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다 되도록 가정주부였다가 남편의 은퇴로 일을 시작했다.’ ‘20년 넘게 경리일을 하고 오십이 다 돼 일을 찾다가 학교로 왔다.’ ‘30년 동안 식당에서 부엌일을 하고 음식을 나르다가 4대 보험이 된다는 말에 학교 청소노동자가 됐다.’ ‘30년 동안 직장을 옮기며 청소만 해왔다.’
50이 넘고 60이 넘어 돌고 돌아 이들은 고려대, 이화여대, 연세대, 홍익대의 건물 지하 계단 밑에서 두 끼를 해결하며 청소를 하는 노동자가 됐다. 나이를 먹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정해져 있었다. 깔때기처럼 몰려 이 직장(청소·경비)을 택했다.
고령·저학력 여성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
이렇게 청소라는 직업에 이른 사람은 40만 명, 중졸 이하가 82%이며, 평균연령은 57.2살이다(2007년 국가인권위원회 자료). 이들 가운데 여성은 74%에 달한다. 경비를 제외한 청소만 따지면 여성의 비율은 80%로 더 늘어난다. 건물 내 청소만 따지면 90%를 넘어선다. “고령의 저학력 여성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직업”이라는 민주노총 공공노조 류남미 정책국장의 말처럼 당사자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처음에는 이럴 줄 몰랐다. 포갠 쟁반에 설렁탕 열 그릇을 석가탑처럼 쌓아 나르지 않아도 되고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들딸 같은 학생들을 보면서 꽃놀이하듯 일할 줄 알았다. 이화여대 아름드리나무에 새순이 돋고, 연세대 백양로에 꽃이 피고, 푸릇한 고려대 잔디밭에 한가롭게 낭만이 넘치면 그게 지옥일 줄은 몰랐다. 쓸어도 쓸어도 꽃은 또 떨어지고, 치워도 치워도 학생들은 계속 싸야 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아무 말 없이 일하던 그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애초 다녔던 고려대·이화여대·연세대가 아니라 처음 듣는 이름의 회사 소속이 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1년 뒤 계약이 끝났다고 거리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억울했다. 8년 전 고려대가 처음 노조를 만들고, 4년 전 연세대가, 그리고 지난해 이화여대가 노조를 세웠다.
“집에 가서 애나 봐.” 용역업체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업무규율을 감시하러 파견 보낸 남자 소장들의 겁박 중에 가장 듣기 싫은, 무서운 소리였다. 총무과로 달려갔다. “수십 년 일한 사람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내몰 수 있느냐”고 따졌다. 옆 동료의 손을 잡았다. 한 사람씩이 아니라 한꺼번에 몰려가니 총무과 선생님들도, 용역업체 간부들도 태도가 달라졌다. 뭔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을 따라 10원 단위로나마 오르고 있는 시간당 임금도 변화라면 변화다. 총무과에서 그들을 내몰던 ‘직원 선생님’들이 대화 상대로 맞아준다. 가끔 커피도 타준다.
이들이 노조 설립을 넘어 또 하나의 사건을 준비하고 있다. 홍익대의 본관 점거 파업이 연일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을 때 민주노총 공공노조 아래로 뭉친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의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분회들은 각각의 용역업체 9곳과 함께 교섭을 벌이고 있었다. 5개월 동안 12차례가 진행됐다. “들어먹지 않더라니까.”(이영숙 고려대 분회장) 결국 지난 3월8일 경고 파업으로 이어졌다.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달라”며 그들이 요구한 것은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인 시급 5180원이다. 업체는 여전히 꿈쩍하지 않는다. 학교는 “우리가 할 일은 다 하고 있다”며 뒤로 물러선다.
3월10일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의 분회장을 만났다. 청소노동자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도 대담에 함께했다. 이날은 13차 교섭이 예정돼 있었다. 대담은 중구난방, 야단법석이었다.
홍희덕 의원(이하 홍 의원) = 8일 하루 경고 파업을 하셨다.
이영숙 고려대 분회장(이하 고려대) = 학교별로 90%가 넘는 참석률로 파업하긴 했는데, 학교에서는 이렇다 할 대응이 없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식이다. 여전히 힘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대화가 안 된다. 그러니 하루 파업해서는 되는 게 없다고 노조원들이 말한다. 똥이 넘어가야 학교가 눈길을 줄 텐데, 하루라 그냥 봐줄 만했던 것이다.
김경순 연세대 분회장(이하 연세대) = 오히려 더 힘들다. 하루 종일 더러워진 것을 다음날 곱으로 치워야 하니까. 소장이 윽박지르면서 원대복귀하라고 할 정도로 파업을 우습게 봤다. 실제로 한 아줌마가 학교에 일하러 나갔다. “파업할 때는 일하라고 하는 것 아니에요,” 조용히 말했더니 소장이 자기도 남자라고, 목소리 키우면서 “파업이고 뭐고 일 시키는 것은 내 권한”이라고 고함을 쳤다. 어차피 소장도 용역회사 사람이고, 비정규직인데. 참…, 답답했다. 물론 우리 아줌마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총무과로 몰려갔고 소장은 줄행랑을 쳤다. (일동 웃음)
신복기 이화여대 분회장(이하 이화여대) = 우리 학교는 기계·전기 쪽 남자 직원들 시켜서 화장실은 비웠더라. 그러면서 다들 우리를 우습게 본 것 같다. 총무과 미화 담당 선생이 그랬다.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해야겠느냐”고. 저쪽에서도 각오하고 있다고 준비하고 있다고 그러더라.
곰팡이 핀 계단 밑에서 두 끼 해결
원청과 하청의 관리자들은 남자와 여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안에서의 관리직과 일반직 등으로 관계를 갈라 반목하고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럴수록 청소·경비 노동자 860명은 더 단단히 뭉쳤다. “하루로 안 될 것 같다”는 말에 모두 공감했다. “일하시기는 좀 어떻습니까.” 홍 의원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는 쏟아졌다.
고려대 = 최저임금 4320원(시급) 받아서 왕복 교통비 빼고 두 끼니를 먹어야 하니 도시락 두 개 싸오는 돈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다들 5시까지 나온다. 근로기준에 6시 출근이지만 그 시간에 나오면 9시 안에 자기 구역 안의 강의실, 화장실을 모두 청소할 수 없다. 그렇게 출퇴근하는 280명 중에 가장의 수가 200명을 넘는다. 남편은 은퇴한 나이고. 할 일은 없고.
연세대 = 내가 대학에서 청소를 시작한 게 5년 전인데, 일이 늘어나기만 한다. 사람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급을 50원, 100원씩 올리면서 5층 건물에서 두 명 일하던 것을 한 명으로 줄이는 식으로 줄여갔다. 700평 건물, 500평 건물을 혼자 하는 사람도 있다. 5층짜리 작은 건물은 기본이다.
이화여대 = 우리는 고려대나 연세대에 비해 일하는 환경이 많이 열악하다. 휴게실이 거의 없어 쉴 수가 없다. 학생과 교수들이 잘 모르는 맨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아래에 공간을 만들어 쓴다. 물론 쉬라고 해도 오래 쉴 수도 없다. 창문이 없어 곰팡이 냄새가 올라와 오래 있지 못한다. 거기서 두 끼를 먹는다. 거기서 옷을 갈아입기도 하는데, 물론 일어서지는 못할 정도다. 그나마 오래된 건물은 그런 공간이라도 있는데 새 건물은 없다. 10명 정도가 배관이 지나는 기계실 안 곳곳에서 쉰다.
이숙희 홍익대 분회장(이하 홍익대) = 내 방(휴게실)도 계단 밑이다. 먹을 걸 두고 나올 수가 없다. 두고 나오면 쥐가 금세 파먹는다. 하수구 배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비 오는 날에는 계단에서 물이 떨어져 우산을 받쳐놓기도 한다. 그곳에서 6년을 지냈다.
파트타임은 한달 37만원, 차비 빼면 남는 게 없어대기업의 협찬을 받아 그 이름을 딴 건물은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서너 평의 휴게 공간도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이들이 자리잡는 곳은 지하 계단 밑이다. 그나마 2004년 미화·경비 노동자 가운데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한 고려대는 최근 쉴 곳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곳도 정해진 휴게 시간 이외에는 쓸 수 없다.
고려대 = 시간이 남으면 유리나 난간이라도 닦아야 한다. 쉬다가 들키면 바로 시말서를 쓴다. 소장이 오토바이 타고 돌면서 감시를 한다. 소장이래봐야 용역업체에서 보낸 비정규직인데. 식구들끼리 감시하고 이런 게 참 힘들다.
연세대 = 우리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못할 정도로 일할 구역이 넓으니까.
이화여대 = 우리는 파트타임이 문제다. 다른 학교는 거의 없는데 이화여대에만 있다. 10명당 한 명씩 있는 조장이 파트타임은 아예 앉지 못하게 한다. 파트타임이 60%(90명)다. 아침 7시에 나와 오전 11시까지 맡은 건물을 다 청소하고 가려면 숨 돌릴 틈도 없다. 나도 처음에는 파트타임이었다. 한 달에 37만원을 벌었는데, 차비 빼니까 정말 남는 게 없었다. 정수기에 물만 마시러 갔다 와도 조장한테 혼났다. 지금도 상황은 똑같다. 파트타임을 없애자고 하긴 하는데, 용역업체에서는 그렇다면 지금 두 사람 있는 건물을 한 사람으로 줄이는 식으로 종일근무 하도록 만들겠다고 해서 그것도 회사와 갈등 중이다.
홍익대 = 자꾸 말할수록 우리는 그나마 나은 상황처럼 비쳐진다. 쉬는 시간은 보장하는 편이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하)
놀 수가 없다, 먹고 살려면
파업, 근무환경 이야기만으로도 1시간이 훌쩍 넘어섰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홍 의원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분회장들은 홍 의원에게 “최저임금이 오히려 족쇄가 됐다”며 “최저임금만 주면 된다는 식”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이 교섭에서 요구하는 돈은 5180원으로, 우리나라 노동자 전체 평균임금의 절반에 해당한다.
홍 의원 = 최저임금이 있으니 그나마 현재의 임금이 지켜졌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다만 이것이 전체 노동자의 삶의 기준인 것처럼 비쳐지는 게 문제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고려대 = 지난해 최저임금 4110원 기준으로 90만원 정도를 받았다. 우리가 요구한 시간당 5180원을 받으면서 주 40시간을 일하면 한 달에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식구들을 건사하려면 이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나. 중·고등학생을 둔 아줌마도 있다. 그가 가장이다.
연세대 = 남편이랑 둘이 있어도 대부분 60대인 우리 나이에 은퇴한 남편은 벌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86만원 벌어서 뭘 어떻게 해먹겠나. 새벽에 나오고 저녁에 들어가면 남편 밥해먹일 기운도 없다. 4320원에서 5180원이면 860원 올리는 것인데, 9개 업체가 하나같이 입을 맞췄다. 4320원 최저임금 이상은 안 된다고. 결국 최종안으로 3개 대학 노조에서 내놓은 것은 비화직 4800원, 경비직 4660원이었는데, 이마저 거부했다.
홍익대 = 우리가 4450원으로 올렸으니 다들 쉽게 갈 줄 알았다. 이렇게 다들 힘들 줄은 몰랐다.
홍 의원 = 청소·경비 노동자가 스스로 노조를 만든 뒤 그래도 인격적인 처우나 근로조건은 나아졌다고 알고 있다. 그것은 큰 성과다. 전국에서 노조도 만들지 못하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소·경비 노동자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고려대 = 예전에는 총무과에 가면 여기 직원도 아닌데 왜 들어왔느냐면서 나가라고 밀어냈다. 지금은 그래도 말 상대를 해준다. 그나마 나아진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홍익대 = 그런데 경비하는 분들이 예전에는 빗자루를 들어줬는데 이제는 아니다. 업체가 바뀌면서 진짜 자기 일만 하겠다는 것이다. 처우가 나아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고려대 = 뭐니뭐니 해도 고용 불안이 제일 힘들다. 지난해 업체가 바뀌면서 총무과 점거를 했다. 고용승계를 요구했고 결국 답을 받아냈다. 학교에서도 계약서 만드는 데 참관했다.
연세대 =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5개 용역업체가 들어와 계약을 하니 그때그때 상황이 발생한다. 올해 초에도 갑자기 입찰공고가 나서 학교 쪽에 고용보장을 요구했다.
이화여대 = 계약 기간만 되면 소장이 계약을 받아내려면 잘해야 한다고 들들 볶는다.
홍 의원 = 결국은 원청(대학)이 고용보장 권한을 갖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 성동구청, 경기 성남시 등도 주차요원이나 청소 등 기능직들을 직접 고용으로 바꿨다. 전환하는 사례들이 생기고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공공 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없애도록 노력해보겠다.
고려대 = 원청에서는 시킬 때는 자기 아랫사람 부리듯 깐깐하게 굴면서 책임지라고 하면 뒤로 물러선다. 물론 그러라고 용역을 준 것이겠지만. 나는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을 주장하는 것처럼 고용보장도 좀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싶다. 일흔 돼도 정정한데, 정년 자체가 늘어야 한다. 놀 수가 없다. 먹고살려면.
일동 = 맞다.
외롭지 않은 어머니들의 파업
홍 의원은 “정년은 직군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 천천히 만들어가자”는 선에서 분회장들을 달랬다. 분회장들의 요구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 국회의원인 홍 의원의 정견을 넘어설 만큼 대담하고 절박했다.
대담 다음날인 3월10일 교섭은 결국 결렬됐다. 지난 교섭에서 용업업체들은 홍익대를 기준으로 시급 4450원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일부 업체는 덕성여대를 예로 들면서 4600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3월10일 교섭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을 맞춰 4320원 이상은 안 된다고 통보했다. 분회장들은 경고 파업의 영향이라고 해석했다.
“똥이 넘쳐야 무서운 줄 알지.” 분회별로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파업이 논의됐다. 이들에게 파업은 외롭지 않다. 지난 3월8일 파업에만 고려대 1만7625명, 연세대 1만2천여 명, 이화여대 1만 명 등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세 학교의 4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지지 서명을 했다. 또 다른 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860명의 조합원들은 이제 무서울 게 없다.
그럼에도 소장들에게 핍박받던 시절 그대로인 게 있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조근을 한다. 8시간 근로시간을 협약으로 못박았지만 30분, 1시간씩 먼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경기 의정부, 성남에서 굳이 새벽 4시에 나서는 조합원들을 분회장들은 말린다.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는 안 되니 반협박으로 “그렇게 하면 노조가 망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몸에 배서 그렇다”는 변명 아닌 변명이 돌아온다. 그러다 “강의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이 깨끗한 화장실에 앉아야 하지 않겠느냐” “강의실도 깨끗하면 공부하기 더 좋지 않겠느냐”고 좀 뻔하게 답한다. 이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세상의 풍경이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