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진통제로 자해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자해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성인이 된 뒤에도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행히 자기만의 건강한 방법을 찾아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회 제목이 ‘자해를 멈춘 사람들’로 결정된 배경이다.
자해를 멈춘 사람 중에는 특히 자신이 겪은 아픔과 괜찮아지기까지 과정을 적극적으로 나누려는 선의를 가진 이가 많았다. 그들을 ‘한때 자해했던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배척할지, 아니면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 혹은 ‘동료 전문가’(Peer Specialist)로 인정하고 그들이 내민 손을 붙잡을지는 한국 사회의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에 따라 향후 한국 사회가 마련할 자해 대책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사진이 붙어 있다.
“다른 사람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얘기예요. 제가 자해했다는 걸 숨길 생각 없어요. 오히려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자랑스러울 거 같아요. 자해하는 사람이나, 자해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도움 될 수 있다는 게.”
고교 2학년 김빈(18·가명)은 지난 10월13일 실명 인터뷰를 고집했다. 가명을 쓰기로 한 건 의 설득이었다. 정신건강 문제 전반에 대한 편견이 깊은 한국 사회다. 아직 성인이 아닌 빈에게 만에 하나 피해가 갈까 걱정이 앞섰다. 빈을 병원에 데려갈 때도 행여 아들 장래에 누가 될까 “의사에게 ‘진료 기록 안 남는 거 맞느냐’고 끝없이 물었다”(빈의 말)는 어머니의 마음도 배려했다. 대신 빈에게 약속했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훗날 디지털 기사에 다시 빈의 진짜 이름을 넣어주겠노라고.
빈이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빈은 그것을 “희망”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굳이 정의하지 않았어도 자해하는 아이들과 부모에겐 비관에 맞설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험담이었다. 빈 역시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자해를 했다. 중3 겨울방학 때 처음 병원을 찾은 뒤 2년간 4명에게서 “허술하고 부실한”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그사이 자해는 변하지 않을 습관처럼 굳어갔다. 학교 상담교사의 소개로 별 기대 없이 찾은 병원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다섯 번째 상담사를 만난 지 4개월, 빈의 자해는 잦아들었다. 은 6~7년간 지속된 빈의 자해가 4개월 만에 호전된 배경을 알고 싶었다. 빈의 생각을 전하는 데 충실하되, 이해를 돕기 위해 빈의 ‘다섯 번째 상담사’ 문현호(우리동네정신건강연구소, 소리와 건강연구소 초록문) 선생님의 설명을 보탰다. 이하 분홍 바탕 글은 문 선생님의 설명이다.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외아들이라 부모님 기대가 컸어요. 성적 스트레스가 심했죠. 시험 몇 개 틀리면 부모님이 물건 던지고 부수고. 2~3학년 때 게임기 같은 아끼는 물건을 물에 집어넣는다고 하시고. 사소한 일이지만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초3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부모님은 의사가 돼야 성공한다고 하셨어요. 맞을까봐 무서워서 공부하긴 했는데 ‘이걸 왜 해야 하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나’ 싶었죠. 부모님한테 힘들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또 죽고 싶냐’며 엄살이라고 혼내셨죠. 초등 4~5학년 때부터 자해인지도 모르고 벽에다 머리를 찧었어요. 부모님은 중3 때까지 모르셨고요.”
“사소한 것도 걱정하고 혼자 고민하는 버릇이 있었고 겁이 많았어요. 우울할 때 정말 여러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뭐가 문젤까, 내가 힘든 이유가 뭘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보면 원인이 제가 되더라고요. 더러 남을 탓하거나 남들한테 까칠하게 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저 자신한테로 화살이 향해요. 죄지은 것 같고 벌 받아 마땅한 것 같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없고. 오롯이 내 잘못이고 남들한테 민폐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겨요. 정작 피해 주지 말아야 하는 일엔 신경 안 쓰고, 제가 의식하는 것만 골몰하게 돼요. 남들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제 옷 색깔이라든가…. 말도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책하면서 최악의 상황만 생각하죠. 뭔가 머릿속으로 불안하고 잠도 못 잘 것 같고 생각이 복잡할 때 자해를 하면, 멍해지면서 다 잊을 수 있었어요. 머릿속을 비우려고 어떤 사람은 명상을 하고 어떤 사람은 취미생활을 하지만 저는 자해를 한 거예요.”
“5~6학년 땐 왕따도 당했어요. 면역력이 좋지 않아서 이곳저곳 자주 아프고 가만히 앉아서 그림만 그리니 살이 찌더라고요. 친구들한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진 못했던 거 같아요. 놀리거나 다 같이 저를 따돌리거나 그랬죠. 초등학교 시절은 별로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펜이나 연필로 팔다리를 찍거나 칼로 긋거나. 긋는 건 중2 때 처음 했어요. 처음엔 안 그랬는데 나중엔 피를 내지 않으면 진정이 안 됐어요. 정말 우울하고 복잡할 때, 처음에는 감정을 표출할 수단이었다가, 횟수가 잦아지면서 습관이 되더라고요. 조금만 긴장하면 긋게 되고. 처음엔 베이는 거랑 느낌이 똑같은데, 점점 아픈 데 무뎌지고 익숙해져요. 자해하는 사람한테 얼마나 상처가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왜’ 자해했는지 이유가 중요할 뿐이에요.”
“학교 상담이 원래 애들한테는 평가가 안 좋아요. 비밀을 유지해준다고 한 다음에 부모님한테 다 말해요. 엄마가 알고 ‘내가 안 해준 게 뭐냐’며 엄청 혼내고, 울고불고 하시니까 또 싸우게 됐어요. 그때를 되돌아보면 엄마가 저한테 했던 말 하나하나가 다 트라우마예요. 중3 겨울방학 때 처음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우울증 심하다’고 하니까 엄마가 ‘의사가 돌팔이’라며 안 믿었어요. ‘네가 뭐가 힘드냐, 힘든 거 자랑 아니니 숨기고 다녀라’ 그러셨죠. 옮긴 병원에서 약을 받았는데 엄마가 ‘검사 결과 틀렸다, 약 버려라’고 해서 약도 못 먹었어요.”
“자해하는 이의 주변 사람들은 위로해주는 역할이 중요해요. 근데 ‘내가 너를 걱정·위로해줬는데, 왜 너는 내 말을 안 듣냐, 왜 너는 노력하지 않고 계속 자해하느냐’고 섭섭해하고 화를 내죠. 변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노력의 기준을 변화로 보면 안 돼요. 제일 안 좋은 행동인데, 엄마가 집에 있는 날붙이(날이 있는 연장)를 다 없앴어요. 날카로운 건 어디든 있고 날카로운 거 없어도 맘만 먹으면 자해를 할 수 있어요. 자해를 멈추고 안 죽는 게 목적이 아니라, 팔 안 긋고 목 안 매어도 행복해지는 게 목적이 돼야 해요.”
“‘내가 널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로 시작하는 잔소리… 끝도 없죠. 그럼 자해하는 아이는 ‘부모님도 자기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 하고 배신감을 느껴요. ‘내 편은 세상에 없구나’ 싶어지는 거죠.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에 비유해보세요. 열심히 운동하다 피 흘릴 정도로 다쳤어요. 그걸 가지고 다그치면서 ‘너는 왜 그거 하나 너 혼자 못 고치냐, 너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주저앉아 있느냐’고 안 하잖아요. 자해를 억지로 막는 일만 안 해주면 좋겠어요.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나아요.”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1년 정도 다닌 병원에서 항우울제와 충동억제제를 처방받았어요. 정말 힘들 때 사흘치 약을 한꺼번에 털어넣고 학교에서 내내 잤어요. 어지럽고 속도 메스껍고. 정신과 선생님이니까 다그치시진 않았는데,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누구와 상담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요. 정말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상담사도 많아요. 전에 미술치료를 했는데 종이 하나 주고 아무거나 그리라고. 저는 이미 그 상담사가 다음에 뭘 물어볼지,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지도 다 알고 있었어요. ‘뭘 그렸냐, 왜 그랬냐, 네가 그린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으냐’ 같은 질문. 상담사가 ‘천천히 나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진짜로 그 말을 이해했는데 정작 상담사는 그 말을 책으로만 이해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제가 금방 나아지지 않자 부모님한테 ‘얘는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도 상담사였어요. 상담을 해주려면 무엇보다 제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제 눈도 안 마주치고 상담일지만 적는 상담사도 있어요. 진짜 저를 낫게 해주고 싶어서 상담해주는 건지,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상담하는 건지 다 느껴지죠. 상담은 많이 배워서 아는 것보다 내담자를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카페(우리가 꿈꾸는 동네) 벽면에 붙어 있는 응원 글귀들.
“처음엔 제가 우울한 원인들, 성적 문제나 고민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우울한 원인이 없어져도 우울한 거예요. 옛날에 우울했던 원인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금은 아무 일 없는데도 스트레스가 올라와요. ‘나는 왜 이걸로 스트레스를 받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니까 자괴감이 생기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잠시 우울은 잊을 수 있지만 완벽히 없앨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자기가 우울하고 힘들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첫 번째 단계라는 걸, 자해하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진짜 우울한 게 아니라 자기가 엄살 부리는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자괴감만 더 커져요. 그냥 ‘난 우울한 사람이구나’ 인정하면 병원에도 가고 상담도 받고 나아질 방법을 찾아보게 돼요. 저도 이유가 없는데 우울하니까 ‘아 내가 심각하구나’ 깨달았고, 그때부터 정신질환을 찾아봤어요. 제가 우울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자해에 의존하지 않고 조금씩 줄이게 돼요.”
“자해가 무작정 그만둬야 할 비행은 아닌 것 같아요. 나쁜 맘 먹고 비뚤어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힘들 때 나아지려고 하는 거니까요. 자해를 하는지 안 하는지보다 왜 하는지를 봐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뛰다가 다친 사람한테 ‘넘어지면 어떡하냐’고 안 하는 것처럼, 정말 힘들다면 일단 다그치기보단 도와주고 일으켜 세워줘야 해요. 다리 부러지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주는 문화도 필요하고요.”
김시영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성장학교 별 교장)
문현호 경기도 수원 우리동네정신건강연구소, 소리와 건강연구소 초록문
서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연구부장
신해나 위클래스 상담교사
안병은 경기도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원장(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MHK) 부대표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인희 조인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MHK) 대표
최지욱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가톨릭의대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연구소장)
황준원 강원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자해 청소년 도움받을 수 있는 곳
1) 청소년 위기 문자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
안드로이드 구글 플레이,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다 들어줄 개’ 앱 내려받기
카카오톡 ‘다 들어줄 개’ 플러스 친구 맺고 상담 가능
페이스북 메신저 ‘다 들어줄 개’로 상담 가능
1661-5004 번호로 문자 상담 가능
2) 24시간 전화 상담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
청소년 전화 1388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3) 공공 청소년 상담기관: 각 누리집에서 해당 지역 검색
전국 Wee센터 www.wee.go.kr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www.kyci.or.kr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료 상담 가능)
www.nmhc.or.kr
*성남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751-2445) www.withchild.or.kr
*고양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908-3567~8)
www.goyangwithus.co.kr
4) 의료기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kacap.or.kr에서 해당 지역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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