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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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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제’, 한국사회에 던질 메시지는…

8월14∼18일 한국에 머무르는 교황 프란치스코… 물신주의 비판하고 교회 쇄신 통한 사회개혁 주창,
그가 곪고 병든 이 사회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까
등록 2014-08-13 15:22 수정 2020-05-03 04:27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1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무개차를 탄 채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EPA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1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무개차를 탄 채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EPA 연합뉴스

로마의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자주 드는지 아세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저는 거리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지요. 아주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카예헤로’(callejero), 곧 ‘거리의 사제’였거든요.(2013년 7월28일, 이탈리아행 비행기 안에서)

‘거리의 사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14일 한국을 찾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50년 만에 탄생한 개혁 교황이다. 사제의 성추문과 교황청 은행 비리 등으로 위기에 빠진 천주교를 구하기 위해 바티칸에 모인 보수적인 추기경들은 2013년 남미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은행 책임자들을 사임시키는 등 교회를 개혁하고, 자본주의 등 현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을 비롯한 세계 언론에 ‘올해의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보수적인 교황청이 선택한 개혁 교황

국내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관심이 크다. 지난해 교황이 낸 권고문 은 한국 천주교 내에서는 이례적으로 7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화제가 된 책들의 판매량은 보통 2만 부 수준이다. 은 ‘자신의 안위만을 신경 쓰는 폐쇄적인 교회보다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지는’ 교회로의 개혁과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는 사람을 죽인다’는 사회 개혁을 이야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방한 기간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전쟁, 성장과 분배, 노동 등 교황이 말해온 주제들이 응축된 지역이다. 여기에 세월호 침몰 진상 규명 등 교황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이도 많다.

교황과 교황이 내놓을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해방신학자 김근수씨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김근수씨는 독일 마인츠대학 가톨릭신학과에서 공부한 뒤 1997년 군사독재 치하의 엘살바도르로 넘어가 남미 해방신학을 공부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해방신학자인 그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와 등장의 의미 등을 담은 책 를 출간했다.

군말 없이 이를 실천합시다. 해설하지 말고 실천합시다.( 271항)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가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폭발적이다.

=“검소함이나 배려 등은 전임 교황들과 큰 차이가 없다. 다른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 비판을 강하게 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교황이) 하고 있구나, 지도자들은 안 하는 말인데 하고 있구나’ 사람들이 생각한다. 세 번째는 가난한 사람들과 공감하고 있다. 구름 속, 하늘에 있는 높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처음 내놓은 권고문 은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244쪽으로 구성된 가운데 2장 1항 ‘현대사회가 직면한 몇 가지 도전과제’는 특히 큰 관심을 받았다. 이 글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이들은 여전히 낙수이론을 옹호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유시장이 촉진하는 경제성장은 궁극적으로 좀더 자유롭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 것이라 주장한다. 단 한 번도 사실로 입증된 바 없는 이러한 견해는, 현존 경제체제를 신성화하고,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선의를 맹목적으로 믿겠다는 조잡하고 순진한 발상일 뿐”이라고 주류 자본주의 이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어느 정치 지도자도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을 12억 명의 천주교인을 이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다.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다’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 자본주의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비판한 교황은 처음이다. 교회 밖에서, 학계에서도 (이를) 연구하는 것은 사회현상을 정확하게 (교황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해방신학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커진 것일까.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전 교황들의 37년 재임 기간에 해방신학자 100명 이상이 처벌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온 뒤 해방신학자들이 복권되기 시작했다.”

해방신학자 김근수씨가 지난 8월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교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낱낱이 밝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해방신학자 김근수씨가 지난 8월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교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낱낱이 밝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국 천주교에도 이런 흐름이 있나.

=“한국 천주교는 교황이 바뀌었는데도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보수가 주도한다. 정의구현사제단도 있지만 일부분이다. 민주화에 투신했던 사제들의 이미지가 투영되면서 (사람들이) 한국 천주교가 개혁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대부분은 개혁의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손을 씻어버리는 ‘빌라도의 역할’을 맡을 수 없습니다.(2013년 7월7일 이탈리아와 알바니아 예수회 학교 학생들과의 대화)

지난해 말 염수정 추기경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 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비판한 바 있다. 염수정 추기경은 올해 초 와의 인터뷰에서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을 두고 한 얘기가 아니었다. (당시 발언의 진의는) 연평도에서 희생된 분들이 있으니 그분들의 아픔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아픔을 같이해야 하니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발언과 같은) 그런 말은 삼가고 편가르기는 안 된다는 거였다”고 해명했다. 염 추기경 등 천주교는 경남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사제와 수녀들이 경찰과 한국전력 용역에 의해 억압을 당해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화려한 금목걸이 대신 소박한 은목걸이

-교황이 와서 메시지를 내놓는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

=“교황은 닷새 뒤 가버린다. 신도들이 깨어나야 한다. 이번 교황 방한이 우리가 깨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교황이 사제와 신도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인의 생각까지 바꿀 수 있나.

=“‘교회 밖으로 나가라’는 얘기는 개신교나 불교에도 요구하는 것이다. ‘교회도 절도 가난하라’는 것은 종교 내부 비판을 하는 것이다. 개신교나 불교도 개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상봉 주필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주필은 “교황이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세월호가 쟁점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억울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대를 호소할 게 분명하다. 교황의 발언을 통해 한 번 더 새기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교황이 어떤 것을 선호한다고 발언하면,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의 발언권이 커진다. (반대로) 정치적 비판을 하게 되면 (받는 이는) 당혹스러워지는 효과가 있다.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한 주필은 덧붙였다.

교황의 방한이 한국 천주교의 위세를 보여주고 신자를 모으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사람 곁으로 가자’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교황이 된 뒤에도 화려한 금목걸이 대신 소박한 은십자가 목걸이를 걸었다. 전용 식당이 아닌 공동식당에서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는다. 중고 소형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김근수씨는 로마에 가보면 성직자에게 필요한 제의와 도구를 파는 가게에서 저렴한 물품이 주로 팔리는 등 변화가 있다고 전했다.

노숙자가 하나 죽었다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가 10% 떨어졌다면 비극적 소식이 됩니다. 사람 한 명이 죽는 것은 아무런 뉴스가 안 되지만, 주가가 10% 떨어지면 비극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습니다.(2013년 6월5일 일반 알현)

용산·밀양·제주 ‘거리의 사제’들

‘거리의 사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16일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미사를 한 뒤, 8월18일 한국을 떠나 로마로 돌아간다. 교황이 거쳐간 곳과 나눈 메시지는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화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한국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거리의 사제’들이 있었다. ‘자본의 탐욕’인 재개발에 항의하다 철거민 5명 등이 숨진 용산에도, ‘평화의 섬’ 제주에 들어서는 해군기지를 반대한 강정에도, 핵발전소의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강제로 송전탑을 짓는 밀양에도, 함께하는 신부와 수녀들이 있었다.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을 만들자며 걷고 있는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 뒤에도 수많은 사제와 신부가 함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길은 교황을 우상화하는 대신, 한국 사회가 ‘거리의 사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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