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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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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를 사랑한 괴벨시안

‘힘의 논리’ 숭상하고, ‘전쟁의 수사학’ 능하며, ‘증오의 정치’ 선동한 언론인 윤창중… 신문과 방송을 옮겨다녀도 오직 ‘정치’ 향한 열망만은 일관됐던 어느 청와대 대변인의 이력
등록 2013-03-08 00:12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윤창중은 ‘박근혜 정부에 참여할 뜻이 있느냐’는 종합편성채널 사회자의 질문에 “영혼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축했지만, 며칠 뒤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책무 의식 때문에 돕기로 했다”며 박근혜 당선인의 부름에 화답했다. 지난해 12월25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윤창중. 한겨레 강창광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윤창중은 ‘박근혜 정부에 참여할 뜻이 있느냐’는 종합편성채널 사회자의 질문에 “영혼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축했지만, 며칠 뒤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책무 의식 때문에 돕기로 했다”며 박근혜 당선인의 부름에 화답했다. 지난해 12월25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윤창중. 한겨레 강창광

동경의 강렬함이 성취를 보증하진 않는다. 모방과 인용이 아무리 집요해도, 자질과 진정성, 과거를 현실로 번안해내는 정교한 역사의식 없이는 왜소한 에피고넨(아류)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정치권 안팎의 허다한 책략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가 한국의 장자방, 21세기의 마키아벨리가 되기란 무망한 일이다. 숱한 반발과 비토를 이겨내고 ‘대통령의 입’이 되어 청와대로 입성한 윤창중의 경우는 어떨까.

영자지, 방송사, 일간지

한국의 전·현직 정치 칼럼니스트 가운데 그만큼 마키아벨리를 즐겨 인용한 이도 드물다. 윤창중은 논설위원실에 몸담았던 13년간 600편에 가까운 기명 칼럼을 썼다. 이 가운데 마키아벨리가 등장하는 게 35편이다. 매해 최소 두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그의 칼럼엔 마키아벨리가 등장했다. 그가 인용하는 마키아벨리는 ‘음모와 술수의 화신’이라는 속류적 이해와는 거리가 있다. 냉철한 ‘정치적 현실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다. 대체로 호감을 갖는(정치적 운명을 함께하는) 정치인을 향해 ‘과감한 결단과 행동’을 촉구할 때 빈번히 그를 인용했다. 윤창중은 마키아벨리의 어떤 모습에 매료됐던 것일까.

1997년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서 언론담당 보좌역으로 후보를 수행하다가 대선 패배 뒤 회사를 옮겨 언론계로 돌아왔다. 두 번째 복귀 때는 당시 여당 실력자인 권노갑(당시 민주당 고문)과의 일본 연수 시절 교분이 힘을 발휘했다는 게 정설이고 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 못잖게 정치적 처세에도 탁월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함께 일했던 언론계 인사들은 윤창중을 대단히 정치적인 인물로 기억한다. “언젠가는 정치를 할 사람”으로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환승 신공’으로까지 불리는 그의 이력을 살피면 그리 지나친 평가라고 보긴 힘들다. 그는 언론사에 근무하다가 두 차례 외도를 감행했다. 노태우 정부 말기인 1992년 윤창중은 기자직을 내던지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다 이듬해 복귀했다. 1997년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서 언론담당 보좌역으로 후보를 수행하다 대선 패배 뒤 회사를 옮겨 언론계로 돌아왔다. 두 번째 복귀 때는 당시 여당 실력자인 권노갑(당시 민주당 고문)과의 일본 연수 시절 교분이 힘을 발휘했다는 게 정설이고 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 못잖게 정치적 처세에도 탁월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윤창중의 언론사 경력도 눈길을 끈다. 그는 1981년 영자신문 의 정치부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러다 1986년 KBS 외신부로 자리를 옮긴다. 정치부를 희망했지만, 영자지 출신이 비집고 들어가기엔 방송사 정치부의 텃세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2년 뒤 윤창중은 갓 창간된 로 이직한다. 넉넉한 보수와 안정된 정년이 보장되는 공영방송을 미련 없이 떠나 장래가 불투명한 신생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로 옮겨간 것이다. 기자로서의 모든 촉수가 정치권을 향해 뻗어 있었다는 방증이다. 13년간 몸담았던 에서도 그는 일관되게 정치 칼럼만 썼다.

정치부 생활을 오래 한 기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매사를 ‘음모와 암투’의 프레임으로 보는 성향이 짙다는 점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오프더레코드’나 익명 보도를 전제로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말을 소스 삼아 지속적으로 기사(또는 내부 정보)를 생산해야 하는 그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안팎에서 유능한 기자로 인정받으려면 유력 정치인과의 돈독한 친분을 바탕으로 고급 정보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밀실에서 오가는 말의 퍼즐을 조합해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를 능숙하게 써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음모론적 상황 인식은 윤창중에게도 확인된다. 이명박 정권 전반기, 촛불집회에서 노무현 추모 정국, 야권 연대로 이어진 일련의 흐름을 ‘DJ의 기획과 음모’로 몰아간 것이 한 예다. 정치 현상의 심층을 복류하는 대중의 열망과 그 열망을 빚어낸 사회적 조건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대한민국 vs 반(反)대한민국[%%IMAGE2%%]

이런 윤창중의 성향은 그의 엘리트주의적 정치 인식과 흐름을 같이한다. 우매하고 변덕스러워 데마고그의 조작과 충동질에 넘어가기 쉬운 대중에게 공동체의 명운을 맡겨둬선 안 된다는 논리다. 2009년 노무현 추모 열기를 “황위병이 벌인 거리의 환각 파티”로 조롱했던 그는, 2012년 9월 안철수의 등장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을 향해 적의에 찬 독설을 퍼붓는다. “이 정도 수준의 안철수한테 열광하다니!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에 거듭 경악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국민이 정치를 망치고 있다.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갖는다.”(‘뻐꾸기의 야심’, 2012년 9월21일) 그가 를 그만둔 뒤 인터넷 칼럼 사이트에 연재한 글을 모아 펴낸 책 제목이 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대중에 대한 윤창중의 불신은 ‘힘의 논리’에 대한 일방적 강조로 이어지고, 그것은 ‘정치적 현실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 점은 그가 즐겨 인용하는 마키아벨리 어록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약체 군주는 언제나 우유부단하다. 결단을 꾸물거리며 모호하게 해두는 건 언제나 해롭다.” “군주가 변덕스럽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소심하며, 결단력이 없을 때 국민의 마음속에 경멸이 싹튼다.” 윤창중은 마키아벨리의 ‘정략론’과 ‘군주론’에 등장하는 이 두 구절을 촛불시위와 세종시 수정 논란, 천안함 사태 직후 통치자 이명박이 보여준 우유부단함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인용했다( 서문).

매사 힘의 논리에 기반한 정치를 강조하다보니, 윤창중의 글을 지배하는 것은 ‘전쟁의 수사학’이다. 타협의 미덕은 오직 진영 내부에서만 발휘될 수 있을 뿐(박근혜여 MB와 타협하라!), 경계지대 바깥에선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교함’만 허용된다. 그는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3월, 한나라당을 향해 야권의 선거 전략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전쟁이론의 전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모든 힘을 모아, 단 한 방의 집중적인 타격으로 적의 힘의 중심을 공격하라’. 힘의 중심? 서울 공격! 유시민을 경기지사로 내세우고 인천까지 후보를 만들어 적의 심장인 수도권을 동시다발로 강타할 것이다.”(‘한명숙의 미소’, 2010년 3월16일)

전쟁의 수사학은 선명한 피아 이분법을 동반한다. 윤창중에게 그것은 한국 정치를 ‘대한민국 세력(국가중심 세력) 대 반(反)대한민국 세력(친북·종북·반미 세력)’의 첨예한 대결 구조로 표상하게 만든다. 박근혜의 당선으로 귀결된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후 그가 쓴 인터넷 칼럼에는 이런 이분법과 대결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번 박근혜의 승리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지켜내려는 ‘대한민국 세력’과 이를 깨부수려는 ‘반대한민국 세력’과의 일대 회전(會戰), 거기에서 ‘대한민국 세력’이 마침내 승리했다.”

이런 대결주의적 인식이 위험한 것은 그 필연적 귀결이 ‘증오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찍지 않은 국민은 ‘반대한민국 세력’이다. 따라서 일말의 관용과 동정심도 이들에게 허용돼선 안 된다. 윤창중은 말한다.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섣부른 감상주의, 낭만주의에 빠져서는 절대 안 된다. ‘반박근혜 세력’이 국민의 절반이나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단칼’로, ‘한 방’으로 ‘박근혜 정권’을 세워야 한다.”(‘국가중심 세력이여 영원하라!’, 2012년 12월20일) 대체 그에게 ‘단칼’과 ‘한 방’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깨알 같은 연출’ 감각

한국 정치에 대한 윤창중의 극단적 진술이 그의 양심과 신념에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의 글이 추종자들을 열광시키고 일정 규모의 정치적 결집을 이루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엔 그의 근면성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 같다. 그는 온라인 정치 칼럼니스트로서 하루 일과를 이렇게 적었다. “매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 4시 반~5시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보며 칼럼 구상에 들어간다. 그랬다가 오전 8시 반~9시 광화문 집필실에 도착해 1시30분 정도 칼럼을 써서 매일 10시~10시20분 ‘윤창중 칼럼세상’에 띄운다.” 그는 이 생활을 이어가며 외부 기고와 종합편성채널(종편) 출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범한 언어감각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그의 언어는 설득의 언어라기보다, 자극의 언어다. 속도감 있는 단문을 빈번히 구사하고, 저널리즘 글쓰기에서 금기시되는 문장부호(느낌표와 물음표)를 남발하는가 하면, 문장의 어미마저 생략하는 파격도 예사롭게 구사한다. 글을 끌어가는 힘 역시 팩트나 논리보다 수사에서 나온다. 분노를 자극하는 독설, 논리적 반박을 우회하는 교묘한 상징조작은 윤창중의 장기다. 집권세력의 독주와 불통에 항의하며 장외로 뛰쳐나간 야당을 향해 “야당 독재” “탈레반 민주주의”라 역공하거나, 2009년 국회 민원실에서 발생한 전여옥(당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노인들의 드잡이질을 “여당 의원의 눈을 파내려 한… 친북·좌파·반미 세력의 ‘정권 불복종 총궐기 사건’의 상징”으로 몰아가는 기민함엔 업계의 어지간한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에 임명된 뒤에는 신문기자 출신이 웬만해선 갖기 힘든, 의외의 자산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윤창중은 보여준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소나기 펀치에도 링 바닥에 드러눕지 않을 만큼의 정치적 맷집, 보스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깨알 같은’ 연출 감각(그는 인수위 보직을 받은 뒤 첫 기자회견장에 란 잡지를 봉투째 소지하고 입장했다가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인수위 출입기자들 앞에서 “설렁탕집에서 30분 동안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왔다”거나 “어떤 기사도 내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게 하지는 못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남다른 과시욕과 자기애를 내비치기도 한다. 굴절 많은 이력과 정치인으로의 표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망한 말바꾸기도 불사할 만큼 후한 안면근육도 갖췄다. 대선 직후 박근혜 정부 참여 의사를 떠보는 종편 사회자에게 “영혼에 대한 모독”이라 일축했다가 며칠 만에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책무의식 때문에 박근혜 정부를 돕기로 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논설위원 시절 “나는 정치를 안 할 사람이니, 칼럼을 이렇게 독하게 쓸 수 있는 것”이란 요지의 발언을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윤창중은 마키아벨리스트일까. 마키아벨리를 닮고 싶은 그의 욕망이 강렬하고 진실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말과 글, 행동으로 판단하자면, 마키아벨리스트의 진정한 본령에 이르기엔 윤창중의 정치 인식은 한참 부족해 보인다. 그의 마키아벨리 해석은 편협하고 파편적이다. 그는 자신이 인용하는 마키아벨리의 진술을 군주의 통치 테크닉과 관련된 정치적 잠언 정도로 받아들일 뿐, 그 진술들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에는 무관심하다.

이것은 누구의 문장인가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역량 강화를 통해 달성하려던 것은 내부 과두세력의 도전과 외부 침략으로부터 주권과 인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통일국가였다. 그는 이 국가가 군주권 강화를 통한 귀족세력의 제압과 충성스런 시민군의 조직을 통해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그는 이 국가의 한계 또한 알고 있었다. 군주의 절대 권력만으로는 국가의 힘이 지속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힘을 안정된 제도 위에 올려놓고자 했다. 귀족과 인민이 공존하며 협력과 견제를 통해 국가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혼합정체(공화제)였다. 을 쓴 그가 이어진 에서 고민한 것도 이 문제였다.

하지만 윤창중이 설파해온 대결과 증오, 배제의 정치 안에 이런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이 깃들 여지는 없다. ‘윤창중의 대한민국’은 마키아벨리의 공화국보다 20세기 유럽의 ‘제3제국’에 가까워 보인다. 그곳에도 마키아벨리를 동경한 인물이 있었다. 주옥같은 어록도 남겼다. “대중은 여자와 같아서 자신을 정복하고 지배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기다린다.” “거짓말은 처음엔 부정되고, 그다음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열린 마음은 문지기가 없는 성과 같다.” 그의 이름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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