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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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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들어줄 개! 정말 다 들어주나요?

교육부 문자 상담 앱 ‘다 들어줄 개’…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 1기의 직설
등록 2018-11-24 07:01 수정 2020-05-02 19:29
10월20일 서울 동대문구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청소년 멘털 헬스 리더십 ‘스타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이 교육부 상담 앱 ‘다 들어줄 개’ 연구원들에게 자문해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10월20일 서울 동대문구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청소년 멘털 헬스 리더십 ‘스타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이 교육부 상담 앱 ‘다 들어줄 개’ 연구원들에게 자문해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미국 뉴욕에서만 1천여 명이 공공 부문에 고용돼 활동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는 당사자들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동료 전문가’ 제도다.

한국에서는 11월18일 처음으로 청소년 멘털 헬스 리더십 ‘스타 프로그램’(㈜첼린지투체인지, 멘탈헬스코리아 주관)을 통해 1기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 8명이 배출됐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 때부터 자해했던 중·고생 2명도 포함됐다. 10월20일 교육부 정책중점 연구소인 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연구소 관계자들이 스타 프로그램을 찾았다.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에게 교육부 학생 상담 앱 ‘다 들어줄 개’와 관련한 ‘눈높이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랬구나 화법’ 형식적

‘다 들어줄 개’는 직접 대면보다는 인터넷·모바일 소통에 익숙한 청소년을 배려해 교육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상담 앱이다. 교육계와 의학계에서 매우 선구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현실 청소년의 감각’으로 매섭게 취약점과 보완점을 지적했다. 청소년 정신건강 정책에 피어 스페셜리스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연구소에선 홍현주 소장 등 세 명이 참석했으나, 이하 연구소로 지칭한다.

가은(가명) 저희 실명 보호는 해주실 거죠?

연구소 그럼요. ‘다 들어줄 개’ 써보고 느낀 점을 얘기해주세요.

나은(가명) 방금 이용해봤는데요, 갤럭시 S6에선 앱 실행이 안 되더라고요.

연구소 아직 안 되는 기종이 많아서….

나은 상담 말투가 기계적이에요.

가은 상담글에서 ‘매뉴얼’이 느껴져요.

나은 살짝 고민 얘기하면, ‘아이고 우리 친구가 힘들었겠구나’ 이런 거…. ‘그랬구나’ 화법 쓰는 거 같아요.

연구소 상담받는 느낌을 못 받는다는 얘기군요.

금성(가명) 상담할 때 답변을 바로바로 해주면 좋겠어요, 질문과 답변 사이 시간이 너무 길어요.

은성(가명) 실제 대화처럼 빨리빨리 안 되는 게…(답답해요).

나은 상담할 때 10분 이상 채팅 안 하면 끝나잖아요. 실제로 위급한 상황에서 상담을 신청한 거면 10분이 넘어갈 수 있을 텐데요.

가은 10분 넘어서 다시 상담받을 때, 처음부터 설명을 다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지치죠. 일종의 트라우마 반복이에요. 그리고 상담해주시는 분들이 ‘힘들었겠구나’에서 그치면 안 돼요. 제가 공황장애가 있거든요. 그럼 트라우마를 진정시킬 수 있는 호흡법이라도 가르쳐주셔야 해요. 가정폭력 때문에 상담하는 아이라면 거주지 근처 보호소 위치를 가르쳐주신다거나… 아이들이 얻기 힘든 실질적인 정보를 가르쳐주세요. 공감이 형식적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해결책도 없으면 아이들 입장에선 앱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요.

연구소 저희는 우선 공감을 더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고, 실질적인 내용을 조언해주면 학생들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가은 한 사람이 상담하면 다른 사람들도 상담 내용을 다 볼 수가 있잖아요. 우울 감정이 있는 아이들끼리 게시판에 모여 ‘누가 누가 더 불행한가’ 불행을 전시하는 경쟁처럼 될까 걱정이에요. 실제로 카카오스토리나 인스타그램에서 그런 부분이 문제가 됐고요.

나은 솔직히 말하면, ‘다 들어줄 개’를 안 써본 사람이 그 앱을 쓰려면 (없는) 고민거리를 만들어내야 할 거예요.

연구소 저희도 고민이 많은 부분이에요. 앱 성격상 게시물 내용이 밝지는 않잖아요.

가은 힘든 건 힘든 거고, 순위를 매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영상이나 글귀라도 올려주세요.

‘어떻게 부를까요?’ 물어봐주세요

연구소 게시판에서 자살이나 자해 글을 보면, 학생들 입장에서 어떤 마음이 들어요? 공감? 안도감? 제가 외래 보는 아이들(외래 환자)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라도 좋은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크면 어쩌나 염려가 돼서요.

가은 가령 자살 카페 만들어서 애들끼리 모텔 가서 약 먹고 그러는 거는 자살을 결심하고 들어온 커뮤니티라서 그래요. ‘다 들어줄 개’는 모니터링을 하기 때문에 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라고 하실 거면 게시판이 순기능을 하죠. 일기장에 못한 말 쓰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잊어버릴 수 있는 걸로 인식되면 좋은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폭발적인 감정으로 올렸던 걸 나중에 보고 ‘내가 이랬구나? 근데 살아 있네?’ 현실감각을 돌아오게 하거든요.

연구소 게시판에서 학생이 ‘죽고 싶어요’ 같은 말 했을 때 가장 도움되는 답글은 뭘까요?

가은 ‘그렇게라도 살아줘서 고마워!’ 솔직히 ‘힘들었겠구나’는 짜증 나요. 특히 모든 질문에 그렇게 댓글을 달면요.

다은(가명) 억지로 공감하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상담할 때 ‘친구~’ ‘우리 친구~’ 부를 때 거리감을 주죠.

가은 ‘우리 친구 오늘도 많이 힘들었죠?’ 이런 거.

다은 차라리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물어보시든지.

연구소 우리 매뉴얼은 ‘어떻게 불러드릴까요?’인데요.

가은 해줄 말이 없을 땐 ‘지금 말주변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내일 학교 잘 다녀와요’라고 말해주는 게 오히려 나아요. 상담사가 고민하는 게 보이거든요.

연구소 답 없으면 섭섭한가요?

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심정으로 올린 거잖아요. 아무도 답을 안 달아주면 ‘답 달아주는 줄 알고 올렸는데’ 하면서 오히려 그 감정에 집착하게 되죠.

가은 오프라인 위클래스(학교 상담실)가 못하는 점을 보완해주는 게 ‘다 들어줄 개’ 앱의 가장 큰 장점이어야 하잖아요. 제 주변에 그런 친구가 많은데, 가입할 때 성별 보기 때문에 스트레스받기도 해요(개인정보란에서 남성·여성으로만 구분해 성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 또 가정폭력에서 스톡홀름증후군(인질이 범인에게 동조되는 병리적 심리현상)이나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그 사람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정신적 학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더니 ‘그게 뭐예요, 친구?’ 이런 답변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다문화·한부모 가정, 가정폭력·성폭력 경험이 있고 아이들에게 호응해줄 수 있는 지식을 가진 분이 상담했으면 좋겠어요.

연구소 인터넷과 모바일의 특성을 살려, 학교 상담실을 보완할 역할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나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익명성 보장. 상담실은 본인의 신상을 모두 까니까요(공개하니까요).

가은 앱 가입할 때 실명 쓰잖아요.

다은 회원 가입할 때 전화번호까지 다 적으라고 하잖아요. 익명성이 보장되길 원하는데, ‘보장되는 게 맞나?’ 의문이 들고 거리감이 느껴지죠.

다은 여기서 말실수했다가 잘못 엮일 수 있겠다 싶죠. 위로받고 싶어서 앱을 이용하는 건데, 잘못하면 (자해·자살 우려로) 경찰이 출동할 수 있으니까요.

나은 실제로 앱에 세 번 들어가면 경찰 출동하잖아요.

은성 로그인해서 상담할 수 있는 거랑 로그인 안 하고 간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거, 두 가지를 다 운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금성 시간·공간 제약 없이 아무 때나 상담해주는 거. 오프라인 상담을 받으려면 절차가 복잡하니까요.

연구원 이 앱 상담에서는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에요. 앱 상담이 어른들 생각에는 ‘도움되겠거니’ 했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서.

은성문자는 좀 기계적인 느낌이라 한계가 있어요. 보이스톡이나 스카이프로 통화한다거나 글자 대신 말로 상담할 수 있는 형식이 있으면 좋겠어요.

천차만별 청소년 문제 대응할 전문성 있나

연구소 어떻게 홍보하고 알려야 더 많은 청소년한테 알려질까요? 저희는 학교에 포스터 붙이기를 하고 있는데.

가은 일단 그 세기말적인 디자인부터… 제일 진입 장벽이 높아요. 홍보 영상도 디자인도… 힙한 40대 아저씨가 얘기하는 느낌이에요(ㅠㅠ). 그리고 아이돌 노래로 홍보하는 것도 좀… 애들끼리는 서로 자주 가는 커뮤니티 입소문 내는 게 효과적이지 연예인이 얘기한다고 실제로 그 앱을 사용하진 않아요.

금성캐릭터도 좀 보완해서 이모티콘을.

연구소 다섯 마리 멍멍이 (캐릭터가) 움직인다면?

가은 (절레절레) 애들은 차라리 성의 없이 그린 이모티콘을 좋아해요. 아님 미대 입시 준비하는 친구들한테 이모티콘 공모전 같은 걸 하시면, 미대 준비하는 애들이라도 이 앱을 한 번씩 해볼 거 아니에요.

연구소 저희가 친구들한테 유명한 유튜버 ‘꽈뚜룹’이랑 협업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은 꽈뚜룹이 (자해·자살 같은) 주제랑은 별로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꽈뚜룹은 ‘어그로’(도발적인 말·글로 관심을 유발하는 것)를 많이 끌고 재미를 유발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분이 이런 앱을 홍보하면 ‘그냥 홍보대사구나’ 하겠죠.

가은 차라리 ‘대도서관’은 유튜버 중에서도 약간 위키피디아 느낌이니까 괜찮아요.

연구소 유튜브가 홍보에 좋은 채널이긴 한데 앱 성격에 맞게 모델을 쓰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죠?

가은 네, 광고 맡기기 전에 부적절한 논란이 없는지도 좀 살펴보시고요. 얘는 괜찮았다, 이상한 짓은 안 한다, 덜 썩었다 싶은 모델로.

다은 ‘엥간했어~’ 이런 느낌! 입소문이 제일 효과 좋고 제일 빨라요. 여러 사람을 상담해주는 것보다 한명 한명을 신중하게 상담해주면 입소문이 빨리 퍼질 거예요.

나은 지하철에 홍보판 있잖아요, 10대들이 아이돌 생일 광고 확인하러 가보거든요, 거기에….

학교에서 홍보하면 부정적이랍니다

연구소 학교 밖으로?! 좋은 생각이네요.

다은 일단 학교 통해 홍보가 들어오면 부정적이거든요.

나은 제일 좋은 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광고.

다은 아냐, 못 믿어, 못 믿어~!

가은 믿고 거르는! 그래도 ‘다 들어줄 개’는 어른들이 최선을 다하신 게 보여요. 구글링으로 아이들이 쓰는 인터넷 언어 찾아보셨을 게 눈에 보여요(ㅠㅠ).

연구소 이번엔 ‘교육부 색깔’ 벗었나 했더니 아니었네요. (웃음)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멘탈헬스코리아는?


환자 아니다, 아픔의 전문가다


멘탈헬스코리아(MHK)는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만든 비영리단체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환자에서 소비자로 새롭게 규정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그들이 ‘아픔의 전문가’(피어 스페셜리스트·동료 전문가)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피어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할 수 있는 안정적인 체계를 만들고, 앱(COCONUT)과 웹을 통해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안착시키는 실험 중이다.
지난여름 중2와 고2 중에서 1기 스타 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했고, 지원자 52명 중 선정된 8명이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최용석 MHK 대표는 “1기 스타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이 자살·자해 예방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정신과 전문의들 앞에서 피어 스페셜리스트로서 발표도 했다”고 활동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에선 아직 의사와 환자를 위계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MHK 활동으로 한국이 공급자 중심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소비자 중심 서비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으로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도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다. 장은하 MHK 부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게 고작 옆 학교 정도였다면,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전례 없이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대”라며 “아픔의 경험이 오히려 아이들의 정체성 형성에 긍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자해 3부작’ 자문단(이하 가나다순)
김시영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성장학교 별 교장)
문현호 경기도 수원 우리동네정신건강연구소, 소리와 건강연구소 초록문
서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연구부장
신해나 위클래스 상담교사
안병은 경기도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원장(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MHK) 부대표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인희 조인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MHK) 대표
최지욱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가톨릭의대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연구소장)
황준원 강원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자해 청소년 도움받을 수 있는 곳


1) 청소년 위기 문자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
안드로이드 구글 플레이,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다 들어줄 개’ 앱 내려받기
카카오톡 ‘다 들어줄 개’ 플러스 친구 맺고 상담 가능
페이스북 메신저 ‘다 들어줄 개’로 상담 가능
1661-5004 번호로 문자 상담 가능

2) 24시간 전화 상담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
청소년 전화 1388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3) 공공 청소년 상담기관: 각 누리집에서 해당 지역 검색
전국 Wee센터 www.wee.go.kr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www.kyci.or.kr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료 상담 가능)
www.nmhc.or.kr
*성남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751-2445) www.withchild.or.kr
*고양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908-3567~8)
www.goyangwithus.co.kr

4) 의료기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kacap.or.kr에서 해당 지역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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