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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아닌 ‘조르바’ 돼야
담대한 도전일까, 아니면 때 이른 과욕일까?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4월24일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하자 이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출마 여부만으로도 뜨거운 관심을 끄는 걸 보니 안 전 교수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또 그만큼 현재의 정치가 불안정하고,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점에서 그의 출마는 당락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정치권, 특히 야권의 재편에 대한 이해관계 충돌로 이해하는 것이 적정해 보인다.
대중과 함께 아파하고 부대껴야정치인 안철수,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잘하든 못하든 분명한 건 그 길이 가시밭길이고, 그 길을 거치지 않고선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 전 교수는 남다른 면모와 부족한 측면을 동시에 보여줬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희망자로 처음 등장한 이후 이른바 ‘안풍’은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이 있던 2012년 9월19일까지 지속됐다. 전례를 찾기 힘든 지지율의 유지가 기본적으로 객관적 정치 상황으로 인한 것이긴 해도, 그가 잘한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그는 새로운 인물이었고, 기성 정치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새로움과 다름이 대선 후보 안 전 교수가 보여준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과연 그가 이 새로움과 다름에 걸맞은 내용을 제시하고 감당할 리더십을 보여주었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면 부정적 답이 적지않다. 호의적 시선으로 봐도 그의 대선 때 행보는 아쉬움이 많다. 대선 후보는 후보로서의 지위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진영이나 세력의 리더라는 지위도 갖는다. 후보는 득표를 위한 활동에 집중해야 하지만 리더는 전체를 끌어가는 활동도 펼쳐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안 전 교수는 야권이 혁신에 나서고 그럼으로써 여야 간에 확실한 차별화가 되는 전선을 만들어내는 데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전략적으로 보면, 단일화의 가장 저급한 수준이 누가 후보직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둘 중 누가 이기느냐로 가면 단일화는 제로섬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일화는 결국 야권이 승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고, 그 효과는 여권의 후보보다 더 나은 대안을 갖고 있음을 보여줄 때 온전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안 전 교수는 단일화 프로세스를 양자 간 경쟁 측면만이 아니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맞서는 프레임을 통해 주도해나갔어야 한다. 물론 안 전 교수의 책임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그것이 더 크지만 안 전 후보도 반드시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안 전 교수가 4월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건 잘한 일이다. 야권의 책임 있는 리더로서 뒷전에 물러앉아 있어서는 곤란하다. 전면에 나서서 야권의 개편 또는 혁신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속한 출마 결단은 그가 달라졌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청신호라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이야 있겠지만 우선 출마 공표가 지난 3월3일에 있었는데, 8일 뒤에 귀국하는 것부터 어색하다.
사실 안 전 교수는 외국에 너무 오래 체류했고, 드러나게 하는 일없이 성찰하는 데만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 같다. 지난해 12월19일에 떠나 올해 3월11일에 귀국하니 무려 석 달 가까이 한곳에만 머물며 조용히 침잠했다. 야권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나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분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부대끼지 않은 건 지도자로서 온당치 않은 행보다. 나와 다르고 멀리 있다는 느낌을 주면 지도자로선 대중적 열망을 동원하기 어렵다. 안 전 교수가 이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인기는 기본, 문제는 리더십노원병 출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서운해할 필요 없다. 더 이상 정치인 안철수는 ‘어린왕자’가 아니다. 믿고 의지할 ‘조르바’가 되어야 한다. 비판하는 언급에 대해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고, 자신이 결국 포용하고 감당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은 비난에 연연해하면 큰일을 이뤄낼 수 없다. 시시비비보다는 탕탕평평의 자세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게 필요하다. 귀국하면 민주당, 노회찬 전 의원과 만나 더불어 가는 모습을 만들어내야 한다. 차이와 다름을 전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 아니던가.
안 전 교수는 복 받은 정치인이다. 숱하게 많은 정치인들이 얼마나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해 분투하고 동분서주하나. 그럼에도 그들은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 점에서 안 전 교수가 등장부터 지금까지 누리는 인기는 독보적인 것이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박근혜 대통령조차 처음엔 안 전 교수 정도의 인기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인기는 유리한 조건일 뿐 승부의 관건이 될 수 없다.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보여야 확실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건 오롯이 그만의 몫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야권연대 틀로 묶지 마라대선 이후 지난 80여 일 동안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주로 민주통합당 눈앞에서 윙윙대는 회초리로 소비됐다. “후보가 안철수였으면 이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논쟁에서부터 “이러다가 안철수가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러나”라는 한탄이 그랬다. 심지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안철수가 돌아와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스스로 난맥상을 노출하는 박근혜 정부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지만, 민주당은 반사이익도 제대로 못 얻고 있다. 게다가 대선 평가나 전당대회 준비 같은 당 재정비에서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잉태도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이다. 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지난 3월2일 여론조사에서 신당 지지율이 무려 29.4%로 나타났다.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첨예한 시점에서 진행된 여론조사에는 반사이익 내지 거품이 끼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가상의 신당에 대한 지지율 자체가 아니라 그 구성비다. 신당 창당 때 민주당 지지율은 21.8%에서 절반 수준인 11.6%로 급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신당 쪽으로 10.2%포인트 넘어가는 셈이다. 새누리당 지지율도 49.5%에서 40.1%로 9.4%포인트 감소한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한 비율도 22.7%에서 16.6%로 8.1%포인트 줄었다. 가상의 안철수 신당 지지층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무당파에 거의 동일하게 분포해 있는 셈이다. 대선 당시 안 전 교수의 강점, 즉 온건보수에서 중도진보를 포괄하는 지지 기반이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야권연대와 다른 지지 기반그럼에도 안철수 앞에 주단만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제대로 검증받지 못했던 안철수 개인의 정치적 역량, 세력의 문제가 남아 있다. 천시와 지리가 갖춰져도 인화가 빠지면 성사되는 일이 없기 마련이다.안철수 진영의 공식 창구 격인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지금까지 야권은 대안과 비전이 아닌 반여후보 단일화에 모든 것을 건 ‘반대의 연합’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요구했다. 이제는 새로운 비전과 대안으로 경쟁하고 국민에게 선택받아 신뢰받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안철수의 기반도,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요구도 ‘야권연대의 재구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올 생각을 해야지 왜 집안 식구들 먹는 걸 뺏으려고 합니까”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인 김태년 의원이 “안 전 교수는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야권 통합에 기여하는 역할을 견지해야 한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하지만 야권연대는 더 이상 안 전 교수의 족쇄가 될 수 없어 보인다.
같은 이유로 야권연대론 혹은 ‘제2의 노무현론’에 입각한 ‘부산 영도 차출론’도 자연스럽게 기각된다. 사실 민주당은 물론 범야권의 지난 대선 패배 평가에서도 “민주 대 반민주의 고전적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일화 자체를 능사로 생각했다”는 문장이 빠지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안 전 교수의 서울 노원병 출마 선언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결과적으로 파탄 난 ‘야권연대 만능론’에 대한 실질적 종지부라고 봐도 될 듯하다.
물론 “비민주적 조짐이 보이는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범야권 세력이 뭉쳐야 한다” “일여다야 구도는 필패”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범야권의 ‘분열’은 여권 우위의 물질적 기반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열리는 재보선에 국민이 기대하는 바가 ‘야권연대 재구성’일지는 의문이다.
대표적 정당주의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지난 1월 새해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는 양당 구조가 기본 틀인데 이게 잘못 돌아가면 일종의 담합 구조가 된다. 제3의 정당이 나타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 전 후보가 한국 정치사에 기여하려면 제3의 정당을 만들어 성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무조건적 야권연대는 양당 구조의 기형적 연장일 뿐이기도 하다. 이처럼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 나아가 야권 경쟁 구도 선언의 기반은 충분하다. 가상의 안철수 신당에 대한 호남의 호응이 뜨거운 점을 고려하면 오는 10월 재보선에서도 일정 수준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약진할 수 있는 외부적 요인은 모자라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인화, 인사그럼에도 안철수 앞에 주단만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제대로 검증받지 못했던 안철수 개인의 정치적 역량, 세력의 문제가 남아 있다. 천시와 지리가 갖춰져도 인화가 빠지면 성사되는 일이 없기 마련이다. 과거 노출했던 추상적 언어 습관, 좌고우면하는 듯한 모습이 재연된다면 보수 진영은 물론 야권의 잠재적 경쟁 세력도 그를 향해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이다. 세력화의 핵심인 사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과 민주당 출범 과정에서 범야권의 정치 예비군은 대부분 소진됐다. 안 전 교수가 세력화에 급급한 나머지 기존 야권 질서에서 밀려난 인사들을 규합하는 데 그친다면 두 번째 도전의 전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윤태곤 정치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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