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엔 저항이 따른다. 저항이 없다면 그건 ‘나태한 혁신’이다. ‘문재인 대표 체제’가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뒤 생존을 위한 동아줄처럼 5월27일 출범시킨 것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다. 혁신위가 1~10차까지 공천 혁신안 등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당은 계파 간 대립으로 치달았다. 안철수 의원은 혁신의 방향이 틀렸다고 비판했고, 사실상 ‘식물대표’가 됐다고 판단한 문재인 대표는 ‘혁신안 통과 이후 대표 재신임 투표 카드’로 맞대응했다. 이 혼란의 한복판에 이제 혁신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있었다.
김진수 기자
그와의 인터뷰는 9월16일 저녁 8시부터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시작됐다. 이날 공천 혁신안 등을 최종 의결하는 당 중앙위원회가 끝난 뒤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이른바 비주류 의원들이 “중앙위에서의 공천 혁신안 처리가 이미 문 대표의 재신임 전초전 성격으로 변질됐다”며 중앙위 의결을 미루자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위에선 비주류 의원 6명만 퇴장한 채 박수로 혁신안이 통과됐다.
조 교수는 “(특정 계파가 인위적으로 공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시스템 공천 등 제도 혁신을 통해 이 당이 더 밑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안전망을 만들게 됐다”고 혁신위 활동을 자평했다. 그는 혁신위에 ‘제도 혁신’ 수준의 권한만 준 탓에 “당 내부의 불신 문화까지 해소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그는 새정치연합의 혼돈과 관련해 “문재인을 버려도, 문재인만으로도 (야권의) 내년 총선 승리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정치연합, 신당을 추진하는 천정배 세력, 정의당까지 아울러 야권의 큰 판을 새로 짜는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대통합이 없다면 총선 승리는 없다”고 했다.
이제 바닥을 쳤다고 본다. 이 당이 보여줄 것(혼란과 내분)은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공천 규칙 등) 당내 분쟁의 소지를 줄이는 시스템 공천과 같은 제도적 발판을 마련했다. 추락의 안전망이 생긴 거다. 권력투쟁이 벌어져 이 안전망까지 찢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혁신위는 난투극이 아니라 선수들을 링 위에 올리고, 글러브를 끼게 하고, 배 밑은 치지 않게 하는 규칙을 만든 것이다. 이 당의 역사에서 혁신안을 당헌·당규에 반영한 건 우리 혁신위가 유일하다.
혁신위의 활동이 (학점으로) ‘B 플러스’ 정도는 된다. 하지만 혁신위에 주어진 권한의 제약 때문에 내부의 불신 문화를 해소할 순 없었다. 아쉽고 걱정이 된다. 우리가 뼈대를 만들었으니, (승리를 위한) 근육·신경·혈관을 만드는 것은 정당의 몫이다. 정말 잘해주길 바란다.
가장 갑갑했던 건 공식 논의 절차가 열렸는데 이 절차를 인정하지 않거나, 논의 절차를 통해 결정돼도 그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종 결정이 나더라도 그 결정을 집행(실천)하지 않는다. 여기(새정치연합)는 결정이 나도 결정이 난 것이 아니다. 이걸 엎을 수 있다고 보는 거다. 과잉 정치주의다.
문재인 대표 등 당 지도부가 9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에서 참석한 모습. 한겨레 이정아 기자
혁신안 내용보다는 당내 권력투쟁 때문이다.
두 문제가 모두 섞여 있다. 대표라는 당권, 그 뒤에 있는 공천권이란 두 권력을 둘러싸고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 당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공천 분란이었다. 이걸 해결하려고 시스템 공천을 만들려 한 것이고,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그런 제도를 설계했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서로를 믿지 못한다. 강력한 불신의 문화가 존재하니 승복하지 못한다. 과거에 최고위원회에서 (공천) 담합을 하거나, 공천심사위원회 회의 때 쪽지를 들여보내 후보가 바뀌는 과정을 거치며 불신이 증폭돼왔다. 그런데 이번에 전략공천이든 비례후보 공천이든 계파의 장막에서 끄집어내 이를 열어젖혔다. (일부) 이해 당사자들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계파 수로는 비주류 쪽의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이 제일 큰 것 아닌가. 그런데 친노가 아닌 분들의 걱정과 불안은 문재인 체제에서 비선이 움직인다고 여기고 그 비선을 통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일부는 사실인 것 같고, 일부는 과장된 것 같다.
비주류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경선에서 당원들의 뜻대로라면 비주류의 누군가가 이겨야 하는데 당원은 아니지만 당 밖의 강력한 조직이 있는 ‘친노·친문(재인) 세력’이 국민참여 방식으로 동원돼 결과를 뒤엎는다는 생각이 강하다. (비주류 쪽은) 친노라고 불리는 집단의 (당 밖) 응집력이 패권을 행사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정치에선 선거에서 이겼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졌다. 이유를 막론하고 문 대표가 이끈 선거에서 진 것이다. 특히 새정치연합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에서 문 대표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내년 4월 총선에서 문재인을 버리고 총선 승리를 할 수 없다. 어쨌든 문재인이 강력한 대선 후보이고 강력한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까? 대체재가 마땅하지 않다. 그런데 문재인만으로도 총선 승리가 어렵다. 문재인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제안해 당헌·당규에 반영된 것처럼, 공천 관련 위원회와 각종 기구 구성이 마무리되면 그때부터 총선 승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만 나서는 모습을 보일 때 범야권 지지자들의 힘이 모일까? 아니다. 문 대표가 스스로 지위와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문 대표가 광폭의 통합 대지도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 기구가 뭔지는 정무적 판단을 하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게 연석회의이든, 비상대책위원회이든, 조기 선거대책위원이든. 김대중·노무현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사라진 시대다. 야권 지도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천정배 의원이 독자 신당으로 가겠지만, 그쪽과도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나의 희망은 정의당과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 대표가 하든, 다른 사람이 하든 현재 판을 뛰어넘는 대통합을 하지 않으면 총선 승리는 없다. 야권단일화 같은 연대 방식은 매우 낡았다. 내년 4월에 새정치연합, 천정배 신당, 정의당이 야권단일화 협상을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 머리가 아프고 나부터 짜증이 난다. 유권자는 얼마나 짜증이 날까.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이 꾸린) ‘정권 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국민연대엔 지금의 정의당도 포함돼 있었다. (정의당도 주장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와 같은 정치 개혁, 민생 복지 문제 등을 공동 강령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내 세력을 가진 것 외에도 국민적 열망과 울분과 짜증을 해결했다. 그리고 정치적 돌파를 위해 판을 새로 짜는 담대한 구상을 했다.
문 대표가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진 뒤 재신임을 물었으면 이런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시기적으로 늦은 느낌은 있다. 하지만 식물대표를 벗어나기 위해 재신임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재신임 투표 제안을) 비판할 순 있지만, (이 제안이) 불법도 아니니 철회하라고 할 순 없다고 보았다. 빨리 재신임 문제를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재신임 투표에서 문 대표가 인정받았다고 해서 ‘당신의 노선이 옳다, 당신만으로 총선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장한다’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문 대표가 당의 일부 그룹의 지도자로 계속 간다면 (대선 후보로서) 낙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질을 바꿔야 하다는 안 의원의 말은 맞다. 우린 인사권·재정권을 쥔 ‘박근혜 비대위’ 같은 권한이 없었다. 혁신위에 기대를 보낸 지지층들이 비판할 순 있지만 혁신위에 권한을 주지 않은 분(의원)들이 ‘혁신위가 왜 당 지지율을 못 올리냐’고 얘기하는 것은 의아하다. 안 의원 등 당의 의원들이 혁신위가 활동한 지난 3개월여간 (체질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나. 안 의원이 말한 3가지에 동의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공천 혁신안 외에, 민생복지정당을 당론으로 확정하라는 6차 혁신안이 내가 아끼는 내용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좌클릭·우클릭 같은 이념 대립이 계파 이익과 얽혀 있다. 좌클릭·우클릭 같은 이념 논쟁이 아니라 아래로 가는 ‘저클릭’을 해야 한다. 이제 민생복지로 경쟁해야 한다.
나도 인간이니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제도를 바꾸려고 하면 그런 공격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대비용이라고 본다. 지난 대선에선 국민의 절반(박근혜 지지자)으로부터 욕을 먹었다. 이제 새정치연합의 일부가 나를 싫어하게 됐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가 말했던 비난의 낙인을 새정치연합의 사람들이 하더라. 아, 참…, 흥미롭다.
광장, 그러니까 세상에 나아가 지식인으로서 정치적 발언은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의원 출마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약 100일간 혁신위 활동을 했으니 이제 여의도의 독을 빼려면 관악산(서울대)에 있어야 한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소년범 의혹’ 조진웅, 배우 은퇴 선언…“질책 겸허히 수용”

트럼프가 이겼다…대미 3500억불 투자 손해, 자동차관세 절감 효과 2배

박나래, 상해 등 혐의로 입건돼…매니저에 갑질 의혹

유시민 “통화·메시지 도청된다, 조선일보에 다 들어간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쿠팡 손배소 하루새 14명→3천명…“1인당 30만원” 간다

법원장들 ‘내란재판부 위헌’ 우려에 민주 “국민 겁박” 국힘 “귀기울여야”

‘갑질 의혹’ 박나래, 전 매니저들 공갈 혐의로 맞고소

‘쿠팡 외압 의혹’ 당사자, 상설특검 문 연 날 “폭로한 문지석 검사 처벌해달라”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5/53_17649329847862_20251205502464.jpg)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바다를 달리다 보면…어느새 숲이 되는 길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