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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로켓은 일 정국 전환의 배터리

‘북풍’ 띄우며 과도한 호들갑 떠는 일본 정계와 언론… 국민들은 위협감보다는 불쾌감 강해
등록 2009-04-17 14:03 수정 2020-05-03 04:25

북한의 로켓 발사를 앞두고 가장 강경한 움직임을 보인 건 일본 정부였다. 발사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일본 현지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를 전후로 한 일본판 ‘북풍’의 실체를 분석해봤다. 편집자

‘이번엔 진짜일까?’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지난 4월5일 오후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에서 시민들이 각 언론사가 발행한 호외판 신문을 앞다퉈 집어들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전날에도 ‘북한이 로켓을 발사했다’는 오보를 내 소동이 나기도 했다. 사진 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이번엔 진짜일까?’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지난 4월5일 오후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에서 시민들이 각 언론사가 발행한 호외판 신문을 앞다퉈 집어들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전날에도 ‘북한이 로켓을 발사했다’는 오보를 내 소동이 나기도 했다. 사진 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지난 4월5일 오전 11시30분이 조금 지난 시각. 텔레비전 화면에 ‘북한 미사일 발사’라는 자막이 뜨더니, 방송사들이 일제히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일본의 ‘수도권’에서 시청 가능한 지상파 채널은 모두 8개. 〈NHK교육방송〉을 제외하고 모든 채널이 ‘앞 다퉈’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당일 필자가 텔레비전을 켠 것은 11시30분이 다 되어서였다. 조금은 맥 빠진 감이 없지 않았다. 전날의 오보 소동 때문이었다. 워낙 그전부터 일본 방송들이 ‘북한 미사일 발사’ 예고편을 떠들썩하게 내보내곤 해서, 전날에는 왠지 긴장감을 느끼면서 11시부터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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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로켓 골프공에 비유한 당국자 몰매

그 와중에 오보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NHK〉가 4월4일 낮 12시가 조금 지나 ‘긴급속보’를 알렸다. 그러나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잘못된 정보”라는 정부의 입장을 전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장에 파견돼 있던 자위대원이 미국 정찰기가 보낸 신호를 잘못 해석해 경보를 보냈다는 것이다. 관방장관과 방위상이 직접 사과를 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 경보를 전해듣고 총리공관으로 향하던 아소 다로 총리가 출입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기 직전에 방향을 틀어 집무실로 향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기자 브리핑 직전에 비서관으로부터 ‘오보’라는 보고를 받은 것이다. 총리의 ‘결연한 표정’을 전하려던 카메라들은 그의 뒷모습만을 담아야 했다. 게다가 같은 날 일본 동북지역의 아키타현은 오전 10시50분께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잘못된 정보를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주민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했던 총리,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던 방위성·자위대는 오히려 체면을 구긴 셈이다. 알고 보니 ‘허당’이었다는 이미지만을 남긴 것이다.

물론 독특한 해석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은 4월5일치에서 하시모토 도오루 오사카부 지사의 말을 따 “정보가 전혀 전파되지 않는 것보다는 잘못된 탐지를 할 정도로 정보수집을 하는 것이 위기관리에서는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의 말이 전부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게다. 그러나 그 위기와 긴장감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들어진 위기감’의 겉과 속의 불일치는 생각지 않던 곳에서 드러나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 3월30일치에서 전한 일본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을 ‘골프공’에 비유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이 보이면 재미있을 텐데. 보인다면 ‘후아~’(일본에서 골프공이 날아갈 때 다른 경기자에게 경고하려고 쓰는 소리)라고 말해줄 텐데….” 언론의 몰매를 맞긴 했지만, 오히려 ‘혼네’(本音·진심)를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실제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을 보고 있으면 당장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게 현실이다. 대낮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요격용 패트리엇 미사일 부대 이동 모습이 ‘생중계’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심지어 은 지난 2월28일치에서 북한 로켓의 궤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가나가와현과 일부 지자체들이 각급 학교에 ‘북한 미사일 착탄시를 대비한 긴급공문’을 발송해 위기관리 대비체제 확인을 지시했다고 전한 바 있다. 그야말로 전시 대비 태세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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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질’하다가 ‘허당’ 이미지 굳힌 정부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북한 미사일 요격’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아소 총리였다. 지난 3월2일 아소 총리는 총리실 출입기자단에게 “직접 피해가 생긴다면 자위대법에 따라 대응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는 게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일본 내부에선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 비서의 긴급체포가 ‘빅뉴스’였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 결과, 니시마쓰건설이라는 ‘제네콘’(종합건설사)으로부터 ‘페이퍼 정치단체’를 경유해 정치헌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 스캔들을 계기로 아소 내각의 지지율이 약간 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이 무렵 새롭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이 지난 3월11일 부산에서 열린 대한항공기(KAL858) 폭파범 김현희씨 기자회견이었다. 김씨가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다구치 야에코의 오빠와 아들을 만나는 장면은 일본 전역에서 생중계됐다. 다구치 야에코는 북한에 납치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언론들은 김현희씨 기자회견과 북한 미사일을 ‘세트’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일본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오후 6~10시)에 방송되는 뉴스 및 보도 프로그램들은 납치와 미사일 문제를 잇따라 편성했다. 특히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납치와 미사일 문제 등에서 양국의 협력관계가 긴밀해졌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피로감과 불만만이 누적되고 있던 차에 김현희씨의 공개 기자회견은 아소 내각에겐 ‘가뭄 끝에 단비’였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납치 문제의 해결사’라는 이미지만으로 총리까지 올랐음에도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고 중도에 사임해야 했다. 그의 뒤를 이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도 몇 차례 북-일 접촉에 나섰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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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씨 기자회견을 징검다리로 해서 일본의 대북 대응은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3월18일,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명목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쏘려고 준비하는 것과 관련해 자위대에 요격 명령을 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 정부는 ‘북한 미사일’의 요격을 위해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동원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김현희 회견·북 로켓 ‘2종 북풍 세트’

3월27일에는 ‘탄도미사일 파괴조치 명령’을 공식 하달했다. 북한의 ‘미사일’이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키타현과 이와테현 지역에는 패트리엇 미사일 부대를 이동 배치했다. 그 이동 과정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미사일의 예상 궤적과 전혀 관련이 없는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방위성 건물 운동장에도 패트리엇 부대가 배치됐다. 수도권의 주요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해에는 ‘초카이’와 ‘콩고’ 등 이지스함이 배치됐다. 이들은 모두 감시·정보 수집만이 아니라 요격 태세까지 갖췄다. 이 과정에서 각 지자체에 위기관리팀을 운영하고, ‘엠넷’이라는 경보 시스템까지 활용하도록 했다. 원래 엠넷은 지진·해일 등 재난 때 활용하는 경보 시스템이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긴장감을 조성한 것이 국민들의 ‘일치단결’ 혹은 ‘동원’을 의도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아소 정부가 ‘북풍몰이’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위기관리 능력을 통한 단호한 리더십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단호한 리더십에 대한 욕구는 경기침체와 함께 일본 사회에 만연돼 있는 무력감과 상실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일본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더 이상 경제대국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됐다.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은 중국이 일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고이즈미 개혁’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격차사회’(양극화)와 빈곤층 확대였다. 역설적으로 같은 시기 나라 안팎에서 ‘이전과는 다른 일본’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런 욕구와 현실의 불일치 속에서 ‘무언가 단호한 듯 보이는’ 언행이 국민들로부터 각광을 받게 된 게다.

이런 일본인들의 의식은 북한 로켓 발사와 관련된 여론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상업방송 〈TBS〉 계열의 ‘JNN여론조사’가 4월3~5일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일본 정부 요격 조처가 타당하다고 보는 의견이 84%에 달했다. 반면 발사 이후의 대응책과 관련해선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추가 제재를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9%인 데 비해, ‘미사일이라면 추가 제재를 해야 하지만 인공위성이라면 냉정히 대처해야 한다’와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냉정히 대처해야 한다’가 각각 34%와 35%에 이르렀다.

일본 국민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신중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후 대응에 대해서는 이토록 신중한 판단을 하면서 왜 실효성도 법적 타당성도 없는 ‘요격태세’에 대해서는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아소 총리가 입에 올린 “무척 불쾌하다”는 표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 필자가 만나본 일본인들은 대부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위협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의 리포터가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고와이데쇼”(무섭죠)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있다.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한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북한이 저토록 불쾌한 행동을 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의식이 더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한 달 내내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일본열도를 ‘가르듯이’ 날아가는 텔레비전 그래픽을 끝없이 지켜봐왔으니 ‘불쾌감’을 느낄 법도 하다.

일본 자위대 병사들이 지난 3월31일 북부 아키타현에 배치된 요격용 패트리엇 미사일(PAC-3) 발사대 옆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요격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실제 발사가 된 뒤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REUTERS/ KYODO

일본 자위대 병사들이 지난 3월31일 북부 아키타현에 배치된 요격용 패트리엇 미사일(PAC-3) 발사대 옆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요격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실제 발사가 된 뒤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REUTERS/ KYODO

아소 정부의 정치적 셈법에 따른 소동들

그러니 북한의 로켓 발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소동’은 ‘우리라고 무력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라는 국민들의 정서에, 무언가를 단호하게 하고 있다는 모습을 ‘어필’하려는 아소 총리 정부의 ‘정치적 셈법’이 빚어낸 결과인 게다. 그 근저에는 북한에 대한 정보 부족이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이번 기회에 MD 시스템을 실전테스트 해보려던 방위성과 자위대의 의도도 숨어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아소 내각의 ‘보여주기’는 국제무대로 이동했다. 아소 총리는 주요 8개국(G8)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외교력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로 만회하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을 ‘상종도 하지 못할 종자’로 만들어버린 일본 정부가 앞으로 북-미 관계 진전에 따라 대북 정책 전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때 치러야 할 정치·사회적 비용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요코하마(일본)=이준규 메이지가쿠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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