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출렁이고 있다. 7월10일이면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운 지 꼬박 두 달이 된다. 반드시 총수의 공백 탓은 아니지만, 7월8일 발표할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실적은 예상보다 더 저조할 전망이다. 요즘 삼성 내부의 공기가 무거운 이유다. 바깥에서 몰아치는 압박도 점점 거세진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6월28일 ‘고 염호석씨의 뜻하지 않은 사망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유감을 표한다’고 발표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41일 동안 노숙농성을 벌인 끝에 받아낸 ‘애도문’이다. 비록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와 직접 교섭한 건 아니지만, 노조가 파업을 벌여 삼성 계열사나 협력업체와 임금·단체 협상을 맺은 건 처음이다. ‘무노조 삼성’의 76년 역사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또 다른 조짐</font></font>
지금 삼성을 둘러싸고 대체 무슨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바람은 앞으로 더한 너울을 몰고 올 것인가, 아니면 잠시 스쳐지나가고 말 것인가?
취재 결과,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이 깨질 수 있는 또 다른 조짐이 확인됐다. 노조를 조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부당노동행위’(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를 저지른 혐의로 삼성 관계자들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속노조 삼성에버랜드지회가 지난해 10월 노조원을 감시·미행한 회사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한 건과 관련해서다.
고용노동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수사 중인데 일부 고소 사실에 대해 혐의점을 잡은 것으로 안다. 검찰과 보완수사 등을 협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도 “미행을 ‘우연히 만난 것’이라고 하는 회사 쪽 주장 등에 대해 서울고용노동청에 추가 조사를 요구해놓은 상태다. (삼성에 대한 처벌 없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면 추가 조사 없이 그냥 끝냈을 거다. 올해를 넘기지 않고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라며 무혐의 처리하지 않을 것이란 속내를 비쳤다. 고용노동부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도 “수사가 막바지 단계까지 와 있다”고 밝혔다.
삼성은 지금까지 무노조 경영 방침과 관련해 사법 당국으로부터 처벌받은 적이 없다. 그동안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들을 삼성이 조직적으로 납치·감금·폭행했다는 의혹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회사 차원의 지시 혹은 공모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로 제재를 당하진 않았다. 고용노동부나 검찰은 오히려 삼성을 감싸고 돌았다. 그래서 작은 모래알 하나하나에 불과했던 몇몇 노동자는 ‘밟으면 꿈틀’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노조 설립을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고용노동부와 검찰로서도 삼성 처벌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법원이 이미 삼성에버랜드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여러 차례 내놨기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지회가 회사 쪽을 고소한 내용은 이렇다. ‘2011년 8월 조합원들이 에버랜드 직원들을 상대로 소식지를 배포하려는 걸 공공연하게 방해했다’ ‘2011년 7월 노조 설립 4일 뒤에 조합원에 대한 부당한 감사를 실시했고, 이런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등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노조 설립 이후 노조 임원들에 대해 무리한 형사고소를 진행하고, 유인물 배포 등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했다”며 삼성에버랜드의 조직적인 부당노동행위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삼성에버랜드지회 노조원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징계 취소 소송의 판결이다. 지난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폭로한 ‘S그룹 노사전략’이란 제목의 내부 문건도 이같은 부당노동행위의 유력한 증거가 됐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부당노동행위’ 어느 선까지 처벌하나</font></font>노조 쪽이 고소한 삼성에버랜드 관계자는 30여 명이다. 이건희 회장과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도 포함됐다. 어느 선까지 처벌받을 것인지가 핵심이다. 삼성에버랜드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누가 나가서 조사받았는지 등을 언급하긴 적절치 않다. 조사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앞서 노조 설립을 방해한 혐의로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 등 이마트 임직원을 기소한 바 있다. 이마트는 2012년 직원들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실과 노조원들의 주거지에 잠복시키며 노조 설립 가담자를 조직적으로 미행·감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최병렬 전 대표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대표들도 “노조에 가입하면 폐업한다”고 발언하는 등 노조 탈퇴를 압박한 혐의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서 수원지검으로 지난 4월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바 있다.
만약 삼성에버랜드가 처벌받는다면 이마트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 이어, 범삼성가의 76년 무노조 경영 철학에 또 한 번 제동이 걸리는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 내부적으로 변화 양상이 나타난 측면도 있겠지만, 우리도 삼성이랑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쪽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문제를) 잘 해결하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삼성이 왜 노조와의 팽팽한 대립 구도에서 한 발짝 물러섰는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정치권도 삼성을 압박하기 위해 움직였다.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은수미 의원 등은 지난 6월13일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함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을 비공개로 만난 데 이어, 사태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6월23일엔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을 직접 찾아가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커뮤니케이션팀장) 등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이들은 경찰이 고 염호석 양산센터분회장의 주검을 노조한테서 탈취해가는 과정에 삼성이 어떻게 개입했는지 등을 국정감사 때 따져묻겠다며 삼성을 압박했다.
삼성 쪽은 애초 “우리가 직접 노조와 교섭에 나서는 순간 위장도급,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노조가 그동안 “협력업체 대표는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애프터서비스(AS) 수리 기사들은 사실상 삼성전자서비스에서 협력업체에 불법파견한 노동자인 셈”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뒤 ‘불법파견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놨지만, 노조가 이에 반발해 삼성을 상대로 법원에 근로자지위소송을 내는 등 근본적인 논란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사장들이 경총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금속노조와 진행하던 교섭은 여러 차례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이번엔 정치권과 검찰 등이 원청인 삼성을 압박해 협상 타결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줄타면서 여러 시나리오를 재보는 단계”</font></font>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첫 임단협 체결 등으로 미세한 균열이 났다고 해서 당장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포기할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 노조가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가는 3세 경영 승계에서 걸림돌이라 사전에 털고 간다?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삼성 입장에선 지금이 위기 상황인데 가장 약한 고리를 내줄 리 없다는 거다. 그러다가 노조가 삼성그룹 안에 확산될지 누가 알겠나. 지금은 삼성이 줄타기를 하면서 여러 시나리오를 재보는 단계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교섭 과정을 잘 아는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말한다. 고용노동부의 고위 관계자도 “삼성은 원청이라는 이유로 협상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건으로) 삼성이 당장 크게 바뀐 건 없어 보인다. 여러 가지 주변 여건을 볼 때 빨리 털어버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 철학은 그리 쉽게 뿌리 뽑히거나 포기할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삼성이 지금까지와 달리 ‘선회’를 저울질한다는 징후가 몇 가지 보인다. 지난 1년여간 삼성전자서비스 문제 등을 놓고 삼성 쪽과 접촉해온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아직 삼성이 무노조 경영으로 선회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임단협 체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보면, 삼성 내부에서도 무노조 경영이 오래갈 수 없다고 판단하는 건 분명하다. 경영권 승계와 전반적인 경영전략의 검토와 맞물려 속도와 시기를 조절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삼성 임원 출신의 한 재계 인사도 최근 삼성 내부의 움직임과 관련해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백혈병 교섭에 이인용 사장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팀이 전면에 나선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이런 식의 대화나 협상은 인사팀이 주도해왔다. 이 사장 등 이재용 부회장 측근들을 그룹 미래전략실에서 빼내 삼성전자로 보냈다는 건,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재용 부회장을 보필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히라는 의미다.”
실제 지난 5월28일 삼성전자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과 5개월 만에 협상을 재개하는 자리엔 이인용 사장이 나왔다. 교섭단장은 백수현 커뮤니케이션팀 전무가 맡았다. 이전까지 실무 교섭 자리에는 인사팀만 나왔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식 사과 이후 교섭단에 커뮤니케이션팀이 보강되면서 협상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용상 바뀐 건 아니다. 삼성 쪽은 당장 협상에 참여하는 피해자 8명에 대해서만 보상을 논의하고 그 외의 피해자들은 별도 보상위원회를 설치해 이야기하자는 입장이라 우리의 요구안과 간극이 크다”고 말했다.
“투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그의 외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성이 이미지에 흠집이 나는 것에 점점 더 민감해하고 있다.” 지난 6월25일(현지시각) 인터넷판 헤드라인으로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를 다룬 미국 일간지 기사의 일부다. 이 매체는 삼성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씨 사례를 21장의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소개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으로 이슈가 확대되는 건 삼성의 처지에선 부담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리스크와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font></font>삼성이 요즘 들어 각종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경영 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7월8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7조2000억원, 매출액은 52조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4.5%, 9.5% 줄어들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을 8조원 안팎으로 예상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썩 나쁘지 않지만, 추세가 문제다. 삼성전자의 전체 영업이익에서 IM(IT+Mobile)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8%(2014년 1분기 기준)에 이른다. IM 부문이 사실상 삼성전자를 먹여살리는 기둥인 것이다. 그런데 2011년부터 가파르게 올라왔던 IM 부문 영업이익의 상승 추세가 2013년을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급감했다. 올 2분기 삼성전자 스마트폰 출하량은 7800만 대 안팎으로 1분기(8900만 대)보다 10% 이상 줄어들었다. 갤럭시 S5 판매가 신통치 않았던데다, 중저가 라인업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중국 제품에 추격당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환율 하락과 마케팅비 증가 등의 요인도 겹쳤다. 하반기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갤럭시노트4 등 신제품 출시가 예정돼 있지만, 애플이 올가을께 기존 제품보다 화면이 커진 아이폰6를 내놓는 등 경쟁은 더 치열해진 전망이다.
시장의 우려는 삼성전자 주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 5월 말 1주당 144만원대까지 올랐던 주가는 지난 7월1일 130만원대로 10% 가까이 떨어졌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 기업분석자료에서 “2분기 매출이 예상대로 전년보다 줄어든다면, 이는 2005년 2분기 이후 9년 만에 발생한 매출 감소다. 2014년 연간 예상 실적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와 같은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주가가 증권시장을 리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이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는 건, 삼성전자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2010년 삼성전자는 태양전지, 발광다이오드(LED), 2차전지, 의료기기, 바이오제약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해 세계 1위 브랜드로 올라선 것처럼, 새로운 분야에서도 ‘삼성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동차나 ‘e삼성’ 사업처럼 실패 사례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0년 말, 이건희 회장은 “5년, 10년 후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잠이 안 온다”며 계열사 사장들에게 ‘미래 한국의 먹거리’를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때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잠이 안 온다며 머리를 싸매고 있을지 모르겠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백혈병 피해·노동인권 문제 반성은 없어</font></font>삼성은 여러모로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그러나 삼성의 변화 속도는 아직 더디기만 하다. 변화 방향도 뚜렷이 보여주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펴냈다. 하지만 매년 그랬듯이 이번에도 백혈병 피해자나 노동인권 문제 등에 대한 반성이나 평가를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2014년 삼성은 아직도 1960년대 ‘무노조 경영’이란 낡고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 삼성은 수출만 많이 하고 직원들 월급만 많이 주는 기업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삼성전자서비스 노사 교섭 타결을 환영하는 은수미 의원실 논평) 삼성을 향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각계의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서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면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선비정신이 있었다. 기업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기업경영자는 자라나는 후손을 위해서라도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선비정신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앞장서서 구현해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1997) 17년 전에 말했던 기업(기업인)의 ‘의무’는 여전히 존재한다. 시대가 삼성,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곱씹어봐야 할 때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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