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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클릭, 우클릭 아니라 ‘저클릭’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활동 마친 저녁 조국 교수 인터뷰…"3개월간 가장 답답했던 건 과잉정치주의, 대통합이 없다면 총선 승리는 없다"
등록 2015-09-23 15:37 수정 2020-05-03 04:28

혁신엔 저항이 따른다. 저항이 없다면 그건 ‘나태한 혁신’이다. ‘문재인 대표 체제’가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뒤 생존을 위한 동아줄처럼 5월27일 출범시킨 것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다. 혁신위가 1~10차까지 공천 혁신안 등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당은 계파 간 대립으로 치달았다. 안철수 의원은 혁신의 방향이 틀렸다고 비판했고, 사실상 ‘식물대표’가 됐다고 판단한 문재인 대표는 ‘혁신안 통과 이후 대표 재신임 투표 카드’로 맞대응했다. 이 혼란의 한복판에 이제 혁신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있었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새정치가 보여줄 혼란은 다 보여줬다”

그와의 인터뷰는 9월16일 저녁 8시부터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시작됐다. 이날 공천 혁신안 등을 최종 의결하는 당 중앙위원회가 끝난 뒤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이른바 비주류 의원들이 “중앙위에서의 공천 혁신안 처리가 이미 문 대표의 재신임 전초전 성격으로 변질됐다”며 중앙위 의결을 미루자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위에선 비주류 의원 6명만 퇴장한 채 박수로 혁신안이 통과됐다.

조 교수는 “(특정 계파가 인위적으로 공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시스템 공천 등 제도 혁신을 통해 이 당이 더 밑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안전망을 만들게 됐다”고 혁신위 활동을 자평했다. 그는 혁신위에 ‘제도 혁신’ 수준의 권한만 준 탓에 “당 내부의 불신 문화까지 해소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그는 새정치연합의 혼돈과 관련해 “문재인을 버려도, 문재인만으로도 (야권의) 내년 총선 승리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정치연합, 신당을 추진하는 천정배 세력, 정의당까지 아울러 야권의 큰 판을 새로 짜는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대통합이 없다면 총선 승리는 없다”고 했다.

혁신위에 들어올 때 ‘이 당은 천천히 죽어가는 것만 남았다’고 했다. 그 생각에 변화가 생겼나.

이제 바닥을 쳤다고 본다. 이 당이 보여줄 것(혼란과 내분)은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당 안팎에선 ‘바닥을 친 줄 알았는데, 지하 2층, 5층까지 내려가는 당’이라고 말한다.

(공천 규칙 등) 당내 분쟁의 소지를 줄이는 시스템 공천과 같은 제도적 발판을 마련했다. 추락의 안전망이 생긴 거다. 권력투쟁이 벌어져 이 안전망까지 찢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혁신위는 난투극이 아니라 선수들을 링 위에 올리고, 글러브를 끼게 하고, 배 밑은 치지 않게 하는 규칙을 만든 것이다. 이 당의 역사에서 혁신안을 당헌·당규에 반영한 건 우리 혁신위가 유일하다.

혁신위의 활동이 (학점으로) ‘B 플러스’ 정도는 된다. 하지만 혁신위에 주어진 권한의 제약 때문에 내부의 불신 문화를 해소할 순 없었다. 아쉽고 걱정이 된다. 우리가 뼈대를 만들었으니, (승리를 위한) 근육·신경·혈관을 만드는 것은 정당의 몫이다. 정말 잘해주길 바란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보니 무엇이 가장 문제이던가.

가장 갑갑했던 건 공식 논의 절차가 열렸는데 이 절차를 인정하지 않거나, 논의 절차를 통해 결정돼도 그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종 결정이 나더라도 그 결정을 집행(실천)하지 않는다. 여기(새정치연합)는 결정이 나도 결정이 난 것이 아니다. 이걸 엎을 수 있다고 보는 거다. 과잉 정치주의다.

문재인이 바뀌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까
문재인 대표 등 당 지도부가 9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에서 참석한 모습. 한겨레 이정아 기자

문재인 대표 등 당 지도부가 9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에서 참석한 모습. 한겨레 이정아 기자

   

혁신안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주류-비주류의 충돌이 심했다.

혁신안 내용보다는 당내 권력투쟁 때문이다.

문 대표가 혁신안 통과에 자신의 거취(재신임)를 걸면서 권력투쟁으로 비약했다고 비주류는 주장한다. 주류 쪽에선 비주류가 당 혁신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두 문제가 모두 섞여 있다. 대표라는 당권, 그 뒤에 있는 공천권이란 두 권력을 둘러싸고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 당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공천 분란이었다. 이걸 해결하려고 시스템 공천을 만들려 한 것이고,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그런 제도를 설계했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서로를 믿지 못한다. 강력한 불신의 문화가 존재하니 승복하지 못한다. 과거에 최고위원회에서 (공천) 담합을 하거나, 공천심사위원회 회의 때 쪽지를 들여보내 후보가 바뀌는 과정을 거치며 불신이 증폭돼왔다. 그런데 이번에 전략공천이든 비례후보 공천이든 계파의 장막에서 끄집어내 이를 열어젖혔다. (일부) 이해 당사자들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비주류에선 친노의 패권주의가 심각한 문제라고 얘기한다.

계파 수로는 비주류 쪽의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이 제일 큰 것 아닌가. 그런데 친노가 아닌 분들의 걱정과 불안은 문재인 체제에서 비선이 움직인다고 여기고 그 비선을 통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일부는 사실인 것 같고, 일부는 과장된 것 같다.

비주류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경선에서 당원들의 뜻대로라면 비주류의 누군가가 이겨야 하는데 당원은 아니지만 당 밖의 강력한 조직이 있는 ‘친노·친문(재인) 세력’이 국민참여 방식으로 동원돼 결과를 뒤엎는다는 생각이 강하다. (비주류 쪽은) 친노라고 불리는 집단의 (당 밖) 응집력이 패권을 행사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비주류 쪽에선 문재인 대표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며 사실상의 정계 은퇴를 얘기하는 분도 있다.

정치에선 선거에서 이겼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졌다. 이유를 막론하고 문 대표가 이끈 선거에서 진 것이다. 특히 새정치연합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에서 문 대표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내년 4월 총선에서 문재인을 버리고 총선 승리를 할 수 없다. 어쨌든 문재인이 강력한 대선 후보이고 강력한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까? 대체재가 마땅하지 않다. 그런데 문재인만으로도 총선 승리가 어렵다. 문재인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얼마나 짜증이 날까최근 “문 대표가 혁신안에 따른 공천 관련 기구 구성을 마무리지은 뒤 백의종군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이전에 문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인가.

혁신위가 제안해 당헌·당규에 반영된 것처럼, 공천 관련 위원회와 각종 기구 구성이 마무리되면 그때부터 총선 승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만 나서는 모습을 보일 때 범야권 지지자들의 힘이 모일까? 아니다. 문 대표가 스스로 지위와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문 대표가 광폭의 통합 대지도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 기구가 뭔지는 정무적 판단을 하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게 연석회의이든, 비상대책위원회이든, 조기 선거대책위원이든. 김대중·노무현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사라진 시대다. 야권 지도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등 야권 세력을 합치는 것이 쉽지 않다.

천정배 의원이 독자 신당으로 가겠지만, 그쪽과도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나의 희망은 정의당과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 대표가 하든, 다른 사람이 하든 현재 판을 뛰어넘는 대통합을 하지 않으면 총선 승리는 없다. 야권단일화 같은 연대 방식은 매우 낡았다. 내년 4월에 새정치연합, 천정배 신당, 정의당이 야권단일화 협상을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 머리가 아프고 나부터 짜증이 난다. 유권자는 얼마나 짜증이 날까.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이 꾸린) ‘정권 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국민연대엔 지금의 정의당도 포함돼 있었다. (정의당도 주장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와 같은 정치 개혁, 민생 복지 문제 등을 공동 강령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내 세력을 가진 것 외에도 국민적 열망과 울분과 짜증을 해결했다. 그리고 정치적 돌파를 위해 판을 새로 짜는 담대한 구상을 했다.

문 대표가 비주류의 반발에도 추석 이전에 자신의 거취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마무리짓자고 했다. 문 대표의 이런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문 대표가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진 뒤 재신임을 물었으면 이런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시기적으로 늦은 느낌은 있다. 하지만 식물대표를 벗어나기 위해 재신임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재신임 투표 제안을) 비판할 순 있지만, (이 제안이) 불법도 아니니 철회하라고 할 순 없다고 보았다. 빨리 재신임 문제를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재신임 투표에서 문 대표가 인정받았다고 해서 ‘당신의 노선이 옳다, 당신만으로 총선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장한다’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문 대표가 당의 일부 그룹의 지도자로 계속 간다면 (대선 후보로서) 낙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혁신위가 낡은 진보 청산, 부패 척결, 인재 영입과 같은 체질 혁신을 하지 않았다며 혁신이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체질을 바꿔야 하다는 안 의원의 말은 맞다. 우린 인사권·재정권을 쥔 ‘박근혜 비대위’ 같은 권한이 없었다. 혁신위에 기대를 보낸 지지층들이 비판할 순 있지만 혁신위에 권한을 주지 않은 분(의원)들이 ‘혁신위가 왜 당 지지율을 못 올리냐’고 얘기하는 것은 의아하다. 안 의원 등 당의 의원들이 혁신위가 활동한 지난 3개월여간 (체질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나. 안 의원이 말한 3가지에 동의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박근혜 지지자가 하던 비난을 새정치 사람들이…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공천 배제, 선출직 공직자평가위원회 구성, 신인과 청년·여성 정치인을 더 많이 진입시키기 위한 제도 마련 등 여러 혁신안을 발표했다. 가장 의미 있다고 보는 혁신안은 무엇인가.

공천 혁신안 외에, 민생복지정당을 당론으로 확정하라는 6차 혁신안이 내가 아끼는 내용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좌클릭·우클릭 같은 이념 대립이 계파 이익과 얽혀 있다. 좌클릭·우클릭 같은 이념 논쟁이 아니라 아래로 가는 ‘저클릭’을 해야 한다. 이제 민생복지로 경쟁해야 한다.

혁신위를 하며 조 교수는 ‘친노다, 친문이다, 문재인의 홍위병이다, 폴리페서(정치인 교수)는 학교로 돌아가라’는 비주류 쪽의 비판도 많이 받았다.

나도 인간이니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제도를 바꾸려고 하면 그런 공격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대비용이라고 본다. 지난 대선에선 국민의 절반(박근혜 지지자)으로부터 욕을 먹었다. 이제 새정치연합의 일부가 나를 싫어하게 됐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가 말했던 비난의 낙인을 새정치연합의 사람들이 하더라. 아, 참…, 흥미롭다.

여의도 정치에 다시 참여할 것인가.

광장, 그러니까 세상에 나아가 지식인으로서 정치적 발언은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의원 출마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약 100일간 혁신위 활동을 했으니 이제 여의도의 독을 빼려면 관악산(서울대)에 있어야 한다.

※ 조 교수는 인터뷰가 끝난 이후 며칠이 지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인터뷰 때는 조심스러워 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부산에 함께 출마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표와 안 의원(현재 지역구는 서울 노원병)이 차기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의 취약 지역인 영남권 승리를 위해 최전선에 함께 서 달라는 주문이다. 야권이 크게 통합하지 않거나, 동시에 새정치연합에서 책임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부터 희생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총선 승리는 어렵다는 것이 조 교수의 생각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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