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은 통합진보당 창당에 합류하지 않은 옛 진보신당 잔류파와 사회당이 합쳐진 당이다. 지난 1월30일 선출된 나경채 대표의 등장은 노동당과 진보세력에 큰 변화를 예고한다. 그가 흩어진 진보의 결집을 주장하며 대표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정의당 등과 같이 진보 재편을 논의하는 ‘진보혁신회의’의 참여를 유보했던 노동당에서 ‘통합’의 목소리가 힘을 받은 것이다. 나 대표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노동당이 지난해 가을 이후 중단된 진보 결집의 흐름을 책임 있게 완수해야 한다. 오는 8~9월 이내에 결집과 관련한 눈에 띄는 성취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악구의원 출신인 그는 1973년생의 젊은 대표다. 나 대표에 대한 인터뷰는 청년 당원 박자민(29) 노동당 성정치위원장이 진행했다. 박 위원장은 “진보신당 소속인 레즈비언 최현숙씨의 총선 출마(2008년)를 보고,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 해결에 나선 진보신당 당원이 된 뒤 노동당 당원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언론이 진보 진영의 몰락·대위기라고 했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득표율이 전체의 9%대였다. 진보 진영의 분열 상태를 알면서도 9%의 지지를 보낸 것은 진보정치가 아니면 성장, 기업 친화, 신자유주의 중심의 정치가 만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노동 친화 정책을 보고 싶다는 유권자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4개로 쪼개져 그 9%를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진보가 책임을 지고 진보정치의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진보정치 세력)는 진보정당들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4개 진보정당의 핵심 사상·가치의 차이를 서술하라는 시험문제가 나온다면 40점 이상 맞는 국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정치는 노동 대중과 유리되면서 대중성의 위기가 왔다. 민주노총에 의존한 결과로 정규직·대공장·남성 노동자를 제외한 비정규직·여성 노동자 등과 유리됐다. 진보정당의 지역조직도 주민들의 손톱 밑 가시를 빼는 일을 방기하면서 지역주민과 유리됐다. 이런 가운데 당 내부의 정파적 문제가 대두되고 분열로 이어졌다. 그래서 당대표 선거에서 진보 결집을 위한 5대 기준(다양한 진보적 사상과 노선이 경쟁하며 상호 발전을 촉진하는 당, 노동정치 혁신으로 미조직 노동자와 결합하는 당, 지역 풀뿌리 활동에 집중해 대중적 토대를 확고히 하는 당 등 5가지)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수많은 ‘장그래’들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는 것이 (진보 결집 세력의 기준으로) 중요하다.
진보의 통합은 처음이 아니다. 진보세력이 뭉쳐도 국민이 얼마나 신뢰를 보낼지 걱정이다. 감동이 느껴지는 결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어려운 질문이다. 진보 결집은 (이후에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 획득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자격증을 따는 건 지난하고 고생스러운 일이다. 진보 결집이라는 자격증을 따는 과정도 지난하고 감동적인 장면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보 결집 과정과 추진하는 사람들의 진심이 가감 없이 전달되면 (시민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마음으로는 부족하다. 진보 결집에 호응하는 세력이 ‘눈물대장정’과 같은 행동과 실천을 해야 한다. 국민이 눈물 흘리는 현장에 노동당·정의당, (정동영 전 장관 등이 모인) 국민모임이 함께 가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약속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롭게 혁신한 진보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천하의 노·심·조가 못한 걸 노동당이 할 것진보 결집의 한 축인 국민모임은 정통 진보정당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다. 국민모임이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 편에 설 것이란 신뢰를 보낼 만한 세력이라 보는가.최근 국민모임이 창당할 당의 정체성을 ‘장그래당, 세금혁명당, 청년들의 당’으로 제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벗이 되겠다, 청년들의 당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노동당 당원들이 국민모임을 전통적 진보세력이라고 보기에 의구심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국민모임이 창당을 통해 구현하려는 당의 가치가 진보 진영이 지향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내년 총선까지 1년1개월 정도 남았다. 결집 시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큰 선거가 없는 올해는 진보 결집의 골든타임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세력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면 국민이 ‘당선되려고 저러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진보정당의) 뿌리가 튼튼하게, 깊이 내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집 논의가 올해를 넘기면 사실상 실패로 봐야 한다. 최종 완결은 아니어도 ‘가망성이 있구나, 또는 없구나’란 눈에 띄는 성취가 8~9월 이내까지 이뤄져야 한다. 논의가 길어지면 총선 직전에 (새 진보정당이) 급조될 수밖에 없다.
대표 선거 결선투표에서 진보 결집을 주장한 나 대표를 반대하는 비율이 46.6%였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갈 것인가.46%의 적잖은 당원들이 다른 선택을 한 건 당연하다. 또 53%가 위험하지만 (통합을) 해보자고 (나의) 손을 들어준 것도 중요하다. (통합에 관한) 최종 결정 단계에선 모든 당원들이 총투표 기회를 가질 것이다. 2011년 진보신당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 등과의 합당안을) 부결했지만 ‘노·심·조’(노회찬·심상정·조승수)가 탈당하고 합류한 과정을 본 당원들의 마음에 이번에도 (통합 과정에서 당내 분열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과 경계가 있다. 우리가 (통합을 위한) 당내 민주주의 절차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국민이 희망하는 길을 결정한다면 천하의 ‘노·심·조’도 하지 못한 민주적 절차를 통한 (통합의) 결정을 작은 노동당이 해내는 것 아니냐. 그럴 때 새로운 진보적 리더십도 형성될 수 있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나 대표가 활동해온 서울 관악구에 출마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당대표가 출마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그 요구가 일정하게 근거도 있다고 판단한다. 출마에 관한 내부 정리가 곧 될 것이다. 재·보궐 선거는 혁신하는 진보정치 세력,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진보정치 세력이 분열된 상태가 아니라, 단결·결집의 기운을 북돋우는 과정으로서 진행돼야 한다.
내가 진보정당 대표로는 최연소다.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세계적 추세다. 스페인의 (신생 좌파정당 포데모스를 이끄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36살이고,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대표이자 최근 총선에서 총리가 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41살이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이 정치에 뛰어들고, 정치가 청년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해야 한다.
진행 박자민 노동당 성정치위원장·정리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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