은 우노(UNO)라는 카드 게임이었다. 우노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원카드와 비슷한 보드게임이다.
그 선물이 특별했다. 카드마다 모두 점자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점자가 새겨진 카드 게임이 없지는 않지만 남에게 선물로 줄 만큼 흔하진 않다. 지인은 이탈리아에선 보드게임을 워낙 많이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챙긴 선물이라고 했다. 그 말이 감동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게임은 함께해야 한다’는 불문율 같은 게 느껴졌다.
한국의 ‘술게임’ 문화는 이젠 글로벌 현상이 됐다. 하지만 내게 술게임은 즐거운 엠티의 추억이기보다는 어색한 배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끄러운 술자리에서 하는 게임이란 대부분 동작을 사용하는 시각적 게임이었다. 시각장애인인 나는 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아예 뜰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웃음이 터질 때마다 따라 웃었지만, 정작 무엇이 우스운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점자 카드 게임은 반대로 내게 ‘함께 놀자’는 초대였다.
우리는 장애인 통합이나 포용을 이야기할 때 이동권이나 고용 문제를 자주 떠올린다. 하지만 ‘함께 놀 권리’에 대해선 그만한 사회적 관심을 주지 않는다. 놀이에서 배제되는 경험은 실은 취업이나 이동 수단으로부터의 배제보다 훨씬 일찍 개인에게 차별이란 무엇인가를 각인시킨다.
통합교육 현장에서 이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장애학생은 많은 경우 수업 시간에는 함께할 수 있어도 쉬는 시간에는 함께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니 애초에 통합교육에서 기대한 자연스러운 어울림은 나타나지 않는다. 같이 놀지 않는 친구를 수업을 같이 들었다고 마음속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통합교육이 실패하는 지점은 수업 중보다 쉬는 시간일지 모른다.
놀이가 장애 이슈에서 이처럼 홀대받는 데는 특유의 한국적 맥락이 있기는 하다. 학창 시절을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시기가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는 경향이라든가, 놀이를 중요한 인생 경험이기보단 잉여나 사치로 여기는 관점 말이다. 사회에 팽배한 이런 문화는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그것을 제도화하는 쪽에서도 노는 일을 여러 권리 중 후순위로 만들어버렸다.
다른 이와 어울려 노는 경험이 개인의 성장과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특히 육아나 교육에선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고려사항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사회규범을 배울 뿐 아니라 또래 집단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게 마련이니까.
이탈리아인 지인의 아들은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나와 내 아이에게 이 말을 자주 했다.
“우리 같이 놀까?”
고마웠다. 한국에서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말이어서. 나는 이 물음이 우리 사회에서도 더 자주 들리길 바란다.
김헌용 신명중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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