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나도 놀고 싶어, 그러니 너도 와”

매주 금요일 국회 앞에서 각종 집회를 주도하는 SEALDs의 후쿠다 와카코 인터뷰
등록 2015-09-10 23:28 수정 2020-05-03 04:28

8월30일 일요일, 12만 명(주최자 집계)의 사람들이 일본 국회의사당(도쿄도 지요다구) 앞 찻길을 점거했다. 그곳에서 시위나 집회가 열리는 일은 드물지 않으나, 찻길이 점거된 건 60년 안보투쟁(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에 반대해 열린 대규모 집회) 이래 55년 만의 일이다. 의사당 앞 시위 현장의 맨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것은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 소속 대학생들이었다. 실즈는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안보 법안을 반대하기 위해 지난 5월 결성되었다. 결성 뒤 매주 금요일 국회 앞에서의 반대 시위와 각종 집회 등을 주최하고 있다.
‘특별한 운동가’ 아니라 ‘평범한 학생’이라서

지난 7월16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후쿠다 와카코. REUTERS

지난 7월16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후쿠다 와카코. REUTERS

실즈의 집회는 기존 학생운동이나 시민단체와 달리 랩이나 힙합에 맞춰 구호를 선창한다. 그 참신한 운동 모습이 동영상을 통해 퍼져 화제가 되었다. 8월30일 많은 이들이 모여든 것도 실즈의 몫이 크다. 구호를 선창하는 학생 중에 후쿠다 와카코(21·와코대학 4학년)의 쿨한 모습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

“안보 법안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에요. 전쟁을 포기하는 헌법 9조 위반인 겁니다. 그러니까 국회에서 아무리 신중하게 심의했다 한들, 여당이 열심히 설명한들, 허용될 수 없는 겁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헌법을 지키라는 것뿐입니다.”

실즈는 기존 학생단체와는 운영 방식이 다르다. 30명의 중심 멤버가 실즈를 운영하는데 대표자가 없다. 또 ‘반안보법’이란 이슈에 동참한다는 것 외에 정해진 방침이 없다. “일본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절대 바꾸면 안 된다는 멤버도 있어요. 이런저런 주장이 뒤섞여 공존하죠.”

실즈의 특징에 대해 와카코는 ‘일상 속의 운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운동을 생활의 중심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는 거예요. 친구들에게 참가를 호소할 때도 ‘나도 시위보단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지금은 이걸 안 할 수 없어. 그러니까 너도 와’ 이런 식이죠. 집회 뒤 2차는 클럽에서 하기도 해요. 우리가 ‘특별한 운동가’가 아니라 ‘평범한 학생’이니까 사람들을 많이 동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표명하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비밀보호법 제정 보도를 접했을 때, 이걸 통과시키면 말을 안 하는 게 좋다가 아니라 아예 말을 하면 안 되는 사회가 돼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죠.”

구호는 멤버가 모여 미리 결정한다. 일반 참가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내용으로. 미국의 오큐파이(점거) 운동에서 본뜨기도 했다. 선창은 랩을 주로 하는데 가수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담당한다. 클럽 문화에 익숙한 와카코도 이 중 하나가 되었다. 랩은 프로 뮤지션한테 배우기도 한다. 그가 전하는 노하우는 이렇다. “리듬에 맞추면서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발음 등 특유의 기술을 살리면 더욱 효과가 있어요.”

와카코가 운동에 나선 계기는 2014년 12월부터 시행된 특정비밀보호법(안전보장과 관련된 정보를 특정하고 그 유출을 위법한 행위로 정한 법률)을 국회에서 심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정비밀보호법이 통과되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국회 앞의 ‘자리잡고 앉기’ 집회에 참가했어요. 난생처음 국회 앞에 갔죠. 참가자는 거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었지만 조금씩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대학생들과 만나게 되었고, 비밀보호법에 반대하는 ‘SASPAL’이라는 집단을 만들었어요. 그것이 현재 실즈의 모체입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징병’

집회에 참여한 것은 중학교 때의 경험도 한몫했으리라. 1998년 일본 공립학교에서는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 제창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그가 다닌 중학교에는 입학식 등 행사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는 것을 거부한 선생이 있었다. 신앙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던 선생은 정직 처분을 받은 뒤 교문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그때 1인시위를 하는 선생님 앞에서 ‘돌았네’ ‘바보 아냐’라며 대놓고 시비 거는 친구가 적지 않았어요. 저는 아무것도 못하면서도 공포심을 느꼈어요. 아,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표명하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말을 하기보다 안 하는 게 좋은 풍조가 정말 무서웠죠. 비밀보호법과 관련된 보도를 접했을 때, 이걸 통과시키면 말을 안 하는 게 좋다가 아니라 아예 말을 하면 안 되는 사회가 돼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죠.”

직접 행동하면서 비밀보호법에 반대하는 의견, 정치에 대한 의문 등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리자 친구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너 최근에 왜 그래’ 그런 말도 많이 들었고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을 안 해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안보 법안이 이슈가 되면서 주변의 반응이 바뀌었다. “‘네 페북은 그냥 지나쳤었는데 최근에는 읽고 있어. 요즘 나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라고 하는 거예요. 근 5~6년 만에 국회 앞에서 만난 친구도 있어요. 제가 집회에서 연설을 할 때는 초·중·고 동창들한테 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친구들이 많이 왔어요. 두세 번 말을 나누었을까 싶은 친구도 있었어요.”

실즈가 반안보집회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에 대해, 보수파들은 ‘안보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바로 전쟁이 일어나는 줄 아냐? 니들이 당장 전쟁터에 끌려가나?’ 하고 조롱한다. 와카코는 여기에 ‘경제적 징병’을 화두로 끄집어낸다. “미국에는 징병제도가 없지만 경제적 이유로 군대에 들어가는 젊은이가 적지 않습니다. 일본이 참전하게 되면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실제 한 선배는 장학금을 반환하기 위해 자위대에 들어갔어요. 제 주변에는 장학금을 받는 친구가 적지 않습니다.”

경제 불황으로 장학금을 대출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문부과학성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대여식 장학금’ 수급자는 1998년 50만 명이었지만 2014년 141만 명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일본의 장학금 제도는 대다수가 ‘대여’ 형식이다. 즉, 졸업한 뒤 반환을 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 값비싼 이자가 붙는다.

“사죄가 필요 없다 판단하는 건 피해자”

지난 8월 아베 신조 총리가 담화를 통해 과거사와 관련해 “미래 세대는 사죄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표명한 것에 대해 와카코는 트위터로 이런 의견을 올렸다. “더 이상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건 피해를 입은 쪽의 몫이다. 진심으로 미래 세대에게 사죄를 시키고 싶지 않다면, 우선 당신의 세대가 피해를 입은 쪽이 충분하다고 할 때까지 사죄하시라.”

“엄청난 악플이 올라왔어요. 하지만 과거 청산이란 돈이나 정치인들 사이에 오가는 종이 한 장으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에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증오표현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사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운동을 하면서 와카코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실감하게 됐다. 남학생과 같은 일을 해도 여학생만 외모·복장 등이 일일이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다.

여성 문제를 비롯해 현장에서 생긴 궁금증이 많아 책으로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있다. 내년이면 학교를 졸업하는 와카코는 해외에 나가서 여성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일본의 미래도 자신의 미래도.

도쿄(일본)=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