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을 남녀 성대결 이슈로 축소하면서 기계적으로 ‘젠더 갈등’과 연관시키는 것은 이 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기사 데이터 분석 사이트 빅카인즈의 ‘연관어 분석’ 서비스를 이용해 지난 1년 동안 ‘젠더 갈등’과 관련해 자주 쓰인 단어를 추출한 결과를 보면, 상위 연관어 10개 가운데 6개가 여성 관련 단어다. 1위는 ‘여성들’이었으며, 워마드, 여성혐오, 성평등, 미투 운동, 성차별 등이 뒤를 이었다. 갈등의 또 다른 주체인 ‘남성들’은 10위였다. 젠더 갈등이라고는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갈등의 당사자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젠더 갈등 보도는 ‘여성 유발론’ 또는 ‘여성 책임론’이라는 성차별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
언론의 은밀한 ‘책임 전가’는 정치권으로 옮겨붙어 노골화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 요인 분석 및 대응 방안’ 현안보고서에서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은 87%에 달했으나 2018년 6월 혜화역 규탄 시위 이후 급하락 추세로 반전”됐다고 명시했다.(“페미니즘 무장한 20대 여성은 집단이기주의”라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 2019년 2월27일) 외환위기 사태(IMF) 이후 급속화한 저성장과 양극화의 결과인 청년 세대의 문제가 어느 순간 ‘이대남’(20대 남성)의 문제로 쪼그라들더니 이를 ‘20대 여성’이 뒤집어쓴 꼴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대통령 직속의 정책기획위원회에서는 어쩌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전근대의 관념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한 보고서가 생산되었을까. 미투 운동은 어쩌다 젠더 갈등의 덫에 걸린 것일까. 은 한겨레 안팎의 인력으로 ‘미투 빅데이터 분석팀’을 꾸려 한 달 넘게 지난해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미투 관련 기사 댓글 100만여 건을 분석했다. 결과를 보면 포털과 언론, 정치권의 합작으로 미투 운동이 성평등 이슈가 아닌 젠더 갈등 이슈로 변질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 미투 사건 16건(안희정 제외)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사용 단어 빈도수가 기준이 되는 ‘워드 클라우드’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자주 나온 단어 상위 30개 가운데 ‘쓰레기’가 포함된 사건이 12건이었다. 미투 사건이 여성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일상적 젠더 폭력의 맥락에서 인식되기보다 ‘쓰레기’ 같은 가해자가 저지른 돌출적인 성범죄로 인식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은, 이윤택, 박재동, 오달수, 조재현, 김기덕 등 성폭력의 내용이 언론에서 반복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된 경우 변태, 더럽다, 추하다, 나쁘다, 새끼, 놈, 악마 따위의 단어와 함께 쓰이며 가해자가 ‘악마화’된 경향이 드러난다. 좌파 비난 유형(고은, 박재동, 이윤택, 정봉주) 등 성폭력 사실과는 무관한 가해자의 특성을 비난하는 양상도 보인다. 양예원, 하일지, 김흥국 사건 등 진실공방 양상으로 전개된 사건은 가해자를 도덕, 윤리적으로 단죄하는 극단적인 반응이 발견되지 않았다. ‘용기’ ‘응원’ 등의 단어가 상위에 오른 피해자 응원 유형은 서지현(안태근), 엄지영(오달수), 심석희(조재범)뿐이었다.
왜 미투는 워마드와 접속했나가해자 악마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온라인상에서 미투는 성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이 아니라 미투 이전에도 있었던 여느 성폭력 사건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어졌다. ‘82년생 김지영’ ‘펜스룰’ ‘워마드’ ‘혜화역 시위’ ‘이수역 폭행 사건’ ‘래퍼 산이 여성혐오 논란’ 등 거시적인 맥락에서 #미투의 자장 속에 있는 이슈들이 미투와 분리되어 파편화된 채 소비된 현상과 맞닿아 있다. 미투 데이터 분석팀이 정한 미투 이슈 10개 가운데 무고, 2차 피해, 워마드를 제외한 7개 이슈의 자주 나온 단어 1위와 2위가 여성, 남성으로 ‘남녀 갈등 양상’을 보였다.
이 이슈가 20대가 주축이 된 젠더 갈등의 뿌리가 된 것일까. 김선기 청년연구자(연세대 미디어문화전공 박사과정)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 댓글을 쓰는 이들이 2030세대일 가능성이 크지만 지난해 등장한 새로운 반응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존에도 흔하게 나타나는 판에 박힌 반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온라인 공론장 자체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돼 있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미투 이전부터 기존 온라인 공론장에서 남성들로부터 ‘과격한 여성주의’ ‘여성우월주의’로 지목되며 공격받은 메갈리아, 워마드 등이 미투 운동과 접속한 것은 온라인 공간의 특성이 반영된 일로 보인다. 미투 이슈 10개 가운데 6개 이슈(82년생 김지영, 래퍼 산이, 워마드, 은하선, 이수역 폭행, 혜화역 시위)에서 페미, 페미니즘, 혐오, 한남 등 기존 온라인 젠더 갈등에서 단골로 쓰인 말이 주로 쓰였다. 혜화역 시위는 여기에 메갈, 워마드, 일베가 같이 쓰였으며, 미투라는 말은 없었다.
왜 네이버는 워마드를 편애했나미투 데이터 분석팀이 댓글 분석 대상으로 삼은 네이버 기사 2347여 건을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지난해 미투 국면에서 온라인 공간의 젠더 갈등이 포털을 중심으로 증폭된 점이다.
미투 국면에서 네이버는 워마드 기사를 ‘편애’했다. 이번 분석 팀이 선정한 미투 이슈 30여 건 가운데 상위 4위에 워마드(7.2%)가 올랐다. 2위 이윤택(9.2%), 3위 서지현(9.1%)과 별 차이 없는 수치다. 포털 다음과 대조하면 ‘네이버 요인’이 더욱 도드라진다. 다음은 미투 관련 배열 기사 4586여 건 가운데 워마드 관련 기사 배열 비중이 2.4%로 네이버의 3분의 1 수준이다. 네이버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된 미투 이슈가 워마드였다는 점은, 젠더 갈등이 촉발된 메커니즘에 좀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네이버 워마드 관련 배열 기사 가운데 절반이 넘는 66.5%가 ‘댓글 많은 기사’에 포함됐다. 이윤택(4.7%), 서지현(5.6%)의 댓글 많은 기사 비중에 견줘 10배가 넘는다. 앞서 살핀 기존 온라인 젠더 갈등을 재현한 6개 미투 이슈 관련 기사의 네이버 배열 총합은 전체 미투 기사의 21.0%로, 안희정 관련 기사(23.6%)에 근접했다.
왜 젠더 갈등 기사를 하태경이 장악했나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기사 데이터 분석 사이트 빅카인즈의 ‘연관어 분석’ 서비스를 통해 지난 1년(2018년2월~2019년2월) 젠더 갈등 관련 기사 583건을 분석해보면, 자주 나온 단어 2위(최고위원), 3위(지지율), 4위(문재인 대통령)가 모두 정치 관련 용어다. 2위에 오른 ‘최고위원’은 최근 젠더 이슈와 관련해 성대결적인 문제제기를 지속하고 있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과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와 여당이 주목하고 있는 20대 남성 이반 현상이 주로 젠더 갈등과 관련돼 보도됨을 보여준다. 김선기 연구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정치 플레이어들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약한 고리’를 찾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공격을 해도 문재인 정부는 끄떡없었는데,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에 기존 진보 진영이 유독 취약한 모습을 노출한 것이다. 최근의 젠더 갈등은 각각의 정치 세력이 반응하면서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본다.”
온라인의 오래된 젠더 갈등 담론이 정치 세력들이 이용하면서 본격화하는 것은 아닐까. 안효상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기존에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누렸던 우월적 지위가 박탈되어 가는 사회경제적 상황 속에서 갈등의 축이 전통적인 갈등인 계급과 분배의 문제에서 젠더 갈등으로 전이되는 양상은 분명해 보인다”면서도 “다만 특정 정치 세력이 의식적으로, 젠더 갈등으로 정치 갈등의 축을 옮기려는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왜 안희정 사건은 불륜 프레임에 갇혔나미투 데이터 분석팀은 자주 나온 단어 분석과 함께 ‘토픽 모델링’이라는 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안희정 사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분석해봤다. 토픽 모델링은 텍스트 기반 빅데이터를 컴퓨터가 분석해 주요 토픽(주제)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사람이 직접 토픽을 정해 분석하는 것에 견줘 텍스트의 본래 성격을 반영한 토픽을 끌어낼 수 있다.
2019년 2월까지 안희정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55만8025건에 토픽 수 20개를 지정해 분석한 결과, 가장 비중이 큰 토픽은 ‘불륜’ 토픽이었다. ‘토픽 모델링’ 기법은 도출된 토픽의 특성을 가장 많이 반영하고 있는 대표 댓글을 추출할 수 있는데, 2018년 3월(불륜 토픽 초기)과 2019년 2월(불륜 토픽 현재)의 대표 댓글을 보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권력형 성폭력의 특성에 대한 이해는 지난 한 해 한 치도 진전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미투 사건이 특정 가해자를 악마화시키는 것으로 소비되고, 젠더 갈등의 이슈로 치환된 결과는 초라하다. 미투의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은 결국 ‘불륜 프레임’에 갇혔다. 한 철학과 교수가 최근 언론에 기고한 글은 ‘불륜 프레임’의 결정판이다. 그는 “여성 일반에 대한 남성의 폭력만을 부각시키는 ‘미투’는 불륜이나 애정관계의 미묘함은 지우고, 쓸데없이 젠더 갈등을 증폭시킬 것”(피해자다운 피해자와 미투,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 2019년 2월27일치)이라고 질타했다. 온라인 공론장을 지배하고 있는 ‘불륜 프레임’이 버젓이 언론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젠더 갈등’과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 언론이 권력형 성폭력의 성차별 구조에 대한 보도보다 성폭행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빅카인즈의 ‘연관어 분석’ 서비스로 지난 1년(2018년 2월~2019년 2월) 동안 생산된 미투 기사 2만669건을 분석해보면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 상위 28개는 성폭력, 피해자, 가해자, 성추행, 성폭력, 성범죄 등으로 댓글에 자주 나오는 단어와 큰 차이가 없었다. 성평등, 성차별, 젠더, 권력, 위력 등과 같이 미투를 사회적 이슈로 확장하는 단어는 없었다.
안희정 사건도 마찬가지다. 권력형 성폭력,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대신 성폭행, 성폭력이라는 일반적인 용어가 압도적으로 쓰였다. 2심 유죄 선고가 있었던 올 2월의 경우 ‘미투 운동’이 자주 나온 용어에서 아예 사라졌다. 이는 미투 데이터 분석팀이 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한 결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2018년 기사에서 도드라졌던 ‘미투’는 2019년 항소심 선고를 계기로 ‘불륜’으로 대체된다.
미투 빅데이터 분석팀서규석 한겨레 미디어랩부(웹스크래핑)
김태권 작가(워드 클라우드)
권오성 한겨레 디지털기획팀(토픽 모델링)
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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