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도입돼 올해로 시행 60년째를 맞은 통상임금이 하반기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용자 쪽은 축소를, 노동자 쪽은 확대를 요구하는 가운데,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는 재계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노동법 권위자인 김지형 전 대법관(55·현 지평지성 고문변호사)은 통상임금을 운동선수의 연봉계약에 비유해 설명했다. “구단주가 프 로야구 선수와 연봉계약을 하면서 앞으로 1년간 팀 선수로 뛰어준다 면 연봉으로 얼마를 일단 주고, 타점이나 홈런 등 공격 포인트를 일정 수준 이상 올리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야구선수의 능력이나 성실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구단주가 운동의 대가로 미리 정해놓은 연봉, 그것이 바로 통상임금이다.”
<font color="#008ABD">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첫 도입 </font>1995년 12월 이후 ‘명칭이 무엇이든’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라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대법원이 한 결같이 유지한 이유다. 근속수당·식대보조비·승무수당·가족수당·복리후생적 수당 등 수많은 수당이 그렇게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다. 2012년 3월에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구의 시내버스회사인 금아리무진 소속 운전사 19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다. 통상임금은 각종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통상임금이 오르면 연장·야간·휴일 수당, 연차 유급휴가 수당, 산전후휴가 수당 등 각종 수당이 인상된다.
사용자 쪽은 “대법원이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노동자 쪽은 “우리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며 집단소송을 잇따라 내고 있다. 하지만 김 전 대법관은 “금아리무진 판례에서 통상임금에 대한 기존 법리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분석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프로구단주가 선수와 연봉계약을 한다고 치자. 1년간 뛰어주면 연봉으로 얼마를 일단 주고, 성적에 따라 일정 규모의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할 때, 선수의 능력이나 성실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선수 활동의 대가로 구단주가 미리 정해놓은 연봉이 통상임금이다.”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를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앞서 1996년 2월과 2007년 4월에 있었다. 둘 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2012년 3월 금아리무진 판례에서 통상임금이 된다는 판단이 나오자 사실상 대법원 판례가 변경된 것으로 일부에서 이해했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 지만 그건 오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임금은 기본급·수당·상여금으로 크게 나뉘는데, 상여금은 기본 적으로 보너스여야 한다. 덤으로 더 주겠다는 의미다. 당연히 통상 임금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기본급이 상여금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상여금이 정말 보너스인지, 이름 만 그럴 뿐 기본급이나 수당과 비슷한지 따져봐야 한다.
1996년과 2007년 대법원 판례의 상여금은 정말 보너스였다. 하지 만 금아리무진은 이름만 그렇지 ‘근속수당’과 비슷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근속수당처럼 경력이 쌓이면 상여금이 늘어나는 구조였다. 단체협약을 보면, ‘6개월 이상 근무하면 기본급의 350%, 3 년 이상이면 550%, 8년 이상이면 650%, 12년 이상이면 750%를 지급한다’고 돼 있었다. 둘째, 상여금 지급 당시에 퇴직했더라도 월별로 계산해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독특한 규정이다. 일반적으로 상여금은 지급일 현재 재직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또 실제로 일을 해야 한다. 직위해제되거나 휴직 상태면 상여금을 전액 지급받지 못한다는 게 통상적이다. 그러나 금아리무진의 ‘상여금 지급조건’은 그렇지 않았다. 퇴직하더라도 상여금을 챙겨줬다. 대법원은 상여금이란 이름과 달리 근속수당에 가깝다고 보고 통상임금이 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판례로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됐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앞으로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인가.“지금 대법원 판례 입장에선 노동자에게 유리한 결론만 나올 것이 라고 볼 수 없다. 관련 소송이 많이 제기된 상태라 다양한 유형의 상여금 지급조건을 대법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더 명확하게 법리적으로 규명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현재 대법원 판례는 일관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font color="#008ABD">인천지법 “실적과 연동된 상여금은 통상임금 아냐” </font>5월9일 인천지법은 삼화고속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임금협약 을 보면, ‘상여금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 한해 직전 2개월을 산정기간으로 삼아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어서다. 인천지법은 “노동자가 상여금 산정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무했는지, 노동자가 상여금 지급월까지 근무했는지 등과 같이 실제 근무성적에 의해 지급 여부와 지급액이 달라지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정부와 사용자 쪽은 통상임금 법리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 불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댕겼다. 지난 5월8일 박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기업인을 만났다. 제너럴모터스(GM)의 대니얼 애커슨 회장은 “한국에 8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하려는데,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 령은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했 다. 애커슨 회장은 ‘민원’이 받아들여져 크게 안도했다고 한다. GM 은 통상임금 소송 당사자다. 이미 1·2심에서 패소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이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상여금은 통상임 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고,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통상임금 문제를 논의할 노·사·정 대화를 공식 제안했다. 노동자 쪽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용자 쪽이 상여금처럼 1개월이 넘어 지급되는 금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입법을 요구하고 나섰다.“일본의 선례를 따르자는 얘기다.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의 이원적 도구 개념은 일본의 영향이다. 적절한 임금 지급을 보장하기 위해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할 때 도입했다. 퇴직금 제도를 법적으로 강제하면서 그 금액을 산정하려고 평균임금을 도입했고 초과근로 보상제도를 강행규정하면서 가산임금을 상정하는 기준으로 통상임금을 들여왔다. (평균임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지만 통상임금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일본은 현 재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것을 법률로 열거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비슷한 입법을 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일본의 법규도 들여다보면, 임금 지급 기간이 1개월을 넘었다고 무조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당연히 통상임금인데도 이를 제외시키려 고 1개월을 넘긴 거라면 통상임금이라고 최고재판소에서 여전히 판 단한다. 오·남용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입법화하더라도 통상임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1996년 2월부터 1개월을 넘어 지급되는 임금이라도 정기적·일률적이면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하고 있 다. 체력단련비와 상여금이 그렇다.)”
<font color="#008ABD">“복잡한 임금 구조는 노사 타협의 산물” </font>우리 임금 구조는 왜 이렇게 복잡해졌는가.“노·사·정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측면이 있다. 우선 정부는 경제지 표로서 임금인상률을 억제해왔다. 임금이 오르면 공적 부담·비용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임금수준의 인상률은 주로 기본 급을 단위 기준으로 삼아 통계에 반영한다. 이에 정부는 정책적으로 기업이 기본급의 인상률을 낮게 책정하도록 유도해왔다. 기업은 각 종 명목의 수당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노동자의 이해관계도 맞 아떨어졌다. 기본급이 아닌 각종 수당은 그 명목에 따라 소득세법상 비과세가 된다. 식대·자가운전보조금·육아수당·연구활동비가 그랬다. 세금을 덜 내면서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효과가 더 커졌다. 수 십 년간 관행이 계속되면서 복잡한 임금구조가 뿌리내렸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임금법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본질을 꿰뚫 는 기본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임금의 기본 원리는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사람으로부터 노동을 제공받을지, 상대적 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제공받을지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사용자가 노동 제공의 대가로 미리 정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 야구 선수의 연봉이 그런 경우다. 반면 인센티브처럼 노동을 제공하 는 과정에서 더 많은 실적을 내거나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그 대가로 지급하는 것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정의했다.
평균임금은 ‘통상 생활임금’을 뜻한다. 산정 방법은 통상임금과 달 리 법률로 규정돼 있다. 퇴직 전 3개월 동안에 지급된 임금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액수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평균임금 은 퇴직금이나 산업재해 보상금 등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한 경우가 생긴다. 가족수당을 보자. 명칭만 보면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자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려는 복리후생적 금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상품을 사고파는 계약관계와 다른 ‘종속노동’이다. 노동력의 처분 권한을 사 용자가 지배함으로써 노동자가 매여 사는 꼴이다. 따라서 가족수당 이라는 이름의 돈도 평균임금으로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임금 인지 여부는 지급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부양가족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가족수당을 주면 통상임금이다. 하지만 가족 수에 따라 차등을 두면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사례는 퇴직을 예상한 택시운전사 이야기다. 퇴직금을 올릴 목적으로 택시운전사는 3개월간 평소보다 4배 많은 사납금을 입금했다. 법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이 사납금으로 평균임금을 산 출해야 맞다. 하지만 대법원은 통상 생활임금을 사실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평균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지난 5월8일 방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에 8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테니, 통상임금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달라”는 대니얼 애커슨 제너럴모터스 회장의 ‘민원’에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font color="#008ABD">“임금체계 경직성 과도, 성과급·피크제 불가피” </font>복잡한 임금체계를 어떻게 개편해야 할까.“우리 임금법제는 올리기는 쉬워도 내리기는 쉽지 않은 ‘상향 경직 성’을 안고 있다. 임금체계는 여전히 호봉제 중심이다. (2007년 현재 연봉제 도입률은 52.5%지만 이 가운데 절반 이상(52.9%)이 여전히 호봉급적 임금 결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제는 임금의 ‘유연성’이 많이 요구된다. 연봉제 등 성과급제나 임금피크제 등으로 임금체계 를 바꾸거나 그 도입을 늘려가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려 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변경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는 노 사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률가들이 중재 역할을 맡아야 한다.”
2005년 10월부터 6년간 대법관으로 재임한 김지형 전 대법관은 노동 판례를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서울대 출신으로 만 47 살에 대법관에 임명돼 ‘다양화’의 상징으로 꼽혔다. 김영란·이홍훈· 박시환·전수안 전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2011년 퇴임한 뒤 모교인 원광대에서 석좌교수로 교편을 잡다 가 노동법연구소 ‘해밀’을 창립하고 지난해 말 법무법인 지평지성에 새 둥지를 틀었다. 지평지성은 7월9일 오후 2시 서울 남대문로 대한 상공회의소에서 ‘현행 임금법제의 문제점과 해결책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올해 선고된 통상임금 판결 50여 건을 분석해 임금설계 개편을 모색하는 자리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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